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과 폭염, 폭우와 혹한 등 재난이 일상이 된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에게 대안은 있을까.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한다지만, 그로 인해 일과 삶이 부수어질 위협에 놓인 노동자와 주민들에 대한 실효적 대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더디고 해외 투기자본이 주도하는 부정의한 에너지 민영화만 부채질하고 있다는 우려도 깊다.
노동자·시민들은 절망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분명한 대안으로 요구하며 오는 31일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 모여 정의로운 전환의 길을 밝힌다. 그 맨 앞에는 "석탄화력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는 발전 노동자들이 나서, 전국의 노동자·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5.31 노동자·시민 대행진' 선포 기자회견. 참세상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정의로운 전환을 통한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2025 공동행동'(약칭 정의로운 전환 공동행동)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5.31 노동자·시민 대행진'의 계획을 밝혔다.
공동행동에는 4개 시민사회 연대체(공공재생에너지연대,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전국민중행동)들을 통해 200여 곳 이상의 사회단체들이 함께하고 4개 진보정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도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석탄화력발전의 폐쇄와 재생에너지발전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더 신속하게 폐쇄하고 더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고 짚고는 "2036년까지 59개 중 28개의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될 예정이지만, 과연 그만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환되는 것인지, 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발전소 폐쇄 이후 해당 지역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지, 실효성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행동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의 대안은 정의로운 전환으로, 노후 원전을 수명 연장하고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린다고 투기자본이나 해외 자본에 물과 바람과 햇빛을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라, 발전노동자들과 지역사회의 불안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로 이어져야 하며, 해당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을 정부와 우리 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이어야 하고, 당사자인 발전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폐쇄와 그 대안 마련 과정에 온전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면서 31일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서 전국의 노동자·시민들과 함께 이러한 요구들을 외치고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송상표 태안화력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발언 영상. 참세상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장 올해 12월 1호기의 폐쇄가 예고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지역에서 서울을 찾아 직접 이야기를 전했다.
송상표 발전비정규직연대 금화PSC 지부장은 "발전 노동자는 국민에게 안정적인 전기를 공급하며 대한민국 산업과 국민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살아왔으나, 필요할 땐 산업역군이라 불리던 우리가 이제는 쓰다 버린 소모품처럼 버려지고 있다"며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발전소 문 하나 닫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수천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 지역 소상공인, 자영업자,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호소했다.
송 지부장은 "발전소 노동자들은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전환으로 공공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발전소 노동자의 총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외친다"며 "우리의 일자리,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지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누구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 강조하고, 전국의 노동자·시민들에게 5월 31일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서 모여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자"고 힘주어 말했다.
제용순 발전노조 위원장은 "발전노조는 그동안 발전소 민영화 저지 투쟁에 앞장서 민영화를 막아냈고, 그렇게 발전 노동자들은 생활필수품인 전기를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일해 왔다"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동의하면서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왔으나, "정부는 발전 노동자를 상대로 대한 제대로 된 대화조차 없고, 폐쇄 계획이 발표된 지 8년이 지난 지금에도 발전 노동자의 총고용에 대한 제대로 된 계획이 없다"고 짚었다. 반면 정부는 "재생에너지 민영화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햇빛과 바람과 바다는 우리 모두의 자원"으로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규모 공공재생에너지 건설에 투자해야, 정의로운 전환으로 기후위기를 막고 발전 노동자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발전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는 산별노조와 민주노총의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강성규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석탄 발전소를 폐쇄한다고 발전 노동자들을 모조리 해고하려는 것에 반대하고, 재벌만 배 불리고 우리의 삶을 심각하게 파괴할 전기 민영화에 반대하는 모든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5월 31일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으로 모이자"면서 "바람과 태양은 상품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바람과 태양이 소수 특권층 몇몇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전기가 되도록 만들자"고 말했다. 강 부위원장은 "그러려면 발전 노동자들이 공공 재생에너지 발전소 노동자로 정의롭게 전환되어야만 한다"며 "함께 싸우면 가능하다. 5월 31일 투쟁의 현장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들 입장에서 자신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도, 발전 노동자들은 석탄화력발전을 멈추는 것이 옳은 방향이기에 동의하고 나섰다"면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5월 31일 노동자·시민 대행진에 함께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석탄화력발전소 굴뚝에 풍력 발전기의 날개를 연결한 발전 노동자들. 참세상
노동자들과 함께 정의로운 전환의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해 온 기후정의운동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한재각 공공재생에너지연대 집행위원장은 "석탄발전소 폐쇄의 정의로운 전환 대안은 공공재생에너지"라며 "온실가스 배출을 과감히 감축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려야 하나,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겨우 10% 수준이고, 그나마 대부분이 민간 자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재생에너지 확대의 신속성과 민영화 비용 절감, 주민들의 불필요한 전기요금 부담 완화,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과 재생에너지로 일자리 전환 등을 위해서는 "국가의 대규모 공적 투자에 기반해서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한 집행위원장은 "노동자와 시민들은 공공재생에너지로 굳건히 손을 잡았다"면서 "5월 31일 충남 태안과 경남 창원에서 노동자·시민 대행진을 열어 이 약속을 다시 확인할 것"이고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 운동을 6월부터 본격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라 밝혔다. 또한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은 공공재생에너지를 요구하는 발전 노동자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도 "한국의 재생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어떤 재생에너지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면서 "현재 해상 풍력의 90% 이상을 해외 투기 자본을 비롯한 민간 자본이 차지하고 있는데, 기후 위기를 이윤 창출의 기회로 삼고 투기자본과 해외 자본이 우리의 바람과 햇빛을 사유화한다면 그것은 결코 올바른 기후위기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황 위원장은 "햇빛과 바람은 기업 투자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기후를 살리고 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길, 우리는 공공재생에너지, 공공재생에너지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 길을 함께 만들기 위한 5.31 대행진을 함께 힘차게 만들어 가자"고 이야기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5.31 노동자·시민 대행진'은 오는 31일 오후 2시 충남 태안 터미널과 경남 창원 시청광장에서 동시에 열린다.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발전 노동자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이번 대행진에는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시민들이 기후정의버스를 타고 참여할 계획이다. 충청과 충청 이북지역은 태안에, 영남과 호남 및 제주 지역은 창원에 모일 예정으로, 참여를 원하는 이들은 웹페이지(https://buly.kr/BTPSJir)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