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자본과 '생물학적-유전학적 의학'을 넘어서(2)

최형록(인문학자)

2-4. 한국, 중국 등의 보건관련 생명공학 현황

한국, 중국, 인도, 브라질 그리고 쿠바의 보건관련 생명공학 현황에는 몇 가지 공통점 그리고 국가별 특성이 있다.
우선 생명공학기업의 창업조건에 있어서 가장 자유로운 곳이 한국이다. 교수가 사기업이나 Spin-off 회사를 창업할 수 있다. 2004년 현재 한국 생명공학 ‘모험자본(Venture Capital)’의 기함역할을 하고 있는 마크로젠의 창립자 서정선 교수가 바로 그런 경우다.21)

그는 1997년 생명공학 진흥을 위한 특별법이 대학교수직을 유지하면서 사업가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회사를 설립했던 것이다. 한국의 생명공학기업은 중소기업이 지배적이며 재벌이 시장유통망과 자원을 지원하는 형태이다.22)

마크로젠의 경우 한국의 재벌급 제약회사인 녹십자와 기관투자자들 그리고 ‘모험’기금으로부터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국가권력이 규제를 가하는 경우가 중국과 인도의 경우다. 중국은 화교 전문가들을 유치하는데 적극적이다. 쿠바는 정부가 장기적 구상을 지니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여 국내생명공학의 통합을 진흥시키고 있다.

연관효과의 능률성이라는 점에서 모범적인 나라가 쿠바이다. 하바나 서부에 남한 대덕 연구단지와 유사한 과학단지를 조성하고 상이한 기관들 사이의 협력과 자원의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소견 좁은 부처 이기주의, 정부부처와 사기업의 불협화음이 유별난 한국과 대조적인 사회주의적 강점이다. 2001년 현재 쿠바정부는 1100만 국민에게 국내에서 제조한 백신, 진단용 키트, 의약품을 공급해서 심장병, 암, 그리고 전염병에 대처하고 있다.23)

쿠바는 생물학의 몇몇 분야에서 첨단을 달리고 있다. 카스트로는 1980년대 초 이래 15년에 걸쳐서 과학단지인 폴로 씨엔티피코 에 10억불을 지원했으며 소련 붕괴 후 경제가 파멸적 상태에 이르렀던 ‘특수시기’에도 이 과학단지에 연구기금을 계속 지원했다. 어린이들에게는 자체 생산한 10 종류 이상의 질병에 대한 백신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아직 산-학 연계가 불충분하다. 그런 한편, 중국에서는 기존의 몇몇 연구기관들이 제약회사로 전환하기도하고 공공연구소의 전직 연구원들이 귀국한 교수들과 소 회사를 창업하기도 한다. 인도에서는 주정부, 보험회사를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모험자본’에 투자하고 이로써 외국인 투자를 유도하기도 한다. 쿠바에서는 사유가 아니나 상업적 단체가 보건생산품을 수출하고 있는데 쿠바 산 백신을 개발 ․ 판매하기위해서 외국회사들과 협정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자본가계급의 입장에서 사적 부문의 생명공학 발전에 필수적인 것이 특허법이다. 대부분의 개도국들에서 이런 법적 자극제이자 규제는 허술하다. 이런 여건에서 생명공학 기업들은 특허권이 있는 상표(brand)들을 분석하여 그 설계과정을 파악(reverse engineering)하여 염가의 상표등록이 안 된(generic) 상품을 생산해왔으나 향후 세계무역기구의 압박과 그것에 대한 민중운동의 대응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보건관련 생명공학에는 여러분야가 있다. 각국의 교육여건과 국내 수요분야 등에 따라서 ‘전략적’ 분야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주목할 만한 것이 마크로젠의 ‘한국의 유전체 기획’이다. 이 기획은 어떤 한국인의 유전체 전체를 박테리아의 염색체로 전이시켜 인간의 cDNA array를 생산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어레이 기술은 많은 유전자의 발현수준을 동시에 측정하는 데 유용한 것인데 이것은 질병과 성장단계의 연구와 치료의 기초가 된다. 한국은 정보통신기술의 노우하우를 동원하여 바이오칩 역시 생산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자국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유행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원인 바이러스 HIV의 아류C에 대한 백신을 개발했다. 쿠바는 뇌막염에 대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뇌막염B 백신을 개발했다.

