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선거 이후, 독일 중심부에 정치적 공백

의미 있고 설득력 있는 연설은 정치에 필수적이다이것이 정치를 강압적인 폭력이나 비즈니스 거래와 구별되는 인간 활동의 영역으로 만드는 요소다선거는 민주 정치의 핵심적인 행사다따라서 지난 일요일 유럽 선거에서 당이 굴욕을 당한 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처럼 민주적 지도자가 참담한 선거 패배에 대해 논평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의 반응이 "아니오!"라면그는 실패한 것이다매우 근본적인 수준에서 실패한 것이다.

유럽 선거는 단순한 쇼가 아니다. 6월 9일 독일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에 참여했다이는 2020년 역사적인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비율과 같다이러한 중대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노 코멘트'라고 언론에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은 민주적 지도자로서 숄츠의 근본적인 실패를 보여준다.

그 결과는 숄츠와 그가 이끄는 정부에 치명적이었다현재 영어권 언론의 관심은 트럼프 대 바이든마크롱 대 르펜수낙 대 자신에게 쏠리고 있다남아공과 멕시코도 주목받고 있다이 모든 민주적 흥분 속에서 독일은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지고 있다그리고 독일의 정부 부채에 대한 위험은 확실히 없다독일 정치가 계속 표류한다면 기본 설정은 긴축이다이는 금융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와 트럼프에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이 더해지면 베를린의 공백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지난 주말올라프 숄츠가 이끄는 연정 3당의 득표율은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숄츠의 소속 정당인 사회민주당(SPD)은 14% 미만을 득표하여 1949년 연방공화국 건국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숄츠가 이끄는 연립 정부의 지지율은 독일 정부 사상 최악의 기록이다국민의 4분의 3이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그리고 이러한 지지율 하락은 전국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친정부 성향의 자유주의 신문인 디 차이트(Die Zeit)는 연립정부가 과반수를 차지한 지역구를 찾아갔을 때(독일에는 400개의 선거 지역구가 있다), 기자들이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보도했다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은 독일의 빈 지도를 게재했다지면 낭비를 피하기 위해 대신 연립정부가 얻은 득표율을 보여주는 지도를 포함했는데어두운 지역이 더 많은 득표율을 얻은 지역이다.

당연히 기독교민주연합(CDU)은 서독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고대학 도시 중 가장 친환경적인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서 과반에 가장 근접했다하지만 프라이부르크에서도 연정은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동독의 많은 지역에서 숄츠의 연정은 10% 안팎의 득표율에 그쳤으며때로는 신생 정당인 사흐라 바겐크네히트여성 1인 정당에 뒤처지기도 했다다시 말해동부 일부 지역에서는 독일 정부의 기존 3개 정당 모두 창당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신생 정당을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는 숄츠가 신경질적으로 침묵하며 대답을 회피하려는 모습에 익숙해졌다하지만 그가 광고에 대대적으로 등장하고당이 역사적인 패배를 겪은 주요 선거는 선출된 지도자가 단순히 침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독일 총리가 이 선거 재앙에 대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응한다면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포퓰리스트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숄츠의 개인적인 한계를 제외하면 두 가지 가능한 답이 떠오른다.

