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와 나의 미래

출처: Unsplash, Possessed Photography

내가 아마 9살, 1994년도쯤으로 기억한다. 어쩌다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봤다. 9살 어린이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영화가 그리는 2019년이라는 미래는 시종일관 암울하고 어둡기만 했다. 자동차는 하늘을 날아다녔고,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인조인간)는 4년이라는 유효기한을 다 채우고는 어떠한 치료나 수리도 없이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안드로이드가 죽음을 앞두고 내뱉는 멋들어진 대사(그 모든 순간들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는 삶과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너무나도 근사하게 보여줬고, 이 독백 씬은 지금까지도 영화사에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당시 9살 어린이에게 남은 건 2019년엔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귀찮고 힘든 일은 로봇 혹은 인조인간이 대신 하리라는 기대뿐이었다.

그리고 10년 후 19살인 2004년도에 극장에서 영화 ‘아이 로봇’을 봤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고안한 로봇 3원칙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로봇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가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흑막을 마주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내내 어떠한 감정적 동요도 없고, 마냥 논리적이기만 한 AI 로봇은 그 훌륭한 연산 능력과 논리적 사고를 가지고도 집에서 청소하고 설거지를 한다. AI의 인류를 향한 사랑이 너무나도 과했을까.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로봇 3원칙에 따라, 종국엔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인류를 지키기 위해 AI가 인류를 지배해야 한다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체제 전복을 꾀하는 데까지 이른다. ‘내 이론은 완벽해요(My logic is undeniable)’라는 대사로 드러나듯, 뛰어난 지적 능력을 자랑하는 로봇이 그저 완력만으로 체제 전복을 시도한다는 점은 지금에 와서 보면 조금 우습다. 심지어 영화의 배경은 무려 2035년이다.

2016년 초에 열렸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대에 수렴하는 바둑에서 알파고가 승리하면서, AI의 연산 능력이 인류가 가늠할 수 없는 저 너머에 다다랐음을 증명해 냈다. 알파고의 개발진들 빼고 알파고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이세돌의 유일한 승리를 견인한 그 수를 ‘신의 한 수’라 칭송하고, 인간이 가진 직관, 감이라는 AI가 절대 연산해 내지 못할 영역이 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구겨진 자존심을 챙겼다.

2024년 현재 우리는 여전히 대부분의 에너지를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고, 자동차가 지면을 떠나는 건 너무나도 요원해 보인다. 인간이 하기 싫은 허드렛일을 로봇, AI가 도와주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AI가 하지 못하는 궂은일을 인간이 손과 발이 되어 도맡아 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 일자리가 하나 둘 씩 사라져가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AI가 관리, 감독하는 거대한 플랫폼 노동자로 변모하고 있는 것을 보면 AI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영리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해나간다. 특히 인간 고유의 것이라 여겨졌던 그림, 음악, 글쓰기 등의 분야들이 가장 먼저 AI에게 점령당하리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일찍, 빠르게, 속수무책으로 함락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AI는 주문하는 무드에 맞게 곡도 써주고, 그에 어울리는 멜로디도 만들어주고, 입력하는 키워드에 따라 가사까지 써준다. 원하는 목소리로 노래도 불러주고, 믹싱 및 후작업까지 도맡아 듣기 적당한 정도의 음원을 뽑아준다. 내가 하면 몇 일, 몇 주가 걸릴지 모를 이 과정이 불과 몇 분 만에 끝난다. 심지어 디테일한 수정 및 가공이 가능하게끔 미디 파일로 추출도 해준다. 직업 음악인으로서 너무나도 분하지만, 딱히 어찌할 방법도 없기에 용기를 내 점령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chatGPT에게 ‘AI의 발전이 앞으로 음악산업에 끼칠 영향에 대해 알려줘’라고 질문했다. 그의 답변을 쉽게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1) 작곡 과정 - 멜로디, 코드 진행, 리듬 등을 신속히 생성해 작곡 과정에서의 효율성을 높여준다.

