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규

박봉규열사 비대위, “노무현 당선자 문제 해결 약속 지켜야”

박봉규열사 비대위, “노무현 당선자 문제 해결 약속 지켜야”

전노련, "올봄 노점상 싹쓸이 단속 대대적으로 진행될 듯"

[주간노동자의 힘] 박봉규 열사 투쟁의 의미와 빈민투쟁의 과제

[주간노동자의 힘] 박봉규 열사 투쟁의 의미와 빈민투쟁의 과제

최인기(전국노점상연합 사무처장) 아스팔트 위에서 소리 없이 쓰러져간 이들 올해는 예상했던 바이지만 노점상 단속으로 지긋지긋하게 시달린 해로 기억이 될 것 같다.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지역 노점상들 4천3백여 개를 단속하겠다고 시에서 발표를 하자 우리는 곧바로 비상대응 체계로 들어가서 7월까지 쉴 새 없이 싸웠다. 그리고 한숨 돌리겠다 싶자 8월 말경 청계천 3-4가에서 박봉규 열사가 분신, 지금까지 대대적인 집회를 개최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장례행렬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1년 2월22일. 겨울 강남에서 벌어진 두 명의 노점상 김봉호(남, 50세), 박응식(남, 40세)씨의 분신 사건은 우리를 경악케 하였던 사건이었다. 분신으로 인하여 생명의 위협이 있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곧장 경찰서로 연행하여 구속을 하겠다는 등 폭행을 하며 감금하였던 것이다. 그 둘은 그 후 ‘특수공무집행 방해’로 구속되어 박응식씨는 현재까지 수형 생활을 하고 있으며 김봉호씨는 구치소에 수감중 화상 등의 후유증으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올 2002년 들어 월드컵경기를 앞둔 2월21일 대전시 대덕구청의 노점단속으로 인하여 가스가 새면서 노점상 연규환(남, 41세), 송전례(여, 40세)씨에게 불이 붙어 얼굴과 손, 팔 등에 3도 화상을 입는

용역깡패 동원해 빈민터전 빼앗는 것이 바로 고문치사 살인행위

용역깡패 동원해 빈민터전 빼앗는 것이 바로 고문치사 살인행위

7일 1시 '열사정신 계승, 신자유주의 분쇄, 민중생존권 쟁취 전국빈민대회' 열려

여의도의 보수반동아, 들어라! – 박봉규열사 분신 책임자 처벌, 노점탄압 분쇄 및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8차

여의도의 보수반동아, 들어라! – 박봉규열사 분신 책임자 처벌, 노점탄압 분쇄 및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8차

노점상 박봉규씨가 노점탄압에 항거하여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인지 벌써 두달이 다 돼간다. 10월 11일, 동대문에서 열린 8차 투쟁대회를 마치고 집회대오가 행진을 하는 동안 일부는 차를 타고 국회 앞에 몰려가 민중의 노래를 하늘에 울렸다. 한 도시빈민의 처절한 외침을 들은척도 안하는 지배계급에게 투쟁하는 민중들은 이렇게 외친다. 열사의 염원따라 끝까지 싸우겠다고… 끝내 승리하겠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경찰- 분뇨를 탈취해 가다.

이해할 수 없는 경찰- 분뇨를 탈취해 가다.

9월 12일, 종묘공원에서 박봉규열사 책임자 처벌 3차 투쟁대회를 마치고 집회대오가 행진을 시작하던 무렵, 경찰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신고한 이동로를 따라 평화롭게 행진하던 대오를 무리하게 막아서더니 방송차를 둘러싸고 억지로 문을 열어 실려있던 상자를 탈취해 간 것이다. 그 와중에 차량을 운전하던 참가자의 이빨이 부러지는 등 수명이 다쳤고 연행을 당했다. 그 상자 안에는 중구청 항의에 사용할 분뇨가 들어있었다. 경찰은 그걸 어디에 쓰려고 가져갔을까? 경찰서에도 X은 넘쳐 흐를텐데 말이다.

효도 관광한번 못 보내드렸는데… 우리 아버지 살려내라

효도 관광한번 못 보내드렸는데… 우리 아버지 살려내라

박봉규씨의 죽음은 노점상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9월10일 중구청 앞에서 노점상들은 중구청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시경 1기동대원들과 결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날 악명높은 서울시경 1기동대는 노점상들을 방패로 밀어 내는 정도의 대응뿐 평소 보여주었던 방패끝으로 찍는 과격진압은 하지 않았다. 노점상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노점상들은 중구청장의 사과 한번이라도 듣자며 진입을 시도했다. 방봉규씨의 막내딸 박희정씨는 중구청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있었고 장녀인 박진희씨는 “효도관광 한번 못해드렸습니다, 너무 가슴아픕니다, 우리 아버지 도로 살려내세요”라고 외치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중구청의 문은 2중 3중으로 방패의 막을 이루었다. 어떤 노점 아주머니는 1기동대의 방패 밑으로도 들어가 보았지만 이내 막혀버렸다. 그리고 길바닦에 누워 “우리를 짓밟으라”는 노점상들. 그 모습은 익히 자신들의 물건들을 싣고 가는 단속차량앞을 막아선 모습이었다. 생존하기위한 몸부림에 당해야 했던 폭력과 수모를 이제는 투쟁으로 갚아 주겠다는 노점상들의 의지가 폭발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 도로 살려내세요”

“우리 아버지 도로 살려내세요”

박봉규열사 비대위, "김대중 정권 타도 투쟁 벌일 것"

“사람목숨보다 아름다운 도시는 있을 수 없다”

“사람목숨보다 아름다운 도시는 있을 수 없다”

9일, 박봉규 열사 비대위 "분신사태 책임자 처벌, 이명박 시장, 김동일 중구청장 공개 사과" 요구 기자회견 열어

[주간노동자의 힘] 아스팔트를 달구는 노점상들의 한

[주간노동자의 힘] 아스팔트를 달구는 노점상들의 한

최인기(박봉규 분신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노점 단속 분쇄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지난 8월29일 동대문운동장 역 앞에는 31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2천여 명의 노점상들이 모여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불태워 단속의 부당함을 보여준 박봉규 동지의 한을 모아 힘차게 중구청까지 항의 투쟁을 전개했다.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매연과 아스팔트의 열기를 받으며 공구를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는 청계천 3가. 이곳의 노점상들은 대부분 하루에 3-4만원 벌이로 한달 70~80여 만원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1남 4녀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박봉규씨만 해도 월드컵 경기 이후 서울시 노점 단속이 강화되면서 8월 한 달 동안 3번이나 단속에 걸렸다. 한 번 단속에 걸리면 벌금과 빼앗긴 노점 좌판, 물건들을 되찾아 오기 위해 드는 비용은 최소 10만원. 그렇게 3번 단속에 걸리고 나면 한달 평균 버는 수입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벌금 등에 지출하게 된다. 지긋 지긋한 노점 단속에 맞서 박봉규씨는 단속 차량 밑으로 들어가 항의를 하자 중구청 단속 용역반들은 ‘저새끼 끌어내’ ‘노점상은 불법인데 뭐가 잘났다고 항의냐’며 그를 내몰았다고 한다. ‘서울노점상연합’ 최정운 사무국장은 “화상을 입었어도 한동안은

노점상 박봉규씨 6일 오전 운명

노점상 박봉규씨 6일 오전 운명

고 박봉규씨, "내몫까지 싸워달라" 유언으로 남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