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세계대전 공포 자아내는 위험한 전쟁놀음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5월 5일 자 보도에 따르면, 7월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될 문건에 ‘우크라이나에 나토의 지상군은 투입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란다이 보도가 관심을 끄는 것은 최근 두어 달가량 프랑스와 폴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나토 소속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자국 병력을 직접 파병할 가능성을 거론해 오던 가운데 나왔기 때문이다그것은 이탈리아의 국방장관 구이도 크로세토가 같은 매체에 말한 것과도 공명하고 있다크로세토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국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수도 있다고 한 것을 두고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그런 발언의 취지와 유용성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바이든과 마크롱나토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출처: 나토 X 

5월 6일 러시아 외무부는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 나이젤 케이시를 초치했다. 이는 영국의 전 총리였다가 지금은 외무장관인 데이비드 캐머런이 최근에 했다는 발언을 놓고 강력한 경고를 내린 것이다캐머런은 로이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영국이 제공한 스톰쉐도우 미사일로 러시아 영토를 타격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다고 한다러시아가 강경하게 나선 것은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제공하며 어떤 경우에도 러시아 영토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던 입장과 캐머런의 발언이 서로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다러시아에서 볼 때 영국 미사일이 자국 영토 공격에 사용되면 영국이 자동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의 당사자가 되는 셈이니러시아군 또한 영국군의 병력이나 자산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직접 공격하겠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영국 대사 케이시가 러시아 외무부 건물을 떠난 직후 프랑스 대사 피에르 레비도 같은 장소로 초치되었다러시아 외무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레비를 소환한 것은 프랑스 지도부의 호전적 발언과 관련된” 사안 때문이었다고 한다마크롱은 지난 두어 달 동안 프랑스군이나 나토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해 왔는데이를 두고 러시아 측은 이제 그냥 있을 수 없다고 여긴 듯싶다러시아의 경고 내용이 알려진 바는 없으나 레비가 러시아 외무부에 소환된 다음 날(7거행된 푸틴의 다섯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 프랑스는 자국 대사 레비를 참석시킬 방침이라고 발표했다프랑스가 그런 조치를 한 것은 서방의 다른 나라들과는 구별된다독일은 푸틴의 이번 대선 당선 자체를 무효라고 말해왔으니 취임식에 자국 하객을 보냈을 리 없다미국의 경우 자국 대사를 취임식 시점에 맞춰 본국으로 소환했고영국 대사 역시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도발에 대한 러시아의 강경한 태도는 대사들을 초치해 경고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대사들을 초치한 바로 그날 러시아군 합동참모본부는 비전략 핵무기 사용과 관련해 훈련을 거행할 계획임을 밝히고 나섰다같은 날 러시아의 대통령실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도 해당 사안에 놓고러시아가 핵무기 훈련을 하는 것은 서방측이 즉각적 대응을 요구하는 전례 없는 발언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가 서방측이 엉뚱한 짓을 하면 그냥 있지 않겠다고 한 것은 엄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는 5월 9일의 전승절 기념식에서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와 함께 전술핵무기 관련 훈련을 실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훈련은 3단계로 이루어지고 있다두 번째 단계에는 벨라루스 동료들이 합동 행동에 참여할 것이다.”

간단하게 살펴본 유럽의 동향은 일부 국가들의 잘못된 처신이 핵무기가 동원되는 군사적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자칫하면 제3차 세계대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지금 진행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열전인 셈이다그 전쟁에는 핵무기로 무장한 세계 최대 군사 강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사실상 당사자로 개입해 있다양측이 직접 충돌하게 되면 핵전쟁과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이 결코 기우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를 도발하는 언행을 일삼고 있는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거나 적어도 계속 끌려는 속셈으로 보인다지금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것이 확실시된다. 유럽 나토 참가국들이 전쟁의 종식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수 있다러시아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면, 그동안 미국과 함께 러시아를 적대시한 그들은 당장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물론 이것은 미국의 앞잡이로 러시아와의 갈등 격화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취해온 유럽의 지배 블록에 해당하는 것이지 인민대중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국 대사가 러시아 외무부에 초치된 며칠 뒤, 영국 내무부는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 무관인 막심 엘로빅 대령을 추방한다고 발표했다제임스 클레벌리 내무장관이 하원에 나와서 밝힌 바에 따르면엘로빅이 미신고 군사 정보장교라는 것이 이유다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는 런던 측이 반러시아 조치를 정당화하려고 뻔뻔한 거짓말을 한다라며, “영국 정부가 러시아를 도발하려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뿐더러 대치의 강도를 높이려 시도하기까지 한다라고 비난했다.