2) 혼합 및 마스터링 등의 후작업 - AI를 이용해 적은 비용으로 고품질의 음원을 제작할 수 있다.

3) 데이터 분석을 통한 마케팅 전략 수립 - 시장 트렌드를 파악, 소비자 행동을 예측하여 레이블과 아티스트들은 더욱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다.

4) 저작권 및 법적 문제 - AI가 만든 음악의 소유권 문제, 그리고 AI가 기존 음악을 학습하여 만든 결과물의 저작권 침해 가능성 등을 둘러싼 법적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5) 라이브 공연 및 인터랙티브 경험 - 공연 시 AI를 이용한 관객의 반응 실시간 분석을 통한 조정, VR 및 AR 등의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라이브 공연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역시나 점령군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에게서 생존을 위한 팁을 얻어낼 수 있을까 해서 던진 물음이었지만 그는 몇 개의 표현들로 나의 기대를 가차 없이 부수어버렸다. ‘효율성’, ‘저비용’,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표현들로 짐작 가능한 것은 음악이라는 콘텐츠의 전반적인 가치 하락이다. 기술적인 진입장벽이 사실상 모두 허물어지고, 제작비용이 낮아지니 당연히 공급은 많아질 것이고,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은 가늠할 수 없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3번까지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고,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바 하나 마나 한 답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4번 저작권에 관련 쟁점들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과연 어디서부터 작곡으로 인정해 줄 것인가, 그리고 표절 문제가 불거진다면 그것은 AI의 책임인가, AI에 명령어를 넣은 사람의 책임인가. 난 도무지 모르겠다. 5번은 가까운 미래에 구현되겠지만, 그 비용을 생각해 봤을 때 인디뮤지션 입장에서는 그저 먼 이야기로 보인다.

그래. 더 이상 돈 벌기는 글렀다 치자. 그렇다면 예술뽕이라도 가져야 그 멋에 취해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을 텐데,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할까. ‘작곡의 측면에서 AI의 결과물이 이를테면 비틀즈나 모차르트와 같은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예술적 성취를 가져올 수 있을까’ 라고 질문했다. chatGPT의 답변은 자못 겸손했다. 방대한 양의 음악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패턴이나 스타일은 충실히 재현할 수 있겠지만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반영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음악은 단순한 음의 조합을 넘어 감정적, 예술적 표현을 담고 있기에 인간의 깊은 감정적 경험이 전무한 AI가 이를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는 겸손한 진단과 함께, 인간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해 혁신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희미하고 자그마한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세돌의 ‘신의 한수’처럼 음악에도 AI가 도달할 수 없는 실낱같은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 만에 하나 정도는 AI를 도구삼아 혹은 AI를 도와 혁신적인 성취를 얻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위안삼아야 하는 것일까.

결국엔 돌고 돌아 허드렛일이라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손과 발이 없는 AI는 할 수 없는 허드렛일이 음악에선 어떤 것일까를 고민해 보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직접 목으로 부르고, 손으로 연주하는 것, 몸으로 때우는 라이브다. 여기에 예술가라는 자각을 위해 약간의 의미 부여를 해보자면,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라는 개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는 예술 작품의 원작만이 품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를 ‘아우라’라 칭하는데, ‘아우라’는 작품의 원본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포함,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문화적 맥락, 물리적 존재 등 모든 요소를 포괄한다. 아우라의 정의를 음악에 적용해 본다면, 음악의 원본은 무한정 복제가 가능한 음원, 판매를 위해 만들어지는 CD나 LP와 같은 상품이 아닌, 삶이라는 서사 안에서 창작 과정에 관여하고, 무대에서 직접 노래하고 연주하고 있을 때의 아티스트 그 자체가 아닐까. 이 정도의 자기최면은 있어야 내가 하는 일이 그저 AI가 못하는 허드렛일이 아닌,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가치를 가질 수도 있는 자그마한 가능성을 가진 예술 활동 혹은 예술 그 자체라 믿고, 그 예술뽕에 취해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말

김내현은 밴드 로큰롤라디오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가끔 글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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