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평화누리통일누리] 미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 10주년 기념집회가 열리던 날…

[평화누리통일누리] 미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 10주년 기념집회가 열리던 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요즘은 좀 빠르게 변한다고 해서 5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한다. 미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10주년! 광화문 열린 시민마당에 걸린 10년의 사진 전시물을 보니 그 시간들이 아주 빠르게 머릿속을 스친다. 10년 동안 참 많이 울었다. 매향리 농섬에서,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과를 받기 위해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기름진 평택 들판을 둘러보며 참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매월 둘째주 화요일이면 미 대사관 앞에 다시 서서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되짚었다. 10년 투쟁의 역사를 써내려간 주역들이 다시 광화문 시민마당에 다시 섰다. 김용한, 추영배, 조주형, 심우근, 신종원. 그분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속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신종원 이장(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주민대책위 조직부장이었던 그는 현재 마을 이장이다.)이 미군에게 고향땅을 빼앗기고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야기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 고향땅을 빼앗긴 농민이, 불평등한 한미동맹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이 어떤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대추리 주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끔 투쟁의 현장에서 신종원 이장을 보면 너무나 반가운데 어떻게 반가운 마음을 표현할지 몰라 멋쩍은 웃음이나 손을 한번 잡는 정도이다. 그것은 평택 땅을 지켜내지 못한 나의 회한의 몸짓이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모여든 사람들이 전시물도 보고, 서로 반가운 인사도 나누고 있다. 그동안 각 사안의 투쟁마다 앞장서 투쟁하셨던 주역들도 곳곳에 보인다. 적을 때는 50명이, 많을때는 400명이 집회에 참여했는데, 매달 만나다보니 모두들 친근함이 느껴진다. “조국의 자주통일 염원을 모아 폭우, 폭설에도 오직 한마음으로 10년을 함께 해주신 분들을 모시고 사회를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는 이야기로 사월혁명회 한찬욱 사무처장이 사회를 보았다. 제일 먼저 평통사 상임대표이신 문규현 신부님이 10주년 기념사를 하셨다. 문규현 신부님은 “10년 전 첫 집회를 연 날로부터 한달 한달 이어져 오늘로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파주 스토리 사격장에서, 매향리 폭격장에서, 효촌리 여중생 사고 현장에서, 평택 대추리에서, 군산과 직도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미군들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해 이곳으로 모였다. 눈이오나 비가 오나 이 집회는 이어졌고, 오늘 집회는 이제 주한미군을 완전히 내보내고 한반도 평화통일 실현을 다짐하는 자리이다. 반미연대 집회를 10년간 지켜온 동지여러분! 모두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셨다. 10주년 집회를 맞아 참가한 단체들도 훨씬 많았다. 한국진보연대 이강실 상임대표, 민주노동당 이영순 최고위원, 민주노총 황수영 통일위원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세 분 모두 더 많은 국민들과 함께 이 집회를 함께 해 나갈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하였다. 집회가 시작되고 좀 지나자 인천에 있던 회원이 “인천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좀 지나니 부천에 있던 회원이 “부천에도 비가 오기 시작했다. 서울은 어떠냐?”고 묻는 전화가 왔단다. 아니나다를까 축사를 시작할 무렵부터 한두방울씩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지난 7월 26일 평화협정 실현한마당 뒤풀이가 생갔났다. 그때도 이곳에서 뒤풀이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에 소나기가 쏟아졌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밥말아 먹고, 막걸리와 빗물을 함께 마시곤 했다. 미리 회원들이 알려준 정보 덕분에 그나마 근처 편의점을 뒤져 우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참여했던 박상희 목사님은 “우리대신 하늘이 눈물을 흘려준 것이다”라며 좋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 왼쪽부터 신종원, 강찬석, 심우근, 조주형, 김용한, 추영배, 주병준. 반미연대집회 10년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 희망의 노래 꽃다지가 축하 공연을 하였다. 잔잔한 노래에 맞춰 일제히 하얀색 우비를 입은 150여 참가자들이 한반도 모양의 피켓을 들고 흔들었다. 하얀 우비를 입으니 늙고 젊음이 없고, 여성 남성이 구분없이 모두 똑같은 모습, 똑같은 마음이었다. 이어 반미연대 집회 10년의 역사를 써내려간 주역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무건리 주민대책위 주병준 위원장은 10년동안 이 자리를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시작으로 “미군을 내보내야만이 우리가 원하는 평화가 올 것이고 가능하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최근 오현지킴이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오현리에 남은 주민들은 꿋꿋하게 투쟁할 것이다.”