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미국의 헤게모니, 프로젝트 권력

헤게모니 노트 01

나는 최근, Verso의 나의 친구 그레이 앤더슨(Grey Anderson)의 도움과, 다롄, 베이징, 상하이 방문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21세기의 권력과 미국의 패권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이 글은 이 주제에 대한 시리즈 노트들 중 첫 번째다. 

첫 번째인 만큼, 이 글은 가장 기본으로, 권력에 대한 몇 가지 기본 사항을 명확히 하려 한다. 

나는 이를, 권력과 자유라는 주제로 바너비 레인(Barnaby Raine)과 나눈 지속적인 대화와, 베이징에서 'Imaginist(Crashed와 Deluge의 중국어판을 출판한)가 주최하고, 왕칭(Wang Qing)의 사회로 진행된 추이 지위안(Cui Zhiyuan)과의 토론을 통해 떠올렸다. 

출처: Chartbook, Adam Tooze 

왕칭은 국제 특파원이자 페미니즘, 유럽 및 글로벌 이슈에 초점을 두는 중국의 대표적인 인플루언서이자 논객 중 한 명이다. 그는 영향력 있는 팟캐스트의 공동 진행자이고, 최근 출시된 중국판 차트북 뉴스레터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추이 지위안(Cui Zhiyuan)은 칭화대학의 교수로, 중국 '신좌파(New left)'의 주요 멤버이자 실험적 거버넌스의 주창자이며, 때때로 찰스 사벨(Charles Sabel)의 협업자이고, 다작가이자, 로베르토 웅거(Roberto Mangabeira Unger)의  '정치(Politics)'의 주요 텍스트를 발췌한, ' Politics: The Central Texts'의 편집자이다. 

베이징에서의 대화를 앞두고, 추이 지위안과 나는 서로의 사고방식을 이어줄 다리를 찾고 있었고, 우리는 '실험으로서의 글로벌 파워'라는 아이디어에서 그 다리를 찾은 것 같다. 

내 쪽에서 발전해온 생각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권력의 억압적 개념과 생산적 개념 사이의 유명한 구분을 만들어 냈다. 푸코의 은유는 성적 규제 체제, 감옥, 학교, 병영, 공장을 근대적 주체성이 생산되는 현장으로 지목한다. 

푸코의 권력 개념은 생산 현장을 잉여 가치의 생성과 추출의 핵심 장소로 본 마르크스주의와 유익한 친밀감을 형성한다. 자본의 축적과, 새로운 유형의 역사적 주체, 노동자의 생산을 이해하는 열쇠는, 시장이 아니라 공장이었다. 이에 대해 바너비 레인에게 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2. 하지만 현대 세계를 바라볼 때, 상하이와 같은 현대 거대 도시의 풍경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볼 때, 당신은 무엇이 보이는가? 

당신은 문자 그대로도, 은유적 의미에서도 공장의 제품들, 대량 생산된 사람과 사물들을 본다. 당신은 정당과 국가가 합쳐진 정치 권력의 규율을 본다. 당신은 또한 다른 무언가를 본다. 이 두 가지 권력 개념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를. 

이 거대한 빌딩 숲, 강철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산들을 만든 것은 어떤 종류의 힘일까? 

출처: Chartbook, Adam Tooze 

무수히 많은 거리를 오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토록 거대한 인간 활동의 집중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과 자원의 거대한 흐름을 조직할까? 

나는 이것을 규율의 산물이나, 주관이나 욕망의 일상적인 생산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거대 도시, 우뚝 솟은 건물, 거대한 개발, 막대한 도로와 인프라, 그 공간에 거주하는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개인, 그 모든 것을 구성하는 국가 조직에서 당신은 다른 것을 본다. 당신은 은밀하고 일회적인 동원, 개입과 실험을 통해 물질적, 사회적 세계를 재편하는 일종의 권력이 발휘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삐그덕거리며 쌓여 있는 건물 하나하나가 바로 이러한 권력의 기념비다.

