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삶과 과학 - 왜 지능인가? (2)

최형록(인문학자)

지능에 대한 정의의 새로운 경향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전통적 지능검사의 결함은 지능에 대한 편협한 정의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 정의의 요점은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로 나타나는 일반지능, 이른바 g238)가 있다는 것 그리고 지능은 선천적인 것이어서 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지능에 대한 ‘심리학자의 정통이론´은 최근 심각한 도전과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런 비판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하버드대학교의 교육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의 ‘지능의 복수성´론 그리고 필자가 동지적 친화성을 느끼는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죠지 워싱턴 대학교의 행동심리학과 소아과의사인 스탠리 그린스펀의 입장이다. 바렐라와 그린스펀의 입장은 문화적 돌연변이´와 관련해서 핵심적인 것이므로 별도의 글에서 다룰 것이다. 여기에서는 가드너의 논의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가드너의 ‘지능의 복수성´론

가드너는 지능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심리생물학적 잠재력 혹은 문화적 맥락에서 적어도 한 영역에서 가치 있는 소산을 형성할 수 있는 심리생물학적 잠재력”이라고 정의한다.239) 그의 논의의 원천은 다섯 가지다.

1) 심리학: 평범한 사람이나 재능 있는 사람이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겪게 되는 일정한 능력의 발달의 역사, 그리고 능력들 사이의 상관관계 혹은 상관관계의 결여.
2) 학습자들에 대한 사례연구: 영재, Savant 240) 혹은 학습장애자들을 포함하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찰.
3) 인류학: 서로 다른 문화에서 상이한 능력들이 어떻게 계발되거나 무시되고 소중한 것으로 여겨졌는가에 대한 기록.
4) 문화연구: 일정한 종류의 의미들과 관련된 상징체계-언어, 산수, 지도 등-의 존재.
5) 생물학: 능력마다 상이한 진화론적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특정한 신경구조 속에서 표상-대뇌의 좌우반구 연구-된다는 증거.

가드너는 지능을 위한 8가지 기준에 비추어 인간에게는 8 혹은 9가지의 지능이 있다는 ‘지능 복수성´론을 제시한다.

1) 시집 「황무지」로 유명한 엘리엇이 잘 보여주는 언어능력.
2) 논리 수학적 능력으로서 가드너는 아인시타인이 합리적 능력과 직관적 능력이 교묘하게 조화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3) 모차르트가 발휘한 경이로운 음악적 지능.
4) 한국전쟁의 학살을 그린 피카소나 이집트의 피라밋을 세운 건축가들이 보여주는 공간적 지능.
5) 조선의 최승희, 그리스의 이사도라 던컨과 같은 무용가들, 이디오피아의 마라톤선수 아디스 아베베,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던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신체 역학적 재능을 보여준다.
6) ‘위대한 영혼’ 간디의 빛나는 인간관계 능력으로서 타인과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 혹은 타인의 정서, 동기, 그리고 정신 상태를 읽을 수 있는 능력.241)
7) 프로이드가 보여주는 인간 내면에 대한 능력으로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정신 상태를 관찰해서 기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가드너는 인간관계 능력과 인간내면에 대한 능력을 느낌보다는 인식과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감성지능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8) 인간중심주의적 미망(迷忘)으로부터 인간을 자각시킨 다윈이 발휘한 자연주의적 능력으로서 자연적 대상들을 인식하고 범주화하는 능력이다.
9) 인간의 고통의 근원이 탐욕과 무지에 있으며 만물이 상호의존 되어 있음을 깨달아 해탈한 석가모니와 달라이라마242)가 실천한 실존적 재능으로서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들, 삶과 죽음, 무한과 유한의 문제를 제기하고 성찰하는 능력이다.

‘지능의 복수성´론(Multiple Intelligences, MI이론)은 두 가지를 강력히 주장한다.
첫째, 사람은 누구나 이런 지능들 모두를 가지고 있다. 둘째,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개성과 기질을 가지고 있고 지능에 있어서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일지라도 각자의 경험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의 교육적 함의는 학생들이 선호하는 앎에의 방식을 교과과정, 교수와 평가에 고려한다면 보다 많은 학생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학업을 성취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함의보다 더욱 중요하고 따라서 근본적인 물음은 ‘도대체 경험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1980년 5월 17일부터 약 1주일간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경험적 평가는 대략 범죄적 파시스트집단의 평가와 광범위한 민주세력의 평가로 구분된다. 민주세력의 일원이라면 광주에서의 만행을 사회구조적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서 반동적 쿠데타로 판단함에 앞서서 불의에 대한 분노감과 함께 정신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머리로 솟구쳐 오르는 피 끓는 윤리적 판단을 하게 된다.

