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체제의 문제다!

평등과 연대의 전태일 정신으로, 가자 체제전환

‘00은 체제의 문제다’라는 시리즈 제목이 ‘00도 체제의 문제야? 00도 체제의 문제군’하는 반응을 기대하고 지어진 것이라면, 이 글의 제목인 ‘노동은 체제의 문제다!’는 가장 의도에 맞지 않는 제목일 것 같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 반대하거나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운동으로 인식돼왔다. 체제를 바꾸겠다는 운동의 가장 ‘중심’에 위치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 노동운동은 정말 체제의 문제를 겨냥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전태일정신은 평등과 연대의 정신이다. 한국옵티칼 고공농성 200일, 고용승계촉구! 먹튀방지법 제정 민주노총 결의대회(2024.7.4. 사진: 백승호)

노동운동이 체제전환운동이 되려면

이런 질문이 쏟아지게 된 장면을 여럿 기억하고 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 투쟁을 할 때, 그 기관의 정규직 노동자, ‘민주노조’ 조합원들이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할 때. 화재로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아리셀 화재 참사 후 화성시청에 세워진 분향소를 공무원노조 소속의 화성시 공무원들이 철거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왜 자기들 소속인 민주노총이 본인들을 보호하지 않느냐며 따질 때.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같이 싸우던 건설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 추방하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집회할 때. 골리앗 투쟁의 역사를 가진 노동조합 소식지에서 ‘집게 손’ 사진을 비판하며 ‘수구 꼴페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노동자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저절로 계급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을 새삼, 아프게 마주하게 된다. 한 사람이 임금노동자로 일한다고 해서 스스로 노동자계급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계급적 주체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다양한 계기가 필요하다. 특히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계급의 구성원인 '노동자'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변혁의 주체로서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자신과 동료를 위치 짓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체제의 문제로 고민이 나아가지 못하는 '노동자' 운동은 자기 자신의 해방에도 닿을 수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차별하는 조직에서는 정규직 내에서도 성과평가를 빌미로 한 차별과 줄 세우기가 만연한다. 실적이 인격이 되는 문화에서 정규직 노동자도 성과 압박과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린다. 문제가 생겼을 때 모이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권리를 억압하는 체제는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 참여의 자유를 제한하고, 공무원의 단결할 권리를 방해한다. 다른 노동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데 동원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도 억누르는 체제에 동참하게 된다. 

건설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원들에게 강요하지 못하는 노동 강도로 장시간 노동을 수행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쉽게 넘나들게 만드는 이주노동자 인력 정책 하에서 속도전에서 발생하는 건설현장의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고, 건설회사는 초과이윤을 가져간다. 엄격한 성별 분업을 당연시하고, 그에 따라 젠더화한 노동문화, 성별 임금 격차를 용인하는 체제에서 남성 노동자들은 과로사로, 위험한 업무로 인한 사고 사망으로 쓰러진다.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법에서도 배제되는 초단시간 노동으로 내몰리고, 일터 내 성폭력에 노출되고,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느라 허리가 휜다. 

노동 자체가 가지고 있는, 혹은 종종 노동이 만들어내기도 하는 이런 차별과 위계를 돌아보고, 스스로 이런 차별과 위계를 부수는 투쟁의 주체가 될 때, 노동 계급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주체화가 가능할 것이다.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우리 안의 수많은 차이를 고려할 때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신화에 불과하다. 하나가 아닌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고 연대하여 함께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가. 조직 내 업종 및 고용 형태, 성적 차이, 연령이나 세대, 국적이나 인종 등 분화된 특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차이와 갈등을 드러내고 넘어서는 과정에서 연대와 단결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투쟁을 함께 일구는 것, 체제전환을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과제다. 

전태일 정신으로 체제전환운동을 시작하자

노동운동만의 문제이겠나.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난다고 가부장제의 문제를 절로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가부장제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그 주체로 생각하게 되려면 투쟁의 경험, 깨달음의 경험, 함께 설 동료 관계의 경험이 필요하다. 체제전환운동은 이렇게 체제변혁의 주체로 스스로를, 서로를 조직하는 운동이다. 투쟁과 깨달음, 함께 설 동료 관계의 경험을 함께 만들고 겪으면서 나아가는 운동이다. 

⟪전태일 평전⟫의 저자 조영래는 전태일 사상을 “각성된 밑바닥 인간으로서 지금껏 현실이 자신에게 강요해왔던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사회의 거꾸로 된 가치관을 완전히 다시 거꾸로 세우며, 이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고, “우리 모두를 행동으로 불러내는 연대 행동의 사상”이라고 말했다. 사회의 거꾸로 된 가치관을 완전히 다시 거꾸로 세우는 일. 우리 스스로 체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논리, 가부장적 질서, 생산력주의를 거스르는 투쟁의 장을 여는 것. 2024년 전태일 정신은 체제전환 구호 아래 있다. 차별에 맞선 투쟁, 반빈곤과 반전평화, 기후위기에 맞선 정의로운 전환 등 새로운 세계를 여는 주장과 외침으로 노동운동이 갱신될 때 거기 전태일 정신이 있다. 체제전환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이 있다. 

그래서 11월 9일 노동자대회는 ‘노동조합’만의 일정에 머물 수 없다. 11월 9일 노동자대회 사전집회로 ‘전태일 정신 평등을 향해 가자, 체제전환!’이 열린다. 반성폭력, 청소년인권과 반전운동이 왜 노동자대회에서 함께 얘기돼야 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체제전환운동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지 외치고 실천하는 자리다. 거리에서 만나 평등과 연대의 전태일 정신으로, 체제전환운동의 동료가 되자.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 사전집회로 '전태일 정신 평등을 향해 가자, 체제전환!'이 열린다.
덧붙이는 말

최민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