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포조선

2010년, 미포투쟁 1주년

2010년, 미포투쟁 1주년

4개월간의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투쟁과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정규직 복직 그리고 활동가의 투신과 굴뚝 고공농성, 구속, 테러사태를 낳았던 미포투쟁이 곧 1주년이 된다.

자승자박이 될 오랏줄을 목에 걸려 하는가

자승자박이 될 오랏줄을 목에 걸려 하는가

살인적인 테러를 저지르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그 기업의 실질적 지배자는 우리사회에서 최고 권력을 가진 집권여당의 대표이며 대통령까지 출마했던 사람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다 갈라 놓잖아요”

“더불어 사는 삶을 다 갈라 놓잖아요”

원망스러운 것은 김석진 의장을 외면하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아니다. 공장안의 노동자와 공장 밖의 노동자가 나누어졌다 해도 결코 그 누구도 서로의 적들이 아니었다는 걸 쌍용차의 노동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몽준 의원 언제까지 미포사태 외면할건가

정몽준 의원 언제까지 미포사태 외면할건가

지난 1997년 남편이 해고되어 2005년 복직될 때까지 미포조선 정문에서 남편과 복직투쟁을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2가지였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 새순이 돋는구나

꽃이 진 자리에 새순이 돋는구나

한달간의 굴뚝 투쟁 끝에 이영도,김순진 두 사람이 100미터 굴뚝 아래로 내려 오던 날이었다.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가 낳은 소중한 합의서가 이토록 쉽게 휴지조각이 되리라곤 생각하질 못했다.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4호][미포투쟁 평가] 승리했으나 실패한 투쟁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4호][미포투쟁 평가] 승리했으나 실패한 투쟁

1. 조합원을 투쟁주체화하는데 실패했다 지난 1월23일, 현대미포조선 사측과 노조 그리고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극적인 합의를 이루면서 이른바 미포투쟁이 끝났다. 합의서와 미공개된 이면합의서만 놓고 본다면 자본가계급은 백기투항한 셈이었다. 이는 현장활동가들이 끝까지 비타협적으로 투쟁했기 때문이며, 또한 사회적으로 미포투쟁을 지지하는 여론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포투쟁은 조합원을 투쟁주체화 하는데 철저하게 실패한 투쟁이었다. 이는 단지 이번 투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그동안 조합원들을 투쟁주체화 시키는데 실패해온 것이 이번 투쟁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2.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적인 의식보다 못한 민주노조 조합원?! 이번 미포투쟁에서 대외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 현대미포조선소 담장을 사이에 둔 안과 밖의 차이이다. 미포투쟁은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에 ‘정규직’ 현장활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연대한 투쟁이었기 때문에, 대의명분상 사측은 본질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시급히 해결해야할 사회적 문제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포투쟁은 진보적 인터넷 언론은 물론, 중앙 일간지에도 소개되며 방송까지 탔다. 대신 투쟁 내내 미포 사측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반면에 조합원들은 어떠했는가? 오히려 정반대였다. 일부 조합원들은 고공농성에

미포투쟁, 합의서만 있고 현장탄압은 계속

미포투쟁, 합의서만 있고 현장탄압은 계속

미포투쟁이 지난 1월23일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와 현대미포조선, 현대중공업이 합의해 마무리 된지 2개월이 지났지만 합의서대로 이행되지 않아 미포투쟁 지원대책위원회와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서 싸우는 울산 공동투쟁본부가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서울과 울산이 함께 투쟁할 때, 이 투쟁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서울과 울산이 함께 투쟁할 때, 이 투쟁 승리할 수 있습니다”

1월 17일, 영남노동자대회 본 대회와 거리 행진이 끝난 후에 현대중공업 본관 앞에서 마무리 집회가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발언자인 현대미포조선 현장투쟁위원회 김석진 의장이 방송차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약속 (2)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약속 (2)

1월 17일 오후, 영남노동자대회에 참석했던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에 올라간 두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비상식량을 올려 보내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굴뚝 아래에 다시 모였다. 오늘로써 이영도 김순진 동지의 굴뚝농성은 25일 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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