한국의 생명공학 기업현황을 조금 더 살펴보면 이렇다. 1994년 정부 7개 부처는 ‘생명공학 2000 계획“에서 2010년경 남한을 생명공학 생산에 있어서 세계 7대국에 속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국생명공업협회에 따르면 생명공학 기업의 수는 450~600개에 이른다. 증권시장 (코스닥)에 상장한 회사는 2000년 단 1개사 였으나 2002년에는 23개사로 증가했다. 최초의 상장회사인 마크로젠은 처음 주가가 7불이었는데 최고 182불까지 상승한 적이 있었으며 대체로 10불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생명공학 생산물의 1/3이 생물학적 의학 분야에 속한다.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40개 이상의 제약회사가 임상실험 제1단계나 제2단계 (제3단계까지 있다)에 있는 신약 130종을 개발 중에 있다. 제1단계에서는 약의 적정복용량을 시험하는데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제2단계에서는 적정 복용량의 효과와 부차적 효과를 시험하는데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제3단계는 적정량의 효과와 부차적 효과에 대한 보다 엄밀한 조사를 하는데 3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24)

한국의 제약시장은 고가의 의료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팽창하고 있다. 상공자원부는 2010년경 국내 생명공학시장의 규모가 120억불에 이를 것으로, 해외수출은 10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의 규준에 맞는 ‘특허법’을 개정하였는데 생명공학 특허신청의 절반은 외국인 발명자의 몫이다. 이와 아울러 1997년~2001년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3배 증가하였다. LG생명과학은 다양한 외국기업과 제휴, 새로운 항암 ․ 항 박테리아 약제를 개발 중에 있다. 그리고 정부는 2000년~2007년 생명공학부문에 5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생명공학부문에도 역시 극복해야할 ‘한국병’은 노동자들의 파업이 아니라 ‘빨리빨리 대강대강 병’이다. 이것은 미래에 대해서 정밀한 동시에 폭넓은 장기구상에 입각한 연구개발 노력과 재정지원, 그리고 과학기술정책과 연구에 있어서 ‘선진국 따라잡기’식이 아닌 혁신이 공염불에 그치는 원인이다.


2-5. 지적 재산권과 아프리카 에이즈

‘전 지구적 문제’에는 생태계의 균형 파괴에 따른 쓰나미 등 문제는 물론 무엇보다도 절대적 빈곤에 따른 기아가 있다. 오늘날 하루 2불도 안 되는 돈으로 생존해야하는 인구가 2800000000명 - 인류 총 인구는 약 60억 명 - 에 이른다.25) 그런 한편 미국은 도대체 무엇을 방어해야하는지 310000000000불이나 국방예산에 쓰고 있다.26)

이런 미국이 또 하나의 전 지구적 문제인 75개국의 에이즈 비용으로 기부한 액수는 지난 10년간 연간 평균 1억불에 그쳤다. 오늘날 전 세계 에이즈환자 수는 3천6백만 명에 이르며 그 중 140만 명이 어린이이며, 그 중 2천530만 명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인들이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에이즈 치료방식인 3가지 약의 혼합 조제약은 미국에서는 하루 42.6불에 판매되고 있는 한편, 빈국에서는 하루 2.14불에 판매되고 있는데 이렇게 팔아도 이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에이즈로 죽든 기아로 죽든 제약회사는 이윤을 챙긴다는 것이다. 예수가 당대에 이스라엘의 성전을 뒤집었다면 오늘날 그는 어떤 ‘법과 질서’의 범법자가 되었을까?