3. 공장 생산과 고층 건축의 차이, 또는 학교 교육과 평생에 걸친 무계획적 자기 형성의 과정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신병으로 규율있는 군대를 만드는 것과 실제로 그 군대를 전쟁에 사용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공장 생산에는 일상화되고 끝없이 반복되는 공정이 포함된다. 군대를 훈련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주입식 루틴의 문제다. 건물을 건설하는 것과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상당히 다른 과정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물론 둘 다 표준화된 구성 요소를 포함할 수 있지만, 각각 특정한 설계와 비전에 따라 조립되고 배치된다. 각각의 선택은 구분되고, 독특하며, 특별하다. 각각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클라우제비츠(Clausewitz)가, 1806년 나폴레옹이 프리드리히 이후 프로이센을 격파한 뒤 설교한 것처럼, 군대의 기계적 훈련과 전쟁의 역사적인 도박을 혼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패배할 운명에 처해 있다.

4. 찰스 마이어(Charles Maier)의 최근 저서를 따라, 이 세 번째 권력 방식에는 '프로젝트 파워(project-power)'가 적절한 라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로젝트는 역사적으로 구체적이고, 중요한 목표를 중심으로, 여러 자원을 의도적으로 동원하는 것으로, 그 성공과 실패에 중요한 것들이 달려 있다. 

위계와 불평등은 구조적 전제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충돌하고 경쟁하며 불평등한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권력과 불평등의 구조는 단순히 주어진 구조가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와 대항 프로젝트의 격동하는 혼전 속에서 반복되는 성공과 실패의 결과다. 

당신은 혁명적인 정당을 건설하고 당원들을 규율할 수 있다. 당신은 대규모 노동운동을 조직할 수도 있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의 적을 가늠하는 것만큼 당신의 추정상 친구들의 규모를 파악하고, 당신의 상대적인 힘을 측정한 후, 파업할 순간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1927년 상하이에서 중국 공산당이 얻은 쓰라린 교훈이다.

출처: Chartbook, Adam Tooze 

개인의 전기 수준에서는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물려받을 수 있지만, 극소수 초 엘리트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사회적 위계를 재생산하는 프로젝트는 축소할 수 없는 차원을 가지고 있다. 특권은 그 자체의 성과를 요구한다. 시험을 치러야 하고, 면접을 통과하고, 회의를 마스터하고, KPI(핵심성과지표)를 달성해야 한다. 

기본적인 경제 논리에 따르면 가난한 나라는 일어나길 기다리는 성장의 기회다. 막대한 이윤이 손짓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다.

5. 원칙적으로 우리는 규모와 영역에 관계없이 세 가지 형태의 권력(규율, 생산, 프로젝트)을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성애적 욕망의 생산,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의 데이트 규칙, 극적인 사랑의 맹세에 대한 논리를 구분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각각 다른 주체와 권력의 논리를 포함한다. 

출처: Chartbook, Adam Tooze 

커플의 로맨틱한 발코니 순간이 주는 드라마틱함과 권력 역학 관계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통계로 사라질 수 있다. 그런 다음 규율의 논리, 사회 구조 또는 문화적 비유에서 단지 한 순간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포섭의 효과일 뿐이다. 장소의 특수성이나 두 사람 사이의 실제 순간, 또는 두 사람의 전기에 대한 결과를 지우지는 못한다.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종류의 포섭은 더욱 약화된다. 

6. 프로젝트 권력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도시, 대형 타워, 댐, 터널 건설 등
  • 전쟁 개시 및/또는 군사 작전 수행
  • 혁명적 또는 반혁명적 정치의 계산
  • 공공 또는 민간의 대규모 경제 개발 프로그램
  • 국제적 연합 네트워크 구축

7. 자본주의 축적의 역사는 프로젝트의 역사다. 대도시의 마천루가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 권력과 헤게모니의 역사는 프로젝트 권력의 역사다. 물론 헤게모니의 행사에는 생산과 규율이 모두 포함되었다. 그것은 지정학적 조건에 의해 제약되고 형성된다. 그러나 진정 세계적 규모로 작동한 유일한 버전인 미국의 헤게모니는 프로젝트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거의 한 세기 동안 다국적 제국주의의 중심지로서 상하이의 성장을 이끈 대영제국도 마찬가지다. 존 다윈(John Darwin)이 그의 저서에서 "제국 프로젝트"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괜한 것이 아니다. 이후 게시물에서 논하겠지만, 대영제국과 20세기 미국의 헤게모니는 서로 다른 독창적인 프로젝트였다.

