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으로 통치력이 약화된 군부정권은 6.29선언과 이어진 대선에서 또다시 집권을 하게 되었지만 노태우 정권의 집권 이후 1988년 4월의 총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탄생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도시빈민 투쟁 특히 철거민 투쟁은 대단히 격렬하게 진행 되었다.
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가 들어서면서 사회적으로 폭력적 억압은 한층 강화되어 나갔다. 따라서 1980년대 초반은 1970년대 이후 종교를 기반으로 한 활동가와 몇몇 지역의 주민들만이 종교적 성향의 빈민운동에 결합하고 있을 뿐이었다.
도시빈민운동도 지난 시기 전개된 경기도 광주도시빈민투쟁을 비롯하여 개발지역과 거리에서 펼쳐진 수많은 철거와 단속에 저항했던 활동들이 모여 작은 내를 이루어 나갔다. 그리고 80년대 촉발된 사회운동과 결합하여 빈민운동은 커다란 강이 되어 나갔다.
70년대의 도시빈민 사건가운데 속칭 ‘무등산타잔’이라고 불리는 광주광역시에서 벌어진 사건이 있다. 철거민 박흥숙(남) 사건은 도시빈민운동사를 검토하는 데 있어서 위에서 언급한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과 함께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광주대단지투쟁은 많은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빈민운동의 영역으로 끌어 들였고 이후 전개되는 민주화 운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무엇보다도 70년대 초 사회적으로 엄혹한 시절에 터져 나온 사건이라는 점에서 광주대단지사건에 대한 시사점이 크다.
우리 사회 반(反) 빈곤운동의 주동력이었던 철거민운동과 노점상운동의 흐름을 살펴보고 우리 사회의 변화된 양상과 이 과정 속에서 숨을 거둔 열사들의 희생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참세상은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이메일을 통해 받고 있습니다.
독자제보 E-Mailnewscham@gmail.com
이메일
비밀번호
이메일로 회원가입비밀번호 찾기
가입하면 기사에 댓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입력한 이메일로 인증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닉네임 (댓글에 표시됩니다)
비밀번호 (8자 이상)
웹사이트
이미 가입했다면 로그인
가입한 이메일을 입력하면 비밀번호 재설정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로그인으로 돌아가기
새 비밀번호 (8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