  절실한 정직함으로 밥과 약을 바라는 그 많은 생명들 그리고 그들의 삶에 일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지닌 사람들은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다니며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를 역설하는 전 세계의 복거일들에게 어떤 눈빛을 던질까?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해야할 또 하나의 이유를 특허법과 지적재산권 규정과 관련해서 몇 가지만 살펴보자.

  2002년 현재 미국의 특허법 102조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이용되고 있는 기술과 방법을 유전자 관련 특허권 부여 기준 네 가지 중 한가지인 ‘선행(先行)기술’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조항의 반이성적 성격에 따르면 어떤 지식이 설사 미국이 아닌 다른 문화와 나라의 유구한 전통의 일부, 생물다양성을 지향하는 토착지식의 일부일지라도 미국에게 새로운 것이라면 참신한 것으로서 특허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럼으로써 특히 제3세계에 대한 ‘생명해적질’이 법적 정당성이라는 칼을 지니게 된다. 이런 문화 제국주의적 발상이 극단적으로 기술되어있는 것이 코네티컷 주의 특허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코네티컷 주에서 아직 사용되고 있지 않는 “재화를 외국의 항구로부터 수입”하는 것도 ‘발명’으로 인정된다!27)

에이즈와 관련 있는 것이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 Trade Related Intellectual Property Rights)협정’이다. 아래에서는 TRIPs 협정을 옹호하는 ‘세계 지적 재산권 기구(Wipo: World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Organization)'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헛소리인지 다섯 가지만 간략히 살펴보겠다.

ㄱ. 보건의료에의 접근권과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약의 이용 가능성에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무엇보다 특허체제에 기인한다는 주장에 대한 Wipo의 입장 : 우선 특허권은 보건의료와 약품에의 접근권에 미치는 많은 요인들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보건의료정책과 사회적 하부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판 : 보건의료와 약품에의 접근권에는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상호관련’ 되어있다. 특허권을 보장해주는 TRIPs가 제국주의적 다국적 제약기업(화이저, 메르크, 글락소 웰컴, 스미스 클라인 베컴 등)이 주도하여 형성되었음을 상기해야한다. 왜 남아공을 비롯해서 제3세계의 보건의료정책이 주민의 요구에 호응하지 못하고 사회적 하부구조가 취약한 것일까?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제국주의가 문제다.

ㄴ. 의약품의 높은 가격은 우선 특허권체계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 덕분에 제약회사들은 약값을 계속 인위적으로 부풀리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Wipo의 입장 : 약값은 연구개발비용, 생산비용, 배급 및 시장판매 비용을 비롯한 대단히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실제 시장가격은 의약품에의 접근권 문제에 있어서 주변문제일 뿐이다. 설사 HIV/AIDS 치료약제의 가격을 제조비와 배급비 비용만 계산하는 방식으로 인하하더라도 연간 치료비용은 350불~600불이다. 가격이 이 정도라도 AIDS 발병율이 높은 몇몇 나라들의 연간 1인당 소득 수준을 상회한다.

  비판 : 약품의 시장가격이 정말 ‘주변문제’일까?
잠비아의 보건의료노동자의 판단은 그와 정반대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없을 때 그들이 어떻게 의약품을 살 여유가 있을까? 빈자들에게 의약품이란 살 수 없는 ‘사치품’일 뿐이다”
2001년 현재 다국적 거대제약회사들의 이윤을 보자면 이렇다.

      
      
그리고 5대 거대제약회사의 최고위급 이사들의 연봉은 천문학적 규모다.

