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Sinitta Leunen, Unsplash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이 시작되자, 세계 여러 지역의 페미니스트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러시아의 침략을 비난하고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선언했다. 개인적인 성명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페미니스트 활동가와 학자들이 서명한 집단 선언문도 있었다. 이후 수많은 반전 집단 행동과 시위,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을 지지하는 국제 회의들이 이어졌으며, 세계 각지의 페미니스트들이 이에 참여했다. 초국적 페미니스트들은 우크라이나의 위험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자원 봉사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22년 봄의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진정한 대규모 페미니스트 반군사주의적 동원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페미니스트 동원 안에서, 세계 각지의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특히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및 동유럽 페미니스트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서유럽 및 기타 서방 국가의 여러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상당한 의견 차이가 빠르게 발생했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기 위한 방법과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에게 군사주의에 대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저항 전략이 무엇인가를 둘러싼 것이었다.
국제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서 가장 논쟁이 되었던 문제는 (a) 군사적 폭력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을 위한 페미니스트 전략과 (b) 서방 군산 복합체와 그에 응답하는 나토의 군사주의적 정책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비판이었다. 2022년 3월 "전쟁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저항 선언문"이 발표되었을 때, 작성자들은 “푸틴 정권이 우크라이나에서 주도한 군사적 침략을 깊이 규탄한다”고 명시하는 동시에 갈등에서의 나토의 역할을 비판했다. 작성자들에 따르면 나토는 “글로벌 팽창주의와 군사주의적 안보 서사로 만들어진 상황에 대해 공동 책임이 있으며” 따라서 “갈등에 더 많은 무기를 추가하고 전쟁 예산을 증가시키는 결정을 거부한다”고 밝혔다.[i]
곧이어,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매체 커먼스(Commons)와 관련된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 그룹은 이러한 입장을 추상적 평화주의의 표현이자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문화적 맥락을 무시한 것이라 보고, “전쟁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저항 선언문”의 작성자들과 서명자들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에게 억압받는 자의 기본적 자기 방어 행위로서 저항할 권리를 부정”하고, “제국주의적 침략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ii]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 매체 젠더 인 디테일(Gender in Detail)의 조직자인 타마라 즐로비나는 앞서 언급한 선언문과 유사한 성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러한 호소문을 작성할 때 그 어느 ‘자매’도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 자문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우크라이나인들이 우연히라도 사전에 이를 읽고 비판했을 때도 그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무시되었다)”.[iii]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평화주의적 입장을 취한 일부 서방 페미니스트들은 우크라이나로의 무기 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이 입장은 우크라이나 및 동유럽의 여러 페미니스트 연구자들로부터 “서구화된(Westernized)” 혹은 남성의 자기중심적 설명을 뜻하는 맨스플레이닝(mansplaining)에[iv] 빗대어 “웨스트플레이닝(Westplaining)”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일부 우크라이나 및 동유럽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웨스트플레이닝”을 식민주의적이며 '인식론적 제국주의'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이는 “영어권 학계와 같은 특권적 관점에서 알고 있거나 연구한 것들,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맥락에 그대로 이식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함”이라는 것이다. [v]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은 또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이며 군사주의적이라는 서방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에 강력히 반대한다.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식민주의 국가들과 그들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만 해당되며, 민족 독립을 위한 정당한 투쟁에서 민족주의 정치에 의존하는 피식민자들의 민족주의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따라서 피식민자들은 그들의 “해방적 민족주의”를 주장할 권리를 가진다고 논증한다.
하인리히 뵐 재단 키이우 사무소의 젠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이자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안나 도브고폴은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과의 민족주의적 연대가 아닌 초국적 페미니스트 연대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제 서구가 그들의 '흰 가운'(도덕적 권위와 우월감)을내려놓고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그리고 왜 그들이 서구인으로서 민족주의를 비판할 특권을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vii]
그와 동시에, 평화주의자로 입장을 정한 사람들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은 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무장 저항이 필요한 우크라이나의 맥락에서 군사주의의 개념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viii] 오늘날 우크라이나 페미니즘은 군사주의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나라가 실존적 또는 총력전의 의미에서 전쟁에 직면했을 때 "우크라이나 군대에서 여성들이 하는 일”[ix]로 정의된다.
