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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거스틀(Gary Gerstle)의 저서 『신자유주의 질서의 흥망성쇠(The Rise and Fall of the Neoliberal Order)』(한국어판 제목 『뉴딜과 신자유주의』, 홍기빈 역, 아르테, 2024)는 매우 잘 쓰여 있고 읽기 쉬운 책으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거스틀의 이전 저서 『뉴딜 질서의 흥망성쇠(The Rise and Fall of the New Deal Order)』(스티브 프레이저와 공저)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이 책은 정치적·경제적 "질서"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질서"란 특정 시점에서 지배적인 이념으로, 정치 기득권층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에 의해 종합되고 전파되는 이념을 의미한다. 거스틀에 따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에는 두 가지 주요한 정치적 질서가 존재했다. 하나는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와 함께 시작된 뉴딜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로널드 레이건과 함께 시작된 신자유주의 질서다.
둘째, 이 두 가지 정치적 질서는 공산주의의 흥망과 거의 이상적으로 동기화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외부(국제적) 맥락이 미국 정치 질서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정치적 질서'가 되는가? 그 과정에는 지식인들과 그들의 이론이 관여하는 '침묵의 단계'가 있다. 신자유주의의 경우, 이 단계는 월터 리프먼의 파리 콜로키움(Paris Colloquia - 신자유주의 이념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되는 1938년 학술회의)과 하이에크, 미제스의 빈(오스트리아 학파로 자유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 이론을 발전시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밀턴 프리드먼, 토머스 소웰, 찰스 머레이, 러시 림보 등의 인물들로 이어진다. 이 시기의 중요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헤리티지 재단이 1974년에 설립되었고, 같은 해에 카토 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맨해튼 연구소는 1976년에,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미국 보수 기독교 단체)는 1979년에 설립되었다. 이데올로기는 그 후 대중에게 전파되어 하나 이상의 정치 운동과 정당에 의해 채택된다. 그러나 그것이 “질서”가 되려면, 다른 정치 스펙트럼의 일원들이 처음에는 그것을 거부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게 되어야 한다. 거스틀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처럼, 이는 그들이 “묵인하게 될 때” 비로소 “질서”로 자리 잡는다. (마거릿 대처가 자신의 가장 큰 성공이 토니 블레어가 자신의 정책을 이어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미국의 경우, 이념과 정치 운동이 "질서"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기에 발생했다. 아이젠하워는 윌리엄 태프트와 달리 공화당이 처음에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추구한 모든 것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뉴딜 정책을 계속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가 정치적·경제적 "질서"가 된 것은 빌 클린턴 덕분이다. 정치적 질서가 절정에 이르면 그것은 상식처럼 보인다. 거의 의심받지 않으며, 대다수의 여론이 (경제 질서의 관점에서) 주변적인 문제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어도 기본적으로 이를 지지한다.
거스틀에 따르면, 미국의 신자유주의 질서는 1980년 레이건 시기부터 시작되어 최소한 금융위기(Great Recession) 때까지 이어졌고, 그때부터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 질서는 21세기의 첫 번째와 두 번째 10년 동안에 끝이 났다. 트럼프 대통령과, 더 중요하게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위한 조용한 이념적 준비(J.D. 밴스와 스티브 배넌?; 참고로 후자는 언급되지 않음), 그리고 신자유주의 질서의 명백한 결함들이 그 끝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새로운 질서가 무엇이 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게 남아 있다.
공산주의가 두 가지 정치적 질서를 정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강력하게 제시되며, 상당히 일리가 있다. 거스틀이 지적하듯, 1950년대에 민주당이 공산주의에 대해 유약해 보이지 않으려는 데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인 반면, 공화당이 뉴딜 정책의 대부분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사유 재산 보호를 확보한 것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국제 공산주의의 위협은 뉴딜이 정치 운동에서 정치 질서로 전환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를 통해 뉴딜이 30년 동안 미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하도록 보장했다"(46쪽).)