며 22일 진행될 중앙토지위원회 수용 재결 회의 저지 투쟁에 주민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매향리주민대책위 추영배 고문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싸워 매향리에서 미군을 내보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매향리에는 미군이 버린 폭탄찌꺼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더 노력하여 매향리에서 그랬듯이 우리나라 땅에서 미군을 내보내고 해방세상을 만들자!”고 하였다. 전 SOFA개정국민행동 김용한 공동집행위원장은 “이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하셨던 문정현 신부님은 ‘행동으로 보여주자’, ‘낮은 단계부터 만들어가자’고 하셨다. 낮은 단계인 SOFA투쟁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미군 철수투쟁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몇 년 후면 환갑이 되는데 미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 전 공군차세대전투기 시험평가단장이었던 조주형 대령도 “이 자리를 지켜온 분들에 비하면 본인은 많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국방비의 절반이 무기구입에 사용되고, 구입되는 무기가 거의 대부분이 미국 무기다. 우리 국민들의 세금으로 쓰이는 국방비가 악의 축인 미국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쓰여지고 있다. 그 돈이 통일 비용으로 쓰여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과 뜻을 모아 일궈나가자”고 하였다. 여중생 압살사건 당시 효순, 미선의 언니들이 다니던 의정부 여고의 교사였던 심우근 선생은 “말을 하는 교사지만 이 자리에 계신 선생님들 앞에 서니 많이 떨린다. 미군들이 세워놓은 추모비 앞에서 추모를 하며 많은 분들이 안타까울 것으로 안다. 미군이 진정으로 여중생을 추모한다면 이 땅에서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니 가증스럽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두 여중생, 이 땅에서 미군으로 인한 피해가 두 여중생이 마지막이 되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국민들의 뜻을 모아 추모비를 세워야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추모비 건립에 힘을 모아 줄 것을 호소하였다. 덕수궁터 미대사관 건립 반대 운동을 했던 건축가 강찬석 님은 “나는 원래 반미주의자가 아니고 건축가이며 문화재 보호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덕수궁터 미대사관 건립 반대 투쟁을 4년동안 하다보니 사람들이 나를 반미주의자라고 부른다. 열심히 싸웠더니 덕수궁터 미대사관 건립을 막아냈고 앞으로도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더 열심히 싸울 것이다.”라고 밝혀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 당시 매번 반미연대집회에 참석해 왔던 평택주민대책위원회 신종원 조직국장은 “자기 땅을 빼앗기고 주민들이 살기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직접 찾아와서 봐 주었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농사를 짓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한시적 공공근로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미군기지로 고향땅을 빼앗긴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려나가 줬으면 한다”고 하였다. 10년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많은 분들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이후 우리가 더 힘을 모아나가야 함을 느끼게 하였다. 마지막 발언을 하였던 신종원 이장님의 발언은 종속적인 한미동맹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고 고통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10년이 눈보라와 비바람을 이겨낸 시간들이었다면 이제 이후 10년은 한반도에 불어올 회오리 바람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 이겨내어 정말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발언자들은 하나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일요일 하루를 꼬박 부천평통사 회원들과 정성스레 박을 만들었는데, 바로 그 박을 터트리는 상징의식을 하였다. 참가자들은 미국과의 한판 승부에 새로운 마음과 힘을 모아 나가자면서 오자미를 마구마구 던졌다. 박이 잘 안터지만 어쩔까 걱정했는데, 걱정대로 한참을 버티디가 박이 터졌는데, 사탕도 많이 넣어 두어서인지 대학생 친구들도, 어르신들도 좋아라 하셨다. 박에서는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라고 써진 현수막이 내려왔다. 뒤풀이에서는 민대협 대학생들이 율동공연도 하고, 대구, 부산, 광주 등 멀리서 참여한 분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하였다. 젊은 대학생들이 반미투쟁에 함께 하고 있으니 대견하고 든든했다. 이제 우리는 다가올 10년 안에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실현, 조국 통일 모두를 이루자는 결의를 하고 있다. 지난 10년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면 ‘비바람 눈보라에도 굴하지 않고’ 일 것 같다. 이후 10년은 비바람보다 더 큰 폭풍우가 몰아칠 것이다. 폭풍우 뒤 다가올 평화로운 세상, 그 날은 땅을 지켜내지 못한 회한의 몸짓이 아니라 역사를 써내려간 사람들과 기뻐 얼싸안을 수 있는 날일 것이다.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냥 오지는 않을 것이다. 10년간 그랬던 것처럼 더 큰 확신으로 실천할 때 가능할 것이다. 10주년 반미연대 집회는 나의 마음을 다지는, 더 많은 동지들의 마음을 모으는 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평화누리통일누리] 반미연대집회 10주년을 맞는 우리의 결의