총력전의 개념은 갈등이 문화 영역으로도 확장됨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은 대체로 “침략국” (러시아와 벨라루스) 출신의 페미니스트 및 문화 대표자들과의 협력을 거부하며, 그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되었고 모든 참가자들이 독재 체제의 반체제 인사라 하더라도 공동 회의와 행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한다.[x] 사실, 많은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은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러시아 페미니스트들의 모든 공개적 발언을,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의 침략을 비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지지하는 발언조차도, 용납할 수 없다고 여긴다. 이는 그들의 발언이 억압자의 발언이며,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희석하여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xi]
알고 보니, 많은 서방 페미니스트들은 그러한 날카로운 비판과 반군사주의 및 페미니스트 연대에 대한 그와 같은 민족주의적 이해를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2022년 5월 9일 주디스 버틀러, 사빈 하크, 그리고 내가 주최한 온라인 회의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과의 초국적 페미니스트 연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맥락에서 초국적 페미니스트들 간에 여러 중요한 의견 차이를 드러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견 차이가 포함되었다: (a) 중부 및 동유럽을 대표하는 참가자들에 의해 선도된 동서의 분열로 인한 의견 차이, (b) 비폭력에 대한 페미니스트 윤리와 여성의 폭력 및 복수 담론과 실천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 주장 간의 의견 차이, (c) 초국적주의와 민족주의 간의 의견 차이.[xii] 하크는 이 전쟁이 “페미니스트, 평화주의자, 좌파의 확신”에 도전하며 “전쟁 시기 초국적, 페미니스트적, 회복적 연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재고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묻는다. “평화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인식된다면, 이는 이제 연대가 군사주의적이어야 하며 민족적으로 지향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xiii]
서구 철학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모순에 대한 관점
위에서 개괄한 페미니스트 학계 내의 의견 차이는 고 자크 데리다가 ‘결정 불가능성(undecidability)’이라 부른 상황을 연상시킨다. 이는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 불가능하거나, 선택이 가능한 경우에도 역설적인 강제 선택의 형태로만 가능하다는 상황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맥락에서 결정 불가능성은 페미니스트 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고찰한 일부 현대 정치철학자들 역시 이 전쟁에 대한 견해를 결정 불가능한 모순의 형태로 정리했는데, 이는 전쟁의 모순이라 불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위르겐 하버마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앞두고 서구 문명이 직면한 결정 불가능한 모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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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패배해서는 안 된다.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를 그저 그들의 운명에 내버려둔다면, 이는 정치적-도덕적 관점에서 스캔들이 될 뿐만 아니라 서구의 이익에도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x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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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패배해서는 안 된다. 푸틴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 그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나토 국가들에도 핵공격을 감행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푸틴의 패배는 세계 핵전쟁과 전 인류의 죽음을 의미한다.[xv]
비슷하게, 그리고 다소 놀랍게도, 하버마스의 상시 비평가인 슬라보예 지젝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정 불가능성의 공포 또는 강제 선택을 수반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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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가능한 선택에 직면해 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타협을 하면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먹이를 주는 셈이 되고, 이는 유럽 전체의 ‘비군사화’만이 만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전면 대결을 지지한다면, 새로운 세계 대전을 촉발할 위험이 매우 크다.[xvi]
따라서 하버마스와 지젝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정치적 상황은 마치 칸트의 모순처럼 결정 불가능한 막다른 길에 이른 듯하다. 하지만 칸트와 달리 현대 철학자들은 이러한 모순에 굴복하지 않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정 불가능성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중 군사주의 비판자이자 평화주의자로 유명한 노엄 촘스키는 우크라이나인들과 세계가 푸틴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평화 시에 푸틴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어리석게도 놓쳤기 때문”이며, 전범 푸틴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이것이 제3차 세계 대전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슬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xvii] 이 평가는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촘스키의 입장은 사실 하버마스의 입장과 유사하다. 하버마스는 푸틴 체제를 상대하기 위해 “정보에 기반한 균형 잡힌 접근법”과 (그 일부로서)“위험성을 고려하는” 보다 정교한 전략을 제시한다.[xviii]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는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가 우크라이나의 패배와 제한된 갈등이 제3차 세계 대전으로 확산되는 것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정당화된 균형 잡기를 고수하면서 추구하는 전략이다. 우크라이나는 패배해서는 안 되지만, 독일과 다른 나토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전쟁에 참전한 것처럼 푸틴이 행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군사 지원의 단계는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xix] 하버마스는 이후의 글에서도 이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키며, 상반된 요구를 가진 양측이 체면을 지키며 타협에 도달할 수 있는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xx] 비폭력 전략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추구해야 할 협상 및 해결의 전략이란 이런 것일까?