      

ㄷ. 특허체제가 건전한 경쟁을 저지한다는 주장에 대한 Wipo의 입장 : 특허권을 보호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관련법에서 특허권을 제한할 수 있는 여건을, 예를 들어 일정한 조건부로 강제제조 자격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판 : TRIPs의 예외조항이란 ‘강제적 제약면허권’과 ‘대등수입권’이다. TRIPs는 1994년 제국주의 초 국적자본이 주도하는 세계무역 관련 협정을 논하는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채택되었는데 7개의 장과 73조항으로 구성되어있다. 제8조에 따르면 TRIPs를 기준으로 국내입법을 할 때 회원국들은 “공중보건과 영양을 보호하고 공공복지를 진흥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채택 … 할 수 있다.” 이런 조치들을 취할 수 있는 근거는 31조의 ‘강제적 제약면허권’이다. 그것은 어떤 국가가 긴급 상황에서 특허권이 있는 비싼 의약품을 최소한의 가격으로 제조할 수 있는 권한을 ‘제3자의 위치’에 있는 기업에게 부여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제약이 있다. 그런데 이 권한을 행사하기에는 제3세계의 경우 몇 가지 제약이 있다. 우선 권한 발동의 대상이 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제약 산업의 기반이 있어야한다. 이런 기반이 없을 경우 ‘대등 수입권’을 발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이 권한은 특허권 보유 제약 회사가 제시하는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약을-상표권이 없는 염가의 약품, generic drug 혹은 copy drug-생산하는 국가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등수입권’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복제 의약품’을 수출하는 국가에서도 ‘강제적 제약면허권’이 발동되어야한다. 화이저의 의장이자 (2001년 4월 현재) PhRMA의 의장 H. 맥키넬은 인도의 ‘복제 의약품’ 제약회사들을 이렇게 비난하고 있다. “인도회사들은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우리의 기술을 훔쳐서 그것을 팔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약품 공급에 있어서 인도가 기여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크로막 연구소가 인도의 전통 약초들을 특허권이라는 이름으로 ‘생명 해적질’한 것을 상기할 때 맥키넬의 발언은 적반하장적 언어도단이 아니고 무엇일까?

ㄹ. 특허체제는 특히 개도국들에게 불공정하다. 일정한 경우에 그 나라들은 TRIPs로부터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Wipo의 입장 : 일반적으로 적절한 지적 재산권체제는 지속적 경제개발의 열쇠이며 그럼으로써 빈곤의 순환을 깨뜨리고 보다 나은 교육, 보다 높은 생활수준 그리고 보다 향상된 보건의료의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판 : 보건의료∽교육∽고용이 3각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Wipo의 입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이제까지 설명한 것으로도 분명하다. 중국에서는 1993년 특허권 체제를 도입한 이래 북경과 상해에서 약값이 30배에서 40배까지 급등했다.

ㅁ. 특허권 보호관련 국제조약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약품들에 대한 기본적 인권을 방해한다는 주장에 대한 Wipo의 입장 : 특허권 관련 조약을 포함해서 국제적 지적 재산권조약들은 완전히 UN 세계 인권선언과-제25조의 지적 재산권 보유자의 물질적 및 정신적 이윤을 향유할 권리, 그리고 제27조의 모든 인간이 적절한 보건의료의 혜택을 향유할 권리- 부합한다.

  비판 : 이제까지의 설명을 고려할 때 Wipo의 입장이 과연 현실의 삶을 정직하게 말한 것인지 여부는 자명하다. 마치 파시스트 공안검사와 판사들이 전후맥락을 무시하고 법을 ‘프로크루스테스’28)처럼 무지막지한 도구로 휘두르는 것과 흡사한 입장이 아닐 수 없다.


3. 후성유전학(Epigenetics) 그리고 마음과 한 마음을 이루는 몸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기념비적 저작을 남긴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고(故) 조셉 니덤은 유럽의 사유방식이 정신 분열증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29) 초자연적인 천사, 정령, 조물주를 거느리는 신 혹은 신들의 세계가 있는 한편, 원자, 아원자 입자와 허공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HGP의 총책인 콜린스는 지극히 기계론적 유물론에 입각해서 ‘거대한 생물학’적 기획을 추진하는 한편, 신 운운하는 신학적 정신주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근대 서구의학의 역사에는 주류인 기계론적 환원론에 비판적인 흐름이 이미 있었다. 17세기말 할레대학교의 화학자이자 의사인 게오르그 쉬탈은 anima(정신 혹은 영혼)가 의식의 활동적 주체로서 생리학적 규제를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교 의대 교수인 W. 쿨렌은 생명을 신경세포의 힘의 기능이라고 해석하면서 질병의 유발에 있어서 신경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경증’이라는 병명을 지은 사람이 바로 쿨렌 이었다.

