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당신에게는 어머니가 있어요”

“당신에게는 어머니가 있어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나의 소중한 친구였던 롤라 모지스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10년 전 그의 이야기를 썼다. 롤라 모지스의 어린 시절은 1939년 가을, 폴란드의 한 작은 다리 위에서 끝이 났다. 그는 아홉 살이었다. 말이 끄는 마차에 앉아 있었고, 등에는 가족의 안식일 은촛대가 담긴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그때 롤라는 독일군의 폭격이 지나간 참혹한 흔적을 보았다

노몬한(Nomonhan), 1939년 : 들어본 적 없는 열강의 4개월 전쟁

노몬한(Nomonhan), 1939년 : 들어본 적 없는 열강의 4개월 전쟁

몇 해 전, 일본인 친구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 논리를 이해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는 것이 더 쉽고, 어쩌면 더 이익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는 제임스 번햄(James Burnham)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1941년 말에 예상했던 바이기도 했다. 내 일본인 친구는 미국 해군 연구소에서 출판한 미국 군사사학자 스튜어트 D. 골드먼(Stuart D. Goldman)의 저서 ⟪노몬한, 1939: 제2차 세계대전을 형성한 붉은 군대의 승리⟫(Nomonhan, 1939: The Red Army Victory that Shaped World War II)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독일 파시즘의 부상에 대한 이해

독일 파시즘의 부상에 대한 이해

나치즘에 대해 종종 히틀러가 민주적으로 권력을 잡았다고 대중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학자 리처드 J. 에번스(Richard J. Evans)는 독일 파시즘이 반유대주의에 불만을 품은 참전 용사들로 구성된 무장 민병대에 의존해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분쇄했다고 주장한다.

[인권오름] [이동수의 만화사랑방] 히틀러 짝퉁인가

[인권오름] [이동수의 만화사랑방] 히틀러 짝퉁인가

국민들은 세월호 대참사로 울분과 분노 속에 있지만, 대통령은 엉뚱하게 적폐척결과 국가개조를 외치며 곳곳에서 국민들의 의사표현과 집회자유를 강제적으로 탄압하고 뻔뻔하게 수구보수언론 출신자를 총리로 지명했습니다.

[제갈현숙의 봉당풍경] 박근혜의 복지로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

[제갈현숙의 봉당풍경] 박근혜의 복지로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

히틀러를 비호하는 찌텔만, 휴즈 그리고 박근혜에게 발견되는 공통되는 역사관이 있다. 이들은 역사의 중심에 지도자를 두고 지도자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나 국가폭력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지라도 결과가 경제발전과 부국강병으로 연결된다면,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3호]유태인은 왜 죽음 앞에서 침묵했을까?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43호]유태인은 왜 죽음 앞에서 침묵했을까?

유태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런데 그 영화들 중에 공통되게 나오는 장면 하나가 있다. 바로 음산한 풍경과 우울한 음악을 배경으로, 유태인들이 수용소로 줄을 지어 걸어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수용소로 끌려가는 발걸음이 왠지 너무 얌전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길에서 한번쯤 커다란 저항이 일어날 법도 하건만, 그건 관객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실제로 죽음의 수용소로 가는 도중에 저항이 일어났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치 치하에서 희생된 유태인들. 그들은 왜 죽음 속으로 질서정연하게 걸어 들어갔던 것일까. 유태인이 죽음 앞에서 침묵한 것은 독일군의 거짓말 때문 예컨대 철도 교통의 요충지에 세워진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원래 나치에 저항하는 폴란드 사람들을 격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곳이 학살 수용소로 이용된 것은 1941년 말부터였다. 하지만 그 후에도 4개의 가스실을 갖춘 제2수용소에서만 학살이 이뤄졌으며, 제1수용소와 제2수용소 일부는 여전히 노역시설로 이용되고 있었다. 유태인이 죽음 앞에서 침묵했던 이유는, 결국 독일군이 정교하게 연출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독일군은 ‘노동력이 필요한 곳으로 집단 이주할 것’이라고 속이며 유태인을 모았다. 일부 유태인에게는 우크라이나에 상점을 열도록 해준다는 계약서까지 써주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