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별기회] 인권운동매체, 어디까지 왔나?

창간 1주년 특별좌담


배경내 <인권오름> 편집인, 이태곤 <함께걸음> 편집부장, 유영주 <참세상> 편집국장, 박래군 <사람> 편집인
2006년 6월 9일 (금) 오후 2시,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월간 <사람>이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되었다. 과연 인권운동에 매체가 필요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으면 한다.
월간 <함께걸음>은 18년이란 긴 시간동안 장애인 문제를 다뤄오면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올 2월 <인권하루소식>을 종간하고 웹진 형식으로 전환한 인권운동사랑방의 주간 <인권오름>의 근황과 고민도 궁금하다. 그리고 인권운동과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사회운동매체에서는 어떻게 인권운동매체를 바라보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었으면 해서 인터넷 매체인 <참세상>의 참석을 요청했다. 성격과 형식, 그 역사가 모두 다르지만 각 매체에서 어떻게 인권운동을 접근하며 다루고 있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인권운동매체의 역할과 변화된 지형


이태곤 <함께걸음>의 창간은 1988년 3월이다. 장애인들이 모여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게 된 시점이 ‘장애인 올림픽’인데, 당시 열악했던 사회 환경에서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인권을 이야기해줄 매체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87년 12월에 생기고 처음 시작한 일이 바로 <함께걸음> 발간이었다. ‘장애자’이란 말이 처음 나온 시점도 88년 장애인 올림픽이었다. 그 전까지는 ‘불구자’가 오히려 보편적이었고 요즘 ‘재활원’에 해당하는 시설도 ‘불구원’이란 이름이었다.
시설에서의 비리는 말 할 것도 없고 장애인이 사법시험조차 보지 못할 정도였다. 너무 열악하다보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지만 현장에 가고 취재를 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 속에서 지금까지 왔다. 현실은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역시 시설에서의 문제와 빈곤문제, 그리고 자기방어를 할 수 없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문제를 우리는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신기한 것은 18년이 지났지만 이런 문제가 계속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반면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낮아진다. 이런 반응이 월간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힘들고 자괴감이 들 정도이다. 성람재단 사건만 해도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원생을 착취하며 2,30억 비자금을 조성한 어마어마한 비리인데도 돌아보면 취재하고 보도하는 우리만 흥분하고 있다. 사회 반응이 갈수록 미진해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배경내 충격적인 사건은 그 폭발성만큼 휘발성도 강해서 쉽게 날아 가버린다. 그런 현상은 비단 장애인 인권 문제만은 아닌 인권운동 전반의 상황인 듯하다. 이주노동자 인권침해가 처음 터져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란 반응을 보이며 놀라워하고 충격을 받지만 계속 그런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면서 더 이상 생소하지 않게 된 측면도 있고, 사람들은 그런 소식을 접하며 어쩔 수 없다며 외면하는 면도 있다고 본다.


박래군 <인권하루소식>의 창간 배경도 <함께걸음>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많은 인권문제들이 다 해결된 듯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실상 전혀 변화하지 않는 인권현실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인권하루소식>의 자기역할이었다. 그런 부분이 기성 언론에 <인권하루소식>이 주목받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지금은 여러 매체에서 인권문제가 보도된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이지만, 관심이 집중되거나 하나의 힘으로 모여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권운동매체의 한계, 매체운동의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이태곤 그럼에도 역사를 기록하고 남긴다는 것은 인권운동매체의 매우 소중한 역할 중 하나이고 대단히 긍정적 부분이다. 이를 통해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나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때 그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고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매체의 중요한 역할이다.


