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억만장자는 필요 없다

억만장자는 필요 없다

지난주 이코노미스트는 일론 머스크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초부유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전형적으로 허술한 글을 내놓았다. 이 논지는 대체로 동어반복에 가깝다. 그 글은 초부유층이 중요한 기술의 확산에 기여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주장에는 상당한 진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경제를 그런 방식으로 설계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중요한 기술을 통제함으로써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자본주의 해체하기

국가자본주의 해체하기

현재 맥락에서,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중국 등 일부 국가를 비판하는 일종의 낙인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들 국가의 "이질적이고 국가주의적-권위주의적" 자본주의가 서구의 "순수하고 진정한" 자본주의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분명히, 문화적·정치적 이유로 인해 중국은 경제 참여를 감추거나 완곡하게 표현하려는 필요성을 덜 느낀다. 그러나 동양의 "비열하고 권위주의적인 국가자본주의"와 서양에서 "보다 덕성 있는 자유민주적 형태의 자유시장"이 대립하고 있다는 잘못된 그림을 그려내는 "심각히 문제적인 유럽중심적 상상"의 재생산에 비판적으로 도전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좌파는 좋은 ‘위기’를 낭비했다

1970년대, 좌파는 좋은 ‘위기’를 낭비했다

분명 쿠퍼가 말한 대로 노동자들이 중앙은행과 전체 신용 시스템을 장악할 수 있다면 많은 좋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실현하는 것과 더 근본적인 사회주의 전환 사이에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다면 핵심적인 질문은 개혁을 위한 투쟁을 통해 노동 계급에 기반한 사회주의 운동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의 이해관계가 세계화 문제에서 어느 때보다 깊이 얽혀 있는 만큼, 이는 자본과의 급진적 대립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공정한 노동전환에 가려진 함정

공정한 노동전환에 가려진 함정

자본의 재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급적 대립을 없는 것처럼, 혹은 없어져야 할 무엇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야 말로 이 사라지지 않는 계급대립과 갈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들이 왜 항상 노사협력과 산업평화를 이야기하겠는가. 현실이 전쟁 같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경제매체가 동원돼 한 줌도 안 되는 노조를 악마화한다.

기본소득 184조원 is 뭔들

기본소득 184조원 is 뭔들

기본소득 재원 184조 원은 사회보장제도를 손보지 않고선 마련할 수 없는 걸까. <참세상>은 진보진영, 자유주의 진영의 기본소득 재정 모형을 수집해 기존 사회보장제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해봤다. 동시에 기본소득 재원 184조 원으로 사회보장 수준을 얼마만큼 끌어올릴 수 있을지를 분석했다.

위험사회에서 위기사회로, 국가란 무엇인가?

위험사회에서 위기사회로, 국가란 무엇인가?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일까? 자본주의 위기가 확대하면서 개인과 사회, 국가의 위기가 구조화된 현재, <워커스>는 이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5호]국가의 폭력은 정당한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5호]국가의 폭력은 정당한가?

지난 20세기 100년의 역사에서 한국인은 ‘국가주의’ 코드에 강력하게 지배당해왔다. 20세기 전반기에 일제 식민지 체제를 경험한 것과 관련이 있으리라. 그리하여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다짐하도록 강요받았고, ‘나라 잃은 설움’에 대하여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반공과 애국은 항상 짝이 되어 우리 뇌리에 각인이 되었다. 남자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동원되어 군대에서 전쟁 기술을 익히고 온 것을 자랑스레 여겼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야만적 법률에 의하여 개인의 생명과 인권이 무참하게 유린당하는 일쯤은 ‘국익’이라는 말 한마디로 덮어버렸다.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입에 올리면 국가를 위협하는 ‘빨갱이’로 낙인찍으면 그만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맹목적인 국가주의는 이어진다. 한국인은 세계 다국적 자본의 홍보이벤트장인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열리면 시청 앞 광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응원하는 것을 숭고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국가주의자들은 거리에서 죄 없는 이웃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방패 모서리에 찍혀 피를 흘려도 그저 냉랭한 눈길을 보낼 뿐이다.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 그런 동안에도 국가의 폭력은 이어진다. 급기야는 개발이익에 눈먼 건설투기자본의 횡포에 시난고난 힘없는 저항을 하던 용산

[인권오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국적자

[인권오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국적자

좁아진 세계와 타국에서의 취업, 국제결혼 등의 증가로 이중국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무국적’의 문제는 주목받지 못하는 인권문제이다.

[맹세야, 경례야 안녕∼] 차라리 그까짓 국가를 빌려 버릴까 하는 충동

[맹세야, 경례야 안녕∼] 차라리 그까짓 국가를 빌려 버릴까 하는 충동

내게 ‘국기에 대한 맹세’가 그런 일이라고 할까. 여기가 자구 또 자도 해가 솟지 않고 늘 밤인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지. 정말이지 그 누군가에 묻고 싶어.

[현장에서 미래를] [123] NAFTA와 미국노동자의 삶

[현장에서 미래를] [123] NAFTA와 미국노동자의 삶

NAFTA와 미국 노동자의 삶 -미국의 노동자는 무엇을 얻었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123호 김종립 요약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되면서 NAFTA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멕시코에 대한 많은 분석이 나오지만 정작 미국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은 NAFTA를 추진하는 데 있어 고용 부문의 손실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따라서 미 정부는 일자리 보호에 대한 약속과 대책들을 내놓았고 결국 1994년 11월에 체결되었다. 하지만 그 우려는 현실이 되어 많은 공장이 멕시코로 이전하였고 제조업에서 많은 실업이 발생하였다. 거의 모든 주에서 주요 제조업의 일자리가 감소하였다. 미 호황기에는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어 그 감소폭을 메울 수 있었지만 경기침체기가 오자 급격히 실업이 증가하였다. 고임금 고숙련의 일자리가 저임금 저숙련의 일자리로 바뀌었고 노동 조건도 급격히 악화되었다. 불법이민의 증가로 고용은 더 불안정해졌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미국의 사례로 보아 FTA는 국가적인 대립이 아닌 계급적 대립임을 알 수 있다. 목차 1. 서론 2. NAFTA 체결 과정과 내용 1) NAFTA 추진 배경 2) NAFTA의 주요 내용 3. NAFTA가 미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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