8. 이 시리즈 노트의 목적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프로젝트로 설명하는 것이다. 단일체로서도, 세계적 권력의 이전 형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후속편으로서도 아니라, 반복적으로 갱신되고 재구성되어야 하는 독창적이고 위태로운 혁신으로서 말이다. 

그것은 현재 스스로 파편화되고 지쳐있을지 모르지만, 역사적 순환의 준자연적 순서에 따라 멸종할 운명은 아니다. 그리고 미래에 어떤 세게적 권력 구조가 등장하든 과거와 닮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역사를 다음의 책들에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대격변(The Deluge)』, 『붕괴(Crashed)』, 『셧다운(Shutdown)』. 

LRB 강연에서 나는 일련의 권력 혁신과 관계맺는 미국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달러 시스템의 탄생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

9. 푸코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듯, 권력과 지식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있다. 서로 다른 종류의 권력은 서로 다른 종류의 지식을 구성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지식이 프로젝트 권력에 특화된 지식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프로젝트 권력은 19세기 초에 '인간'이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등장한 융합적 형태의 지식과, '인간'의 생산에 관련된 일련의 엄격한 규율보다 더 다양한 응용 분야를 가지고 있다. 

프로젝트는 공학, 개발 경제학, 군사 과학, 심리학, 정치 전술 및 전략의 작품이다. 굳이 일반화하자면 프로젝트 권력에 특화된 지식의 형태는 역사적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간 속에 위치한 신중한 개입, 차이를 만드는 개입으로서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역사 속에 위치한다. 

  • 인간관계나 부모 역할은 우리의 전기를 정의하는 프로젝트다. 

  • 정치적 참여는 우리를 집단적 역사와 의미 있게 연결한다. 그것은 헤겔(Hegel)이 매일 뉴스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은 것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다. 

  • 웅장한 건설 프로젝트와 군사 작전은 도시 진화의 역사, 건축 양식의 연대기, 군사적 노력의 연대기 등 역사 속에 필연적으로 자리한다. 

10. 프로젝트 권력과 역사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근대 서구의 역사성에 대한 감각은 근대 초기에 유럽 국가들의 자의식적인 프로젝트식 행동의 시작에 의해 형성되었다. 소설의 문학적 형식은 18세기와 19세기에 낭만적이든 그렇지 않든 근대적 자아의 모험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19세기 이후부터 통계적 시계열은 '경제'의 부침을 설명하는 탁월한 매체가 되었다.

11. 라투르(Latour) 등에 따르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현대의 과학 지식은 공장식 생산 방식으로 생산되지 않는다. 또한 '규율'로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이미지 모두 발견의 창의성, 독창성, 특이성을 적절히 포착하지 못한다. 

현대 과학 발전의 기본 구성 요소는 실험이다. 

실험은 결정적인 테스트를 위해 자원, 도구, 행위자를 조직화한다. 실험은 공장 생산처럼 재현 가능해야 하지만, 이는 거대한 건물을 안전하게 테스트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이 부차적인 고려 사항이다. 과학 지식의 전진에 대한 진화하는 이야기에 새겨진 것은 최초의 결정적인 실험, 더 정확하게는 그것을 보고한 문서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실험은 프로젝트의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적으로 볼 때 현대의 테크노사이언스는 규율화된 시스템으로 보일 수 있다. 통시적으로 볼 때 과학은 서로 연결된 지식 프로젝트의 축적에 의해 발전한다.

12. 이것은 우리를, 프로젝트가 다음의 것들의 세대에 공통적인 권력과 기관의 형태라는 어지러운 결론에 이르게 한다: 

  • 과학적 지식

  • 자본 축적

  • 국가 권력

  • 근대적 주체성 

13. 이를 통해 추가적인 일련의 교차 연결이 가능해진다.

