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에 저항하라!

[세계화에 저항하라!] 9. 17 ~ 19 베이루트 국제 반전 반세계화 전략회의 리포트

[세계화에 저항하라!] 9. 17 ~ 19 베이루트 국제 반전 반세계화 전략회의 리포트

세계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신자유주의 무장한 세계화에 맞서도록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세계화에 저항하라!] [기고]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지속된다

[세계화에 저항하라!] [기고]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지속된다

미국 스스로 이런 전략으로부터 물러설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전쟁은 더욱 장기화하고, 그 정치적ㆍ경제적 비용을 분담시키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에 저항하라!] [기고]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세계화에 저항하라!] [기고]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 지속적인 투쟁에 대하여

전쟁과 빈곤으로 수억의 민중들이 살해당하고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곧 도래할 '최종적 위기'의 시기, 즉 미국경제의 '좋은 시절'이 끝난 이후에 도래할 시기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운동일 수밖에 없는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대한 반대운동에 박차를 가할 시점이다.

[세계화에 저항하라!] [좌담下] 한국 반전운동,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세계화에 저항하라!] [좌담下] 한국 반전운동,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원영수 : 이번 한국 반전운동의 핵심은 노무현정권 퇴진 운동이었다. 파병반대 투쟁은 방어적, 소극적으로 진행되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불법 점령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되었고, 스페인 철군 등 국제적 반전 여론들이 높아지면서 총체적 위기로 돌입되는 시점에 손길을 내밀었을 때 잡아준 사람이 노무현과 고이즈미였다. 국제 정세에서 보면 가장 반동적인 세력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반전운동이 예각화되지 않고 있지만, 한국 운동에 대해 너희들 뭐하냐고 하면 면목이 없다. 크게 보면 한국에서 반전운동이 대중적인 운동으로 전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반전운동 열심히 해온 것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타격을 명확히 할 시점에 실기했던 점이 문제였다는 점이다. 김선일 씨 죽음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다. 김선일 씨를 그저 ‘무고한 시민’으로 볼 수만은 없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지만, 이라크의 입장에서 보면 제국주의 점령군 시스템의 한 부분이었다. 테러 살인에 정당성을 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명료하지 못한 정치적 태도들이 발목을 잡음으로써 반전 파병반대의 압도적 다수의 여론을 물리력으로 전화시키기 못했다. 노조운동의 경우 노조 간부들은 다른 NGO들과 다를 바 없이 립서비스 수준으로 일관했다. 특히 민주노총의 우파 지도부 출범

[세계화에 저항하라!] [좌담上] 세계 반전운동, 반세계화운동 만나 급진화

[세계화에 저항하라!] [좌담上] 세계 반전운동, 반세계화운동 만나 급진화

‘세계화에 저항하라’ 두 번째, ‘미 제국주의와 반제, 반전 운동<2>’는 두 반전활동가의 좌담으로 꾸몄다. 평소 반전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는 원영수 노동자의힘 기관지위원장과 최일붕 다함께 운영위원을 초청, 9월 14일 미디어참세상 사무실에서 약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했다. 국제 반전운동과 한국 반전운동으로 크게 나누었으며, 세계 지역별 반전운동의 역사와 경험, 최근 세계 반전운동과 한국 반전운동의 상태와 이후 과제 및 전망에 대해 이야기나누었다. 좌담은 각론 곳곳에서 쟁점이 형성되는 등 긴장감있게 진행되었다. 최일붕 : 1차대전까지 반전운동 활발했으나 스탈린주의 때문에 반전운동과 이후 냉전 초기까지는 강력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반전운동의 큰 흐름으로는 단연코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이 핵심이다. 베트남 반전운동은 승리했다. 미국은 베트남 증후군으로 두려움을 갖고 있다가 80년대 그레나다, 89년 파나마, 91년 걸프전쟁을 벌이면서 조금씩 베트남 증후군을 극복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은 처음부터 강력하게 일어났다. 원영수 :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스탈린주의로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2차대전 때에도 작은 규모의 반전운동들이 있었고 50년대 냉전체제 하의 반핵평화운동 역시 넓은 의미의 반전운동이었다. 후르시초프 등장 이후

[세계화에 저항하라!] “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세계화에 저항하라!] “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반세계화운동의 도화선, 씨애틀 전투 1999년 씨애틀 전투가 반세계화 운동의 도화선이었다는 데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은 없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어 새로운 무역협상을 출범시키려 했던 WTO 각료회의가 5만의 반세계화 시위대에 가로막혀 개막식도 치르지 못하고 무산된 사건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전념하다시피 했던 한국 노동운동에 있어 씨애틀 전투 소식은 다소 먼 곳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다. 시애틀전투는 미국노총 AFL-CIO의 대규모 동원으로 70년대 베트남 반전투쟁 이후 최대의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90년대 후반 MAI(다자간투자협정) 반대투쟁, 실업과 사회적 배제에 반대하는 유로마치, 유럽차원의 EU-G8 반대투쟁 등 지역별, 국가별 반세계화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이 투쟁들 모두는 시애틀 전투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주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애틀 전투에 대한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의 말이다. “첫째, 국제기구와 협정에 맞선 직접행동과 국제적 조정과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국제적으로 각인시켰고,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에 맞선 20여 년 간의 수세적인 국면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셋째, 전술적인 측면에서 각료회의장을 포위, 타격하여 각료회의를 실질적으로 저지시킴으로써 국제공동행동의 전형을 창출했다는 점 등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은 2001년 9.11 테러를

[세계화에 저항하라!] 지금은 다 개방중

[세계화에 저항하라!] 지금은 다 개방중

착취의 세계화, 빈곤의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개방이라는 점에서 다수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부르는 것이다.

[세계화에 저항하라!]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

[세계화에 저항하라!]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

10여 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과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는 실감이 안 났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경영에 나섰다가 망가졌을 때만 해도 세계화는 아직 먼 발치 일로 생각했고요. 아닌게 아니라 외환위기를 겪고, IMF 처방전을 받아들면서 한국의 현실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금도 모으고, 정리해고도 받아들이고, 비정규직과 실업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지요. 저항하고, 투쟁도 했지만, 자본과 정부가 이끄는 대로 끌려오다 보니, 시나브로 ‘세계화 시대’, ‘세계인’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 * – 돌아보니 자본과 정부는 세계화에 대비하기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해왔더군요. 다자협상도 하고, 양자투자협정도 하고, 자유무역협정도 추진하면서 본격적인 ‘세계화’ 시대를 준비해왔습니다. 한-칠레자유무역협정으로 남미 시장과 연결하고, 한-미투자협정으로 미국 시장과 연결하고, 한-일자유무역협정으로 한-중-일 동북아시아를 대비하고, 한-싱가폴자유무역협정으로 아세안 시장과 연결한다는 이야기죠. 아셈과 아펙에서는 정보도 얻고, 실리도 챙기고, 협상도 하고. 나라간, 자본간 사교의 장인지라 발바닥에 땀내며 쫓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겠죠.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을 만나 이르쿠츠크 가스전 세일즈 협상도 하고, 시베리아힝단, 중국횡단 철도 사업도 추진하고, 일본과 해저터널 사업도 타진중입니다. 이 와중에 적대국으로 되어 있는 북과 금강산관광, 남북철도,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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