유영주 <인권하루소식>은 꾸준히 사회 곳곳의 인권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역할에 충실했다고 생각된다. 98년 진보네트워크가 만들어졌으니 우리는 한참 후발주자다. 진보네트워크에서는 정보통신 영역에서의 인권운동을 고민하면서 전문화된 매체로 출발했다. 그러다 작년 5월 1일 진보네트워크와 형식적으로 분리되면서 <참세상>을 창간했지만 정보인권을 담당했던 역사성이 있으므로 그 연장에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참세상>은 컨텐츠 생산에서 취약한 형편이다. 텍스트를 생산하는 기자들이 사회, 노동, 정치, 반세계화팀으로 나뉘어 팀별로 2명 정도씩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사회 영역에서 인권 부분을 다루지만 현안을 모두 쫓아가기에는 벅찬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페이지를 만들면서, 동영상이나 사진을 실으면서 피해자의 관점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인권을 고려한다는 것이 편집규약으로 체질화 되었다는 점에서 분명 인권운동의 성과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텍스트를 쓰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배경내 <참세상>뿐만 아니라 다른 진보매체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사회나 노동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권리담론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인권하루소식>에서 주간 웹진 <인권오름>으로 바뀌게 된 이유 중의 하나다. 많은 진보매체들이 인권을 다루는데 우리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한 기성 언론과 다른 지점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었다.
우리는 운동단체에서 내는 매체다 보니, 매체를 자기운동으로 가져가려는 사람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 모든 활동가가 <인권하루소식>의 기자가 되는 것이었고, 활동가가 직접 만드는 매체란 점이 <인권하루소식>의 장점이자 오랜 기간 계속 될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그런 장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활동과 병행하기에 벅차지 않은, 질곡으로 다가오지 않는 매체를 고민하면서 <인권오름>이 만들어졌다. 편집방향이라면, 권리의 이름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과 기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인권의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인권 교과서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운동과의 소통, 대중과의 호흡


박래군 누가, 얼마나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매체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주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이제야 사이트를 준비 중에 있다. 월간지를 시작했을 당시만큼 구체적인 반응이 느껴지지 않고 있으며 또한 사회적 반향이란 측면에서도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소통의 문제, 전달과 파장의 문제는 어떠한가. 우선 댓글을 통해 실시간 확인이 가능한 <참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유영주 <사람>은 대체로 진보운동진영에서 다룰만한 사안을 인권운동의 시각에서 다루므로 일정한 자기 독자층을 유지할 수는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새로운 이슈나 관점을 제시하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참세상>을 시작하면서의 욕심은 진보운동의 대표 언론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올해 들어와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중이다. 3, 4월은 한미FTA, 평택, 인터넷 실명제 문제에 집중하자는 논의가
되었고 이 세 가지 모두 인권에 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평택은 두말 할 것도 없고, 한미FTA도 결국 인권의 문제가 쟁점화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슈화 되지 않고 있는데, 선거 시기 일시적으로 시행되는 실명제이지만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싸움으로 보고 있다. 초기 20여개 단체가 공대위로 묶여 싸움의 근거를 남기자는 취지에서 수위를 달리 해가며 댓글과 게시판 폐쇄, 또는 선관위 행정조치를 어기는 전면적인 거부 등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곧 인터넷 실명제는 전면적으로 실시될 것이다. 이는 포탈자본이 웹을 지배운영하거나 자본이 공권력을 동원해 인터넷을 통제, 감시하고 웹상 인권을 유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기에 하반기 정보통신 운동, 인권운동 전반에 중요한 이슈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이렇듯 <참세상>의 고민은 진보운동과 민중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의제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하루 페이지뷰가 10~11만 정도다. 참세상은 조회수는 공개하지 않지만 페이지뷰를 공개하고 있다. 이정도로 대중적 엑세스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태곤<함께걸음>은 오랜 시간 발간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기에 그만큼 독자 제보나 편지, 엽서 등이 많이 오는 편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독자 비율이 4:6정도 되고 장애인에게는 무료로 보내주고 있다. 장애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므로 수고한다거나 고맙다는 독자의 반응은 있으나 사회적 반응은 거의 없는 편이다. 사회적으로 주요 이슈를 만들거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장애문제는 사회인식과 같이 가는 것이고 장애운동에 대한 인식과 우리 매체의 영향력도 비례한다. 장애인을 도와줘야 하고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란 인식이 깨지지 않는 한 한계를 넘어서기는 힘들 것이다.
박래군 사회 인식의 변화와 영향력의 확대는 어쩌면 운동의 몫 아닌가. 매체만의 노력이 아니라 결국 운동을 통해 가야하고, 운동과 매체가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유영주 <참세상>은 포털에 기사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내부 논쟁이 있었다. 독립성을 지켜가는 것과 한 명이라도 소중한 텍스트를 더 읽게 하는 것은 둘 다 중요한 문제다. KTX 투쟁과 관련해서 포털 대문에 실린 적이 있는데 한 시간에 3~400개의 댓글이 걸렸다. 우리는 20개면 아주 특종인 셈인데 <참세상>에 찾아들어와서 걸린 댓글도 40여개가 넘었다. 역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편을 앞두고 다른 매체를 링크하고 있는 <참세상>의 진보매체뉴스광장도 동의를 얻어 포털에 제공을 하는 방안을 제안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태곤 매체가 대중과의 호흡이란 측면에서, 어떻게 대중에게 알리고, 대중과 공감하고, 대중을 움직일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문제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장애운동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경하게 느껴지고 그 생경함을 뛰어넘는 것이 대중과의 소통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포털 기사 제공 문제는 명분과 실리가 부딪치는 어려운 문제지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만 하는 주제임이 분명하다.


