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 남짓한 방에서 혼자 4년을 살면서 책을 읽을 때건 잠자리에 들 때건, 화장실에 갈 때건,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저에게 자주 묻곤 했습니다.
다섯 철거민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있은 지 꼬박 2년이다. 혹자는 용산참사가 다 해결되었다고, 그저 안타깝게 희생된 망자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어떤 철거민은 용산을 ‘잘 합의된’ 선례로 기억한다.
이번 장례를 통해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진정한 화해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열사들과 같이 저항하다 구속된 이들과 특히 고 이상림 열사의 아들 이충연 씨도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넉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양석 판사가 읽어 내려간 판결문에는 화염병이라는 확정은 없었다. “화염병으로 보인다”라는 추측성의 애매한 문구가 대신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이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순수한 형사재판에서 형법적인 판단을 하면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면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에 대한 수많은 반대 증거가 있는데도 유죄를 선고한 것은 사법부의 역할을 포기 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용산 철거민들에게 중형이 선고돼면서 각계의 비판과 탄식이 줄을 잇고 있다. 용산범대위는 이같은 선고 결과에 \'절망한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어린 아들이 돌아오길 빌며 오늘도 눈물로 잠 못 이루는 늙은 노모의 가슴을 대신하여 이글을 드립니다. 부디 현명하고 공정한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자기야, 자기야~. 8년 구형을 받은 남편은 끝내 아내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영신 씨는 결심공판이 끝나고 법정 맨 앞에서 구치소로 가는 남편에게 손을 뻗었지만 남편 이충연 씨는 아내가 부르는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결혼 하고 8개월 만에 생이별을 한 둘은 그 후 8개월은 법정과 감옥에서 만났다. 둘은 사탕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충연 씨는 지난 1월 20일 용산 철거민 망루 진압 당시 철거민 대책위원장이었다. 그는 그 사건의 주동자로 구치소에 있다.
아버지는 5개월째 냉동고에 누워계시고, 맏상주인 형님 이성연은 영안실을 지키느라 어머니 전재숙은 현장에서 경찰과 싸우느라 면회할 여유조차 없다. 색시 정영신이 새벽에 면회를 가고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현장에서 경찰과 싸우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참세상은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이메일을 통해 받고 있습니다.
독자제보 E-Mailnewscham@gmail.com
이메일
비밀번호
이메일로 회원가입비밀번호 찾기
가입하면 기사에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입력한 이메일로 인증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닉네임 (댓글에 표시됩니다)
비밀번호 (8자 이상)
웹사이트
이미 가입했다면 로그인
가입한 이메일을 입력하면 비밀번호 재설정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로그인으로 돌아가기
새 비밀번호 (8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