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

[소통/연대/변혁 – 사회운동포럼] 급소를 드러내며 만났다

[소통/연대/변혁 – 사회운동포럼] 급소를 드러내며 만났다

이 토론에서 얼마나 솔직한 얘기들이 오고가느냐에 따라 이후 모든 열쇠말 토론의 분위기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비중이다. 3시간 넘게 토론장을 자리를 지킨 300여명의 의심장한 표정과 낮게 깔린 토론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시작은 좋다.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얼굴…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얼굴…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그래서 우리 모두 행복해 지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새롭지도 행복하지 않고 즐겁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말을 듣고 ‘그래, 맞아. 저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겠냐구요. 오히려 ‘그래, 너희들의 말은 맞아. 하지만 별로 행복해 보이지도 즐거워 보이지도 않아’라고 생각하지 않겠냐구요.

[현장에서 미래를] [122] 최후의 아방가르드,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현장에서 미래를] [122] 최후의 아방가르드,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우리의 일상생활은 모든 현존하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질서가 녹아있는 장소이기에 전복의 장소로서 복권되어야 한다. 비록 스펙터클의 강고함만을 보여준 채 상황주의자들은 해체되었지만,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의 물음에 아방가르드와 상황주의자들은 훌륭한 성과를 남겨놓았다.

[현장에서 미래를] [118] 역사를 떠미는 진보의 폭풍, 그리고 바이러스적 침투전

[현장에서 미래를] [118] 역사를 떠미는 진보의 폭풍, 그리고 바이러스적 침투전

진보를 그 동력으로 하는 역사의 뒷걸음질로-미래가기는 이론과 실천으로서 ‘좌파’ 진영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최근의 이런 뒷걸음질은 탈식민의 탈을 쓴 보다 강화된 식민성과, 여성,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내부적) 억압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변혁의 ‘주체’를 자임했던 변혁세력은 역설적으로 자기변혁의 ‘대상’이 되었다.) 맑스(주의)한다는 이들의 연구는 아직도 상당 부분이 맑스, 그람시, 알튀세르 (최근에는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등의 작업에 주석을 다는 정도거나, 신자유주의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한국에서 전개되는 양상을 분석하는 글들 역시 맑스(주의) 문헌들에 대한 급진적 역사화에 기초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지금 여기를 분석하고자 온고지신, 법고창신하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이런 류의 ‘다시읽기’는 서구중심적 패러다임들에 대한 급진적 역사화 없이는 ‘모셔읽기’로 변질되기 쉽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미래를] [116호]’개혁’과 ‘진보’를 넘어 ‘변혁’과 ‘해방’의 정치를! (1)

[현장에서 미래를] [116호]’개혁’과 ‘진보’를 넘어 ‘변혁’과 ‘해방’의 정치를! (1)

“우리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그 시대의 미래였다.” 이 자신 있는 카피는 우리 사회의 변혁을 선도하려는 계급적⋅변혁적 좌파의 카피가 아니다. 모 자동차의 광고 카피다. 이 카피는 IMF 외환위기 이후 불과 10여년도 채 안 되는 동안, 위기의 주범이자 전국민적인 지탄의 대상에서, 이제는 소위 ‘차세대 성장 동력’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책임져 나갈 유일한(?) 희망처럼 등장하고 있는 국내외 독점자본의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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