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형대 씨는 거의 매일같이 윤석열 퇴진 집회 현장을 무지갯빛 동료들과 함께 지켰다. 계엄 직후 꾸려진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에 결합해,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광장에 참여할 수 있는 '무지개존'을 넓히고, 여러 시민과 만나며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과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들을 연결해 왔다.
박형대 씨는 청년성소수자문화연대 큐사인에서 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20대 시스젠더 남성이자 동성애자로, 지금은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 대선 TF에서 발행하는 수호지 뉴스레터 집필팀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무지갯빛 광장을 지켜온 형대 씨는 이번 대선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누구에게 한 표를 던질 생각일까.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무지개 깃발을 든 박형대 씨. (사진 촬영: 찰)
지난 겨울, 어떤 마음으로 광장에 함께했었나.
지난 박근혜 퇴진 국면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적극적으로 집회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당시 광장에도 여러 성소수자들이 함께했지만, 크게 가시화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어진 대선에서는 당시 유력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가 공식 석상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집권 이후에도 우리의 목소리는 나중으로 미루어졌다.
이번 광장에서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더욱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광장은 여러 다양한 시민들 모두의 힘으로 함께 만든 것이지만, 그 가운데 우리 성소수자들도 역할을 했다는 것을 사회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광장 이후의 조기 대선, 어떻게 보고 있나.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을 구성하면서 여러 활동가들이 말했던 목표가 있었다. 퇴진 이후 조기 대선에 나선 민주당 후보가 공식 석상에서 "나는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아직 실제 그런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도 성소수자들을 비롯해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있어 안타깝다.
거의 모든 후보가 경제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잘 살게 할지, 어떻게 사람들이 더 일을 잘하게 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집값을 내리게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속에 우리의 이야기는 빠져 있는 것 같다. 경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잘 사는 삶, 더 나은 일, 이런 것들은 성소수자를 비롯해 사회적 소수자들 모두에게 중요한 부분인데, 왜 우리의 이야기들은 지워버리는지 모르겠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우, 당선이 유력한데도 보수 개신교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배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2·30대 남성들의 표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이 윤석열 퇴진과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대선 국면에서는 내란 세력 청산이 성소수자 인권보다 먼저라는 식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윤석열 정권에서 성소수자들과 여성에 대한 정책은 뒷전으로 밀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어져 버렸다. 윤석열을 만든, 또 다른 윤석열들인 소위 '내란 세력'들은 결국 성소수자와 여성,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에 기대어 세력을 이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퇴진', '내란 세력 청산'과 성소수자 인권은 절대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란 세력 청산을 위해서 성소수자들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의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본다.
이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한다. 스스로 페미니스트이자 앨라이라고 말하고,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혼 법제화, 성별인정법 등 성소수자 의제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는 현재 권영국 후보가 유일하다.
이전에 진보당 김재연 후보도 그 정책들에 다 동의한다고 밝히고, 무지개행동과 정책 협약식을 맺기도 했지만, 결국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후보에서 사퇴했다. 저는 솔직히 김재연 후보가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김재연 후보가 동의했던 성소수자 공약들이 이재명 후보 공약에 다만 한 줄이라도 반영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결국 헛된 기대가 되었다.
우리가 광장에 함께 존재했던 것을 인정해 주는 후보는 현재 권영국 후보밖에 없다.
또한 권영국 후보는 노동운동을 하던 '거리의 변호사' 출신이라고 알고 있다. 성소수자 의제뿐만 아니라, 노동자·시민들이 현실에서 겪는 여러 문제에 귀 기울이고 이를 해결하려 함께 싸울 수 있는 후보라고 생각해서 지지하게 됐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그렇고, 그전에도 그렇고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비롯해 여러 투쟁의 현장을 직접 찾아서 노동자·시민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사람이라면 내가 믿고 지지를 표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대선이 첫 투표인가. 지난 선거에서는 어떤 후보를 지지했나.
안타깝게도,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난 대선이 첫 투표였다.
당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었다. 사실 심상정 정의당(현 민주노동당) 후보를 뽑고 싶었다. 그런데 윤석열에 대한 지지율이 너무 심상치 않았고, 그가 당선되면 절대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정말 울면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다. 그날 저녁 개표 방송을 보면서부터 심상정 후보에게 소신 투표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내란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이재명 후보의 '압도적 승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진보정당에게 가는 표는 '사표'라는 압력도 거센데, 왜 생각이 달라졌나.
지난 대선에서는 내가 소신대로 던지는 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만약 권영국 후보가 낙선하더라도 그 표가 결코 사표가 아니고, 권영국 후보와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유의미한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진보정치에, 한국사회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권영국 후보가 내건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성평등 공약 등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크게 존재한다는 것을 선거 결과를 통해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집권이 유력한 민주당에서도 그 목소리에 응답해야 할 압력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진보정당으로 표가 분산되어 집권을 방해한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지 못할 위기에 놓인다면 그 책임은 김문수·이준석 후보와 그들을 지지하는 극우·혐오 세력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들에게, 그리고 이번 선거 이후 들어설 새 정부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저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 우선 차별금지법이 꼭 제정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성소수자들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 그리고 소수자로 분류되지 않는 정말 모든 사람들을 위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어야, 결국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는 정말 당연히 제정되어야 할 법이다. '사회적 합의'는 너무도 충분하다. 제발 더 이상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광장에도, 사회 곳곳에도 우리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 성소수자들의 표를 받으려면 성소수자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권영국 후보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후보 토론 등 선거 과정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시면 좋겠다.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됐든 한국사회의 진보 정당, 노동당과 녹색당, 정의당(현 민주노동당), 노녹정이라고 하는 진보 정당들의 미래, 사회적 소수자들과 노동자 시민들을 위한 진보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 어렵더라도 계속 함께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를 잊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유권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최악과 차악 중에 차악을 뽑지 않아도 되는 선거가 언제쯤 한국에서 가능해질까 계속 생각해 왔다. 언젠가 답을 얻었는데, 그냥 제가 지금 하면 되는 것이더라, 그 선거를.
바로 지금, 그렇게 소신 투표를 하면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동료 성소수자들에게, 물론 어떤 후보를 지지하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겠지만, 이번 선거에서 권영국 후보에게 모이는 지지가,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적 변화의 씨앗을 마련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