박래군 자본이 운영하는 매체들에 비교하면 진보매체, 운동매체라고 하는 것의 대중 영향력은 비교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사람>은 우선 인권활동가들을 독자로 삼아 출발했다. 물론 보다 대중적인 소통을 고민하고 있고 꾸준히 해야겠지만 말이다.
인권운동진영은 7,80년대 KNCC에서 내는 주간 <인권소식>이란 소식지가 있어 주류언론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던 내용을 담았으므로 사건 사고식의 단신으로 나왔지만 그 의미가 매우 컸다. 현재는 인권운동 전반을 아우르는 월간지는 전혀 없으며 많이 읽히는 매체도 없는 듯하다. 7, 80년대가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잡혀가는 시절이었고, 90년대는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주목받는 때였다면 이제는 인권이 대중화, 세속화되어 더 이상 관심을 받기 힘든 시기인 듯하다. 이러한 가운데 인권운동매체는 어떠해야 할까?


이태곤 운동진영에서의 매체는 그 운동과 단체를 대표하게 되고 운동단체의 정체성이 반영된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운동진영에서 매체가 통합되거나 연대하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때문이다. 반면 운동매체, 운동진영의 매체는 운동하는 사람이 매체를 만든다는 명확한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또한 사회적 확산에서 부족함이 있지만 운동과 같이 가고 운동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활동가의 기사 쓰기로 운동과 매체가 소통하고 교류되며 매체의 독자모임 등을 통해 운동의 조직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


배경내 <사람>의 경우 독자모임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한편으로 편집위원회 구성을 보면 <사람>은 인권운동 전반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으로 보이는
데 아직 시너지 효과는 찾기 힘든 것 같아 아쉽다. <인권오름>은 다른 형태의 글쓰기를 고민하고 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글쓰기, 수다를 풀어놓는 것 등 다른 식의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고 그것이 일정 정도 진행되면 다른 인권운동매체와도 교류하면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권오름>을 만들며 왜 우리는 독자적인 매체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냥 <인권하루소식>의 시대적 소명이 다했다면 그것으로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보고서 형태의 기관지는 너무나 명백한 한계가 있었으며 매체를 가져가는 것이 적어도 운동을 하면서 소통의 방식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크게 두고 만들게 된 것이다.
또한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이름 내부에 있는 함정이 과거에도 있어왔지만 이제 본격화되는 시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진보적 인권’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권리의 이름으로 형성되지 않았던 것을 권리의 이름으로 접근해보자는 것이 우리의 시도다. 이를테면 ‘평화적 생존권’으로 평택의 문제를 다루면서 평택 주민들만이 아니라 침략 받지 않을 권리와 함께 침략하지 않을 권리를 아우르면서 가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진보적 인권론이 내용에서뿐만이 아니라 인권을 갖고 인권운동의 주체와 만나가는 방식에 있어서의 새로운 접근도 필요하다는 고민이다. 인권교육을 다루면서 주체가 어떻게 변화되는가를 소개하는 것은 운동하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점에서 의미 있다.