생명과학에서 니덤의 자기성찰을 보여주는 것이 C. 웨딩턴이 제기한 ‘후성유전학'이다.30) 이 분야는 어떤 생명체의 유전정보 즉 유전형이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제반 특징들 즉 표현형이 관찰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DNA 염기서열에 변화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유전체의 기능에 변화가 일어나 유전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이제까지의 통념과 달리 유전자와 특성 사이에는 단순한 1:1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따라서 유전자 하나를 대체함으로써 ’단일 유전자 질환‘의 치료라는 ’유전자 치료‘가 성공적일 가능성은 적다. 그리고 유전자가 전후맥락에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유전자 삽입의 효과를 예견하고 그 과정에 정통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제기되고 있다.31) 이런 입장에서는 생명체가 환경과 관련해서 객체이면서 동시에 주체인 것으로 접근한다.32)

‘후성유전학’에서는 질병을 유전자와 환경 그리고 면역체계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접근한다. 2005년 7월 미국의『국립과학아카데미 회보』에서 쌍둥이 40쌍 이상의 DNA를 연구한 결과를 실은 과학자 팀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오염물질에의 노출(일본의 이따이 이따이 병, 온산공단의 경우, 다이옥신 등), 어떤 음식의 소비(맥도널드 햄버거 등 인스턴트식품과 비만, 유전자 조작된 미제 콩으로 만든 두부, 자본주의적 공업화로 오염된 바다에서 포획한 중국산 수입수산물 등등)와 같은 환경의 영향, 나아가 격렬한 감정의 체험들(삼성-중앙일보의 대선후보들에 대한 ‘보험금’지급과 안기부의 불법도청 사이의 드렁칡 얽힌들 어떠 하리 난장판, 국민 1%가 사유지의 70%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산지가 국토의 3/4인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골프장 건설, 이승만 파쇼세력의 반민특위에 대한 테러 등등)이 어떻게 개개인의 DNA에, 삶에 지속적인 제반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암 유발성 DNA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암에 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33)

바로 이런 질문들이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질환에 접근하는 것이다. 격렬한 감정의 체험과 같은 감정 등 심리적 차원에 주목하는 것이 ‘정신신경면역학’이다. 1991년 걸프전 기간에 이라크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일련의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34) 많은 이스라엘의 민간인들이 죽었는데 사망자의 대다수는 미사일 공격에 의한 직접적인 신체의 상해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망 원인은 미사일 공격에 따른 공포감, 불안감 그리고 스트레스에 의한 심장병이었다. 이런 인과관계는 두 가지 사실로부터 확정할 수 있다.

첫째, 시간적인 것으로서 1991년 1월 18일 이래 16일 동안 미사일 공격이 가해지는 동안 신체적 상해로 사망한 사람은 단 2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첫 번째 공격이 있던 날 무려 147명이나 사망했는데 이것은 사망률에 있어서 58%나 급증한 것이었다. 이런 예상 밖의 지나친 사망률은 폭격에 대한 공포감으로부터 초래된 심장병이나 갑작스러운 심장관련 질환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암과 같은 질병들로 인한 사망의 증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둘째, 공간적으로 미사일 폭격의 위험성이 가장 높은, 바로 그런 지역에서 지나친 사망률이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위험성이 최고인 만큼 공포감과 불안감의 수준 역시 가장 높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반면, 스커드 미사일의 피격 가능성이 예상되지 않았던 지역들에서는 사망률이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이스라엘인들의 불안감 고조는 당국이 이스라엘의 전 주민에게 이라크의 생화학전에 대비해서 가스 마스크를 착용할 것과 모든 가정이 외부로부터 밀폐된 방에 피신할 준비를 갖추도록 명령받은 사실로부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질병을 극복하는데 생물학적-유전학적 의학이 한계가 있으며 ‘후성유전학적 의학'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할 때 의사출신인 체 게바라의 입장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의사들의 책무가 ’사회적 의학‘임을 강조했던 것이다.35) 그리고 그는 혁명적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혁명가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체가 지적했듯이 ‘1917년 인류희망의 체제'가 붕괴된 오늘날 심사숙고해야할 점은 ‘민중의 정신구조의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나는 변화’를 어떻게 현실화시켜나갈 것인가가 아닐까?

