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무신론에 대한 지젝의 좌파적 주장

[편집자 주] 슬라보예 지젝의 『기독교 무신론진정한 유물론자가 되는 법(Christian Atheism: How to Be a Real Materialist)』 (블룸즈베리(Bloomsbury), 2024)에 대한 서평.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그의 새 책에서 진보적이고 세속화화는 세력으로서의 기독교에 대한 도발적인 이해를 발전시켰다지젝 특유의 명석함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진다.

2012년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향소를 방문한 지젝. 출처 : 참세상 자료사진

슬라보예 지젝은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문화 이론의 엘비스”, 세계에서 가장 엄청나게 뛰어난” 좌파 철학자사기꾼마르크스주의자반워키즘(anti-wokism변호인 등하지만 지젝을 떠올릴 때 '기독교 신학자'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 상징적인 슬로베니아의 사상가는 깨지기 쉬운 절대자기독교 유산은 왜 싸울 가치가 있는가?’ (The Fragile Absolute: Or, Why Is the Christian Legacy Worth Fighting For?)'와 같은 책부터 "급진적 정통신학자 존 밀뱅크(John Milbank)와의 토론까지기독교 이론과 역사에 깊이 관여하며 수십년을 보냈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공언에도 불구하고지젝의 새 책 『기독교 무신론진정한 유물론자가 되는 방법(Christian Atheism: How to Be a Real Materialist)은 그의 유물론적 신학에 대한 가장 발전된 설명이다또한 대부분의 저서와 마찬가지로 지젝 작품 전체의 축소판이기도 하다정치에서 정신분석까지,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부터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이러한 절충주의(eclecticism)는 지젝이 딜레탕트(dilettante)라는 많은 비평가들의 비난에 힘을 실어줄 것이며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너무 여러 분야에 관여하는 그의 경향은 때때로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미 그의 저작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이번 책 기독교 무신론에 대해 좋아할 만한 부분이 많다지젝은 종교와 광범위한 좌파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필요했던 논쟁에 활기를 불어넣었고우리를 조잡한 비난과 단순한 자유주의적 관용에서 벗어나게 해준 공로를 인정받을 만하다이 책은 그 업적에 대한 찬사와 무수한 죄에 대한 (적절한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는 훌륭한 책이다.

종교에 대한 좌파의 적대감

젊은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종교에 대한 비판이 급진적 선동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인류가 세속적 제약과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자각하고현세적 영역을 넘어선 초월적 화해의 약속으로 사회를 재구성하는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도그마를 비판하는 것이 필요했다.

마르크스 같은 좌파 비평가들이 종교를 경계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프랑스 혁명 이후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부터 조셉 드 마이스트르(Joseph de Maistre), 리노(R. R. Reno)에 이르기까지 우파 사상가들은 종종 종교가 사회에서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에서 버크는 사회를 계급과 질서의 피라미드로 묶는 모든 즐거운 환상을 제거한 새로운 “모든 빛과 이성의 정복 제국”을 한탄했다이를 바로잡기 위해 버크는 “고귀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숭고한 원칙을 주입해야 하며이를 지속적으로 되살리고 시행할 수 있는 종교적 시설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무리가 신성한 권위에 대한 숭고한 환상을 꿰뚫어보고 왕이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 리노는 『기독교 사회 이념의 부활(Resurrecting the Idea of a Christian Society)에서 엘리트 선동가들이 세운 천박하고 무법적이며 잔인한” 세계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독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이 자유주의 엘리트들은 계급 전쟁약자에 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이는 동성 결혼 캠페인으로 대표된다.” 이러한 가정된 계급 전쟁으로 상류층은 기독교 도덕의 부식으로부터 이익을 얻고자유로운 생활방식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대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치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우파 지식인들이 종교를 자신들의 것으로 주장해온 역사가 있었기에좌파가 종종 마르크스를 따라 종교를 비판하고 약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이러한 비판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좌파의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단순한 거부를 넘어서는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지젝의 유물론적” 기독교는 바로 이 진영에 속한다.

십자가의 그림자

좌파들 사이에서는 종교에 대한 일종의 저속한유물론적인 비판이 오랜시간 지지를 받아왔다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신은 지배 계급과 연계된 이데올로기 기관이 호소하는 환상이며그 주된 효과는 현상 유지에 대한 반대 의견을 진정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러한 관점은 볼테르(Voltaire)나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같은 계몽주의 인물들의 신앙과 종교 제도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에 뿌리를 두고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좌파는 종교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거부하여 억압받는 사람들의 관심을 세상의 불의와 잠재적 구제책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보다 복잡한 유물론적 관점을 발전시켰다그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종교를 "대중의 아편"으로 묘사한 덕분에저속한 유물론적 비판을 조잡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때로 오해받는다그러나 그 유명한 문구가 나온 인용문 전문에서 마르크스는 종교를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무정한 세계의 심장영혼 없는 상태의 영혼이라고 묘사했다그는 종교의 출현은 인간이 지구에서 겪은 소외와 고통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보상으로 사회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억압적인 사회 조건이 지속되는 한 사람들은 종교적 환상을 붙잡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종교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은 종교적 믿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종교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고 그것을 변혁하는 것이다이러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야만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직접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종교를 필요로 했던 소외감도 사라질 것이다.