[평화누리통일누리] 반미연대집회 10주년을 맞는 우리의 결의

1999년 10월 21일, 노근리 양민학살 및 조중필 피살사건 진상규명과 불평등한 한미SOFA 개정을 요구하면서 처음 시작한 미대사관 반미연대집회가 만 10년을 맞았다. 반미연대집회는 이 땅의 모든 반미 사안이 다뤄지고 확산되는 반미투쟁의 산실이었다. 한미SOFA 개정운동, 조중필피살사건 등 미군범죄관련투쟁, 매향리폭격장 폐쇄투쟁, MD 저지투쟁, F-15K 도입반대투쟁, 여중생압사사건투쟁, 덕수궁터미대사관건립반대운동, 주한미군 전략적유연성 반대투쟁, 한미상호방위조약 개폐투쟁, 굴욕적 용산미군기지이전협상 저지투쟁 및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투쟁, 무건리훈련장확장 저지투쟁, 한미연합전쟁연습 반대투쟁 등 수많은 사안들이 반미연대집회를 통해 제기되고 확산되었다. 이 사안들은 하나같이 냉전과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형성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둔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며 주민의 생존권을 파괴하고 우리 국민의 고혈을 짜내는 문제들이다. 반미연대집회는 매향리미군폭격장 폐쇄투쟁 승리와 한미SOFA 일부 개정, MD 저지에 기여하고, 두 여중생의 부모님이 반미연대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하여 여론을 불러일으켰으며, 대추리 현장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등으로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투쟁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반미연대집회를 통해 한미동맹을 폐기시켜야 한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대중의 반미자주의식 성장에도 기여한 것은 큰 성과라 할 것이다. 반미연대집회의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정권의 모진 물리적·법적 탄압과 이에 대한 처절하고도 끈질긴 저항으로 점철된 기간이었다. 외교공관 100m 이내 지역 집회 금지라는 위헌적인 근거를 들어 경찰은 집회 참가자에 대한 고착과 폭행, 오지 격리조치, 연행과 구금을 일삼았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결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멀리 내던져지면 늦은 시간에 다시 돌아와서 집회를 기어코 마무리했고, 연행과 구금에는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동여매거나 비바람이 치는 가운데 밤샘 농성을 벌이는 등으로 격렬히 저항했다. 3년여에 걸친 강고한 저항과 법적 투쟁 끝에 우리는 마침내 집회의 합법성을 쟁취해 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있는 이명박 정권은 광화문 KT 앞으로 옮겨 진행하고 있는 집회를 다시 가로 막았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의 법적투쟁으로 무력화시킴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수호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정권은 한사코 막으려 하고, 집회 참가자들은 기어이 성사시켜왔던 반미연대집회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서 미국의 패권을 영구화하느냐 아니면 민족 자주를 이루느냐하는 투쟁이 미대사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의 집회 개최 여부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곳은 반미자주투쟁의 최전선의 하나였으며, 그래서 반미투쟁의 성지라고 불렸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반미연대집회를 지키고, 이를 통해 대중의 반미자주의식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역사와 민족이 우리에게 근본적이고 절실한 문제를 당면 과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이루고 자주적 통일을 성취하는 일이다. 지금 정세는 지체와 곡절을 겪으면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북미·북일관계 정상화, 평화군축과 통일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북미당국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본격화되면 북핵 포기와 미군철수, 한미동맹 폐기, 미국의 핵우산 제거 등이 논의될 것이다. 60여 년간 지속되면서 남북을 통틀어 주권 침해를 비롯하여 온 사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강요했던 분단과 정전체제를 마감할 수 있는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 반미연대집회 참가자들은 한반도의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정세 속에서 지난 10년의 성과를 계승하여 새로운 10년의 역사를 써 나갈 것이다. 