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이 정부의 이주노동 정책 개선이 지연되는 사이 사업장 내 폭력과 차별, 산업재해가 계속되고 있다며 사업장 변경의 자유와 노동조합 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정부가 준비 중인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도 사업장 변경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중심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은 2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철폐와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HD현대중공업의 이주노동자 노동조건 변경 철회, 노조할 권리 보장 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 뒤에는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삭발했으며, 참가자들은 정부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108배에 들어갔다. 릴레이로 이뤄지는 이번 108배는 오는 11일까지 매일 오전 11시 이어진다.
출처: 이주노조
이들은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현행 이주노동 제도가 폭력과 임금체불,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고용허가제(E-9)뿐 아니라 회화강사(E-2), 전문·기능인력(E-7), 계절근로(E-8), 선원취업(E-10) 등 여러 체류자격에서 사업장 변경이 제한되고 있으며, 고용기간 연장에도 사업주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하고 위험한 사업장에서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며 “사업주의 폭행과 괴롭힘도 쉽게 신고하지 못하고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거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면 고용기간 연장이나 재고용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지금 실시하고 있는 이주노동 제도는 이주노동자에게 참아라, 견뎌라만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외국인력 통합지원 TF를 구성하면서 올해 3월 제도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발표 시점이 5월, 상반기, 8월 등으로 거듭 늦춰졌다고 지적했다. 권 부위원장은 “고용노동부가 제도 개선 로드맵을 발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동안에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괴롭힘과 폭력, 산재사망, 폭염 온열질환 사망 등의 문제는 날마다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계는 정부 논의 과정에서 제시된 것으로 알려진 ‘입국 후 1~2년 제한 이후 사업장 변경 자유화’ 방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도입될 때부터 강제노동을 하고 있고 사업주의 괴롭힘 등을 겪고 있는데 언제까지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가”라며 사업장 변경의 완전한 자유를 요구했다.
최근 HD현대중공업과 전북 일강에서 벌어진 이주노동자 노동조건·노조 활동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제기됐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HD현대중공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식대 문제에 항의한 뒤 임금이 17만 원 이상 줄어드는 내용의 계약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에서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 200명 이상이 노조에 가입했다며 “혼자서는 괴롭힘과 차별을 당해야 하지만 노조로 뭉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와 노동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북 일강에서는 노조에 가입한 이주노동자들의 재계약이 철회되는 등 표적 해고가 벌어지고 있다고 참가자들은 주장했다.
이주노동 제도가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해양수산부 등에 분산된 구조도 개선 대상으로 지목됐다. 단체들은 고용허가제 사업장 약 6만 곳 가운데 노동부의 연간 지도·점검 대상이 약 5%에 그치고 있다며 생산직 이주노동 관련 제도를 노동부 중심으로 일원화하고 모집·송출의 공공성과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윤성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이주노동팀 변호사는 사업장 변경 제한이 헌법상 기본권과 충돌한다고 주장했다. 윤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는 이주민이 ‘직장 선택의 자유’, ‘일할 환경에 대한 권리’, ‘평등권’이라는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임을 인정한다”며 “헌법상 기본권이 고용허가제라는 정책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계절노동자들이 브로커에게 여권을 빼앗기거나 임금을 중간착취당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인신매매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와 수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산업재해와 사망 이후의 대응 문제도 제기됐다. 선우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은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다가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이라며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유가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드윈 필리핀 이주노동자공동체 카사마코 활동가는 최근 천안에서 필리핀 이주노동자 2명을 포함한 노동자 3명이 숨진 사고를 언급하며 “어떤 노동자도 단순히 일하러 갔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은 오는 13일 서울에서 전국이주노동자대회를 열고 사업장 변경 자유와 임금체불·산재사망 근절, HD현대중공업의 계약 철회와 일강의 표적 해고 중단, 계절노동·선원·기능인력 분야 브로커 착취 근절과 송출 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은 노예가 아니라 권리 있는 노동자로서 살기 위해 많은 투쟁을 해왔다”며 정부에 사업장 변경의 완전한 자유와 인권·노동권을 보장하는 이주노동 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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