사회주의 매체 커먼스와 관련된 좌파 성향의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은 하버마스의 신중하고 타협적인 입장과 달리 보다 개방적이고 용감한 전략을 택한 에티엔 발리바르의 입장에 더 공감한다. 발리바르는 협상을 통해 푸틴을 달래려는 전망에 환상을 품고 있지 않다. “미래의 전망에 대해 더 비관적일 수 있다: 재앙을 피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할 수 있다.” [xxi] 따라서 발리바르에 따르면, 지식인의 의무는 세계적 핵전쟁과 인류 파괴의 위협을 내포한 이러한 결정 불가능성의 비극적 상황에서 명확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분명한 정치적 선택을 한다.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전쟁이 그 단어의 가장 강한 의미에서 정의로운 전쟁이라 말할 것이다. ... 나는 열광하지 않지만, 나의 선택을 한다. 푸틴에 반대하여.” [xxii]
발리바르와 마찬가지로, 지젝은 오늘날 모든 지식인의 의무가 푸틴의 침공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침략자에 대한 어떤 종류의 “이해”나 “유화” 정책도 포기하는 것이라고 믿는다.[xxiii] 지젝에게 이러한 유화 정책은 경제적 형태로도 나타나는데, 서구가 자본주의 시장의 법칙에 따라 계속 살아가는 한, 매일 석유와 가스 판매를 통해 러시아 국가에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xxiv]
다가오는 세계적 재앙을 늦추는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지젝은 서방 정부가 다음을 실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a) 하버마스가 제안한 푸틴과의 “균형적 대화” 정책을 포기하는 것. 지나친 신중함은 공격자를 격려할 뿐이기에, 푸틴이 “화가 날” 선을 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푸틴에게 명확한 한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b) 푸틴의 러시아와의 비즈니스를 즉각 중단하고 시장 메커니즘에 의존하는 것을 멈추며 자국의 에너지 공급을 직접 조직하는 것; 그리고 (c) 나토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xxv]
따라서 발리바르와 지젝과 같은 좌파 급진 철학자들이 우크라이나 상황을 평가하는 입장은, 러시아의 침략에 저항하는 유일하게 옳고 효과적인 방법은 서방의 무기로 우크라이나의 방어전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믿는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발리바르와 지젝은 푸틴 체제를 러시아 시민 전체와 동일시하지 않으며, 진정한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의 대표자들과의 연대를 포함하는 폭넓은 반푸틴 동맹을 구축하는 것을 기반으로만 가능하다고 믿는 한에서 초국적 페미니스트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 정치인들이 자국 내 좌파를 억압하고 서방 동맹국에만 의존하며 폭넓은 반푸틴 동맹 전략을 포기한 것은, 지젝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지 2년이 넘은 지금 우크라이나의 푸틴 독재에 대한 저항을 승리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xxvi] 게다가, 지젝에 따르면 민족주의에 의존하고 러시아 반체제 인사를 포함한 푸틴 독재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과의 연대를 거부하는 것은 전쟁이 끝난 후 우크라이나가 서방 기업들에 더 큰 식민지적 종속을 겪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우크라이나 국민이 아닌 자국의 소수 올리가르히 집단(구소련 국가들이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신흥 재벌)이 승자가 될 수 있다.[xxvii]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페미니스트 교훈
앞서 논의된 페미니스트 이론가들 간의 분열과 전쟁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관한 페미니스트 이론과 실천의 주된 관점은 반군사주의였고 여전히 그렇다. 2023년에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 헌정한 저서 ⟪전쟁에서의 페미니스트 교훈(Feminist Lessons of War )⟫에서 신시아 엔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험이 이 신념을 재확인한다고 결론짓는다. 이는 비록 이 신념이 우크라이나 페미니스트들의 서방 무기 지원 요구와 페미니스트 반군사주의적 입장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지만 말이다.[xxix]
