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하청 노동자, 한화 본사 앞 CCTV 철탑 올라

[현장 인터뷰] 고공 농성 돌입한 김형수 거통고조선하청지회장

15일 저녁, 서울 청계천로 한화빌딩 앞을 찾았다. 30m 높이 철탑에 사람이 있다. 청계천 삼일교에서 고개를 들어 한화그룹 본사로 눈길이 향하면, CCTV 철탑 꼭대기, 다리도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에 웅크려 앉아 있는 이가 어스름이 보였다. 

이날 새벽 4시,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이 고공에 올랐다. 파업 123일째, "더는 물러날 곳 없어 향한 하늘 길"이다. 

한화 본사 앞 CCTV 철탑에 오른 김형수 지회장. 참세상 

참세상은 이날 고공농성장을 찾아, 철탑에 올라있는 김형수 지회장과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김형수 지회장은 "20204년도 교섭을 잘 해보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한화오션이 2023년 부터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경영했지만 2024년이 어떻게 보면 일년 전체를 통으로 경영하는 첫 해여서 노동조합도 그런 것들을 고려해 같이 대화를 해보자는 태도로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한화오션은 전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작년에 하청 노동자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그만큼 열심히 일해왔고 그 결과로 회사가 흑자도 많이 났다. 그러면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데, 회사는 돈을 얼마 조금 줬다면서 자신들이 할 것은 다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교섭에 책임있게 응하고 있지 않다"면서 "이렇게라도 하면, 변화가 있을까 싶어 올라왔다"고 고공 농성에 돌입한 이유를 밝혔다. 

김형수 지회장은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123일째 파업을 하고 있는데, 전체 하청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에 이렇게 자신의 생계를 내려놓고 함께하고 있어서 다들 고맙기도 하고, 지회장으로서 미안하기도 하다"면서 "그래도 우리 끝까지 한 번 해보자. 우리의 요구는 정당하고, 하청노동자들은 그만큼의 대우를 받을만한 일을 하고 있기에,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다. 

시민들에게는 "정말 감사하다. 거제에서 서울 본사까지 올라와 투쟁을 하고 있는데, 외로운 투쟁이 될 수도 있었으나 시민 분들이 우리가 서울에 오는 날 부터 정말 적극적으로 연대해주시고, 자기 일 처럼 생각해주셔서 외롭지 않게 싸울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지금도 아직 밤에는 많이 추운데 철탑 아래에서 이곳을 지키면서 자리를 떠나고 있지 않는 시민 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면서 "저분들을 우리가 요즘엔 '말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 말벌 동지들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잘 버티고 잘 싸워서, 우리가 요구하는 교섭의 내용들이 잘 성과있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한화오션에 대해서는 "너무 욕심 안냈으면 좋겠다. 너무 욕심이 과한 것 같다. 기업이 이윤추구를 최고의 목적으로 하지만, 기업도 공장도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이지 않는가"라며 "그 안에서 특히나 하청노동자들은  많은 일들을 하고 있고 많은 부분들을 책임지고 있고 많은 성과들을 내고 있으니, 그에 응당한 대가들을 비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한 기업 운영이 가능하고, 조선하청지회와의 관계도 좋아지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에 돌입한 김형수 지회장. 전국금속노동조합 

김형수 지회장은 이날 새벽 고공에 오르며 발표한 입장문에서 "470억 손배소송에 2022년 51일 파업투쟁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이런 선택을 결행하는 것은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결의입니다.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금속노조 조합원으로서 내린 결단입니다"라고 전했다. 김 지회장은 또한 "우리는 한화에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약속을 지키라는 겁니다. 차별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죽음의 현장을 삶의 현장으로 바꾸라는 겁니다. 하청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어느 요구 하나 정당하지 않은 요구가 없습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차별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모든 노동자의 실질적 노동3권을 위해 투쟁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김형수 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 "김형수 힘내라! 함께 싸워 이겨서 내려오자"고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CCTV 철탑 아래에는 김형수 지회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빌딩 숲 너머에서는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라" 외치며 행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도, 행진을 마치고 하나 둘 고공농성장을 찾아왔다. 