첫 번째 대답은 숄츠 진영이 우리가 이 영화를 전에 본 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과거에 숄츠는 비판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2019년 그는 유럽 선거에서 참담한 패배를 겪은 후 사민당(SPD)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당시 사민당은 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었다코로나19 위기 동안 재무장관으로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숄츠는 2021년 독일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CDU)에 맞서 승리하며 사민당을 다시 일으켰다. 2025년 CDU가 매력 없는 프리드리히 메르츠를 후보로 내세운다면 숄츠와 그의 팀은 또 한 번 역전승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 정치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2003년 숄츠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독일의 복지 및 노동 시장 시스템에 대한 역사적인 변화즉 악명 높은 아젠다 2010을 강행할 때 충실한 팀원이었다숄츠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20년 전 좌파가 아젠다 2010에 대해 얼마나 열광했는지 떠올릴 수 있다현재 사흐라 바겐크네히트의 당이 탄생한 디 링케(Die Linke)의 결성은 그 당시 사민당 내부의 분열로 거슬러 올라간다숄츠의 충성파는 슈뢰더의 아젠다가 이후 "독일의 성공적인 경제 회복의 기둥"이 되었다고 말한다그들은 올라프 숄츠의 현 정부도 적절한 시기가 되면 러시아 가스와의 탈동결탈탄소화시대정신시민권 개혁 등을 추진한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유추는 우리를 현재로 인도할 뿐이다. 2024년에 또 다른 숄츠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기보다는역사적 서술에 따르면 2021년의 반짝을 제외하면 그가 사민당 쇠퇴의 반세기 중 최근의 장을 이끌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든 예측하지 않든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독일 정치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규모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2019년 여름유럽 선거 사태 이후 나는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사민당(SPD)의 역사에 관한 긴 글을 썼다당시에는 코로나19 위기가 숄츠의 운명에 미칠 영향이나 메르켈 총리의 승계가 잘못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나는 AfD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다시 말해 나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수정 구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하지만 이 기사는 여전히 위기의 본질과 6당 체제가 된 이후 독일 민주주의가 작동해온 구조적 변수를 상기시키는 데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에 나는 2000년대 초반까지 독일 역사에서 사민당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사민당은 평범한 정당이 아니다. 1863년 창당 이래 비스마르크부터 제1차 세계대전바이마르 공화국과 제3제국을 거치면서 사민당은 더 민주적이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독일이라는 비전을 대변해 왔다. 2013년에는 메르켈 총리와 독일 대통령이 모두 창당 1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할 정도로 국가 기관으로서의 위상이 높았다기나긴 역사 속에서 사민당은 여러 차례 도전에 직면했다가장 악명 높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는 사회민주주의자와 공산주의자 간의 분열로 인해 히틀러가 집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냉전 시대에는 이러한 갈등이 억압되었다서독 공산당은 1956년에 불법화되었고그 자산은 압수되었으며당원들은 법원의 조사를 받았다이탈리아나 프랑스와 달리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좌파에 라이벌이 없었다빌리 브란트가 1969년 전후 사민당 최초의 총리로 취임했을 때그는 자유주의 자유시장 기민당(FDP)과 연합하여 총리에 취임했다."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의 연립 정부는 연방 공화국의 얼굴을 바꾸었다. '오스트폴리틱'이라는 슬로건 아래 동유럽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경제 기적으로 인한 풍요로움 속에서 이들은 연금모두를 위한 교육과 훈련낙태 규제와 이혼의 자유화 등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약속을 이행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당에 합류한 활동가 세대가 최근까지 당을 형성했다하지만 창립자들이 생각했던 사민당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였다산업 경제가 정체되면서 사민당의 주요 기반이었던 폐쇄적인 산업 노동의 세계가 해체되었다진보 정치는 점점 공공 부문 노동자샐러리맨 사무직새로운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사민당의 과제는 이질적인 이해관계를 전통적인 기반과 통합하는 것이었다."

"야당의 압력만큼이나 사민당의 분열도 1982년 슈미트 정부에 타격을 입혔다기민당은 당적을 바꾸고 기독민주당의 헬무트 콜이 16년간 총리로 재임하기 시작했다이는 연방 공화국의 기존 3당 체제의 마지막 순간이었다사민당에게는 불길하게도 좌파 독점에 도전하는 새로운 선거구가 등장하고 있었다슈미트 정부의 기술 중심주의는 1970년대의 생태 운동과 반핵 운동을 소외시켰다새로운 좌파는 사민당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쓰는 대신 녹색당이라는 독자적인 정당을 결성했다."

