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쇠퇴, 제국의 역습

제국 또는 미국이 주도해온 단극적 세계질서가 쇠퇴한 징조가 뚜렷한 가운데 제국의 역습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이 최근의 국제정세라고 여겨진다.

미국의 경우 지난달의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가 민주당의 해리스에 승리를 거두고 취임을 앞두고 있지마는우크라이나전쟁에서의 패배가 임박한 상태다러시아에 전략적 패퇴를 가하려 미국이 전력을 다해 지원해 온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막강한 공격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중인 것이다주식시장의 호황 등으로 미국은 경제가 일견 좋아 보이지만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금융시장에서 엄청난 자본이득이 생기고 있기는 해도 그 혜택을 받는 것은 상위 극소수 부자들뿐이고 인민대중은 물가고 등 갈수록 깊어지는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민주당의 해리스가 대선에서 패배한 것도 문제는 경제야바보야가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David Treadwell, Unsplash

그래도 미국이 세계 경찰—또는 깡패—로 군림하려는 기세는 여전하다그런 태도를 대표하는 것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같은 우방에 군사적 지원을 무진장으로 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 대외 정책 매파나 네오콘 세력일 것이다미국에는 세계를 미국의 손아귀에 넣어 짓 주무르는 거대한 도당이 있다. CIA 분석관 출신 레이 맥거번이 미키매트(MICIMATT)’라고 부르는군대와 방산업체의회정보세력매체학계싱크탱크로 구성된 권력 네트워크가 그것이다하지만 국제정세를 멋대로 농단하기에는 미국도 이제 힘에 부치는 것으로 보인다우크라이나에 지원할 군사적 전략 자원이 고갈 상태가 된 것이 한 예다경제력도 이전 같지 않다냉전 시기 이후에 미국이 세계 패권을 휘둘러 온 것은 막강한 경제력 덕분이었다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 GDP의 50%나 차지하던 미국도 구매력평가지수(PPP)로 보면 2023년 기준 15.56%로 18.75%인 중국에 뒤진다특히 미국은 신자유주의화를 통해 탈산업화를 추진한 여파로 군수산업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에 밀리는 모양새다우크라이나전쟁에서 나토의 군사력이 러시아의 그것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제국의 속국들 형편도 악화한 것이 역력하다속국들이 밀집한 유럽을 보면 안정적인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다최근에 프랑스에서는 내각이 불신임당해 붕괴했고영국은 총선에서 압승한 집권 노동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고독일의 경우 미국의 요구대로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온 집권 연정이 내년 2월에 조기 실시될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 확실시된다.

유럽 최대의 산업 국가 독일의 경제 상황이 특히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독일이 자랑하는 폭스바겐 자동차에서 노동자 10만 명이 파업을 벌여 9개 공장 조립라인이 중단된 적이 있다폭스바겐은 최소 3개 공장을 폐쇄하고 대규모 해고를 감행할 것으로 알려진다이번의 파업 사태는 독일 경제가 위기에 처한 징후임이 분명하다. GDP 성장률—이것만 놓고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을 놓고 보면 독일은 2023년에 마이너스 0.3%의 성장을 기록한 뒤 2024년에 –0.1%의 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유럽 다른 주요 국가들도 상황이 나쁘기는 마찬가지다프랑스는 2023년에 GDP 성장률 0.9%로 매우 저조했고, 2024년에는 1.1%로 약간 개선될 것이 예상되나 2025년에는 0.8%로 다시 악화할 것이라는 예측이다최근에 바르니에 내각이 붕괴한 것이나마크롱 대통령의 사임을 지지하는 여론이 61%로 나온 것도 그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은 프랑스의 그것보다 더 낮다. 2023년에 0.9%를 기록한 뒤, 2024년 0.5%, 2025년 0.8%로 예측된다영국의 경우 2023년에 0.1%를 기록해 마이너스 성장을 겨우 면하더니 2024년과 2025년에는 1.1%, 1.4%로 약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나 그런 정도로 성장률이 만회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7월의 총선에 압승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의 지지율이 0을 기준으로 –38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진 데에는 겨울철 연료 지원금을 삭감하려는 정책을 펼친 것이 한몫했다고 알려진다.

제국의 범 서방 속국의 상태도 좋지 못하다일본의 2023년 경제성장률은 1.9%로 그리 높지 않았는데 2024년에는 0.3%로 훨씬 더 나빠질 것으로 예측된다지난 7월 지지율 15.5%를 기록하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퇴진한 뒤 새로 들어선 이시바 시게루의 지지율도 처음에는 50%를 넘기다가 11월 말에 이르러 퇴진 위기 수준인 30%대로 떨어졌다.

