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출간된 크리스티안 크리스티안센(Christian Christiansen)의 책 ⟪세계 경제적 평등 설계하기: 유엔에서의 세계 평등주의 정책의 형성과 해체⟫(Designing Global Economic Equality: The Making and Unmaking of Global Egalitarian Policies at the United Nations)는 세계 불평등이라는 개념의 역사를 지적으로 검토한 저작이다. 이 책은 새뮤얼 모인(Samuel Moyn)의 ⟪충분하지 않다: 불평등한 세계의 인권⟫(Not Enough: Human Rights in an Unequal World), 퀸 슬로보디언(Quinn Slobodian)의 ⟪글로벌리스트들: 제국의 종말과 신자유주의의 탄생⟫(Globalists: The End of the Empire and the Birth of Neoliberalism), 그리고 ⟪하이에크의 사생아들: 포퓰리즘 우파의 신자유주의적 뿌리(⟫Hayek’s Bastards: The Neoliberal Roots of the Populist Right)(나는 이 책들을 내 서브스택에서 각각 서평했다)에 뒤이어, 세계 빈곤, 세계 불평등, 세계 발전에 관한 사상이 지적 담론과 국제정치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평가한다. 다만 크리스티안센의 책은 경제사와 정치사의 영역까지 자주 확장되는 다른 두 저작보다 범위가 더 좁다.
크리스티안 크리스티안센(Christian Christiansen)의 책 ⟪세계 경제적 평등 설계하기: 유엔에서의 세계 평등주의 정책의 형성과 해체⟫(Designing Global Economic Equality: The Making and Unmaking of Global Egalitarian Policies at the United Nations)
내가 언급한 세 가지 ‘글로벌’ 가운데 크리스티안센은 불평등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만 집중한다. 크리스티안센이 쓰고 있듯이, 그리고 독자가 읽으면서 분명히 알게 되듯이, 세계 불평등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다. 이 개념은 이미 1950년대 경제학 용어집에 등장했다. 콜린 클라크(Colin Clarke)의 ⟪경제 발전의 조건들⟫(Conditions of Economic Progress)은 1940년에 출간되었지만 전쟁 중에는 잊혔다가 1945년 이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이 책은 발전한 유럽과 미국, 그리고 빈곤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격차, 즉 ‘심연’을 수치로 보여주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초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이루자 부유한 나라들은 제3세계의 빈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그 빈곤이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들이 독립한 뒤 제3세계의 빈곤은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국가들이 공산주의의 ‘거짓 약속’에 쉽게 끌려 소련의 동맹국이 될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대규모 빈곤을 ‘해결’하려는 서구의 개입에는 처음부터 분명한 자기이익의 요소가 존재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마셜 플랜이 성공하면서 원조가 경제 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또한 복지국가를 향한 흐름도 나타났다. 얀 뮈르달(Jan Myrdal)과 알바 뮈르달(Alva Myrdal)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이를 세계 복지국가로 자연스럽게 확대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세계 전체가 더 큰 스웨덴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러한 희망은 곧 좌절되었다.
두 가지 과대평가의 시대. 나는 1950년대 초부터 1974년 신국제경제질서가 제안되기까지의 시기를 ‘두 가지 과대평가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첫 번째 과대평가는 부유한 국가들이 원조를 제공하려는 의지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 것이었다. 이 책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바버라 워드(Barbara Ward)를 비롯한 수많은 개인들과, 수많은 현자들(대부분 남성들)로 구성된 국제위원회들은 부유한 국가들이 GDP의 상당 부분을 경제원조에 사용할 가능성을 터무니없이 높게 보았다. 1960년대에 제시된 최초 목표는 부유한 국가들이 GDP의 1%를 원조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후 목표는 GDP의 0.7%로 낮아졌다. 그러나 많은 유엔 목표와 ‘약속’이 그러했듯이, 이 목표 역시 무시되었다. 오늘날 부유한 국가들의 대외원조 규모는 GDP의 0.3%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나마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군사 지원이거나, 빈곤 완화와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 사이의 불평등 해소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지정학적 목적의 지원이다.
