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룰라는 브라질 대통령직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룰라는 브라질 대통령직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브라질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미국의 개입과 지나치게 신중한 노동자당(Workers’ Party)의 대응에 힘입어 룰라를 앞섰다.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려면 룰라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품을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브라질 대선 1차 투표 결과는 노동자당(PT)에 큰 타격을 안겼고, 더 넓게 보면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에도 심각한 악재가 됐다. 202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약 600만 표 차이로 앞섰다. 결선투표에서는 그 격차가 약 200만 표까지 줄었다. 이번에는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룰라보다 20만 표를 더 얻어 3%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이 때문에 10월 25일 치러지는 결선투표는 룰라와 브라질 좌파에게 특히 어려운 싸움이 됐다. 1·2위를 제외한 후보들이 얻은 표는 합쳐 약 600만 표, 전체의 약 6%인데, 이 후보들은 모두 극우 성향이다. 이들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를 지지했고 룰라 정부에는 반대했다. 따라서 결선투표에서는 룰라에 맞선 광범위한 연합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보우소나루 일가가 다시 대통령직을 차지할 현실적인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우파의 상승세 같은 흐름은 의회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상원에서는 보우소나루의 극우 자유당(PL)이 의석을 15석에서 28석으로 늘렸다. 반면 노동자당은 전체

코넬대학교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행에 대한 생각

코넬대학교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행에 대한 생각

나는 코넬대학교의 한 남학생 사교클럽을 잠시 경험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였다. 예전에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친구를 따라 주말 동안 그 사교클럽 숙소에 머물렀다. 내가 소파에서 자고 있는데 그 친구의 이른바 ‘형제들’이 나를 끌어내 바닥에 눌러 꼼짝 못 하게 했다. 그들은 내 셔츠를 걷어 올리고 배 위에 개 사료를 쏟아부었다. 그런 다음 사교클럽에서 키우던 마스티프를 불러와 개에게 “나를 먹으라”고 부추겼다. 그 옛 친구 돈 샤르티에(Don Chartier)는 나를 돕기보다는 ‘형제들’의 환심을 잃지 않는 쪽을 택했다. 이 경험 때문에 나는 코넬대학교에 지원할 마음을 접었고, 함께 크로스컨트리와 육상 경기에 나갔던 고등학교 친구와의 우정도 끝났다. 그리고 남학생 사교클럽을 깊이 혐오하게 됐다. 물론 그런 장난은 최근 보도된 한 여학생의 ‘집단 성폭행 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역시 모든 남학생 사교클럽에 전류처럼 흐르는 가학성과 학대의 문화와 맞닿아 있다. 이런 남성 집단에 들어가려면 신고식이라는 이름 아래 괴롭힘과 모욕을 견디고 인간적 존엄까지 내놓아야 한다. 이런 신고식은 위계질서에 맞설 만큼 자존감과 독립심이 있는 사람을 걸러낸다. 조직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풍요의 세계에서 목적 있는 활동과 아브라함계 종교에 반대하며

풍요의 세계에서 목적 있는 활동과 아브라함계 종교에 반대하며

최근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다가오는 풍요’와 그에 따라 인간 노동의 필요가 줄어드는 문제, 얼핏 보면 아름다운 미래에 관한 토론에서 나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 케인스(Keynes)가 1930년에 쓴 다소 수수께끼 같고 여러 층위의 짧은 글 「우리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The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을 인용했다. 오늘의 맥락에서 이 글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케인스는 향후 100년 동안 선진국의 1인당 평균소득이 4배에서 8배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매우 낙관적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놀라울 만큼 정확했다. 둘째, 그는 이런 물질적 풍요가 노동의 필요를 크게 줄여 주당 노동시간이 약 15시간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봤다. 셋째, 인류가 마침내 ‘경제문제’를 해결한 뒤 이렇게 늘어난 자유시간과 여가를 과연 제대로 활용할 줄 알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 마지막 짧은 논의에서 「경제적 가능성」의 케인스와 《독일 이데올로기》의 마르크스 사이에는 뚜렷한 유사성이 있다. 둘 다 자유시간이 노동분업이 낳는 우둔화와 마비에서 벗어나 인간 본성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낙관했다. 마르크스의 예를 빌리면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며… 저녁 식사 뒤에는 [예술을] 비평하는” 삶이다. 케인스 역시

