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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산악에 갇힌 캐나다

캐나다 정부, 2009년까지 주둔 연장 계획발표

할로윈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캐나다 밴쿠버의 다운타운 거리에는 성미 급한 젊은이들이 벌써부터 주말 저녁 파티에 입고 갈 온갖 기기묘묘한 의상을 입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그렇게 온 도시가 가벼운 설레임으로 들떠있는 가운데 워터프론트 전철역 앞에서는 형형색색의 구호가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 그리고 페이스페인팅 등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곧 시작될 행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미국의 이라크침공에 반대하는 국제행동의 날 및 캐나다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위한 범캐나다의 날’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었다.

이 날의 행진은 약 8백여 명의 시민들이 모인 밴쿠버 뿐만 아니라 토론토, 몬트리올, 오타와, 핼리팩스 등 캐나다 전역의 크고작은 37개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참가자들의 요구는 단순하고도 분명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캐나다를 비롯한 모든 외국군대의 즉각적인 철수와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의 자결권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비단 캐나다에서만 터져 나오는 외침만은 아닐 것이다. 그

러나, 지금 많은 캐나다 국민들은 자국의 젊은 병사들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그것도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나토(NATO)의 주력군으로 참여해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의 생명과 삶을 파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특히 분노하고 있다. 그동안 캐나다의 대다수 국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른바 ‘평화를 수호하는 나라(peace-keeping country)'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시작된 시점인 2001년 10월, 나토의 일원으로 일찌감치 파병을 결정해 이듬해 1월 처음으로 750명의 지상군 병력이 아프가니스탄 땅을 밟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해서 지금은 약 2천 5백 여 명의 캐나다 군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병력 수로는 약 2만 명의 미군과 4천 명의 영국군, 2천 9백 명의 독일군에 이은 네 번째이지만, 전사자 수로만 보면 약 300여 명의 미군 전사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42명의 캐나다 군인들이 교전 과정에서 사망했다(주;최근 11월말에 2명이 추가로 숨져 지금까지 총 전사자 수는 44명이다).

이는 캐나다군이 대부분 무장저항세력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사자의 절반 이상이 올 해 들어 사망한 군인들이고 또 그 중 15명은 바로 나토군이 남부와 중부지역에 엄청난 화력과 병력을 집중시켜 탈레반 세력의 기반을 와해시키겠다고 공언한 이른바 ‘메두사 작전’이 전개된 9월 이후에 발생한 전사자들이었다. 그만큼 전투가 치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나토군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아프간 무장저항세력의 위력이 웬만한 공세에는 끄덕없을 정도로 막강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한 캐나다 장교가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캐나다 CBC TV의 카메라를 향해 “여기는 사방이 온통 적이다. 우리는 고립되어 있고 지원군이 빨리 파병되지 않으면 더 오래 버티기 힘들다.”고 인터뷰하는 모습을 뉴스시간에 볼 수 있었다. 캐나다 정부 또한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인하고 있다.

외무장관 피터 맥케이는 의회에서 행한 답변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부족으로 고전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짐을 캐나다 혼자 질 수는 없다. 나토의 다른 동맹국들이 동맹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나토 회원국들의 증원군 파병을 촉구했지만, 폴란드, 루마니아 등만이 파병을 약속했을 뿐 대부분국가들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에 선뜻 발을 담그기를 꺼려하고 있다.

사실 이는 캐나다 정부가 스스로 초래한 자업자득이다. 캐나다 정부는 애초 파병을 결정할 때 아프가니스탄의 ‘재건과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반전운동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조차 정부의 파병 명분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캐나다가 (비록 나토 회원국이긴 하지만)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적극적으로 발을 담그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는 행동조직(Mobilization Against War and Occupation, MAWO)'의 활동가인 니타 팔머는 월간 ‘파이어 디스 타임(Fire This Time)'에 기고한 글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유럽, 아시아, 중동시장으로 통하는 중요한 허브이며, 아프간을 장악하는 것은 곧 그들 시장에서 막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캐나다가 그동안의 가면과 위선을 벗어던지고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단언한다.

2005년에 발표된 캐나다의 국제정책보고서에서도 “캐나다는 ‘중간국가로서의 유리천장’을 뚫고 나와 ‘신흥 강대국들의 세계’에서 경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캐나다 정부는 최근 들어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군사력 강화의 일환으로 현재 6만 여 명에 불과한 정규군 병력을 향후 수년 내에 2만 3천명 이상 증강시키고, 20억 달러를 투입해 최신형 전투기를 구입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지난 달 말, 재정적자의 감축과 예산의 효율적 운용을 이유로 올해보다 10억 달러 줄어든 새해 예산안을 발표한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즉, 여성과 이민자, 교육, 의료 등의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는 대신 그 돈으로 무기를 사고 군인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 캐나다의 반전운동가들과 시민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구호 중 하나가 바로 “전쟁과 점령이 아니라 교육과 의료를 위해 재정을!(Money for Healthcare and Education, Not for War and Occupation!)인 것이다.

그렇다면, 캐나다 정치권의 입장은 어떨까? 오늘날 캐나다의 주요 정당으로는 올 초 치러진 총선에서 전체 308개 의석 중 124석을 차지해 집권당이 된 스티븐 하퍼 총리의 보수당(CP)과 1993년부터 작년까지 장기집권했던 자유당(LP), 그리고 중도좌파의 신민주당(NDP) 등이 있다.

이 중 보수당은 여전히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캐나다의 국익을 위해 어쩔수 없이 치러야 할 희생이라며 지지하고 있고, 이에 화답해 정부는 2009년까지 점령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유당 또한 아프간 침공과 점령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원래 파병을 결정한 것도 자유당의 장 크레티앙 총리 내각이었고, 아프간에서의 캐나다의 적극적인 역할이 서방국가들 내에서의 캐나다의 발언력을 높여줄 것이라는 데는 보수당과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의 전략과 전술의 부재와 미흡함을 질타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신민주당은 비교적 신생정당이자 29석의 의석만을 가지고 있는 소수정당인데다 진보세력 내에서도 철군을 위한 실천적인 지도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종종 애매모호한 입장과 운동 내에서의 기득권에 연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에 비해, 일반 국민들 내에서는 반전과 철군 여론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다. 데시마 리서치(Decima Research)를 비롯한 각종 여론조사 기관들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한결같이 60% 이상의 국민들이 아프간 침공이 아무런 명분이 없으며 캐나다 군이 철수해야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힘입어,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전까지 ‘오랜 잠에 빠져 있었던’ 진보적인 반전평화운동도 날이 갈수록 자신감과 활동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 이 곳 반전운동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전체 교역량의 80%가 미국을 통해 이루어지고 전국민이 매일같이 미국의 오락프로그램, 드라마, 메이저리그, 풋볼리그를 실시간으로 즐기는 나라. 미국처럼 원래 이 땅의 주인이던 인디언 선주민들을 학살함으로써 세워졌고, 지금도 선주민 어른들은 보호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아이들은 강제로 부모로부터 떼어내 ‘레지덴셜 스쿨(residential school)’에서 서구식 사고와 문화를 주입시키는 나라. 그러면서도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는 미국과는 달라’라고 생각하며 미국의 대외정책에 비판적이고 부시 행정부는 거의 조롱거리로 여기는 나라 캐나다.

과연 캐나다가 그들이 가진 자부심 그대로 ‘평화를 수호하는 중립국가’로서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작은 미국’으로서 신흥 패권국가로서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 것인가. 지금 캐나다는 바로 그 기로에 서 있다.

* 글_ 최재훈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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