두 번째 과대평가는 원조가 가난한 나라들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실제로 그것은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마셜 플랜은 유일한 예외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이 예외였던 이유는 이제 우리가 훨씬 잘 이해하고 있다. 당시 유럽은 자본만 부족했을 뿐 다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숙련된 노동력, 이미 건설되어 원자재와 외환만 공급되면 다시 생산을 시작할 수 있는 다양한 공장들, 잘 알려져 있고 활발하게 작동하던 시장들이 존재했다. 반면 새롭게 탈식민지화된 아프리카 국가들과 아시아 일부 지역에는 그러한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두 가지 과대평가는 북반구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는 다소 공허한 언어와 맞물려 있었다. 그 수사는 식민지배가 끼친 피해에 대한 배상이라는 관점보다는 윤리적 의무라는 관점으로 표현되었다. 물론 크리스티안센이 쓰고 있듯이 식민주의의 책임을 직접 언급한 저자들도 있었다. 또한 이러한 논의는 피어슨 보고서(Pearson Report), 컬럼비아 국제개발회의(Columbia Conference on International Development), 브란트 보고서(Brandt Report)와 같은 수많은 보고서에서 반복되는 딱딱한 문체로 표현되곤 했다. 크리스티안센은 이러한 보고서들에서 많은 인용문을 제시한다. 이를 읽다 보면 저자들이 정말로 부유한 국가들의 도덕적 양심에 대한 막연하고, 거의 예외 없이 헛된 호소가 현실에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믿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냉소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인 행동 촉구는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기보다 저자 자신의 도덕적 미덕을 과시하기 위해 쓰인 것처럼 보인다. 사망자 수 집계 전략의 설계자였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도 서구의 양심에 호소하는 데 있어서는, 그의 가까운 고문이 된 바버라 워드(Barbara Ward)와 다르지 않았다. 바버라 워드는 교황들과 여러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고문 역할도 맡았던 지칠 줄 모르는 활동가였다.
이 시기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라울 프레비시(Raúl Prebisch)다. 프레비시는 자신이 그런 분류에 동의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구조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는 이해하기 쉽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쳤다. 국제체제는 체계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난한 나라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기업의 국유화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남반구 국가들의 초기 산업을 보호하지 않은 채 서구 산업을 보호했으며, 그 결과 남반구 국가들의 수출 확대를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농산물과 원자재의 교역조건이 장기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부유한 국가들은 이익을 얻었다. 따라서 프레비시는 가난한 국가들, 특히 자신의 고향인 라틴아메리카가 심각한 제약에 묶여 있다고 보았다.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이었다. 이들 국가는 수입대체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외환이 부족했다. 수입대체산업화는 초기 단계에서 북반구로부터의 기술 수입을 필요로 했다. 또한 이들 국가는 북반구의 다국적기업과 협상할 힘이 없었고, 장기적으로 상대가격이 하락하는 원자재 생산에 묶여 있었다. 게다가 남반구의 높은 불평등은 엘리트들의 사치품 소비를 확대해 ‘원시적 축적’과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더욱 줄였다. 프레비시가 원자재 가격의 장기적 추세에 대해서는 틀렸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설명은 당시에도 설득력이 있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중국보다 더 좋은 사례가 있을까? 중국은 프레비시가 지적한 거의 모든 문제에 직면했지만, 외국 투자자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개선해 그들의 기술을 획득했고,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으로 이동했으며, 사치 소비에 지나치게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고, 그 결과 경이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다.
이 짧은 설명만 보더라도 프레비시가 신자유주의적 세계 불평등 접근법의 지지자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신자유주의는 가난한 나라들이 단순히 부유한 나라들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 분업 속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고, 월트 로스토(Walt Rostow)가 말한 단계적 발전 경로를 밟으라는 것이다. 로스토 역시 중요한 발전경제학자였지만, 안타깝게도 크리스티안센의 책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프레비시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신고전파 경제학자들과 몇 차례 격렬한 논쟁을 벌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는 평소의 프레비시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 ‘세계 불평등’과 발전 연구 분야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고 부를 수 있는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간다. 이 시기의 원칙은 단순했다. 국가들은 시장 신호를 따르며 성장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교리였다. 바버라 워드와 얀 뮈르달의 도덕주의적 접근이 ‘세계 공동체’라는 정치적·도덕적 실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순진했다면,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규제받지 않는 시장이 모든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거나 적어도 더 이상 가난하지 않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순진했다. 전자가 정치적으로 순진했다면, 후자는 경제적으로 순진했다.