한 30대 직장인도 행진 후에 고공농성장을 찾아 김형수 지회장이 있는 철탑을 내내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농성장을 찾았는지 묻는 참세상 기자에게 "바람도 세고, 발바닥도 철판이고 사람이 발 뻗고누울 수 없는 둥그렇게 되어 있는 공간인데, 어떻게 사람을 저기까지 몰아붙이는 건지, 마음으로는 도저히 납득도 안 가고 이해도 가지 않는다"면서 "노동자들은 거제로 돌아가서 그저 일하고 살아가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을 뿐이고, 그것은 과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되고 그 누구라도 원할 마음인데, 그것조차 너무나 어렵고,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진 게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형수 지회장에게 "무조건 이겨서 땅을 밟고 거제로 돌아가셨으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자는 정말 기계가 아니니까,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잘 마무리됐으면 한다"고도 마음을 전했다. 

현장에는 조합원들도 연대 시민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며 김형수 지회장이 오른 철탑에 내내 눈길을 두고 있었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노동자들의 그리 과하지 않은 요구마저 한화오션은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데, 그렇게 거부할 수 있는 하나의 핑곗거리는 언제든지 필요하면 자신들의 사용자성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한화오션이 하루속히 이 교섭을 마무리지을 수 있도록 촉구를 하기 위해 고공에 오른 것이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어느정도 수용이 돼서 교섭이 타결되면 내려올 수 있을것"이라 말했다. 

이김춘택 사무장은 또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한국 조선업의 미래와 관련이 되어 있는 싸움으로, 한국 조선업이 계속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 어떤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고, 고용 구조가 어떻게 돼야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고 "이렇게 힘들게 싸워야되는 이유 중에 또 다른 하나는 하청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이 제대로 주어져 있지 못한 현실 때문"이라면서 "지금 노조법 2・3조 개정이 다시 발의된만큼, 제대로 잘 개정이 되고, 더불어서 저희 투쟁도 잘 끝나서 함께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 따르면 "해를 넘겨 계속되어 온 2024년 단체교섭이, 노동조합이 전향적인 양보안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청 한화오션의 상여금 인상 거부로 끝내 결렬"되었다. 

조선하청지회는 "한국 조선업의 품질을 책임지며 직접생산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하청노동자를 상용직 숙련노동자로 고용할 것"을 요구하고 "상용직 고용확대를 위한 핵심 요구는 상여금 인상"이라 짚고 있다. 지회에 따르면 2016년 이전까지는 하청노동자도 연간 550%의 상여금을 지급받았는데, 조선업 불황기에 상여금은 전액 삭감되었다. 이후 2023년 단체교섭에서 상여금 50%를 겨우 회복하고, 2024년 단체교섭에서 연간 상여금 300% 지급을 요구했으나파업투쟁이 장기화된 현실을 고려해 현행 50%보다 조금이라도 인상시키자는 양보안을 최종 제시했다. 노동조합의 양보안에도 불구하고 한화오션은 상여금 인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한화오션은 하청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지회는 "한화오션이 상여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어차피 단체교섭이 결렬될 수밖에 없다는 핑계를 대며 하청업체 대표들도 시종일관 단체교섭에 전혀 적극적이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조선하청지회는 단체교섭의 타결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11월 13일 부터 거제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12월 2일에는 상경하여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진행했고, 올해 1월 7일 부터는 서울 한화 본사앞에서도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김형수 지회장은 22일간, 강인석 부지회장은 49일간 단식에도 나섰다. 

김형수 지회장에 고공에 오른 15일, 조선하청지회의 파업은 123일차, 한화본사 앞 농성은 68일차를 맞았다.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외치는 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절박한 분투는 계속되고 있다. 

청계천 삼일교에서 바라본 김형수 지회장 고공농성 현장.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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