현대 기술과학의 거대한 복합체는, 축적된 실험 결과와 연구 프로젝트가 제멋대로 뻗은, 울퉁불퉁한 지형을 이룬 지식의 거대 도시로 여겨질 수 있다. 

반대로 실험을 프로젝트로 생각할 수 있다면 국가 경제 개발 프로젝트나 군사 작전과 같은 대규모 권력 프로젝트도 실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 권력의 행사는 알려진 것과 가능한 것의 한계를 시험한다. 

나는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위기에서 등장한 헤게모니의 문제를 실험으로서의 강대국 정치의 전형적인 사례로 생각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후 포스팅에서 다룰 예정이다.

정의상 그러한 '벤처'의 결과는 미리 알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때때로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들은 성공이 확실하고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상상하고 심지어 발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종종 실패, 실망 또는 자기 기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나는 실험적 거버넌스에 대해 추이 지위안이 발전시킨 사고방식과 수렴한다. 또한 찰스 사벨과 데이비드 빅터(David Victor)의 '기후를 고치다(Fixing Climate)'에서 찾을 수 있는 (기후 정책 영역의) 다자주의에 대한 설명과도 그렇다. 

14. 모든 수준의 전력 프로젝트의 발전은 지식, 생산성, 통제의 진전이라는 진보적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인류의 생존, 경제적 발전, 권한 부여 측면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실재한다. 

그러나 모든 진전은 새로운 형태의 소외, 새로운 형태의 예속, 새로운 불확실성과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균형을 추적하고, 모니터링하고, 진단하는 일은 그 자체로 수많은 프로젝트, 즉 프로젝트에 관한 프로젝트를 낳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사회학 - 기든스(Giddens), 벡(Beck) 등 - 은 이를 '제2의 근대성', 즉 반성적 모드로서의 근대성이라고 불렀다. 흥미롭게도 벡은 글로벌 제2근대성에 대한 어떤 대화도 동아시아와 서구 사이의 대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5. 1970년대 이후, 그리고 최근 수십 년 동안 더욱 긴박하게, 제2 근대성의 경보 장치인 메타 프로젝트들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프로젝트 권력의 역사 창조력이 불변의 진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의심할 여지 없는 기계의 효율성에 의해 대체되는 '역사의 종말'에 접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시나리오에 직면하고 있다: 성장, 정치 권력, 자기 권한 부여 프로젝트의 정점과 상호 작용이 전례 없는 규모로 이루어지면서 불균형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와 인간 선택의 힘 사이의 당연한 관계가 전복되고 있다. 이는 거대하고 흥미진진하며 두렵고도 숭고한 광경이다.

16. 다중 위기는 내생적으로 발생하는 급진적 불확실성의 결과물을 일컫는 이름 중 하나다. 

우리의 상황은 기후 붕괴에 대해 마크 블라스(Mark Blas)가 생생하게 묘사했던 것을 일반화한 것이다: 

"사악한 볼록성을 가진 거대한 비선형 결과 생성기. 쉽게 말해 평균도 없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없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일방통행이다."

이번 주 상하이에서는, 그러한 전망의 힘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여름 더위로 '체감'온도가 섭씨 47도(화씨 116도)까지 치솟았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는 그보다 더 높았다. 2,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도시가 끓고 있었다. 

모든 계획, 모든 프로젝트는 더위를 견딜 수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조직되어야 했다. 어떤 것들은, 그 시간이 다른 프로젝트보다 더 길기도 했다. 

에어컨과 이를 작동시키는 전력 공급은 생존과 어떤 형태로든 생산성을 유지하는데에 필수적이다. 밖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이들은, 해가 지고 기온이 30도대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더위에 고통을 겪고 있다. 

17. 미지의 세계로의 이 모험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타당한 듯한 유일한 답은 더 많은 프로젝트다! 

이것이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와 미래, 녹색 에너지 전환, 중국의 부상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어야 하는 배경이다.

[출처] Chartbook 296: Project-power (Hegemony Notes #1)

[번역] 류민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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