유영주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여전히 제일 큰 고민이다. <인권오름>은 <참세상>이 속보를 담당해주기 때문에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지만 속보성 보도만으로는 <참세상>도 살아남을 수도, 살아남아야 할 의미도 없다. 그래서 어쩔 건데 하고 독자는 끊임없이 무언으로 물어보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페이지뷰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진보적인 인터넷 매체로 가지 않겠는가. 문제는 어떤 담론을 담을 것인가, 진보적 담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독자와 나눌 것인가, 그것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어떻게 확대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간 신자유주의 정치가 계속되면서 개혁담론, 민주화담론을 국가적 차원에서 실행시켜 왔고 거기에 포섭된 진보담론 일부와 시민운동이 더 이상 자기 출구를 찾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재 운동의 현실이다. 기존 담론을 뛰어넘기 위한 개념설정, 진보적 담론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참세상>은 한미FTA 반대, 저지를 이야기하지만 그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 대안은 무엇인가. 진보적 답을 내야 하는데 활동가든 연구자든 구체적 답이 안 나오는 것이 지금 수준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사회적 양극화 등의 문제에서 진보운동은 답을 못하거나, 답을 하는데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과도기가 지금의 현실이고, 여기에 <참세상>의 역할, 인권운동매체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과거 인권을 치고 나가 보편화 시켰듯이 그 권리담론을 가지고 말이다.


인권운동매체에 남겨진 과제와 역할


이태곤 <함께걸음>의 요즘 고민은 확산이 안 되고 정체된다는 것이다. 독자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측면도 있고 “장애인은 시설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인식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번 시각장애인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보듯이 장애인 인권은 대안이 없는 사람의 문제다. 결국 생존권이 장애운동에서는 10년간 계속된 문제다. 그런데 헌재판결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아무런 대안도 없이 숨겨져 있는데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도 없다. 시설을 시혜의 관점에서 보면 비리도 좋은 일하는 사람의 사소한 잘못이라 여겨지고 사법부의 처벌도 관대하다. 정말 힘들어서 <함께걸음>을 계속 내야 하는가 자문을 하게 되는데 매체가 필요하고 우리가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절실한 현실이라 계속 하게 된다. 그래서 가벼워지는 시류에 맞지 않게 내용도 여전히 진지하고 무거운 듯하다. 그럼에도 비리의 소지가 상존하고 자기방어권이 없는 사람들이 다수인 장애운동의 현실에서 끊임없이 감시하고 드러내는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박래군감시와 고발, 인권현안을 밝히는 역할 외에 담론 형성이랄까, 서로 다른 운동영역간의 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권운동진영이라고 하지만 장애운동에서 인권운동은 좀 다르다. 장애운동의 관점에서 인권을 재구성할 필요성도 있지 않나.


이태곤 어려운 부분이다. 물론 인권을 바라보는 개념이 좀 다른 것은 분명하다. 장애운동의 경우 하도 절박한 상황에서 의 생존권 문제라 다른 인권은 사치스럽게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소통이 안 될 수도 있고, 다른 운동과 연대하지만 우리만 절박하고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거리를 더 키우는 측면도 있어 비장애인과의 연대를 끌어내고 소통하는 것은 숙제로 남아 있다.


유영주 장애운동의 보편화를 어떻게 가져가고 더 확장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같이 구체적인 담론이 내용적으로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운동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여성성을 어떻게 체득할 것인가의 문제, 소수자 운동에 있어서도 사회적 약자의 측면만이 아니라 자본운동 속에서 필연적인 다수로서의 약자는 어떻게 할 것이고 생태문제는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도 좌파운동의 맥락에서 위기와 필요를 많이 느낀다.


배경내 생태가 들어오면 인권의 체계가 전체적으로 바뀔 수 있다. 장애운동에서도 기존 인권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러한 개별 영역으로 나눠지면서 충돌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재구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것은 역시 <사람>의 역할이 아닐까.


박래군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마무리를 하자. 인권운동매체가 가진 한계도 명확하고 또한 과제도 분명하다. 결국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는 운동의 내용이기에 운동이 고민하고 풀어야 할 문제이지만 매체의 몫이 있다. 반면에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는 인권운동매체가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생산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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