정치적 해결 수단으로서 전쟁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평화주의와 달리, 페미니스트 반군사주의는 정치에서 폭력의 힘이 전능하고 불가항력적이라는 클라우제비츠적 군사주의 명제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클라우제비츠적 입장은 비폭력 윤리의 페미니스트 이론가들, 특히 주디스 버틀러에 의해 도전받고 있으며, 버틀러는 폭력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에서 비폭력의 힘이 폭력과 전쟁의 힘보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버틀러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직면하여 국제 페미니스트 커뮤니티가 우크라이나의 자위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그 성공을 기원해야 한다고 말한다.[xxx] 그러나 폭력의 논리를 역사 발전의 논리로 완전히 수용하는 것은 인간 문명에 있어 막다른 길이며, 모든 전쟁의 추진력은 사회적 유대와 협력을 파괴하려는 군사주의적 남성주의가 추구하는 프로이트적 죽음 충동이라는 점에서 버틀러는 이를 거부한다. 전쟁의 이러한 비공식적 “목적”을 고려할 때, 버틀러는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조차도 그 명시적 목표와 의도적 목적을 초과하는 파괴성을 가질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xxxi]
전쟁을 죽음 충동의 표현으로 보는 사상은 '절멸 전쟁', 즉 주된 효과가 상대방뿐 아니라 군대/동원된 인원과 민간인 등 자국 인구의 대량 소멸인 고강도 갈등 현상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발리바르에 따르면,[xxxii]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오늘날 절멸 전쟁 수준에 이르렀으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족말살(ethnocide), 가자에서는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될 수 있다.[xxxiii] 상대방이 오직 싸워서 파괴해야 할 “절대적 적”으로 규정될 때, 발리바르가 주장하듯,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예측 가능한 미래에 외교적 해결책이 없는 갈등”으로 변하며, "다양한 형태의 확전으로 가는 문을 열어 두게 된다"[xxxiv]. 적을 파괴하고자 하는 열망은 분쟁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자국 청년들 다수의 죽음을 감수할 수 있을 때만 실현될 수 있다[xxxv].
따라서 진행 중인 절멸 전쟁의 조건 속에서,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a) 우크라이나 민족에 대한 말살을 위협하는 적에게 정의로운 보복을 실행하려는 열망 때문에 싸움을 멈출 수 없고, 동시에 (b) 전쟁의 지속이 미래 우크라이나 세대의 대규모 소실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계속 싸우는 것이 불가능한, 극단적 결정 불가능성의 상황 속에서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외교 관계 차원에서 절멸 전쟁이 해결책이 없는 갈등으로 보인다면, 발리바르가 말하듯, 이념적 차원에서는 그러한 해결책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모든 교전 당사자가 원하는 유일한 해결책이자 완전하고, 최종적이며, 구원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이 해결책은 바로 승리다. 승리는 발생하자마자—그리고 지도자들은 교전 중인 국민들에게 곧 도래할 것이라 말한다—모든 교전 당사자에게 점점 더 참기 어려워지고 있는 결정 불가능성의 상태를 즉시 끝낼 것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이 구원의 승리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평화처럼, 승리는 단순히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획득되고 쟁취되어야 한다. 승리는 오늘날 우리의 집단적 열망, 열정, 희망이 투영된 비어 있는 주요 기표이며, 진행 중인 전쟁 상황에서 이를 자국의 정치적 내용으로 채우려는 다양한 집단과 이데올로기들 사이에 치열하고 타협 없는 헤게모니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계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어떤 '승리'의 이미지가 헤게모니를 얻고 있는가?
대중 매체 담론 수준에서 본다면, 민족주의적 승리의 버전이 헤게모니를 얻고 있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이 버전은 계급, 인종, 성별, 연령, 기타 차이를 극복하는 대중 동원과 긴 등가 사슬을 보장한다. 국민주의적 승리의 주요 요소는 승리를 이루는 주체성을 민족국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민족은 모든 것 위에 있으며, 민족의 자기 확립에 기여하지 않는 개인이나 사회 집단은 “외국 대리인,” “협력자,”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 등으로 정의된다. 민족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다음을 의미한다. (a) 민족국가의 적이 경험하는 완전한 굴욕과 붕괴, 그리고 (b) 전쟁의 결과로 부활하고 새로워져야 할 자국 민족국가 권력의 부상과 끝없는 강화[xxxvi]. 여기서 모든 참전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완전히 일치하며 완전한 국제적 연대를 이루고 있다. 또한, 세계에 대한 보편적 민족주의 관점에서는 승리가 세속적인 역사적 시간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과 완전히 새로운 초국가의 탄생을 의미하는 메시아적 시간으로의 전환으로 묘사된다.