"녹색당은 사민당으로부터 청년층과 68세대의 표를 빼앗았지만기민당으로부터는 대학 교육을 받은 유권자들도 빼앗았다이로써 중도우파 기민당-기사연합의 지지층이 좁혀지면서 새로운 진보 연정의 가능성이 열렸다. 1985년 헤센주에서 최초의 적-녹색 연정이 출범했다허름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한때 강경 좌파의 거리 투사였던 요슈카 피셔가 헤센주의 환경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1980년대 말자를란트 주 수상인 오스카 라퐁텐이 선봉에 서면서 사민당이 주도하는 새로운 유형의 생태사회주의자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독일의 적색-녹색 미래는 소련의 붕괴로 인해 연기되었다장벽의 붕괴는 1980년대의 정치적 기대를 뒤흔들었다콜은 통일과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단기간에 추진하면서 역사책에 자신을 기록할 수 있는 기회에 기뻐했지만녹색당과 사민당은 예상치 못한 국민적 열광의 물결에 휩쓸려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녹색당은 개혁된 동독에서 민주화된 형태의 사회주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운동에 동조하면서 통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라퐁텐은 국경을 넘어 넘어오는 수십만 명의 독일인들을 마치 동료 시민이 아닌 외국 망명 신청자처럼 취급했다구 동독의 유권자들은 용서하지 않았다."

"통일에 대한 전망은 처음에 기독민주당의 선거 전략가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그들은 동독의 노동계급 탈공산주의자들이 사민당에 굳건히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콜의 당은 빠르게 새로운 세력을 구축했지만사민당은 한때 사회민주주의의 중심지였던 작센 같은 지역에서도 재건에 어려움을 겪었다. 1997년 사민당의 전체 당원 77만 6천 명 중 옛 동부에 속한 당원은 2만 6천 명에 불과했다. 2017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은 브란덴부르크와 베를린을 제외한 동부의 모든 주에서 4위를 차지했다서쪽 편향은 녹색당의 경우 더욱 두드러졌다. AfD가 독일에서 유일한 기후변화 부정 정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녹색당에 대한 공격은 동부의 광산 지역에서 잘 먹힌다. 1990년대 동독의 많은 지역에서 실업률이 20%로 치솟으면서 좌파의 주요 세력은 녹색당도 사민당도 아닌 탈공산주의 사민당(나중에 기민당이 탄생한 가닥 중 하나)이었다."

"1989년의 역사적 충격은 정치의 시계를 재설정했다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시작된 서독의 광범위한 사회적문화적 현대화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1998년 클린턴에서 영감을 받은 마케팅 팀이 주도한 선거 캠페인 이후 사민당의 베이비붐 세대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콜의 지친 정부는 '혁신'을 내세우며 선거운동을 펼친 니더작센의 화려하고 활기찬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에 패배했다."

"슈뢰더가 이끄는 적-녹색 연정은 처음으로 여당에 완전한 변화를 가져왔다하지만 사회 정의와 현대화에 대한 약속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이 연정은 시민권법에 큰 변화를 가져와 수백만 명의 터키계 독일인에게 이중 국적을 허용했다또한 베를린 중심부에 유럽 학살 유대인 추모비와 같은 새로운 추모비를 세우고 강제징용 배상 소송을 해결하는 등 나치 과거사에 대한 독일의 반성을 지속하고 심화시켰다두 가지 모두 정치적 고도의 행위였지만 적어도 나아갈 방향은 분명했다통일의 경제적재정적 유산은 훨씬 더 어려운 선택을 요구했다실업률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5년에는 독일 실업자가 전체 노동 인구의 12%인 500만 명을 넘어섰다."

"재무장관으로서 라퐁텐은 독일이 유럽 전역의 리플레이션에 대한 케인즈주의적 프로그램으로 대응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는 취임한 지 몇 달 만에 정부에서 물러났다슈뢰더는 자신의 좌파 라이벌을 일자리 창출보다 재정 지속 가능성을 우선시하는 강경한 긴축주의자 한스 아이헬로 교체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 슈뢰더는 이미 니더작센 주 총리 시절부터 독일의 넓은 복지 국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 그는 토니 블레어와 함께 제3의 길 스타일의 선언문을 작성했다이 선언은 런던에서보다 베를린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졌고 사민당 당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하지만 슈뢰더가 청신호를 켜긴 했지만안케 하셀과 크리스토프 실러가 <하르츠 4세의 몰락>(2010)에서 보여준 것처럼 아젠다 2010의 결정적인 추진력은 위기 수준의 실업에 대처하기 위해 애쓰는 지방 정부와 보험 및 노동 시장 기관에서 나왔다."