19세기 중반 이래 가속화된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대해서 위정척사파는 동도서기(東道西器)론으로 ‘상대방 알기(知被)’를 제대로 하지 못한 반면, 개화파는 ‘자신을 알기(知己)’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혜의 부족으로 ‘반제반봉건’의 역사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오늘날 이 제국주의 세력은 무기를 비롯한 기술뿐만 아니라 과학을 비롯한 문화까지 ‘맥도날드화’하고 있다. 근대서구 의학의 첨단형태인 ‘생물학적-유전학적 의학’은 난만한 자본주의체제의 ‘회춘’이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컨대 이것은 진시황의 ‘불로초’의 꿈이 기계론적 환원주의 의학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죽음은 생명체의 순환에 자연스런 것이다. 이 생명체는 기계론적 환원론에 입각한 몸과 마음의 이원론이 아니라 ‘몸과 한 몸을 이루는 마음’, ‘마음과 한마음을 이루는 몸’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 건강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지피지기(知被知己)’라는 입장에서 19세기 이제마의 사상(四象)의학을 ‘생물학적-유전학적 의학’과 비교하여 원융(圓融)하고자하는 의지는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사상의학은 사람을 체격․장기․섭생․성격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가운데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있기에 그렇다. 이런 원융의 철학적 출발점으로서 원효의 ‘이문일심(二門一心)’론을 생각할 수 있다.36) 2문이란 진여문과(眞如門)-있는 그대로의 마음의 본래적 모습-생멸문(生滅門)을-움직이고 변화하는 마음의 측면-가리키는데 각각이 일심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심이란 마음의 두 가지 모습을 떠나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즉 일심은 마음의 작용이나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각 일심인 2문은 상호 융통할 수 있으되 각각의 특성을 무화시키는 방식으로 섞이는 것은 아니다. 즉 2문이 섞이되 하나가 아니며 둘이 아니로되 하나로 되는 것도 아니다(融二而不一 無二而不守一). 이런 관점에서 서양 근대 의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생물학적-유전학적 의학’과 동북아 한의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상의학’의 원융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요컨대 ‘사회의학’의 문제의식에서 ‘생물학적-유전학적 의학’ 그리고 ‘사상의학’의 원융을  꾀하는 과제는 ‘의료 Orientalism'을 극복하는 대안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온전한 의미에서 개개인의 ’맞춤의학‘을 실현시킬 수 있지 않을까?