이 승리의 버전은 주로 민족주의자들의 전통적 반대자들인 마르크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이들은 경쟁하는 민족주의 전쟁에서 하나의 정치 세력이 다른 세력을 압도하는 승리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들의 주장은 국가와 전쟁 사이의 공생 관계에 관한 명제를 기반으로 하며, 이는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존재론적 힘 중 하나를 형성한다. 에릭 알리에즈와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는 저서 ⟪전쟁과 자본(Wars and Capital)⟫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쟁은 생산, 노동, 인종주의, 성차별만큼이나 자본-국가 기계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xxxvii].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 “평화”라는 형태로도 – 영구적이며, 인구들 사이의, 그리고 인구에 맞선 세계 내전으로서 수행된다. 영구적인 자본주의 전쟁이 무혈에서 유혈로 바뀔 때, 그것은 단순히 형태만 바뀔 뿐이다. 이 경우, 세계 자본의 승리 외에 다른 승리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국가는 이데올로기 장치를 통해 자본의 승리를 보장한다.
현대의 총력전에서 양측 모두 자본의 편에서 싸우고 있다. 따라서 라자라토에 따르면, 민주주의-독재정치라는 대립은 허구다. “이 전쟁의 배경인 미국과 러시아 간의 대립은 민주주의와 독재정치간의 대결이 아니라, 특히 임대료 기반의 과두 관료들로서 서로 여러 면에서 유사한 경제적 관두 관료들 간의 대결이다” [xxxviii].
알리에즈와 라자라토에 따르면, 자본의 인구에 대한 총력전의 일부가 아닌 전쟁–즉, 반자본주의적 전쟁–에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해 벌어진 혁명적 전쟁이 포함된다(예를 들어,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아이티 혁명 전쟁과 오늘날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의 반식민지 게릴라 운동).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올바른 정치적 대립 구도는 혁명과 반혁명 사이의 대립이다. 진행 중인 모든 전쟁은 다음 기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전쟁이 누구를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가? 이 전쟁이 누구의 종속/지배를 강화하는가?
페미니스트들은 종종 마르크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의 이론과 정치적 전략에 비판적이며 의구심을 가지지만, 전쟁 문제에 있어 페미니스트의 입장은 민족주의자들보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입장에 더 가깝다. 절멸 전쟁의 막다른 상황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민족주의적 승리의 버전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거부되는데, 첫째로, 민족주의는 일관되게 페미니스트 이론에서 여성의 이중 착취–사회 정치적 현실과 상징적 객체로서–를 체현하는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와 연관되기 때문이다[xxxix]. 가야트리 스피박은 “여성은 민족주의의 가장 원초적인 도구”라고 지적하는데, 식민자의 민족주의든 피식민자의 민족주의든, 억압자든 피억압자든 그들은 여성 객체의 도구화라는 태도에서 일치한다[xl].
둘째로, 페미니스트 이론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는 해방적이기보다는 반해방적인 정책이며, 이는 위기 관리의 부적절한 메커니즘으로서 후퇴의 범주에 속한다. 라헬 예기가 정의하듯, 이는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하고 강화하는데, 이는 앙갚음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복수하지 못한 느낌을 강화하여 타인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퇴행의 방식에서와 같다[xli]. 나시라 게니프는 민족주의가 민족 해방을 외치며 사실상 “사람들에 대한 강자들의 우위를 … 민중을, 특히 그들의 청년들을 짓밟기를 주저하지 않는 군사력이 주도하는 체제"로, "민족주의는 전염병이며, 이것이 바로 이 나라(그의 조국 알제리)와 그 민족이 결코 자유롭고 자주적인 상태에 이를 수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한다[xlii].
민족주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페미니스트적 비평의 관점에서, 오늘날 러시아 연방 지도자들이 서방 국가들에 대한 “불만”과 “요구”를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퇴행적 정책과 르상티망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벌이고 있다고 자유민주주의 정치가들과 정치 철학자들이 말하는, 독재주의에 맞선 민주주의를 위한 해방적 전쟁이라는 이념에 반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르상티망 민족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민족주의적 연대가 아닌 헬렌 페트로프스키가 “공동체적 존재 실천으로서의 연대”라고 명명한 초국적 연대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xliii]. 이는 (a) 비위계적이고 포괄적인 민주적 연대이며, (b) 공격과 군사적 폭력에 대한 비르상티망적 저항이라는 해방적 연대에 기반한다.
