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으로는, 무엇 하나 자신할 수 없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주, 시민들이 매일 밤 국회 앞에서 응원밤과 촛불을 들고 탄핵을 요구하고 있을 때,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추위 속에서도 많은 노동자, 시민, 청소년과 청년들이 그 자리를 지켜주시고, 윤석열 내란 시도를 규탄하고 탄핵과 퇴진을 외쳐주신 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 시간, 저는 국회 앞 대신, 차가운 바닷바람 불고 높다른 굴뚝과 거대한 기계 장치, 웅웅거리는 기계음으로 가득찬 석탄발전소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인천 영흥도를 거쳐 차로 5시간을 달려 경남 삼천포, 그리고 하동의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얼마 후면 직장인 석탄발전소가 폐쇄되어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를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들이었습니다. 

이 도시를 밝히는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노동자들도 민주주의를 허무는 윤석열 일당의 내란 사태에 분개하고 있었고, 몇몇은 인근 대도시에 열린 주말 집회에 참석하여 퇴진의 목소리도 보태겠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폐쇄를 앞두고 있는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윤석열 퇴진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을 일입니다. 윤석열 퇴진이 이루어지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약속했으나 무산되었던, 비정규직 발전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을 가능해질까요? 지금 우리는 그것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12월 6일, 발전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밤중 계엄이 무산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2월 6일 충남 태안에 있는 거대한 석탄발전소 안 한 건물 앞에서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줄지어 헌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2018년 석탄을 운송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김용균님의 6주기 추모 행사가 열린 것입니다. 이 안타까운 죽음 이후, 유가족과 동료 노동자들은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과 함께 싸워, 산업재해에서 원청 사업자의 책임을 묻는 ‘김용균법’을 힘겹게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김용균 사망 사고의 원청 사업자인 서부발전 사장의 법적 처벌을 얻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윤석열 탄핵은 이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될까요? 나아가 50인 미만 사업장에게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 법적 규정을 바꿔내는 계기가 될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그것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저와 동료들이 서울의 탄핵집회를 뒤로 하고 멀리 서해와 남해 바닷가에 자리한 석탄발전소의 발전노동자들을 만나러 다닌 것은, 가속되고 있는 기후위기 속에서 어떻게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또 실현시킬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부는 내년 말부터 충남 태안을 시작으로 30년이 지난 노후 석탄발전소들을 연속해서 폐쇄할 예정입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고 더 서둘러야 하는 일입니다만, 그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없습니다. “석탄발전소가 폐쇄되어도 노동자의 삶까지 폐쇄할 수 없다”는 절박한 목소리는 외면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은 폐쇄되는 석탄발전소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해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그것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발전소가 폐쇄되는 태안 앞바다에는 지금 그 만큼의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내지 않는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입니다. 그러나 이 해상풍력 발전단지에서 폐쇄되는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제공될런지 알 수 없습니다. 그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대부분 민간 기업, 심지어 해외 기업들에 의해서 개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 그리고 해외 기업에게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탄핵은 이 상황을 바꿔, 태안 앞바다의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석탄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되도록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그것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영흥 석탄발전소가 위치한 인천 앞바다를 비롯하여, 충남 태안과 보령, 전남 고흥, 목포, 신안, 제주도와 추자도, 울산 등의 앞바다에 있는 수많은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재생에너지 발전을 빠르게 확대해야하기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만, 그런데 마냥 환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추진되고 있는 해상풍력들의 대부분이 민간 기업과 자본, 게다가 해외 자본과 기업에 의해서 개발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공유재인  바람, 그리고 바다를 사유화하면서, 우리 모두의 부를 약탈할 태세입니다. 게다가 이윤 추구를 최우선시 하는 자본과 기업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수익성이 보장될 때까지 개발을 늦추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마음 급한 시민들만 애가 탑니다. 윤석열 탄핵은 해상풍력을 비롯하여 재생에너지의 사유화를 막는 대신 공적 개발로 재생에너지 발전을 빠르게 늘려 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그것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자신할 수 없는 이유는, 제게는 명확해 보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서 좌절된 일들, 시작된 일들, 심화된 일들이었습니다. 탄핵당한 윤석열 정권에서 더욱 심화된 일이기는 하지만, 탄핵 이후 들어설지 모를 민주당 누군가의 정권에서 이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그리 자신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군인을 동원해서 체포하고 감금까지 시도할 정도로 상호 적대하는 보수 양당 정치 세력들이지만, 민중과 자연을 보호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본의 이윤 보장을 위해서 착취하고 억압하는데 큰 차이를 없기 때문입니다. 탄핵이  ‘도로 민주당’이 되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12월 18일, 기후정의 오픈마이크. 기후정의동맹 

그러나 이것은 단지 보수 양당 체제에 대한 회의만은 아닙니다. 저는 이 내란 사태와 탄핵 광장 한편에서 자그맣게 떠오른 목소리 하나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 환경운동을 대표하던 이가 만든 환경재단이 운영하는 그린보트라는 크루즈 여행의 반환경성을 고발하는 목소리였습니다.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도 값비싼 크루즈 선상 위에서 저명한 사회 인사들과 기후위기와 환경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채식을 한다는 것만으로 환경운동의 일부로 인정되는 아찔한 공간입니다. 기후위기를 야기한 불평등한 사회 체제를 바꾸기 보다는 그저 교양을 소비하는 것으로 뒷걸음 친 환경운동의 퇴행을 보게 됩니다. 환경운동의 엘리트들이 이런 그린워싱을 버젓이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보수 양당 체제, 나아가 그것이 보호하려는 자본주의 성장체제제가 이토록 견고하며, 탄핵 너머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퇴진 광장에 살아 있는 말이 너무 부족합니다. 보수 양당 체제의 한쪽 편을 들며 그저 증오와 저주를 쏟아 붓는 이들의 말들만 가득합니다. 탄핵과 퇴진 이후 ‘도로 민주당’으로 귀결되고 말 그런 말들이 넘쳐 납니다. 그 속에서 민중과 자연에 대한 끔찍한 착취와 파괴를 고발하는 말들이 지워지고 가려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내란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찌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대답을 광장 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합니다. 탄핵과 퇴진을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탄핵 너머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탄핵 너머를 상상하고 또 현실화해나갈, 전국 곳곳에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민중의 수만 가지의 목소리를 들려줘야 합니다. 또한 그 목소리를 서로 엮어야 합니다. 그렇게 엮은 이야기의 사다리로 탄핵을 넘어 나갑시다.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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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12월 18일(수) 오후 5시 서울 북인사마당 앞에서 진행된 ‘기후위기 수괴, 윤석열 퇴진, 오픈 마이크’ 행사에서 발언되었던 내용입니다. 

12월 28일, 3차 기후정의 오픈마이크 웹포스터. 기후정의동맹 
덧붙이는 말

한재각은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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