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복

반전단체들, 반전주간 선포 및 국제전범재판 참가

반전단체들, 반전주간 선포 및 국제전범재판 참가

“김선일 씨의 죽음은 노무현정부의 이라크 파병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정부가 말하는 국익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점령은 계속되어야 하는지, 파병부대는 언제 철수할 것인지 묻고 있다”

단식평화순례단, 기차길 옆 작은 학교 아이들 만난 날

단식평화순례단, 기차길 옆 작은 학교 아이들 만난 날

김재복 수사님 단식 55일째, 동화작가 박기범님 단식 41일째, 두 분 단식자와 평화유랑단 등 단식평화순례단이 지난 18일 인천 만석동에 위치한 자그만 공부방, 기차길 옆 작은 학교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준비한 오밀조밀 귀여운 프로그램이 공부방 안에서 진행되었고, 바깥에 나가서는 길놀이를 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평화꽃과 떡을 나누어 드리기도 했다. 도로 한켠에서 벌인 즉흥 공연에서는, 어느 새 모여든 동네 주민들에게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전범민중재판의 의의를 알리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이 엄마 가슴을 시커멓게 태우게 한

이 엄마 가슴을 시커멓게 태우게 한

자꾸만 먹는 것 생각 (2004년 9월 14일) 여수에서 두 밤을 자고 공주로 떠나는 길, 아쉽긴 하지만 김진영 선생님을 비롯한 몇 분 선생님들은 20일에 서울에서 있을 전범 민중재판 발기인 총회에 꼭 올라오시겠다고 약속을 했다. 순례 기간 들은 말 가운데 무엇보다 가장 힘이 된 말. 여수에서 공주, 그 길 또한 만만치 않다. 일찍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아침을 서둘러 단원들이 묵고 있는 쪽으로 갔다. 단원들은 이틀을 머무는 동안 계속 여수의 순례 프로그램을 준비한 모임의 한 분이 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들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서둘렀는지 수사님과 내가 짐을 챙겨 그 식당으로 갔을 때 단원들은 아직 아침 식사를 하기 전이었다. 상에 둘러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밥을 들고 오는 건 식당 부엌이 아니라 바깥으로 난 문이었다. 동화읽는 어른 모임 선생님 한 분이 밥솥에 반찬 보따리를 들고 들어왔다. 아아, 아침은 이렇게 집에서 지어서 가지고 왔구나. 신부님이 묵은 김치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지난겨울에 묻은 독에서 김치를 퍼왔다고 했다. 일부러 상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데, 그런 소리만으로도 입에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또다시 어제오늘 죽어간 이들 앞에서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또다시 어제오늘 죽어간 이들 앞에서

전쟁 안하고 얘기로 하면 안 돼요? 오전에는 수사님과 울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만났다. 수사님은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어 사진을 찍느라 교실까지 가는 길이 더디고 더뎠다. 수사님은 이라크에 함께 있을 때도 언제나 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특히 아이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했다. 다만 그 때하고 지금 바뀐 게 있다면 그 때는 렌즈가 두꺼운 필름 사진기였는데 지금은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뿐이다. 그런 수사님이 초등학교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바빴겠는가? 복도마다, 계단마다 아이들이 만들고 그린 것들로 전시해 놓은 게 가득했는데 수사님은 그것들이 너무 예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몇 걸음 움직이는 게 더디다. 2층, 3층 계단으로 올라가면서는 더했다. 쉬는 시간이라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계단 쪽 복도 끝에 서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말뚝박기를 하는 아이들, 복도마다 발 딛을 틈 없이 셋씩 넷씩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꼭대기 층 5학년 4반 교실까지 가는 길은 유난히 멀었다. 교실에는 책상을 모두 뒤로 미루고 바닥에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 수가 좀 많다 싶어 보니까 일다 님네 반인 5학년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평화의 바람, 철군의 바람!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평화의 바람, 철군의 바람!