스페인의 새로운 시위운동, 계급을 전면에 내세우다

스페인의 새로운 시위운동, 계급을 전면에 내세우다

주거권 시위대가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을 점거하면서 2011년 시작된 긴축 반대 봉기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 운동이 포괄적인 포퓰리즘 언어를 사용했다면, 이번 새 운동은 계급을 분명히 전면에 내세우며 좌파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15년은 한 세대를 이루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하나의 ‘정치적 주기’를 이루기에는 적절한 시간인 듯하다. 스페인에서 활동가들과 진보적 학자들은 최근 몇 년 동안 ‘15-M’으로 불리는 분노한 사람들 시위에서 시작한 정치적 주기가 소진됐다고 자주 말해왔다. ‘15-M’이라는 이름은 시위가 처음 시작된 2011년 5월 15일에서 유래했다. 이 정치적 주기는 포데모스(Podemos) 창당과 급속한 성장으로 이어졌고, 2019년 첫 광범위한 좌파 연립정부가 출범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정치적 주기는 많은 성과를 낳았고, 스스로를 ‘진보 정부’라고 부른 정부가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끄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많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스페인 사회에서는 새로운 긴장이 생겨나면서 제도권 좌파와 정부 정책의 한계를 향한 불만이 커졌다. 주거 문제는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 우리는 마침내 새로운 정치적 주기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표현을 빌리면, 이전

어느 삼부자 이야기

어느 삼부자 이야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는 형제, 남매, 부자, 부부 등 가족 단위의 참여가 적지 않았다. 권오설 오직 형제, 김형선 명시 남매, 조두원 원숙 남매, 박헌영과 주세죽 부부 등 그 사례가 매우 많다. 일제강점기의 저명한 이론가였던 최익한의 경우도 그러했다. 고향인 울진군 북면에서 그의 형제인 익래는 고문으로 불구가 되었고 두 아들인 재소와 학소 그리고 여러 조카가 갖은 고문과 옥고를 치렀으며, 큰아들인 재소는 옥사하고 말았다. 1937년 3월 6일. 최익한은 아들 재소가 옥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는 곧바로 서울 창신동 집에서 함흥교도소를 향해 달려갔다. 그가 도착한 함흥교도소에서 맏아들 재소의 시신을 마주했다. 십수 년의 세월 동안 굽힘 없이 사회주의 혁명에 헌신했던 그에게도 아들의 사망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일본 유학 본격적 혁명운동에 뛰어든 최익한 큰아들을 잃고 최익한은 비통한 심경을 한시(漢詩)로 남겼다. 시의 제목은 곡아이십오절(哭兒二十五絶)이다. 시는 1937년 4월 조선일보에 재직 중이던 홍기문에 의해 실렸다. 홍기문은 과거 일본 유학 시절 최익한과 함께 일월회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시에서 최익한의 큰아들에 대한 깊은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다. 13세에 결혼하여 18세에