아시아에서 일본과 더불어 제국의 범 서방 속국의 하나인 한국의 상황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윤석열의 친위쿠데타 기도와 실패 이후 한국 사회는 지금 다시 국가의 명운을 놓고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이번 쿠데타 기도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우크라이나에 한국이 무기를 지원해줄 것을 미국이 원했을 것이고조선군이 러시아에 파병되었다는 을 근거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중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용한 것 등을 고려하면바이든 행정부가 윤석열이 쿠데타에 성공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나면 미국의 입맛대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서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라 볼 수 있다윤의 친위쿠데타 실패는 따라서 제국 미국으로서는 실망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국의 역습도 만만치 않다지금 가장 큰 지정학적 변동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반군에 의해 붕괴한 것이다시리아가 그렇게 급속하게 붕괴하리라고는 어떤 국제정세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2015년 이후 반군과 잘 싸워오던 정부군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능하게 궤멸하고 불과 며칠 만에 합법적 정부가 붕괴해 버렸다하지만 그 결과 이스라엘의 무도한 패악질을 견제하고 미 제국의 서아시아 농단을 막기 위해 결성된 저항의 축에는 엄청난 균열이 생긴 셈이다시리아는 저항의 축 실질적 수장인 이란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무기를 지원하려면 거쳐야만 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는데 이번에 친이스라엘친미친튀르키예 반군 세력에 장악되어 버렸다앞으로 저항의 축이 전선을 어떻게 구축해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개할 것인지 주목된다.

조지아 트빌리시 의회 건물 밖에서 시위대. 출처 : 알자지라 영상 갈무리

제국의 역습은 동유럽 지역즉 러시아의 서쪽 세 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몰도바와 조지아루마니아에서 제국주의의 색깔 혁명이 이뤄졌거나 진행 중인 것이다. 11월 초의 몰도바 대선에서 친EU 후보인 마이아 산두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서방의 열렬한 지원을 받은 선거 공작을 통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그녀가 겨우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에 거주하는 부재 투표자들의 몰표 덕분이었다국내 유권자만 놓고 보면 친러 후보로 여겨진 알렉산드르 스토야노글로가 훨씬 앞섰다는데산두 정권은 그를 지지하는 부재자가 많은 러시아 등에는 투표소를 단 2개만 설치하는 등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 공작을 서슴지 않았다하지만 서방의 어느 나라도 몰도바는 민주주의 국가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조지아에서는 대서방대러시아 중립적인 정당인 조지아의 꿈이 지난 10월의 총선에서 54.08%를 얻어 37.77%를 얻은 친EU 연합을 압도했으나지난 몇 주 동안 부정선거를 외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당과 대통령, (제국의 지원을 받는시민사회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조지아에서도 시위 군중이 의회 건물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데현재 한국의 상황과 다른 것은 그들은 제국의 앞잡이 역할을 자원하고 있다는 점이다한국에서 집회는 그래도 친위쿠데타를 감행한 윤석열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 한다는 점에서 조지아의 상황보다는 나은 편이라 하겠다.

루마니아(România, 로므니아)에서는 대선 1차 선거에서 선두를 차지한 우크라이나전쟁 반대 후보가 최종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가 나섰다제오르제스쿠 후보 선거운동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루마니아 정보국의 보고서가 기밀 해제된 직후 헌법재판소는 1차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제오르제스쿠 후보는 1차 선거에서 22.95%를 얻어 집권당 후보를 제치고 1위가 되었고, 12월 8일에 열릴 예정이던 결선 투표에서 당선이 유력했는데 헌법재판소의 방해를 받은 셈이다그는 루마니아가 나토의 하수인이 된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워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왔다제오르제스쿠가 루마니아 딥스테이트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은 그런 점 때문일 공산이 크다제국의 역습이 만만치 않다.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다제국의 쇠퇴가 대세임은 분명해 보이나 그 역습도 거세다한국은 지금 그 소용돌이에 말려 있는 형세다윤석열을 퇴진시키고 내란에 가담한 세력을 처벌하는 것은 제국의 역습에 맞서는 일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제국의 역습을 만만치 않게 봐야 하는 것은 몰도바조지아루마니아에서 보는 것처럼 제국은 끊임없는 색깔 혁명을 기획해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을 막으려 하고시리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역습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망만 하겠는가제국의 역습은 제국의 힘이 약화한 증거이기도 하다그것은 제국의 역습이 상식을 벗어난 모습을 띤다는 데서도 나타난다시리아를 점령한 반군은 알카에다, ISIS의 남은 세력이 힘을 다시 키워 만든 반문명 세력이다조지아의 시위 군중몰도바의 부정선거 집단루마니아의 헌법재판관 등은 반민주 세력이다그런 세력을 졸개로 쓰고 있다는 것은 제국이 정상적으로는 통치를 이어갈 수 없음을 말해준다제국의 역습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제국의 쇠퇴까지 불신할 필요는 없다.

덧붙이는 말

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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