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실리콘밸리 IBM 노동자와 피해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특별기획] 19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일

한국에서는 연일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가 쏟아진다. 한국 사회가 AI와 반도체를 미래 산업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이라는 거대한 가치에 가려진 것들이 있다. 우리는 다음의 질문들에 먼저 답해야만 한다. 첨단산업의 위험은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가. 피해자들의 반복된 요구처럼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수십 년 전 미국 IBM 클린룸에서 암을 진단받은 노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우리가 답을 찾지 못한 이상 IBM 직업병 피해는 과거의 사건으로 끝날 수 없다. IBM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는 일은 과거의 비극을 되짚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같은 질문 앞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묻는 작업이다.

산타 클라라, 과수원에서 실리콘 밸리로

실리콘 밸리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 클라라(Santa Clara) 밸리는 과거 과일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그곳에는 수천 에이커에 이르는 과수원과 수십 개의 통조림 제조 공장, 그리고 건조과일 포장공장이 있었다. 자두, 포도, 살구를 재배하던 농원에 점차 전자산업 회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통조림 공장은 1999년까지 있었지만, 1970년대는 이미 과일 산업의 황혼기이자 오늘날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것의 탄생기였다.1)

산타 클라라에 소재한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IBM이었다. IBM은 1980년대 초반 PC 산업의 핵심 주자였다. 당시 IBM의 첫 데스크탑 모델은 출시 직후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되었다. 초기 전자산업과 반도체 산업에는 일련의 발암물질과 생식독성물질들이 사용되었다. 사용된 물질에는 비소, 석면, 베릴륨, 크롬, 니켈, 사염화탄소, 글리콜에테르 등이 포함된다.2) 그러나 이 물질들은 기업의 기밀로 유지되었고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은 결여되어 있었다. 사회적으로 조성된 무지 속에서 노동자들은 의심 없이 일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몸에 나타났다. 1980년대에 들어서 생산직 노동자들의 화학물질 노출, 직업성 암 발병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85년 캘리포니아 산 호세(San Jose)에 있는 IBM 연구시설의 재료분석 부서에서 일하던 화학자 게리 아담스(Gary Adams)는 IBM 본사에 편지를 썼다. 자기 동료들이 집단으로 암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연구개발 실험실에서 일하던 12명의 연구원들 가운데 두 명은 뇌종양, 두 명은 림프계암, 두 명은 위장관계 암으로 죽었다. 또 다른 두 명이 골격계 암에 걸렸고, 나중에 연구팀장은 뇌종양으로 죽었다. 한 연구실에서 일하는 12명 중 9명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우연이라는 말로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출처: Carson Masterson, Unsplash

IBM을 상대로 한 소송

2003년 후반, 캘리포니아 산 호세 공장의 전직 클린룸 노동자였던 제임스 무어(James Moore)와 앨리다 에르난데즈(Alida Hernandez)는 IBM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무어는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2004년 10월에 사망했고, 에르난데즈는 73세 되던 1993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이 소송은 IBM에 근무하다 화학물질 중독으로 암이나 각종 만성 질환에 걸린 200여 사례 가운데 한 건을 대변하는 사례일 뿐이었다. 이 외에 IBM 노동자의 자녀가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례도 50건이 넘었다.

에르난데즈는 각종 세척 용매와 디스크 코팅이라고 부르는 화학물질을 취급했다. 무어는 트리클로로에틸렌TCE과 여러 종의 에폭시 수지를 취급했다. 당시 무어의 트리클로로에틸렌TCE 노출 수준은 현재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발암 위험의 역치로 설정한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4)

그러나 배심원단은 인과관계 부족을 이유로 IBM의 손을 들어줬고 피해자들은 IBM과 비공개 합의를 맺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럼에도 이어진 연구는 사법부의 결정이 사회적 진실로 자리잡는 일에 제동을 걸었다.

리처드 클랩(Richard Clapp) 박사는 IBM이 증거자료로 제출하기를 거부한 〈기업사망자료〉를 광범위하게 분석했다. 이는 IBM이 자사 노동자의 사망 원인을 종합적으로 기록해 온 자료로 클랩은 과거 35년간(1969~2001) 자료를 확보하였다. 이를 통해 IBM 노동자의 사망 원인 가운데 암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반 인구 집단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보다 크게 높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암 사망자의 연령이 일반 인구보다 많이 낮았다. 특히 제조 공정에서 용제 및 기타 화학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다.5) 

빅 블루 가족(Big Blue Family)과 또 하나의 가족

IBM이라고 하면 저에게는 정보 수집 및 처리 분야에서 선구적인 기업일 뿐 아니라 “빅 블루 가족(Big Blue Family)”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회사에서 내세운 가족이라는 관념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입니다.6)

IBM의 별칭은 빅 블루였다. 그리고 이들은 빅 블루 가족이라는 친숙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이는 삼성이 과거 광고를 통해 내세웠던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슬로건을 연상시킨다. 이 대기업들이 어떤 이미지로 노동자들과 대중에 다가가려 했는지, 그리고 피해 사실이 알려진 이후 업무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며 보인 태도가 스스로 표방한 ‘가족적’인 태도와 어떻게 모순이 되는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2004년 평결 직후 알리다는 “짐 무어와 나,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미래의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7) 불행하게도 이들의 고통은 한국에서 반복되었고, 반도체 공장이 이전한 국가들에서 또다시 반복될지 모른다.

삼성 직업병 피해와 투쟁조차 과거의 일로 치부되고, 황유미의 이름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시점에 우리는 모순적이게도 더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 반올림과 연대하던 미디어뻐꾹은 2018년 미국으로 가 전자산업 피해자, 노동자, 전문가의 인터뷰를 담아 왔다.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30년, 그리고 그 이상 된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터뷰 기록은 반올림 아카이브에 온전히 보관되어 있었다. 10년 가까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던 그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보려 한다.

 

1) 데이빗 N. 펠로우·글레나 매튜즈, “두 시기의 이주 노동자들: 실리콘 밸리에서의 투쟁과 승리”,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메이데이, 2009, pp.242-252. 

2) Wade, R. et al. “Semiconductor Industry Study”, State of California, Division of Industrial Relations, Division of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Task Force on the Electronics Industry, 1981. 

3) Adams, G, Letter to Stan R. Ciraulo, General Manager, IBM Corporation, September 29, 1996 

4) 아만다 허즈·데이빗 N. 펠로우, “실리콘 밸리의 노동자 건강을 위한 투쟁: 아만다 허즈와의 대화”,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메이데이, 2009, pp.227-229. 

5) Clapp, R.W, “Mortality among US employees of a large computer manufacturing company:1969–2001”, Environ Health 5, 30, 2006. 

6) 아만다 허즈·데이빗 N. 펠로우, 앞의 책, p.235. 

7) 위의 책, p.238.

덧붙이는 말

임다윤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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