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항쟁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헌법에 의거하여, 1987년 12월 16일에는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선거는 ‘양김의 단일화 실패’ 등 야권의 분열과 지역주의의 과열 양상이 벌어지며 ‘신군부 정권’의 연장이라는 결과를 불러왔지만, 당시 노동자 민중들의 독자 후보로 나선 백기완 선본(이하 백선본)은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요구를 모아내고자 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생생하게 극화한 만화로, 6월 민주항쟁계승사업회 누리집에 게재됨과 동시에 네티즌으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작품이기도 하다.
영장재청구를 한 검경에 맞서며 오세철 교수와 사노련 회원들이 열어놓은 사회주의적 실천의 작은 지평, 당대 활동가 모두의 자산으로 삼아 마땅한, 흐뭇한 일이다.
“그 시대 혁명을 말한 급진적인 노동정치세력들은 ‘혁명의 시대’에 걸맞는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한 2년 쯤 후, 한 5년이나 10년 쯤 후에는 어떤 기록들이 확인될 수 있을까나.
서점이 문을 연 82년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 어요. 당시에는 대통령 별명(대머리)을 많이 불렀는 데 그런 얘길 지나가는 사람이 들으면 바로 신고해 서 형사가 다 잡아갔어요. 그런데 요즘은 안 그렇지 요? 어제도 촛불집회에 가보니까 ‘이명박은 사기꾼 이다 물러가라’ 그러더라구요.
폭압적인 전두환 군사파쇼정권에 맞서 독재타도 민주쟁취의 한 마음으로 온 국민이 떨쳐 일어섰던 역사적인 1987년 6월항쟁이 10일로 21돌을 맞았다.
\"2008년 6월, 21년 전의 6월항쟁은 이미 재현되고 있다. 가혹한 정부와 공권력의 탄압에 맞서 시민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그 속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6월정신이자 항쟁정신이다\" 연세대학교에 모인 시민들은 행사를 마치는대로 고 이한열 열사의 영정과 상여를 들고 서울 시청 앞까지 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은 광화문 사거리를 중심으로 세 방향으로 뻗어 있다. 숭례문 부근 상공회의소 앞, 종각역 방향, 청계광장, 서대문 방향 모든 곳이 촛불의 바다다. 주최측은 촛불문화제 참가자가 4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21년 전, 우리는 민주화를 열망했던 민중들의 항쟁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해 겨울, 6월의 거리를 경험한 학생들의 투쟁을 기억한다. 아직 억압은 끝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6월항쟁 20주년을 맞아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그림이 걸린 연세대학교 도서관 앞에는 아이들의 눈으로 본 \’민주주의\’에 대한 그림들 또한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20주년을 맞았다고 떠들썩했던 2007년 6월. 아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과연 이 땅에 자리잡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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