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죽였다" 해고된 섬 발전노동자의 죽음

울릉도 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이병우 씨가 지난달 22일 새벽 숨을 거두었다. 고인은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의 조합원으로 지난해 8월 한국전력에 의해 해고 통보를 받은 후 스트레스와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유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고인은 해고 이전, 건강을 잘 유지해 왔으나 해고 이후 8개월 만에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고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사망에 이르렀다. 

유족과 동료들은 고인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며, 고인을 비롯한 도서발전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한 한국전력에 책임을 묻고 있다.

"한국전력은 고인과 유족 앞에 사죄하라". 참세상

울릉도 등 65개 도서지역의 발전노동자들은 한전의 지시에 따라 일하면서도 하청업체 JBC에 소속되어 지난 30여 년간 섬에서 발전과 송배전 업무를 맡아왔다. JBC는 한전 퇴직자 단체인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자회사로, 수십 년간 한전과의 독점적인 수의 계약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 왔다고 알려졌다. 그동안 한전이 관리하는 도서지역 발전시설의 노동자들은 한전과 JBC가 1년 단위로 체결하는 위탁 운영 계약에 고용의 지속가능성이 매여 있어, 상시적 고용 불안과 함께 열악하고 차별적인 노동조건을 견디며 도서지역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해 왔다고 한다.

이에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 2020년 3월 한전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6월 1심에서 승소해 노동자들이 한국전력의 노동자라는 근로자지위를 확인받았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법원의 판결에 따르지 않았다. 한전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지난해 1월, 30년간 이어온 JBC와의 업무 위탁 계약을 종료한다고 통보한 후 노동자들에게는 소송을 취하하고 자회사 한전MCS로 전적할 것을 강요했다. 지난해 8월에는 고인을 비롯해 전적을 거부한 노동자 184명 전원을 해고했다. 

고인의 배우자가 전하는 이야기. 참세상

공공운수노조는 9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이용우·송재봉 의원실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죽음에 대한 한국전력공사의 책임을 짚었다. 

고인의 배우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신을 죽음에 이르도록 해고한 한국전력공사가 너무도 원망스럽다"면서 "25년 넘게 다니던 발전소에서 해고당했지만, 가족들 염려할까 봐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던 당신, 그러나 그 속이 얼마나 탔으면 당신의 심장까지 멈추게 했는지 잘 헤아리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는 "사랑하는 내 남편 그리고 예린이 아버지, 당신은 하늘로 가셨지만 이제 제가 당신의 뜻을 이어 열심히 살아보겠다"며 "당신이 싸워왔던 뜻을 잘 새기고 저도 끝까지 싸우겠다. 당신의 명예가, 바라던 소망이 꼭 이뤄지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인의 동료들도 자리를 지켰다. 

최대봉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 지부장은 "한전이 섬 발전소 노동자를 죽였다"며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들을 위로할 대책을 마련하라. 불법파견 인정하고 우리를 직접 고용하라. 더이상 시간끌기로 섬 발전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고, 이를 즉각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김선종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고인을 비롯해 섬 발전소에서 일해 왔던 해고 노동자들은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일해 왔지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살기 위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막막한 상황"이라며 "공공운수노조는 고인의 죽음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전의 무책임한 해고와 불법 파견, 그리고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빚어낸 사회적 타살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한국전력은 즉시 남아 있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의 안정을 위해 실태조사나 설문을 통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섬 발전소 해고 노동자와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법원의 직접 고용 판결을 즉각 이행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한전은 유족 앞에 사죄하고 해고노동자들을 복직시켜라". 참세상

정치권에서도 고인의 죽음에 대한 한국전력의 책임을 묻고 나섰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 이병우 해고노동자의 사망은 "해고 기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게 원인"이라며 "이것이 어찌 개인의 질병이겠는가. 법을 어겨 집단 해고를 감행한 한전의 살인"이라 규탄했다. 이 의원은 "한전은 사죄하고 보상해야 하고, 더 이상 원통한 죽음이 없도록 법원 판결대로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접 고용 대상자인 하청 노동자를 집단 해고한 것은 매우 부당하고 부적절하다. 그래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고 부당해고 철회와 승소 판결을 받은 노동자들에 대해서 직고용을 포함한 근본적인 상생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요구했었다"고 밝혔다. 송 의원은 "그러나 한전은 책임 있게 대응하지 않았고 노동자들과 진지하게 논의하거나 협상을 진행하지도 않았으며 책임 회피만 급급했다"면서 "어려운 여건에서 전력 노동자로서 일해왔던 분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한전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은 공기업으로서 보여야 할 책임 있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날 송재봉 의원실이 공유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상생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지적받았음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를 추가선임 하는 등 법적 대응을 강화하는 상황이다. 또한 집단 해고로 인한 전문 인력의 업무 공백으로 정전 대응 미흡 등 도서지역 주민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도서발전노동자는 가족의 생계가 끊어지는 아득한 절망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렸지만, 이 길이 옳다는 신념으로 한전, 국회, 산자부 등을 돌아다니며 투쟁하고, 국회, 법원에서도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옳다고 하였지만, 한전은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면서 "도서발전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범인은 바로 한전"이라 규탄했다. 이들은 "평소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던 고인은 해고로 인해 삶과 몸이 망가져 버렸다"면서 한국전력에 △고인에 대한 사과와 유가족에 대한 피해 보상 △해고된 도서발전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와 전원 즉시 고용 △해고된 노동자들의 현장이었던 도서발전소 직접 운영 △해고 협박으로 소송을 취하한 도서발전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와 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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