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노협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해동이네’ 연작, 노동자 가족의 삶의 애환 담아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해동이네’ 연작, 노동자 가족의 삶의 애환 담아

해동이와 해자. 해동이 엄마와 아버지, 해동이 아빠의 회사 선후배, 해동이 이모와 해동이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다 등장한다. 시점은 주인공 해동의 시점이다. 여기엔 장단점이 있다. 딱딱하고 어려운 노동현장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는가하면, 소년의 시점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뚜렷하다.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무모한 도전, 전국노동자신문에 꽁트 연재하기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무모한 도전, 전국노동자신문에 꽁트 연재하기

꽁트 하나에 꽂힌 나는 낯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열정적으로 꽁트에 대해 설명했다. 덕분에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편집자들이 헤어질 때는 악수를 청하며 환하게 웃었다.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전국노동자신문에 꽁트를 연재하자고!”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전국노동자신문에 꽁트를 연재하자고!”

1991년 2월, 그해 겨울 마지막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동숭동 ‘학림’에서였다. 노동문학의 길을 걷는 문우들에게 제안했다. 전국노동자신문(이후 약칭 ‘전노신’)에 꽁트를 연재하자고.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전노협 선봉대, 이름없이 투쟁한 동지들에게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전노협 선봉대, 이름없이 투쟁한 동지들에게

대부분의 선봉대원 이름은 역사 속에 없다. 그러나 전노협과 민주노조 사수와 투쟁의 진전에 이름 없이 투쟁한 선봉대원들,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 물론 선봉대에서 성장한 노동자들이 각 사업장 노조의 중심이 되는 조직대오의 역할도 했다. 그것을 동시대에서라도 기억해 준다면...

계급운동의 중심에선 노조운동의 부활은?

계급운동의 중심에선 노조운동의 부활은?

올해는 일제강점 100주년, 한국전쟁 60주년, 4.19 50주년, 광주항쟁 30주년 등 그 어느 때보다 의미있는 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은 한국의 노동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전노협이 건설된 지 20주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전노협 정신, 노동자는 하나다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전노협 정신, 노동자는 하나다

나는 지금 감옥에 있다. 공교롭게도 20년 전 전노협이 출범할 당시에도 나는 감옥에 있었다. 감옥에서였지만 환호로 맞았던 전노협 출범 소식과 20년 이후 다시 전노협을 돌아보는 나의 가슴은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한다.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아우성치고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즐기는 신나는 잔치판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아우성치고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즐기는 신나는 잔치판

서노협의 문화부를 맡고 있던 김경란과 신재걸이 ‘전노협 건설을 위한 특별공연’을 제안해왔다. 서노문협에서 함께 활동하던 단체들의 역량을 총집결하여 작품을 준비하고, 제목을 ‘노래판굿 꽃다지’로 붙였다.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20년이 지나, 전노협을 기리며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20년이 지나, 전노협을 기리며

1990년 1월 22일, 오늘의 민주노총 모태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닻을 올림으로써 이 나라 노동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날이다. 이제 20년이 지난 과거이지만 기억은 아주 생생하다. 새벽같이 집을 나와 사당동에서 당시 민교협 공동의장이었던 김진균 교수님을 만나...

[기자의 눈] 전노협 창립일에

[기자의 눈] 전노협 창립일에

아! 전노협[제작: 노동자뉴스 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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