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연구는 독일의 좌파당(Die Linke, 디 링케)에 불편한 진실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이 좌파 정당의 지지 기반은 고학력자와 중간 소득 계층이 중심이다. 당의 새로운 지도부는 노동계급에 뿌리를 다시 내리겠다고 약속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독일 좌파당(Die Linke)은 지난 10월 19일부터 당대회를 열었다. 출처: 공식 페이스북
독일의 좌파당은 쇠퇴하고 있으며, 많은 당원들이 살아남기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2021년 총선에서 좌파당은 재앙적인 패배를 겪으며 지지율 5% 이하로 떨어졌고, 몇몇 지역 선거에서의 승리가 없었다면 연방하원인 분데스탁(Bundestag)에서 사라질 뻔했다.
이후 좌파당의 여러 계파를 대표하는 이들이 다양한 분석을 발표했다. 좌파당의 싱크탱크인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의 카르스텐 브라반트(Carsten Braband)는 좌파당의 유권자층이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확실히 중산층으로 이동했다고 지적했다.
좌파당의 패배는 단순히 불리한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당 자체의 전략적 방향에 기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브라반트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당 재건을 저해하는 두 가지 신화를 깨뜨리고자 했다.
사실, 감정이 아니라
최근 할레에서 열린 당 대회에서 "계급," "계급 정치," "계급 관점"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마다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당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좌파당이 여전히 "계급"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이는 근본적으로 실증적 질문이기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답변이 나오는 것은 의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논쟁은 서로 다른 데이터 세트에 의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논쟁의 양측이 매우 다른 개념적 틀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작년에 마리오 칸데이아스라는 당 지식인은 좌파당이 노동계급 기반을 잃었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부정했다. 그는 좌파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있는 당 잠재 유권자들, 즉 좌파당에 투표할 의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자신을 노동자가 아닌 앙겐슈텔레(Angestellte, 화이트칼라 직원)로 인식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은 객관적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이 마르크스주의적 범주로 세상을 보지 않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이트칼라 직원 역시 착취 관계에서 객관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계급이 아니다. 좌파당의 잠재적 유권자층 내 다양한 집단의 상대적 비중에 대한 주장이 사회 각 계층에서의 절대적 감소를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는지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브라반트는 그의 논문에서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그는 좌파당의 선거 잠재력을 분석하는 대신, 2009년 이후의 선거 결과를 살펴본다. 그는 유권자를 노동계급과 중산층으로 나누고, 이 계급 내에서 다양한 직업군을 구분한다. 노동계급은 제조업 노동자, 서비스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로 구성되며, 중산층은 "사회문화적 반(半)전문가," "사회문화적 전문가," "기술적 (반)전문가," 중간 및 상위 관리자로 분류된다.
그의 연구 결과는 극적이다. 2009년에 제조업 노동자들 중 약 20%가 좌파당에 투표했지만, 2021년에는 단 4%만이 남았다. 서비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당의 득표율이 12% 포인트 급감했다. 반면, 좌파당은 2017년에 중산층 유권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으며, 특히 “사회문화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021년에도 지지율이 상승했다.
브라반트는 노동계급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지지 하락으로 인해 오늘날 좌파당의 유권자층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학문적 성향이 짙어졌다고 말한다. 또한 눈에 띄는 점은 좌파당의 축소된 유권자층이 점차 중간 소득층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2021년 사이에 좌파당은 소득 분포 하위 사분위에서 가장 큰 지지 손실을 겪었다.
자업자득
이러한 변화는 사회주의 정당으로서 좌파당의 실패를 여실히 드러내며, 당 내부에서는 이 문제가 축소되어 논의되었다. 당의 전략을 담당해 온 이들은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듯하다. 브라반트의 연구는 좌파당이 취한 특정 입장이 당의 패배에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좌파당의 잠재적 유권자들 사이에서 여러 정책 분야에 걸쳐 지지를 얻는 입장과 외면당하는 입장을 식별하고, 특정 유권자층에게는 매력적이지만 다른 유권자층에게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입장들을 파악했다. 사회 정책 측면에서는 좌파당의 잠재적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독일 전체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 임대료와 전기, 기본 식료품 가격 통제, 부유층 세금 인상에 대해 폭넓은 지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파당의 사회 정책 요구사항 중에서 지지를 잃는 입장은 없었으며, 실업 수당의 전면 인상만이 잠재적 반감 요인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민을 지지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좌파당의 실제 유권자들은 이민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보다 개방적이지만, 잠재적 유권자층에서는 거부감이 더 강했다. 이는 좌파당의 이민 정책이 잠재적 유권자들 일부가 최종적으로 좌파당을 선택하지 않게 되는 이유 중 하나임을 시사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에 대해 좌파당의 유권자층과 잠재적 유권자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자료에 따르면, 녹색당 유권자 대다수는 이러한 무기 지원을 지지하는 반면, 좌파당 전 정치인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신당 지지자들 대다수는 반대하고 있다.