[멈춰라 3대 메가➀] ‘메가프로젝트 정세’, 우리는 무엇에 맞서야 하는가

[멈춰라 3대 메가➀] ‘메가프로젝트 정세’, 우리는 무엇에 맞서야 하는가

0. 들어가며 지난 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국민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이들과 함께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전국의 AI 데이터센터 건설 그리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해 4,700조 원의 투자계획을 밝혔고, 정부는 전력, 용수, 토지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한 ‘총력지원’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빅테크 CEO들을 초청해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을 개최했다. 삼성, SK, 현대차 총수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간 이재명 대통령은 엔비디아, 브로드컴, 앤스로픽, 오픈AI CEO와 함께 ‘우리는 식구다’를 외쳤다. 한국이 미국 AI 자본과 한 배를 타서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250조 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거둔 이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업이익과 투자규모에 한국사회 전체가 압도당하고 있다. 마치 투자브로커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 AI와 반도체 산업에 사회의 모든 자원을 ‘올인’하겠다고 한다. ‘AI 혁명’이라며 장밋빛 성장 전망에 모두가 들떠 있다. AI가 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것인데, 한국이 하늘이 준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AI

브라질: 앞으로 4년 더?

브라질: 앞으로 4년 더?

[번역자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는 10월 4일 치러졌으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했고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아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우파 진영의 후보로 나섰다. 개표 결과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유효표 47.03%(약 5,610만 표)로 1위, 룰라가 45.16%(약 5,388만 표)로 2위를 기록했다. 모두 과반을 얻지 못하면서 두 후보는 오는 10월 25일 결선투표로 맞붙는다. 함께 진행된 브라질 상·하원 및 주지사 선거에서 우파 진영(특히 보수 성향의 자유당)이 압승을 거두며 의회 내 과반 및 제1당 지위를 공고히 해 결선투표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1차 투표 직전 쓰여진 글이다. 남미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가 내일(4일) 열린다. 브라질 유권자 약 1억 5,900만 명이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주지사 선거와 연방 하원의원 선거, 연방 의회 선거도 치른다.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전체 국내총생산의 약 31%를 차지하며, 남미의 메르코수르 무역 블록과 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공동체, 미주기구의 창립 회원국이다. 1차 투표에는 여러 후보가 출마하지만, 누구도 득표율 50%를 얻지 못하면 3주 뒤 득표 상위 두 후보가 2차

광물 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고난

광물 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고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국가나 지역에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곳 사람들에게 큰 고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본거지인 글로벌 노스는 역사적으로 광물 자원이 빈약했다. 산업자본주의의 선구자인 영국도, 글로벌 노스에 속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제국주의를 추동한 강력한 동기 가운데 하나는 필수적인 1차 산품, 특히 북반구의 ‘번영’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광물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글로벌 사우스의 어떤 나라에서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특정 광물을 발견하면, 글로벌 노스의 다국적기업들이 그 광물 자원을 채굴하려고 몰려든다. 채굴이 이루어지면서 해당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고, 한동안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 제국주의 기관들은 이 나라를 수출 주도 성장의 빛나는 모범 사례로 세계에 내세운다. 그러나 해당 국가에서는 광물 부문에서조차 일자리가 별로 생기지 않으며, 생겨나는 일자리도 대개 탈산업화로 형성된 방대한 노동력 예비군 규모에 비하면 미미하다. 게다가 광물 개발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 특히 부족 공동체의 거주지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난다. 광물에서 발생하는 수입의 대부분은 다국적기업이 차지해 해외로 빼돌린다. 따라서 광물

AI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아니다

AI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를 맨해튼 프로젝트와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도 갈라놓는 것은 정치경제다. …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신의 영혼과 씨름하는 금욕적인 핵무기 개발자들의 세계가 아니다. 지금의 세계는 그보다 더 어둡고 동시에 더 세속적이다. 오늘날 세계를 위협하는 기술은 조 단위 자산가들의 탐욕, 정크본드, 임시방편으로 짜 맞춘 금융공학이 떠받치고 있다.

20세기가 지워버린 한 사람

20세기가 지워버린 한 사람

아주 가끔, 정말 드물게 네 자매에게 남자 형제가 한 명 있었다는 이야기가 대화 중에 언뜻 나오곤 했다. 어린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나 역시 죽은 사람은 언제나 죽어 있었던 사람, 다시 말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아마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면서, 우리 집안에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남자 형제가 한 명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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