러시아의 침략이 초래하는 참상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반군사주의적 페미니스트 전략–비르상티망적이며 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한 저항 전략–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절멸 전쟁의 맥락에서 비현실적이고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폭력 페미니즘 윤리 지지자들도 인정한다[xliv]. 그러나 이 전략만이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를 보존할 수 있게 할 것이며, 이는 이 전쟁에서 주요한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될 것이다. 또한, 반군사주의적 페미니스트 저항 전략은 현재의 민족주의적 동원과 대조적으로 푸틴의 침략에 맞서는 진정한 대중적 동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현재의 민족주의적 동원은 제한된 동원으로, 갈등을 절멸 전쟁으로 심화시키기만 할 뿐, 민주주의를 지키고 대규모 군사적 독재 공격에 저항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대중 동원을 제공하지 못한다.
주석
[i] ‘Feminist Resistance Against War. A Manifesto’, in Spectre, March 17, 2022. Retrieved from https://spectrejournal.com/feminist-resistance-against-war/
[ii] ‘Right to Resist. A Feminist Manifesto’, in Commons, July 7, 2022. Retrieved from https://commons.com.ua/en/right-resist-feminist-manifesto/
[iii] Tamara Zlobina, ‘The problem of feminist international politics. A view from Ukraine’, in Global Dialogue, May 9, 2022. Retrieved from https://globaldialogue.online/ally-en/2022/fas-voices_ukkrain_ok-the-problem-of-feminist-international-politics-a-view-from-ukraine/
[iv] Janet E. Johnson, ‘How Russia’s war in Ukraine can change gender studies’, in Frontiers in Sociology. November 30, 2023.
[v] Olga Burlyuk, ‘On Russia’s war against Ukraine and epistemic imperialism’, IPW Lecture, The University of Vienna, Austria, October 7, 2022. https://politikwissenschaft.univie.ac.at/details/news/ipw-lecture-on-russias-war-against-ukraine-and-epistemic-imperialism/
[vi] Teresa Hendl, ‘Towards accounting for Russian imperialism and building meaningful transnational feminist solidarity with Ukraine’, in Gender Studies, 26, 2022, p. 79.
[vii] Anna Dovgopol Facebook, June 19, 2022. Retrieved from https://www.facebook.com/anna.dovgopol.5/
[viii] Olga Sasunkevich, ‘Affective Dialogue: Building Transnational Feminist Solidarity in Times of War’, in Signs (49), 2024, p. 371.
[ix] Oksana Zabuzhko, ‘Pro feminism, rusistiky, stosunky z Pol’sheu ta imperialism’, in Ukraїner Q YouTube channel, February 17, 2024, 1:59:12 https://www.youtube.com/watch?v=S–4oklQiQE
[x] ‘Feminism, War, Solidarity’, Editorial, Gender Studies, 26, 2022, p. 6.
[xi] Olena Huseinova, ‘Why I’m Not Attending Prima Vista’, in Prima Vista, 2023. https://kirjandusfestival.tartu.ee/en/unfortunately-the-writer-in-residence-of-tartu-city-of-literature-residency-programme-olena-huseinova-will-not-be-performing-at-prima-vista/
[xii] ‘Feminism, War, Solidarity’, Editorial, in Gender Studies, 26, 2022, p. 5-6.
[xiii] Sabine Hark, ‘Wars as Commons. Scattered Notes on Solidarity’, inGender Studies, 26 (2022), p. 16.
[xiv] Jurgen Habermas, ‘War and Indignation. The West’s Red Line Dilemma’, in Reset Dialogues on Civilizations, May 6. 2022. Retrieved from https://www.resetdoc.org/story/jurgen-habermas-war-indignation-west-red-line-dilemma/
[xv] Ibid.