늦어도 새로운 10년 안에 우리는 북미양국이 북핵 포기와 미국의 핵우산 철회를 교환하여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고, 반세기 넘게 이어져온 정전체제를 빌미로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내보내고 군축을 실현하여 공고한 평화체제를 이루며,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여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마침내 조국통일의 탄탄대로를 여는 일에 모든 힘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근본적 과제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 군사주권을 빼앗기고 있는 작전통제권문제, 대북 선제공격적인 작전계획과 전쟁연습문제, 미군기지와 훈련장 확장문제, 미제무기도입과 미군주둔비용 부담문제, 미군범죄와 환경문제, 경제적 종속을 더욱 고착화하는 한미FTA문제 등에 대해서도 힘과 지혜를 모아 투쟁해 나아갈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부진 각오와 새로운 모습으로 반미연대집회를 더 크고 대중적인 집회로 만듦으로써 우리 사회에는 더욱 큰 영향력을 끼치고 우리에게 부당한 지배와 간섭을 일삼고 있는 미국에는 더욱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회로 만들어 나아갈 것이다. - 우리의 결의 - - 우리는 늦어도 향후 10년 안에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한반도 비핵화, 조국통일을 모두 이뤄낼 것을 결의한다! -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며 주민 피해와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모든 미군과 미국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적극 투쟁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 우리는 반미연대집회를 더욱 대중적인 집회로 키워 우리나라를 자국 패권의 도구로 삼는 미국을 강력히 압박하는 집회로 만들어 나아갈 것을 결의한다! 2009. 10. 13. 미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10주년 기념 121차 집회 참가자 일동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광주전남평통사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광주전남평통사

지난 7월 26일 ‘2009년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 한마당’에 37명의 회원이 참가하여 지난 해 33명이 참가한 것에 비해 별반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직화, 참가 논의 과정에서 평통사와 평화협정 추진운동을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전농 광주전남도연맹, 실천연대, 남총련과 남대련을 비롯해 시군단위 농민회와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등에서 행사 참가를 위해 내부논의를 하고 회원들에게 공지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몇 몇 회원들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모범적인 참여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김기중 선생님은 최근 전교조 시국선언과 일제고사 문제로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힘든 일정 속에서도 어렵게 참여해주셨습니다. 고흥 이송형 선생님은 고령에 두 차례 큰 수술로 회복 단계에 있음에도 새벽 5시에 출발, 참여하는 열성을 보여주셨고, 나주사랑시민회에 계신 회원들은 25~26일 1년에 한번 있는 나주사랑시민회 가족 수련회가 있었음에도 주요 회원들이 참여해 주는 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나주시 농민회의 경우 올 해 비 피해로 어려운 조건에서 많은 간부들이 참여하는 열의를 보여주었습니다. 회원들은 행사 참가 후 “행사 내용이 알찼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참여가 감동적이었다”, “이러한 행사에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는 소감을 보내주셨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대전충남평통사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대전충남평통사

