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나 중국 등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자신문에 꽁트를 연재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참 대단한 시절이었다. 안 그런가?
꽁트 하나에 꽂힌 나는 낯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열정적으로 꽁트에 대해 설명했다. 덕분에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편집자들이 헤어질 때는 악수를 청하며 환하게 웃었다.
1991년 2월, 그해 겨울 마지막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동숭동 ‘학림’에서였다. 노동문학의 길을 걷는 문우들에게 제안했다. 전국노동자신문(이후 약칭 ‘전노신’)에 꽁트를 연재하자고.
이미 인생의 한고비가 꺾인 마흔 중반의 나이, 엇비슷한 또래의 기사들은 살아가는 형편 또한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어찌보면 네 명의 기사들 중에 유일하게 정상적인 결혼을 해서 마누라도 있고 아들과 딸도 있는 내가 아주 특별한 별종이었다.
“꿀이 없고... 그냥 설탕이야. 설탕이 그대로 녹지 않고 씹힌다니까. 이거 봐, 호떡이 아직 익지도 않았잖아?” 남편이 조금 전에 미용실로 배달해준 호떡이 형편없는 불량품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었다.
어젯밤 밤새 술을 먹고 - 그런 일을 흔히 외박이라고 하지.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라는 진리를 쓰린 속으로 몸소 체득하고 돌아온 날. 에라 모르겄다! 오전에 차에서 뻐드러져 한 시간쯤 잤다. 푸드득, 병든 닭만큼 정신을 차리고 겨우 오후 일을 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식당 밖 공터에 나와 담배 한대를 빨아 당기며 어둑지근한 하늘을 보면 왠지 내 자신이 무참해지고 한없이 허탈하고 쓸쓸하다.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에 뿌리 내린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더 가벼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더 날카로워지면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노동자 문학을 시작해야만 한다.
나는 혁명을 노래해야 할 시인이었지만 / 도둑처럼 다가올 새벽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 빛살로 날아오르는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하고 / 산길을 서성이며 젊은 날을 보냈다
노동문학을 이끌었던 진보적 창작자들은 이미 오래전 창작활동을 놓거나 축소하였고, 개별적으로도 노동운동 등 진보운동과의 관계의 선들이 단절되어 있는 상태다. 아예 창작 내용의 중심을 옮긴 작가들도 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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