[xvi] Slavoj Žižek, ‘From Cold War to Hot Peace’, in Project Syndicate, March 25, 2022. Retrieved from https://www.project-syndicate.org/onpoint/hot-peace-putins-war-as-clash-of-civilization-by-slavoj-zizek-2022-03
[xvii] Noam Chomsky, ‘US Military Escalation Against Russia Would Have No Victors’, in Truthout, March 1, 2022. Retrieved from https://truthout.org/articles/noam-chomsky-us-military-escalation-against-russia-would-have-no-victors/
[xviii] Jurgen Habermas, ‘War and Indignation. The West’s Red Line Dilemma’, in Reset Dialogues on Civilizations, May 62022. Retrieved from
[xix] Ibid.
[xx] Jurgen Habermas, ‘A Plea for Negotiations’, in Süddeutsche Zeitung, February 14, 2023 https://www.sueddeutsche.de/projekte/artikel/kultur/juergen-habermas-ukraine-sz-negotiations-e480179/?reduced=true
[xxi] Etienne Balibar, ‘In the War: Nationalism, Imperialism, Cosmopolitics’, in Commons, June 29, 2022. Retrieved from https://commons.com.ua/en/etienne-balibar-on-russo-ukrainian-war/
[xxii] Ibid.
[xxiii] Slavoj Žižek, ‘From Cold War to Hot Peace’, in Project Syndicate, March 25, 2022.
[xxiv] Ibid.
[xxv] Ibid.
[xxvi] Slavoj Žižek, ‘What the left gets wrong about Gaza and “decolonisation”’, in The New Statesmen, December 20, 2023 https://www.newstatesman.com/world/middle-east/2023/12/israel-gaza-palestine-peace
[xxvii] Slavoj Žižek, ‘The Axis of Denial’, in Project Syndicate, June 29, 2023. Retrieved from https://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left-right-populist-alliance-against-ukraine-by-slavoj-zizek-2023-06
[xxviii] Cynthia Enloe, Twelve Feminist Lessons of War (London: Footnote, 2023).
[xxix] Ibid, p. 160.
[xxx] Judith Butler, ‘We fight against social domination, not against men and their anatomy’, April, 30, 2022. Retrieved from
[xxxi] Judith Butler. The Force of Nonviolence: an Ethico-Political Bind(London, New York: Verso, 2020), p. 78.
[xxxii] Etienne Balibar, ‘Palestine, Ukraine and other wars of extermination: the local and the global’, in Bisan Lectures Series, December 13, 2023. Retrieved from
[xxxiii] Ibid.
[xxxiv] Ibid.
[xxxv] Ibid.
[xxxvi] Zillah Eisenstein, Hatreds: Racialized and Sexualized Conflicts in the 21st Century (New York, London: Routledge 1996), p. 27-29.
[xxxvii] Éric Alliez and Maurizio Lazzarato, Wars and Capital, trans. Ames Hodges, Semiotext(e), 2016, p. 15-16.
[xxxviii] Maurizio Lazzarato, ‘The War in Ukraine’, in The Invisible Armada., July 8, 2022. Retrieved from https://invisiblearmada.ncku.edu.tw/articles/the-war-in-ukraine
[xxxix] Nira Yuval-Davis, Gender and Nation, London: Sage, 1997, p. 19.
[xl] Gayatri Chakravorty Spivak, ‘Nationalism and the Imagination’, Lectora, 15, 2009, p. 35-36.
[xli] Rahel Jaeggi, ‘Modes of Regression. The Case of Ressentiment’, inCritical Times, 5 (3) 2022, p. 35.
[xlii] Nacira Guenif, ‘Building Feminist Coalitions beyond Nationalism: A “Minority Report” from France’, in Gender Studies, 26, 2022, p. 116.
[xliii] Helene Petrovsky, “Expressing and Conceptualizing Solidarity”, inGender Studies, 26, 2022, p. 97.
[xliv] Judith Butler, ‘I am hopeful that the Russian army will lay down its arms’, in Culture, April 24, 2022 https://en.ara.cat/culture/am-hopeful-that-the-russian-army-will-lay-down-its-arms_128_4353851.html
[출처] The Antinomies Of The Russia-Ukraine War And Its Challenges To Feminist Theory
[번역] 류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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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제레브키나(Irina Zherebkina)는 우크라이나 국립 과학 아카데미 하르키우 분원 인문 교육 센터의 철학 교수로, 하르키우 젠더 연구 센터의 소장(1994년부터)이며, 젠더 스터디 저널(Gender Studies Journal)의 편집장(1998년부터)이다. 2023년 3월부터는 런던 정경대 젠더 연구 학과의 방문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