20세기 80년대 무렵 일어난 이러한 전환은 국내적 측면과 국제적 측면 모두에서 많이 논의되어 왔다. 흥미로운 점은 크리스티안센이 이 시기의 경제학 논쟁을 국제관계 분야의 논쟁과 연결해 설명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안센에 따르면 경제학의 우경화에 앞서 등장한 인물은 로버트 터커(Robert Tucker)였다. 그는 ⟪국가 간 불평등⟫(Inequality of Nations)(1977)에서 정치적 현실주의를 부활시켰다. 국제경제의 세계에서 실제 행위자, 아니 유일한 행위자는 국가라는 것이다. 국가는 이해관계를 가질 뿐 윤리를 갖지 않는다. 세계 공동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국제관계에 대한 매우 현실주의적인 시각을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다.
독자라면 이제까지의 논의를 통해 ‘세계 불평등‘이라는 용어가 실제로는 대부분 북반구와 남반구의 평균 수치를 비교하는 의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인당 평균 GDP, 평균 기대수명, 평균 교육수준 등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나에게 세계 소득 불평등과 세계 자산 불평등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진 이후 ‘세계적’이라는 말은 전 세계 모든 개인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평균치가 아니라 각 개인의 실제 소득과 자산을 분석하는 것이다. 크리스티안센의 책은 데이터가 훨씬 부족했던 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세계 불평등을 단순히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격차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에도 같은 혼동이 자주 반복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균 대 평균을 비교하는가, 아니면 모든 개인을 포함해 세계 전체의 분포를 살펴보는가? 두 접근법 모두 의미와 활용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접근법은 구축하기 어렵지만 경험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훨씬 풍부한 의미를 제공한다. 북반구도, 남반구도 단 하나의 숫자로 요약될 수 없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과거보다 더욱 그렇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책이 끝나는 거의 현재의 시점에 도달한다. 그것은 ‘내재된 세계화’ 또는 ‘포용적 자본주의‘의 시대다. 이 시기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시장 컨설턴트들과 유엔에 의해, 적어도 말로는, 길들어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우리가 크리스티안센을 따라 그려온 발전 과정에서 다소 기이한 단계다. 아시아 금융위기와 시애틀·제노바 시위의 압력 속에서 시장 컨설턴트들은 ‘책임 있는 자본주의’ 또는 ‘내재된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기업은 계속 돈을 벌겠지만, 이제는 친환경 기술에 투자하고 노동자들을 더 잘 대우하며, 그 밖의 비슷한 일들을 함으로써 그렇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유엔은 자금도 부족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부족했던 탓에 이러한 환상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리는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Kofi Annan)이 다보스포럼에서 해마다 행한 연설을 무려 세 편이나 접하게 된다. 애초에 왜 국가 간 기구의 수장이 다보스에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 시점부터 논의는, 크리스티안센의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소 흐릿해진다. 유엔과 국제기구들이 불평등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실제로 믿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환상적인 선언들로 가득한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다. 기업과 국가,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강자와 약자 사이의 모든 모순이 적어도 수사적 재주만으로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지적으로는 가장 빈곤한 시기였을 것이다.
크리스티안센의 책은 발전경제학과 국제관계를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나처럼 세계 불평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롭고 자료가 풍부한 저작이다. 배울 점도 많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과 제3세계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상세하게 다룬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들이 지적으로 전개된 무대로서 주로 유엔에 초점을 맞춘다. 국제기구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발전경제학자들은 부차적인 역할만 수행한다. 거시경제학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으며, 소련권과 중국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신국제경제질서에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매우 복합적인 기획이었다. 신국제경제질서는 정치적 서방보다 훨씬 더 유엔의 특정 원칙들을 옹호했다. 하지만 동시에 국내 문제에 대한 외부 개입을 거부했고, 따라서 인권 보호에도 부정적이었다. 그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평등을 줄이고자 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제3세계를 지급불능 상태로 몰아넣으면서 그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 결과 IMF의 역할이 다시 강화되었고, 기존의 국제적 위계질서도 복원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북반구와 남반구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출처] International development: From moralizing to calculations to laissez-faire to rhetoric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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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