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전쟁으로 불어난 재정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를 대거 매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공시한 해외채권 종목별 투자 현황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국민연금은 이스라엘 정부 국채 약 404억 4300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이 가운데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이 재개된 2023년 10월 7일 이후 발행된 국채는 약 327억 5300만 원어치다.

국민연금이 2025년 말 보유한 이스라엘 국채 현황. 원자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이스라엘 국채는 ‘집단학살 국채’
이스라엘 정부는 집단학살과 전쟁으로 늘어난 자금 조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해왔다. 이스라엘 재무부 정부부채관리단은 2024년 3월 80억 달러(당시 약 10조 5000억 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한 것에 대해 “전쟁으로 커진 자금 조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공공기금을 상대로 이스라엘 국채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운동이 이어져왔다. 영국 공공연금 공동운용기관 보더투코스트는 위탁운용사 핌코가 2920만 달러 상당의 이스라엘 국채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 시민들의 항의를 받은 끝에 이를 전량 매각했다. 아일랜드 전략투자기금도 2025년 7월 이스라엘 국채를 모두 처분했고,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은 인권침해를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와 국영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뎡야핑 활동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1967년 이래 군사 점령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국제사법재판소가 결정했고, 이어 2024년 9월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에만 불법 군사 점령을 끝낼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불법점령을 유지하는 것을 원조·지원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며, 국민연금의 이스라엘 국채 투자에 대해 “정부에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은성진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 또한 “국민연금의 주식·채권 투자는 ESG 원칙과 수탁자 책임 원칙을 함께 지켜야 한다”며 “환경·사회·지배구조에 악영향을 미치는 곳에 투자하는 데 반대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2주기 집회. 참세상 박도형 기자.
이스라엘 국채 매입, 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이스라엘 국채는 위탁운용사에서 매입했으며, “글로벌 운용사에 돈을 맡기면서 특정 투자를 ‘하지 말라’고 강제하기에는 그런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했다. 이스라엘 국채를 매입한 이유에 대해서는 “벤치마크 안에 이스라엘이 들어와 있으면 저희는 사고, 빠지면 파는 것”이라며 “특별한 의사결정 때문에 이스라엘에 투자했다기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것(벤치마크)을 꾸준히 따라가는 형태”라고 했다.
벤치마크는 운용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미리 정해둔 기준지수다. 운용사는 이 지수의 구성과 수익률을 기준으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지수보다 높은 수익을 냈는지 평가받는다. 국민연금 해외 국채·정부 관련 채권의 벤치마크는 세계 각국의 국채 등을 묶은 ‘블룸버그 글로벌 종합지수(Bloomberg Global Aggregate ex-Corporate)’다.
다만 벤치마크는 구성 채권을 반드시 모두 사야 하는 의무 매입 목록이 아니다. 게다가 국민연금 규정상 해외채권은 지수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 방식으로 운용된다. 실제 투자 종목과 비중은 국민연금이나 위탁운용사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저희는 실행 부서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벤치마크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 대표들이 모인 기금운용위원회”라며 “위원회가 벤치마크를 부여하면 이를 잘 따라가면서 그보다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이 저희 목표”라고 했다.
국채뿐 아니라 이스라엘 기업 채권·주식도 매수
국민연금은 약 167억 6700만 원에 달하는 이스라엘 회사채도 보유하고 있었다. 2025년 말 기준 보유 현황에는 테바 계열사 회사채 151억 8100만 원, 뱅크레우미 8억 7100만 원, 뱅크하포알림 7억 1500만 원 등이 공시됐다.
이스라엘 기업 주식 보유액은 더 컸다. 2025년 말 공시에서 확인된 이스라엘 기업 주식 보유액은 약 7125억 8400만 원으로, 1년 전보다 17.7% 늘었다. 이 중 테바 1842억 9300만 원, 뱅크레우미 1890억 3200만 원, 뱅크하포알림 1325억 900만 원 등 세 기업의 주식만 5058억 3400만 원에 달했다.

국민연금의 2025년 말 해외주식 보유 종목 중 이스라엘 소재 법인 주식 추출. 참세상 박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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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이스라엘 소재 법인 주식 평가액 변화. 참세상 박도형 기자.
KPMG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테바는 이스라엘군에 의약품과 장비를 기부하거나, 군 의약품 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등 이스라엘군(IDF)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기업이다. 이스라엘 은행인 뱅크레우미와 뱅크하포알림은 불법 정착촌과 관련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기업으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데이터베이스에 올라 있다. 국민연금의 이스라엘 기업 주식 상위 3개 투자처가 모두 군 지원 또는 불법 정착촌 사업과 연결된 셈이다.
ESG 한다는데…성과평가는 ‘해당 사항 없음’
국민연금은 2025년 말 해외채권 위탁운용액 45조 5000억 원을 ‘책임투자 적용’ 자산으로 분류했다.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책임투자 정책·지침 보유 여부와 관련 보고서 발간 여부 등에 가점을 준다는 이유다. 기금운용본부 해외채권실 관계자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결정된 ESG 정책을 수탁자책임실이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어 전사적으로 내려준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공시한 ‘책임투자 관련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 및 현황, 성과평가 기준’을 보면, 2025년 말 ‘책임투자 관련 해외채권 위탁운용사 성과평가 기준’은 “해당사항 없음”으로 기재돼 있었다.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는 ESG 정책 보유 여부에 가점을 주면서도, 선정 이후에는 이스라엘 국채 매입 등의 투자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공시한 2025년 해외채권 ‘책임투자 관련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 및 현황, 성과평가 기준’ 중 일부
국민연금은 한국 시민들의 노후자금을 재원으로 한다. 따라서 위탁운용사나 벤치마크에 따른 투자였다는 설명만으로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특히 해외채권 위탁운용액을 책임투자 적용 자산으로 분류하고도 위탁운용사 성과평가 기준 자체가 없었다면, 책임투자 원칙이 실제 운용 과정에서 작동했는지도 쟁점이다. 투자라는 명목으로 한국 시민들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중동 전쟁에 연루시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은성진 사무국장은 “아무리 위탁운용사가 채권을 매입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 원칙과 ESG 원칙에 따라 매입이 이뤄졌어야 한다”며 “위탁운용사의 주식·채권 투자를 평가할 때 해외에서 전쟁범죄에 쓰이는지도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또 “투자 과정이 ESG 요소와 책임 원칙을 준수했는지 살펴보고, 그렇지 않다면 필요할 경우 투자자금을 빼야 한다”며 “단순히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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