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찢겨진 가슴은 결코 회사나 국가가 치유해줄 수 없다. 노동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연대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깊은 마음의 상처, 트라우마의 치유책은 진실한 사랑과 연대뿐이다.
쌍용차를 이용하다 버릴 것이 분명한 초국적 기업들에게 고분고분한 노동조합만큼 반가운 일은 없을 것이다. 가장 유력한 인수자인 닛산은 세계적으로 반노조 운동을 이끌었던 일본 자동차 기업 중 하나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조를 만드는 일은 마치 식민지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거나,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는 결심같이 해야 할 지경이다.
한국사회와 노동자파업의 문제는 노동자의 저항의 권리로서의 파업권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유보되고 배제되는 노동정치의 문제다. 노동의 정치가 당연해지는, 노동이 사회적 주체로 자리 잡지 않는 한 파업은 더 극단적인 양상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
88만원 세대가 쌍용자동차 투쟁과 만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쌍용의 노동자들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애저녁에 포기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쌍용 자동차 해고자들은 요즘 모이면 이런 얘기를 한다. “이제 갚아야 한다.” 그동안 제대로 연대하지 못하고, 제대로 함께 하지 못했던 우리들에게 세상은, 다른 노동자 동지들은 함께 해주었다.
최근 정리해고는 비정규직 사용의 무한허용, 국가를 뛰어넘는 글로벌 생산전략, 노동운동가 싹 자르기, 그리고 재벌중심 주주자본주의 구조 등과 철저하게 직결돼 있다. 지난해 쌍용차 사태. 이 사태는 이 모든 것들의 종합세트였다.
쌍용차 점거파업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해고·구속·손배가압류·벌금 등의 피해에 비하면 잠시 동안 눈 한번 질끈 감고 양보하는 것!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서있는가 하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이미 거대한 초국적 자본이 되어버린 현대기아차나 외국자본의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있는 GM대우나 르노삼성과는 다른 제3의 길은 바로 국민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국민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소유 측면만이 아니라 생산과 고용 측면에서도 국민기업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정리해고 뒤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이미 오래전에 정리해고를 했던 곳이든, 가장 최근에 정리해고가 이루어진 곳이든, 앞으로 정리해고 위협을 받는 곳이든 정리해고 뒤 벌어질 일들은 별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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