종교에 대한 제3의 유물론적 관점은 마르크스헤겔(G. W. F. Hegel)등을 바탕으로사회주의와 다른 좌파 운동을 근본적으로 기독교적인 기획의 세속화된 연속으로 본다그들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을 따라 기독교 교리와 평등을 추구하는 좌파의 노력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전통적으로 가난하고 겸손한 이를 높이고 부유하고 권력있는 이를 책망하는 기독교는 중요한 측면에서 우파보다 좌파에게 더 자연스러운 동맹이라고 생각한다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종교 교리 중에서 기독교는 어떤 해석을 하든 평등에 가장 유리한 교리이기도 하다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만이 인간의 유일한 위엄을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의무의 성취에 두었으며가난과 고난을 거의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데 기쁨을 느꼈다.

좌파에 대한 비평가들 또한 좌파의 이상과 기독교의 이상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의심했다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권력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에서 사회주의를 세속화되는 세계에서 기독교와 [장 자크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잔재로 규정했다그리고 앨러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그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시절,『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Marxism and Christianity)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 자체가 세속적 현재에 대한 기독교적 적응이 아니라 세속화된 기독교적 판단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몇 가지 주요한 기독교적 신념들을 인간화했다고 주장했다.

지젝은 이 세 번째 전통에 속한다그의 주장의 핵심은 마르크스보다는 헤겔과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에게서 더 많은 영감을 받았다헤겔에 이어 지젝은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통해 신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종교와 구별된다고 주장한다하나님은 문자 그대로 인간이 되었다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한 후성령(Holy Spirit)이 내려 신자들을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로 묶어준다는 것.

신은 죽었고우리는 그의 유산을 이어간다

지젝이 기독교 이야기를 읽는 방식은 질서와 권위적 도덕의 초월적 보증인인 신이 죽고그 결과 인간은 자신이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이는 초월적 권위에 기초하여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든 권력을 해체하고 사회 질서의 우연적이고 가소적인 본질을 인식하도록 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유물론적몸짓이라 할 수 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가 아니라 그 너머의 하나님이며십자가 이후에 일어나는 것은 초월적인 자의 재림이 아니라 초월적인 도움 없이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성령의 부활이다.

이는 니체(Nietzsche)가 『도덕의 계보(The Genealogy of Morals)에서 세속주의를 기독교를 훼손한 외부의 힘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 것과 유사한 주장이다니체는 초월적 신에 대한 기독교적 믿음 자체가 "그 자체의 도덕성에 의해 파괴되었다같은 방식으로도덕성으로서의 기독교도 이제 사라져야 한다. ... 기독교의 진실성이 하나의 추론을 차례로 이끌어 낸 후가장 놀라운 추론즉 자기 자신에 대한 추론을 이끌어냄으로써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신의 죽음이 기독교 도덕의 종말을 알리기를 원했고실제로는 자유주의와 같은 온건한 평등주의 교리와 무엇보다도 사회주의에서 세속적인 형태로 살아남은 것을 한탄했다반면 지젝은 기독교의 자기 세속화를 기독교 윤리의 정점으로 보고신이 죽고 인류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 것을 기독교 윤리의 정점으로 보았다.

여기서 지젝의 기독교 '무신론'이 등장한다그는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단락시켜 환상 없이 물질적 현실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단순히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종교를 통한(through)전환이 필요했고기독교는 신의 죽음과 성령의 연합으로 자유와 평등의 출현을 서술한 공로를 인정받을 만하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특이한 접근 방식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암시적이고 도발적이지만헤겔주의(Hegelian)외부에서 많은 개종자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기독교가 스스로 세속화되어 좌파 유물론이 되었다는 주장은 (예를 들어과학적 합리주의(scientific rationalism)의 부상과 함께 종교적 믿음이 상상력을 잃었다고 가정하는 종교의 쇠퇴에 대한 환원적 이야기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적 대안을 제시한다.

지젝의 주장이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의 획기적인 저서 『세속의 시대(A Secular Age)처럼 더 엄격하거나 체계적이지 않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기독교 무신론』에서 발전한 것처럼 대담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논제는 인상적인 연결과 암시적인 논증을 넘어 신중한 방어가 필요하다기독교 신학과 실천의 발전을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추적하여 변화와 영향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심도 있는 역사적 주석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사회주의자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과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 무신론을 체계적으로 신학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그전까지는 기독교 무신론적 유물론은 신조라기보다는 도발적인 사상으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젝은 기독교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좌파가 종교 문제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을 만하다이는 비자유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종교적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시대에 특히 중요하다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버락 오바마가 총과 종교에 집착하는 이들은 그들의 물질적 곤궁에 대한 보상을 구하는 것이라며 무시한 것과 같은 조잡한 유물론을 피해야 하며역사와 사회 질서에서 종교적 신앙의 위치에 대한 사려 깊은 관점이 필요하다.

[출처] Žižek’s Left-Wing Case for Christian Atheism(Jacobin)

[번역참세상 번역팀

 
덧붙이는 말

매트 맥마누스(Matt Mcmanus)는 미시간대학교의 정치학 강사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태그
태그를 한개 입력할 때마다 엔터키를 누르면 새로운 입력창이 나옵니다.

의견 쓰기

댓글 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