공산주의의 매력이 감소하고 결국 몰락하면서 노동계의 요구를 묵인할 필요성도 훨씬 줄어들었다. 노동계는 더 이상 갈 곳도, 갈 수 있다고 꿈꿀 곳도, 갈 수 있다고 위협할 곳도 없었다. 레이건이 수천 명의 항공 관제사를 해고한 것은 노동계와의 전쟁의 첫 신호탄이었다. (세계화와 중국으로의 아웃소싱이 두 번째였을 수 있다.) 이 주장은 가치가 있지만 새로운 것은 아니다. 크리슈난 나야르는 그의 훌륭하지만 주목받지 못한 저서 『자유 자본주의 민주주의(Liberal Capitalist Democracy)』에서 이 주장을 다룬 바 있다. 피케티는 덜 명시적이나, 자본주의의 '길들여진 시기'가 서유럽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정당 및 노동조합이 권력을 장악한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같은 생각을 표현했다. 최근 안드레 알부케르크 산타나는 중요한 논문에서 이 명제를 실증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확인했다.
거스틀의 책은 미국이 세계에 미친 영향을 다루기보다는, 세계가 미국에 미친 영향만을 보여주는 데 한정되어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 질서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도 레이건과 볼커 쇼크(참고로, 볼커는 카터에 의해 임명되었다)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은유적으로, 그리고 종종 물리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동유럽을 신자유주의 질서에 복종시켰다. 클린턴이 신자유주의를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질서로 만들었을 때, 그는 이 질서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다. 그러나 이 측면은 거스틀의 책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 세계가 등장할 때조차, 고르바초프와의 짧은 언급이나 이라크 전쟁 실패와 관련된 더 긴 논의에서도, 모든 것이 미국의 시각을 통해서만 다뤄진다.
이것은 책의 단점이라기보다는, 이 책이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미국 이데올로기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제목에서 더 명확하게 언급되었어야 할 부분일 수 있다. 부제인 "자유시장 시대의 미국과 세계"는, 책에 "세계"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자유시장 시대의 미국"이 책 내용에 더 적합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클린턴의 대통령직이 300페이지 분량의 책 중 거의 50페이지를 차지한다. 이 부분에서 클린턴이 뉴딜 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이를 심화시킨 과정을 보여준다. 거스틀은 정보 및 통신 산업과 은행 부문의 규제 완화에 대한 클린턴의 매우 중요한 결정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클린턴의 유명한 "삼각 전략"과 관련이 있다. 이 전략은 클린턴(및 민주당)이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지지 없이는 통치할 수 없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클린턴은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 거스틀의 표현대로, 레이건보다 훨씬 더 많은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이에 더해 그는 미국의 복지 제도를 축소, 예산의 균형을 맞췄다. 불평등은 계속 증가했지만, 레이건 시기만큼은 아니었다.
클린턴의 역할은 매우 중심적이며, 나머지는 "디테일"에 불과하다. W. 부시는 주택 거품과 임박한 금융 위기에 대해 경솔하게 대응한 것, 그리고 이라크를 침공한 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받는다. 거스틀은 이 두 가지 모두 W. 부시의 시장에 대한 준종교적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고,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실 대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은행이 이를 작은 부분으로 나눠 매수자를 찾으면 위험이 마법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의 아버지가 다른 맥락에서 적절히 표현했듯이, 이는 "부두 경제학"이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였다. 군사 작전 이후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고, 시장의 힘에 맡기면,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해방된 행복한 이라크인들이 이 나라를 새로운 홍콩으로 변모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W. 부시의 단순한 믿음이 그의 믿기 힘든 지적 태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특권을 누리고, 응석받이로 자란, 그리 똑똑하지 않은 소년이 성숙하지 못했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PLU: "people like us") 외에는 누구에 대해서도 배우려는 최소한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대통령 임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임기가 8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잘 알려진 대로, 오바마는 신자유주의의 옅은 그림자만 남은 클린턴 시절의 경제적 참모들을 기용했다. 클린턴 시절에는 이들이 (비유적으로) 멋진 새 재킷을 입고 있었다면, 오바마 시절에는 같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말기의 낡고 해진 중고 재킷을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트럼프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이는) 가능한 한 적게 (언급되고 있다). 거스틀의 책은 이 부분에서 갑자기 힘이 빠진다. 이는 이해할 만하다. 왜냐하면 그는 신자유주의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고 주장하지만, 그 자신도, 다른 누구도 다음 "질서"가 무엇이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바이든 대통령 임기를 다룬 마지막 장은 가장 약한 부분이다. 이 장에서는 주요 사건들을 단순히 재서술하고, 트럼프에 대한 진부한 클리셰를 반복할 뿐이다. 아마도 이 부분은 너무 일찍 작성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출처] The end of the great order under the Heaven
[번역] 류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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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