이때 올라프 숄츠가 슈뢰더의 신당 노선을 로봇처럼 반복해 숄츠-오매트로 유명해진 당 사무총장으로 이야기에 등장한다사민당 자체에 미친 영향은 충격적이었다.

"-녹색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반발해 독일 좌파는 다시 한번 분열했다. 2004~5년 시위로 사민당 당원들이 당원증을 일괄 반납하면서 라퐁텐은 재기의 기회를 감지했다. 2005년 슈뢰더가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 라퐁텐은 반하르츠 4세 동원의 선봉에 서서 사민당의 탈공산주의자들과 산탄총 결혼식을 준비했다그 결과 2007년 디 링케(Die Linke)가 탄생했다동부의 탄탄한 기반과 서부의 높은 동원력을 바탕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한 이 신생 정당은 다시 한번 연정 구도를 바꾸어 놓았다연방 차원에서 진보적인 정부는 이제 사민당녹색당기민당(FDP)의 3당 연정이 필요했다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2005년과 2013년 모두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하지만 의제 2010을 둘러싼 분열동독의 유산나토에 대한 기민당의 뿌리 깊은 적대감의 골이 너무 깊었다사민당과 기민당은 결코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다.

아젠다 2010 이후 독일 좌파의 분열은 기독민주당(CDU)의 권력 회복을 위한 문을 열었다기민당과 메르켈은 통일 이후 정치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표현하지만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메르켈 총리는 막강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선거 운동가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어젠다 2010'으로 인한 혼란과 분노가 절정에 달했던 2005그녀는 사민당의 지지율을 35.2퍼센트에서 34.2퍼센트로 겨우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그녀의 신자유주의 브랜드는 좌파의 슈뢰더만큼이나 기민당 유권자들의 불안을 자극했다. 2009년 단 한 번기민당과 중도 우파 연정을 구성할 수 있을 만큼 큰 득표율을 얻은 적이 있다메르켈 총리는 네 번의 정부 중 세 번의 정부를 사민당과의 대연정에 의존해 왔다사민당에 대한 영향은 매우 모호했다한편으로는 2009~2013년의 막간을 제외하면 사민당은 21년 동안 베를린에서 지속적으로 정부를 운영해 왔다다른 한편으로는 슈뢰더 정부에서 이미 드러난 정체성 상실이 더욱 뚜렷해졌다."

올라프 숄츠의 리더십은 사민당이 독특한 정치 세력으로서 역사적으로 약화된 전형적인 결과이다그리고 이것이 "아니오!"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이다.

숄츠가 자신의 당의 재앙적인 선거 성과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사민당이 내세울 만한 프로그램이나 독특하고 강력한 사회적 지지 기반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좌파특히 녹색당 쪽에서 도전을 받으면 숄츠의 대변인은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공과금 납부에 어려움을 겪는 평범한 독일인"을 일상적으로 떠올린다물론 이것은 사회민주당이 오랫동안 조직하고 동원해 온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 유권자층이다하지만 오늘날 사민당이 실제로 이러한 독일인을 어디까지 대변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주장의 한 가지 문제점은 2004년 독일의 불안정성과 불평등을 극적으로 증가시킨 하르츠 4세 변화를 실제로 추진한 것은 사민당의 슈뢰더-숄츠 계파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평범한 수준의 여론조사에서도 총리의 당이 어떻게 여전히 강경한 독일인을 대변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물론 사민당(빨간색), 녹색당(초록색), 기민당(노란색)으로 구성된 신호등 연정 내에서 사민당이 가장 비민주적인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것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독일인은 잘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보다 녹색당이나 사민당에 투표할 확률이 두 배나 높다그러나 사민당 역시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판단하는 독일인 사이에서 36%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지지도가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진 정당은 야당이다바겐크네히트 그룹과 AfD이다스스로를 어렵게 살고 있다고 판단하는 독일인 사이에서 AfD에 대한 지지는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일인보다 2.5배 더 높았다.