분노감의 깊이와 윤리적 판단의 폭은 민주세력의 일원이더라도 동질적인 것이 아니다. 즉 역사적 경험의 토대는 수학적 공통분모라는 측면과 함께 미술에 있어서 색조의 농담(濃淡) 혹은 음악에 있어서 가락과 같은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경험은 이성, 감정 그리고 윤리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지능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최근의 연구는 지능이 ‘시각(vision)´이 아니라 ’실천(action)´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의 저변에는 스위스의 피아제의 유아심리학이론이 있다. 그에 따르면 유아의 지능 발달은 충족시키고자하는 ‘생물학적 욕구´로부터 정의된다. 이론적 지능은 대체로 실천적 지능을 의식해서 구성되는 까닭에 실천지능이 이론적 지능에 선행한다.243)

그린스펀은 피아제의 이론 그리고 심지어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이론 역시 서양의 전통인 감정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전제로 출발했음을 비판하면서 가드너의 ‘지능의 복수성론´이 지능을 이런저런 능력으로 분리하는 것 역시 비판한다. 그의 지능에 대한 정의는 이 모든 능력들을 포함하되 인간이 세계를 추론하고, 반성하며, 이해244)하기 위해서 활용하는 전체과정에 초점을 맞춘다.245)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경험은 뇌의 물리적(그리고 화학적이고 생물학적인-필자)작용 속에 어떻게 통합되어 여러 수준의 의식을 창출하는 것인가?´ 그에 따르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의 일부는 뇌가 ‘감정을 경험하고 조직하는 능력´에 있다고 한다.246)

바렐라의 관점은 그린스펀의 접근방식과 일맥상통한다. 바렐라에 따르면 경험이란 총체적 ‘인식의 장(un locus d‘unite cognitive)’이다. 즉 인식은 몸 혹은 실천과 일체를 이룬다. 달리 말하자면 인식은 처하게 된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situated cognition). 뇌는 신체 속에 존재하며, 신체는 세상 속에 존재한다. 생명체는 움직이고, 반응하며, 자손을 낳으며, 꿈꾸고 상상한다. 삼라만상의 의미는 바로 이런 끊임없는 활동으로부터 발생한다.247)

다음 호에서는 지능에 대한 정의에 이어 지능과 관련한 최근연구에서 ‘문화적 돌연변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내용들을 다룰 것이며 그린스펀과 바렐라의 관점은 기회 닿는대로 별도의 글을 통해서 다룰 것이다.


주(註)

237) <>, 앞의 책, 16면.
238) 앞의 책, 24면~29면.
239) 앞의 책, 20면.
240) 일반적으로는 석학이라는 뜻. 이와 달리 여기서 사방은 저능아(지능지수 40~70)로서 자폐증환자이거나 자폐증상이 있다. ‘평범한´ 사방은 여러 영역에서 지극히 저능아인 반면에 한 영역에서는 정상인 사람이다. 그러나 ’희귀한´ 사방은-100명 미만이 알려져 있다-영재수준의 능력을 한 영역 이상에서 발휘한다. 앞의 책, 32면~37면.
241) 「과학과 미래」, 앞의 책, 44면, <>, 앞의 책, 20면.
「렉스프레스」지, 파리, 1997년 7월 2402호, 29면.
242) 달라이라마란 、지혜의 바다´라는 뜻이다. 르네 웨버, 「과학자들 그리고 현인들과의 대화」, 펭귄, 1990년 판, 128면.
243) 「과학과 미래」, 앞의 책, 49면.
244) 인도의 고대철학서인 우파니샤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지적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 스승의 지도 아래 궁극적 진리를 배움(스라바나), 둘째 확실성 또는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에 대해 반성(마나나), 셋째 반성한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믿음을 효과적으로 근절시킬 때까지 그러한 확신을 좀 더 심오하고 강하게 만들고자 명상하기(디야나), 김형준 “불교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서”, 김형준 외, 「논쟁으로 보는 불교철학」, 예문서원, 1998년, 296면. 시간의 거리가 있으나 고대인도의 수행자들의 수행과정은 、몸과 일체를 이루는 정신´
245) 스탠리 그린스펀, 「학습하는 정신⋅감정과 지능」, 파리, 오딜 야콥, 1998년, 12면, 139면. 이 책은 1997년 애디슨-웨슬리 롱만 출판사에서 출간된 「정신의 성장과 위기에 처한 지능의 기원」의 프랑스어 판이다.
246) 앞의 책, 124면.
247) “프란시스코 바렐라와의 대담: 뇌는 컴퓨터가 아니다”, 「연구」, 파리, 1998년 4월호, 109면~113면.



(『현장에서 미래를』, 1999년, 6월, 44호)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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