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용한 마린 르펜 이미지 세탁을 멈춰라

시몽 아순(Simon Assoun) 인터뷰

프랑스 지배층은 점점 더 '이슬람 좌파'를 반유대주의의 가장 큰 출처로 제시하면서 극우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프랑스의 한 유대인 활동가가 유대인에 대한 옹호와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옹호를 대립시키는 것이 왜 위험한지 설명한다.

출처: Unsplash, Giulia Gasperini 

지난 6월 30일, 프랑스 조기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은 역사적으로 강력한 입지를 구축했다. 이번 일요일 결선 투표를 앞두고 마린 르펜의 반대자들은 그가 국회에서 절대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만을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의 범여권연합 앙상블(Emsemble)과, 좌파 신인민전선(NFP)은, 2차 투표에서 서로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각각 많은 후보를 사퇴시켰다. 

'공화주의 전선'을 재구성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오랫동안 NPF가 르펜의 국민연합만큼이나 큰 위협이라고 주장해온 정치적 중도층의 많은 사람들에게 뒤늦은, 절반 즈음의 후퇴로 여겨진다. 이들은 이 동맹이, 장 뤽 멜랑숑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가 가장 소리 높은 정치적 대리인인, 좌파 진영의 위험한 신종 반유대주의를 감싸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다. 광범위한 좌파 반유대주의에 대한 주장은 이스라엘-가자 전쟁을 배경으로 급증한 후, 프랑스 조기 총선의 주요 테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마린 르펜과 국민연합의 정상화에 기여했다. 국민연합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여 유죄 판결을 받은 장 마리 르펜과, 비시 체제의 협력자들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창당한 정당이다. 

시몽 아순(Simon Assoun)은 지난 봄에 결성된 탈식민주의·반인종주의 유대인 단체인 쩨덱(Tsedek!)의 대변인이다. 그는 반유대주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프랑스 내 정치적 반향, 극우 세력의 부상에 관해 자코뱅의 해리슨 스테틀러(Harrison Stetler)와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해리슨 스테틀러: 6월 9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한 이후, 프랑스 정치의 언어가 뒤집힌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퇴임한 장관인 오로르 베르제(Aurore Bergé)는 1차 투표 전 강경 우파 라디오 방송인 유럽 1(Europe 1)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연합이 아닌 마크롱주의 연합이 좌파 신인민전선(NFP)에 대항하는 "최고의 성벽"이라고 말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르펜을 비난하는 데 사용되었던 수사법을 뒤집은 것이다. 지난 몇 주 동안 드러난 것은 무엇인가?

시몽 아순: 우리는 지난 20년간 극우와 국민연합을 사소하게 여기며 보낸 세월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지금 폭발하고 있는 것은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에게 극단적인 중도 혹은 일부 사람들이 '부르주아 블록'이라 부르는 세력과  극우 사이의 정치적 분열을 강요하려는 시도이다. 

극우 세력이 국가 권력의 문턱에 이르렀고, 곧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된 지금, 많은 언론과 정치계급의 상당수가 좌파를 악마화하고 있다. 이른바 공화주의 전선의 역전이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프랑스가 직면한 주요 위험이 극우파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들은 좌파, 특히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를 지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마크롱 정부 하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많은 경향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는 민주적, 정치적 권리의 침식, 프랑스의 권위주의적 전환의 가속화, 인종차별의 확산을 의미한다. 

'공화주의 전선의 역전'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좌파가 이제 반유대주의의 온상이라는 생각이다. 최근 몇 주 동안, 이번 선거가 좌파 반유대주의에 대한 국민투표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반유대주의에 대항하는 싸움이 납치당했다. 유대인을 겨냥한 인종 차별에 대한 저항에서 정치적 자격 박탈의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내 생각에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LFI는 오랫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매우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프랑스에서 그것은 부르주아 블록의 정치와 분명한 결별을 의미하며, 우파 및 정치적 중도파와 경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연합을 이끌고 있다.

