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토리노>는 월트가 이 불만들을 해결하는 과정에 대한 영화이며, 이 과정 속에서 현대 미국에 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인식, 혹은 현대 미국에서의 이스트우드의 포지셔닝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는 인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상자를 닫기 전,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무엇이 우리를 환하게 만드는가? 인생의 절정에 올라 모든 명예를 누렸던 퇴물 레슬러의 비상, 심장부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랜디잼이라는 필살기는 그의 일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목은 그 어떤 영화보다 본질적이다.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 성서에 따르면 인류가 인류로서 겪게 된 최초의 사건이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사랑은 지속이며 동시에 도달 불가능성이다. 통합은 꿈이며 분열은 도달하지 못하는 자기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체인질링>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답은 오늘의 한국은 ‘과거의’ 한국을 닮아가고 있으며 점점 퇴행하고 있다가 아닐까 한다.
문제는, ‘찬란한 삶’이 현재의 것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녀의 부모님을 다시 24시티에 입주시키겠다는 자신감의 근원에는 “나는 노동자의 딸이니까요.”라는 선언이 존재한다. 노동의 긍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노동하는 삶, 삶의 공유는 현실 사회주의와
이 영화를 보고 나올 즈음, 용산의 한 건물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이 목숨을 잃었다. 영화 속의 철거 공무원을 보고 용산에서의 사건이 떠올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 속의 공무원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한 시간을 기다려주었다. 용산에서 벌어진 일들이 어떤 경제적이며 법적인 논쟁거리를 남겨두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진압작전의 수뇌부가 한 시간만 더 참고 생각을 했더라면 희생자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타의 뱀파이어 영화의 주인공들이 뱀파이어와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뱀파이어에게 물려 뱀파이어가 되기를 선택할까를 두고 고민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오스칼과 남자는 인간이되, 인간성을 버린다. 그러나 뱀파이어라는 종족이 되지는 않으며 종국에는 뱀파이어-성을 가진 존재의 일부가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 <렛미인>은 뱀파이어 영화의 새로운 한 지평에 안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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