문정현 할아버지와 어린이들 맑은 토요일 아침. 오늘은 모두 부구에서 일정이 시작한다. 울진읍에서 자동차로 이십 분쯤 올라가는 곳. 오전 일찍부터 부구 중학교에서 김재복 수사님과 햇살님네 반 학급 아이들과 만남, 그리고 부구 초등학교에서 문정현 신부님과 어린이들의 만남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모두 같은 시간에 하는 거여서 함께 가는 사람들도 두 패로 나누어 가야 했다. 나는 문신부님과 함께 초등학교 교실로.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줄을 잘 맞추어 앉아 있다. 아마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귀한 손님이 오니까 떠들지 말고 말씀 잘 들으라 일러 놓았나 보다 싶었다. 신부님은 그 동안 억울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 빼앗긴 사람들을 위한 일들로 살아왔다며 이야기를 시작한 뒤 군산의 미군 비행장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서 미선이, 효순이 이야기까지, 그리고 도룡뇽과 지율스님, 천성산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새만금 갯벌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것들을 엮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모두 작고 약한 것에 대한 이야기였고, 결국은 생명과 자연, 평화로 이어지는 얘기였다. 그리고 나서 신부님은 이라크 전쟁을, 우리 나라 군대의 파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제만 놓고 보면 하나 같이 아주

“수천 수만의 희망을 안고 다시 청와대로 올 것”

“수천 수만의 희망을 안고 다시 청와대로 올 것”

지난 7월 26일 단식기도를 시작해 9월 3일로 단식 40일을 맞은 김재복 수사가 단식을 계속하면서 전국을 도는 단식평화순례를 한다고 밝히고 더욱 강도높은 투쟁에 나선다. 단식평화순례는 울진에서 단식 26일을 맞고 있는 동화작가 박기범 씨와 함께 진행된다. 단식평화순례는 울진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아 다시 서울 청와대 앞으로 온다는 계획이다. 김재복 수사는 3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노무현 정부가 도둑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우리국민을 전범 국가의 국민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면서 ” 비생명적이며 반평화적인 추가파병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어 노무현 정부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재복 수사는 파병철회 투쟁을 통해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다고 전했다. 김재복 수사는 “단식 41일째의 첫 걸음은 모든 생명과 평화를 위하여, 두 번째 걸음은 한국군의 완전한 철군과 이라크 평화를 위하여, 세 번째 걸음은 단식평화 순례길에서 만나게 될 모든 평화의 고리들을 위하여 내딛을 것이며 수천 수만의 희망을 안고 다시 이곳 청와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히고 “생명평화의 길에 여러분을 초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단식평화 순례에는 평화유랑단, 천주교 제단체, 평화를 바라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이 순례에 함께 한다. 김재복

“11월까지 철군문제를 잊고 지낼 수 있는가?”

“11월까지 철군문제를 잊고 지낼 수 있는가?”

지난 8월3일 자이툰 부대 선발대가 떠나자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국민행동) 대표단은 단식을 풀고 이후 투쟁을 준비하자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행동의 방침은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다며 36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천주교 수사가 있다. 지율스님 옆에서 알려지지 않게 단식을 하다 지율스님이 떠난 자리에 계속 남아 단식 36일째(8월 30일 월요일 현재)를 맞고 있는 김재복 수사는 외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본진 출국 하루전인 지난 8월 27일 김재복 수사를 만났다. “파병이 강행되자 같이 단식하던 사람들은 단식을 접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투쟁 수위를 더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일날 단식농성을 청와대로 옮겼습니다.” 김재복 수사는 국민행동에서 다음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투쟁을 멈추는 것이 납득이 안 간다고 했다. 이미 이라크를 두 번이나 다녀와 이라크의 참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눈에는 이라크 아이들의 순수한 눈동자가 선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의 36일을 넘는 단식기도는 파병군을 보낸 참회의 의미도 크다. 참회하고 있기에 더욱 이 투쟁을 접을 수 없다. “사람들은 이 투쟁이 이미 물 건너갔다고 합니다. 11월에 총력집중을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