생활 수준이 아닌 사회적 지위에 따라 유권자를 분류해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AfD는 '노동자'로 분류되거나 스스로를 그렇게 분류하기로 선택한 독일인 그룹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이다또한 실업자들 사이에서도 AfD가 사민당을 2대 1로 앞선다사민당에 대한 지지는 공무원과 샐러리맨 사이에서 더 강하다사민당에 뚜렷한 사회적 지지 기반이 있다면 그것은 좌파 연금 수급자다하지만 연금 수급자도 숄츠의 핵심 유권자는 아니다. CDU는 이 그룹에서 사민당을 2대 1로 앞선다.

출처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선거 후 독일 노동조합 운동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유권자들이 예상보다 사회 계층을 고려해 AfD에 덜 투표하고 오히려 사민당에 더 많이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는 고무적인 데이터를 발표했다아래 그래프에서 실선 막대는 전체 유권자이고 뒤의 막대는 노조에 가입한 유권자이다노조에 가입한 독일인의 18.1%가 사민당에 투표한 반면일반 유권자의 13.9%가 사민당에 투표했다노조에 가입한 유권자의 18.5%는 AfD를 지지했다.

노동조합원들 사이에서 국가사회주의에 동조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정당이 사민당을 앞선다는 사실이 재앙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일요일의 결과를 보면 우파의 승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 사실 위안이 된다그러나 노조 조직률과 정치적 태도에 대한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결과는 그다지 안심할 수 없다.

각 정당이 발표한 선거 관련 데이터 중 가장 포괄적인 데이터 팩은 기독민주당(CDU)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에서 제공한 것이다출구조사뿐만 아니라 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대규모 여론조사를 종합하여 유권자에 대한 보다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사민당에게 더 걱정스러운 소식이 있다젊은이들 사이에서 사민당의 약세는 극적이다독일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AfD는 사민당보다 거의 3배 더 많은 표를 얻으며 큰 차이로 가장 인기 있는 정당이다그러나 놀랍게도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사민당이 AfD를 뒤쫓고 있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한 유권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보면 선거 전 설문조사는 정말 암울하다노동자 계층의 전체 AfD 지지율(33%)과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의 지지율(18.5%)을 비교하면 노조 가입이 AfD 지지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그러나 이는 두 그룹의 사람들이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노조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이는 위험한 가정이다선거 전 조사에서 노조에 가입한 사무직 유권자나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로 분류되는 노조 가입 유권자를 살펴보면노조 가입이 사민당에 대한 지지 증가(18.1% 대 12.9%)와 관련이 있지만우파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AfD를 지지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조 조직은 실제로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 증가와 26.1% 대 24.7%로 연관되어 있다따라서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의 AfD 지지도가 낮은 것은 노조가 현재 AfD에 투표하는 급여 및 공무원 조합원의 수가 훨씬 적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독일 사회와 정치적 선호도에서 진정한 반대는 "오래된노동 운동과 AfD가 아닌 것 같다진정한 대립은 AfD와 녹색당 사이에 있다.

선거를 앞두고 AfD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서 녹색당과 관련된 인물들이 종종 주도권을 잡았지만동부의 AfD 중심지에서는 사실상 존재감이 거의 없다.

이번 주 독일 노동조합 운동의 주요 인사 중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상상할 수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사민당은 표를 동원하지 않는다노동자를 대변한다는 특별한 주장도 없다. AfD에 대한 반대를 주도하지도 않는다어쨌든 정부의 의제가 녹색당에 의해 설정된다면네덜란드에서와 같이 녹색당과 합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숄츠와 그의 팀은 여전히 비평가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2024년에는 우려했던 것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다하지만 이는 매우 긴 확률에 대한 내기이며 적어도 2019년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 질문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다. 사민당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출처] Chartbook 293 "Nope!" or the political void at the heart of Europe's supposed safe haven - Germany after the European elections. (substack.com)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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