충남에서 통일의 깃발 지난 6월15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충남본부 결성 기자회견 및 대표자 총회를 진행하였습니다. 향후 충남지역에서 더욱 힘차게 통일운동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군산평통사

[평화누리통일누리] [지역평통사 모임과 활동] 군산평통사

지난 6월 17일 전북지역 익산 군산 전주 평통사 사무국장들은 2차 회의를 갖고 전북지역 평통사 조직사업의 강화와 상호 협력방안을 논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1) 전북지역 학습모임 진행(월 1회, 사무국장 및 열성회원 대상, 주제는 정세 및 평통사 현안 등) 2) 정기번개 화상모임 진행 3) 전북지역 평통사 연합 구조(광역조직과 지역조직의 관계 및 운영)에 대한 논의 등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평화협정 추진위원 및 회원 조직에 더욱 분발하기로 하고, 7월 26일 평화협정 한마당 행사에 전북지역은 익산 10명, 군산 15명, 전주 15명, 김제부안 5명, 기타 등을 목표로 조직하여 45인승 버스로 함께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미군기지 이전비용에 미군주택 임차료까지 떠넘기는 뻔뻔한 미국

[평화누리통일누리] 미군기지 이전비용에 미군주택 임차료까지 떠넘기는 뻔뻔한 미국

미군의 뻔뻔한 요구가 점입가경이다. 지난 4월 열린 평택미군기지 이전비용에 관한 한미 군 고위급 회담에서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군가족임대주택사업(HHOP)에 대해 한국정부의 보증을 요구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익산평통사 소식

[평화누리통일누리] 익산평통사 소식

총회에서 매 월 추진위원 10명과 길잡이 100명을 조직하기로 했지만 목표를 좀 더 올리기로 하고 추진위원 20명이상 조직하기로 하였습니다. 총회 전에는 추진위원 조직이 어렵지 않을까 하여 걱정을 하였지만 막상 여러 사람을 만나고 캠페인도 벌여보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어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여 과감하게 목표를 늘렸습니다. 또한 매월 3명이상 회원을 확대하기로 하였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부산평통사 소식

[평화누리통일누리] 부산평통사 소식

2009년 5월 9일(토) 오후3시, 민주노총 부산본부 4층 강당에서 부산평통사 창립총회가 열렸습니다. 회원 40여 명으로 닻을 올린 부산평통사의 창립총회는 부산지역의 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안동평통사 소식

[평화누리통일누리] 안동평통사 소식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고민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함께 지지하며, 분단된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며, 아울러 북미 간에 평화협정 체결이 이루어지도록 실천하는 지킴이가 되고자 뜻을 모아 지난 18일 안동 가톨릭 상지대학에서 ‘4.19기념식 및 평화와 통일을 여는 족구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평화누리통일누리] 허세욱 열사 2주기 추모사

[평화누리통일누리] 허세욱 열사 2주기 추모사

‘미선이 효순이의 한을 풀자’,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한다’, ‘망국적 한미FTA를 즉각 중단하라’던 허세욱 열사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데, 실천하는 민중의 자화상으로 승화해 가신지 벌써 2주기를 맞이합니다. 2007년 4월 1일.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건만 민중들의 삶은 오히려 더욱더 벼랑 끝으로 몰리고, 민중들의 필사적인 외침이 장막에 부딪혀 허한 메아리로 돌아옴을 너무도 가슴 아파하며 작은 한몸을 역사의 제단위에 던지신 그날의 그 비보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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