자국 무관이 추방된 것을 놓고 러시아 측은 도발이라 하지만최근의 정세 흐름을 놓고 보면 그것은 영국이 5월 6일에 자국 대사가 러시아 외무부에 불려 가 훈계받은 것을 수모로 여겨 소아병적으로 보복한 것 이상은 아닌 듯하다영국은 지난 몇 달 동안 우크라이나 군과 함께 러시아의 크림반도 케르치 대교를 폭파할 계획을 세워온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경고를 단단히 받아서인지 영국은 그 계획은 일단 접은 듯하다이번에 러시아 무관을 추방한 것은 그로 인해 체면이 깎였다며 앙갚음한 정도로 여겨진다물론 영국의 그런 행동은 러시아의 강력한 군사적 공격 대상이 되는 일은 피하되 갈등은 계속 이어가기 위함일 수도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5월 11일 러시아를 도발하는 발언을 했다유럽연합은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X(옛 트위터)에 올렸다. “우리의 미래와 안보가 우크라이나에 걸려 있다키이우에 더 많은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고 내가 말한 이유가 그것이다앞으로 몇 주 우리는 더 많은 원조를 할 것이다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장비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크롱의 발언을 보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이전처럼 프랑스군이나 나토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하겠다고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영국이 러시아 무관을 추방한 것도 티격태격하는 수준일 뿐이고주먹 쥐고 드잡이하는 정도는 아니다후자의 경우라면 영국은 순항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면서 러시아 본토 공격을 해도 된다고 해야 하고프랑스는 자국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공개적으로 파병하려 들어야 한다그런 점을 보면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보도한 내용대로 나토 진영의 대러시아 전선에서 심각한 사태 악화는 당분간 없을 듯싶다미국도 대통령 바이든이 11월의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대러시아 전선을 강화할 여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5월이고 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7월까지는 두 달이나 남았다그 사이에 무슨 변수가 생길지는 알 수 없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인류가 당면한 최대의 전쟁이다. 승패는 이미 결정된 셈이지만, 아직 어떻게 종식될지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한동안 러시아의 필패를 점치고 사실을 호도하며 우크라이나군의 승세를 전하던 서방의 언론도 이제는 대부분 전선 전반에 걸쳐 러시아가 우세임을 인정하고 있다그래도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이 사실상 패배한 전쟁을 멈추고 외교적 협상을 통해 러시아와 함께 동유럽의 안보 질서를 새로이 구축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영국과 프랑스처럼 핵무기를 가진 러시아를 상대로 불장난을 벌이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위험해 보이는 것은 전쟁이 언제 끝날지 점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2001년 미국이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뒤 자국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정책을 일관되게 밝혀 왔다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니 지나치게 호전적인 듯하나 그렇지는 않다. 2022년 2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며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핵무기를 배치하려 했기 때문이다물론 돈바스의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탄압도 큰 몫을 차지했지만나토 동진과 우크라이나 내 핵무기 배치는 러시아에는 존망적 위협이었을 공산이 크다이번에 영국과 프랑스의 도발을 놓고 푸틴이 전술핵무기 훈련 카드를 꺼내 든 것도 두 나라의 행태가 용납할 수 없는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그리고 미국 등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할는지 전혀 미덥지 않다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그동안 서방 제국주의는 세계평화를 위해 한 일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자국 군사 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위협전술핵무기 사용 훈련 등을 보고 이번에는 한걸음 뒤로 물러선 것 같지만영국과 프랑스미국 등 서방 세력의 전쟁놀음은 쉬 끝날 것 같지 않다그 바람에 세계는 두려움과 공포에 떨어야 한다핵전쟁과 세계대전의 위험은 결코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덧붙이는 말

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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