이는 명확한 선거적 상충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비투표자들 또한 추가적인 무기 지원에 대해 의견이 나뉘고 있다. 또한 주목할 점은 좌파당 유권자층이 다른 어떤 그룹보다도 군비 지출 증가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 좌파당과 잠재적 유권자들 간에는 큰 간극이 있으며, 이는 현재 당의 입장이 지지를 잃는 입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연구에 대한 논쟁에서는 당연히 그 전략적 함의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일부 흔히 나타나는 해석들은 다소 지나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좌파 신문 ND는 브라반트가 좌파당이 “우파에 대한 부분적 양보”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연구가 제공하는 것은 우선 실증적 지식이다. 브라반트 연구의 전략적 함의는 좌파당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목표에 따라 달라진다.
괜히 “발끈”하지 마라
스테판 마우, 토마스 럭스, 리누스 베스트호이저가 저술한 책 ⟪Triggerpunkte⟫ (트리거 포인트)은 작년 독일 좌파 담론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브라반트는 그의 연구에서 이 책을 여러 차례 참조했다. 이 책의 핵심 발견 중 하나는 일반적인 주장과는 달리 사회가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많은 질문에 대해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며, 단지 특정 “트리거” 이슈들만이 강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좌파당이 실질적인 양보를 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소통에서 이러한 이슈들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많은 좌파들에게는 이민과 같은 문제를 수사적으로 강조하지 않는 것이 이미 입장에 대한 타협을 의미한다. 이들은 극우 세력의 성장과 난민 권리의 후퇴를 주로 담론적 현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이를 더 물질적 수준의 “약자 비하(punching down)” 형태로 본다면, 계급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전략적 초점이 극우로 향하는 국가적 움직임을 정치적으로 무력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좌파당이 이민 문제에서 더 보수적이라는 인식을 가지면서도 좌파당에 투표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선거에서 발생하는 상충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좌파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 다하기”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친이민 메시지가 담긴 포스터에 끌린 녹색당 전향 유권자가 다음 가로등에서 무기 지원 반대 포스터를 보고 반감을 느끼거나, 그 반대로 바겐크네히트 지지자가 무기 지원에 반대하는 메시지에는 공감하지만 친이민 메시지에는 반발을 느낀다면, 그 결과는 결국 선거에서 참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좌파당이 노동계급을 하나로 묶는 물질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이를 분열시키는 “트리거 포인트”를 피한다면, 이는 당의 쇠퇴를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좌파당의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된 이네스 슈베르트너(Ines Schwerdtner)와 얀 반 아켄(Jan van Aken). 출처: 공식 페이스북
좌파당의 새로운 당 대표 이네스 슈베르트너(Ines Schwerdtner)와 얀 반 아켄(Jan van Aken)은 이를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두 사람 모두 몇 가지 핵심 경제적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정치적 초점을 지지하고 있다. 정치적 초점은 좌파당의 고질적인 계파 싸움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노동, 주거비, 복지 국가에 대한 문제에서는 당이 비교적 일치된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좌파당이 노동계급 지역사회와 노동 현장에 뿌리를 두지 않는 한, 정치 담론에 주기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입은 그들이 피해야 할 “트리거” 문제를 다룰 때만 주목을 받는다.
좌파당은 단지 노동계급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나오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인내심 있는 노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 스타일이 필요할 것이다. 당이 이를 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할레에서 열린 당 대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시작을 보여주었다.
[출처] Die Linke Can’t Just Rely on Middle-Class Progressive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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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틸(Jonas Thiel)은 독일 좌파당의 당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