각 주

21. J. 왕 외 4인 공동 집필, “남한의 생명공학”, 『네이처 바이오테크』22, DC42-DC47, www.nature.com
22. D. 필링, “쿠바의 의학 혁명”, www.ft.com 2001년 1월 13일
23. 21의 책, 2005년 9월호, 53면.
24. H. 소스타인스도티르 외 3인 공동 집필, “개도국의 생명공학 장려”,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22. DC48-DC52 (2004), www.nature.com
25. 『르 몽드 디플로마띠끄』(파리 : 2005년 8월호). 2000년 사상 최초로 과체중 사람들의 수가 영양부족인 사람들의 수에-1100000000명- 이르렀다. 미국인들은 영양과잉 상태로 하루 1인당 3천 8백 칼로리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 대다수에게 필요한 칼로리의 약 2배, 남성 대다수에게 필요한 칼로리 보다 1/3과잉이며 아기들, 어린이들,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양 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M. 네슬레, 『식품의 정치학』(로스앤젤레스 :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2003년), 16면.
26. 탈봇, “UN의 에이즈보고서가 확인해주는 사상 최악의 전염병”,      www.wsws.org/2004. 12.4.
27. 최형록, “‘죽음의 승리’ : 특허권과 아프리카”,『현장에서 미래를』(서울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2002년 10월호), 89면~114면.
28. 프로크루스테스는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침대에 눕혀 침대 보다 큰 만큼 칼로 잘라버리고 작으면 침대길이 만큼 억지로 늘렸다. 기원전 3세기 초 동양적 ‘법의 정신’의 핵심을 순자는 이렇게 갈파했다. “不知法之義 而正法之數字 雖博 臨事必亂” (법의 뜻은 알지 못하면서 법조문만을 따지는 사람은 비록 널리 안다고 할지라도 정작 소송에 임해서는 혼란에 빠질 뿐이다). 정의의 최후의 보루는 사법부가 아니다. 민중적 인본주의에 입각한 정의로운 의지와 실천이야말로 정의의 최후의 보루다.
29. 조셉 니덤, 『중국의 과학전통』(파리 : 에르만, 1974년), 22면~23면.
30. “우수성의 Epigenome 연계망”, biology.Plosjournals.org/perl serv/.....그리고 www.sciencemag.org/feature/plus/sfg/resources/res-epigenetics.shtml
31. "유전자에 관한 새로운 이해“, www.psrast.org/newgen.htm
32. 최형록, “봄 바다가 깊다기로 恨바다만 못하리라 : 자연, 사회, 인간의 변증법”, 오세철 교수 명예퇴임 기념 논문집『좌파운동의 반성과 모색』(서울 : 현장에서 미래를, 2005년), 305면~327면.
33. http://www.pnas.org/
34. 폴 마틴, 『마음의 치유력 : 뇌와 행동, 면역과 질병 사이의 사활적 연관성』(뉴욕 : 세인트 마틴스 그리핀, 1999년), 3면~4면.
35.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혁명적 의학에 관하여”, www.marxists.org/archive/guevara/works/1…/medicine.ht
36. 정영근, “원효의 사상과 실천의 통일적 이해”, 고영섭 편저, 『원효』(서울 : 예문서원, 2003년), 476면~500면. 사유방식이라는 점에서 원효의 ‘이문일심’론과 비교할만한 것이 아인시타인의 인식론이다. 그에 따르면  “학자는 일종의 거리낌 없는 기회주의자로서 지각행위와 독립적인 세계를 표상하고자 노력하는 만큼 ‘실재론자’로서 나타난다. 그는 (경험적 소여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할 수 없는) 인간정신의 자유로운 발명으로서 개념과 이론을 생각하는 만큼 ‘관념론자’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개념과 이론을 감각 경험사이의 제반 관계로부터 논리적으로 표상할 수 있는 한에서만 그런 개념과 이론이 근거를 지닌 것으로 생각하는 만큼 ‘실증주의자’로서 나타난다.” 아인슈타인, “학자의 철학적 기회주의”, 쟈크-메를로 퐁티 그리고 프랑스와즈 발리바르 편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선집』, 제5권(과학, 윤리, 철학), 파리, 쇠이유 출판사와 국립과학연구소, 1991년, 164면. 원효의 ‘이문일심’론은 ‘불이(不二)의 법문과 일맥상통한다.’ ‘일체의 법은 생겨남이 없다고 확신’(無生法忍)하는 것이 불이에 들어간다는 것의 뜻을 여러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묘의보살의 이해방식은 “마음의 본질을 깨닫게 되면 법에 집착하는 일이 없고 … ” 여기서 법이란 불교적 진리를 뜻한다. 박용길 옮김, 『유마경』(서울 : 민족사, 2000년), 제9장 입불이법문품, 241면~259면.



2005. Oct. 20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저서: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 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 영역: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 [한국인권뉴스]


▽ 다국적 제약회사 자본이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비인도적인 행태를 그린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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