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이윤엽은 판화로 소통하고 판화로 이야기하는 작가다. 노동자투쟁 현장마다 이윤엽의 판화는 늘 함께한다. 어느 현장 어느 곳에서 요청이 와도 그는 투쟁현장의 핵심을 파고드는 판화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에는 힘이 실려 있다.
2011년에 파견미술팀은 참 바쁜 한 해를 보냈다. 2012년에도 바빴다. 2013년에도 여전히 바빴고 2017년 지금도 바쁘다. 바쁘다는 건 그만큼 파견미술팀이 가야 할 곳이 많다는 것이고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2011년 9월 희망버스가 4차까지 진행되고 2007년부터 해군기지반대, 평화를 외치는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평화비행기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9월 3일 ‘놀자놀자 강정놀자’ 평화비행기 탑승자를 위한 연대의 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물감을 챙겨 들었다.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희망버스는 이렇게 끝났지만 그다음 밀양으로, 울산으로, 대전으로, 강정으로 다양한 이름의 희망버스로 전국적인 연대를 이어갔다. 투쟁의, 연대의 새로운 방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의 희망버스에 오른 파견미술팀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2011년 6월 11일 1차 희망버스는 2차, 3차, 4차, 5차 그리고 2011년 11월 10일 크레인에 오른 지 309일 만에 김진숙이 지상으로 내려오기까지 희망버스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희망버스의 힘은 신나게 즐겁게 노는 것이었다. 밤새 산을 오르락내리락 힘겨웠던 사람들은 수변공원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새벽녘 사진 속 모습은 마음이 찡하다. 이것이 진정한 ‘연대’이구나.
희망버스와 촛불의 물결은 어느새 한진중공업 정문에 도착했고, 사측과 사측의 요청을 받은 경찰은 정문을 철문으로 막고 공장 벽은 경찰차로 빙 둘러 쌓아놓았다. 공장 정문 앞에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가족들이 피켓을 들고 소리치며 울고 있었다.
느지막한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한진중공업 노조 박성호의 안내로 조선소 안을 돌아보았다. 가족대책위가 있는 천막농성장과 85호 크레인이 보인다. 35미터 높이의 크레인에는 김진숙이 손을 흔들고 있다.
2011년 3월, 전국의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거제도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철탑 위에서 강병재가 목숨을 내걸고 있었고,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는 서울시청에서, 콜트·콜텍은 인천 부평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은 하루하루 그 숫자가 늘어가고 있었다.
대추리의 마지막 밤. 어두운 밤 대추리 황새울 벌판이 고요하다. 빈집들 사이로 모닥불이 보인다. 가까이 보니 모닥불이 아니다. 빈집에서 나온 폐가구들을 태우는 중이다. 불빛 사이로 하얀 수염의 문정현 신부가 울고 있다. 불꽃은 하늘로 튀어 오르고 신부의 눈물은 흙 속으로 스며든다.
작가들은 종이박스에 “청계천문화탄압성지!”라는 작품을 들고 계단과 인도와 차도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시설관리공단 계단에 작품을 설치했다. 그 위에 이동수 만화가와 전 시사만화협회 대표 최민은 즉석에서 공단의 행태를 풍자하는 만평을 그리고 서명도 했다. 종이박스 위에 피켓은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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