좌파를 깎아내리는 한 가지 방법은, 지난 20년간 우리가 보아온 '신 반유대주의'라는 이론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는 반유대주의를 중동 정치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아랍 또는 무슬림 커뮤니티의 특정 현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진보적이고 보편주의적인 '유대-기독교' 서방과, 야만적이고 테러적이며 광신적이고 반유대적인 중동을 대립시키는 문명사적 시각이 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반유대주의 문제는 서구 사회에서도 특별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유럽은 반유대주의의 본고장이자 600만 명이 학살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와 기억이 반유대주의를 강력한 낙인으로 만들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반유대주의는 정치적 반대자를 실격시키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며, 현재 전례 없는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좌파는 이러한 비난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멜랑숑은 오늘날 반유대주의는 '잔류' 문제라고 주장하며 이를 일축했다. 하지만 변호사 아리에 알리미(Arié Alimi)처럼 좌파의 진지한 인사들조차도 반유대주의 문제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극우의 '근본적, 역사적, 존재론적' 반유대주의와의 싸움을 우선시하지면서도, 알리미와 역사학자 뱅상 르미르(Vincent Lemire)는 르몽드에 함께 기고한 글에서 LFI 세력이 '선거주의적' 반유대주의를 유포한다고 비난했다. 멜랑숑의 호소는 프랑스 무슬림과 교외지역 노동계급 유권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추정되는 반유대주의를 악용하려는 그의 의지에 있다는 주장이다. 

좌파는 단결하여 반유대주의와의 싸움을 도구화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사회당(PS)이나 에콜로지스트(LE), 심지어 프랑스 공산당(PCF)이 아니라 바로 LFI다. 내가 신인민전선의 정당들에 가장 먼저 기대하는 것은 LFI가 반유대주의 정당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함께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에 동의하는 것이 반유대주의 문제에 대한 이견을 내부적으로 토론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모든 것은 맥락에 따라 살펴봐야 한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누가 말했는지, 어떤 청중을 향한 것이었는지, 혹은 어떤 정치적 순간이었는지에 따라 어떤 것들은 은밀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유대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말하기의 방식은 어떨까? 예를 들어, 2021년 "적은 무슬림이 아니라 금융가"라는 멜랑숑의 주장을 생각해 보라. 이 주장은 큰 스캔들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그가 금융가라고 말한 것은, 그것이 유대인을 가리키는 암호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 의도에 대한 심판이다. 반유대주의를 도구화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공개 토론의 가능성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거짓된 근거에 따라 반유대주의로 비난을 받으면 진정한 토론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토론은 왜곡되며, 특히 중립과는 거리가 먼 미디어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극우에서 중도 좌파 일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정치 스펙트럼의 대부분은 LFI의 반유대주의, 또는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울 것이다"와 같은 슬로건이나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반유대주의라는 생각의 합의에 이르렀다. 

이러한 주장이 반유대주의와의 싸움을 어떻게 약화시키는가?

매우 위험한 것은 우리가 유대인을 사회의 어떤 분열의 선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반유대주의를 중심으로 좌파에 맞선 캠페인을 프레임화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오늘날 그것은 LFI를 (정치적으로) 실격시키는 것이다. 과거에는 노란 조끼 시위나 반인종주의 조직을 비하하는 데 사용되었다. 유대인을 경계선으로 삼아 어느 정도 우리를 국가와 불안한 관계에 묶어두는 것이다. 우리는 좌파가 반유대주의자라거나 특정 소수 인종들이 반유대주의자라는 말을 듣는다. 유대인에게 남은 것은 국가뿐이다. 이는 유대인을 취약한 집단으로 만들어 유대인 커뮤니티의 고립감과 불안감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프랑스에는 여전히 반유대주의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유대주의의)도구화는 우리에게 또 다른 표적을 제시하고, 유대인을 사회적 분노를 회피하는 방패막이로 만든다. 유대인은 권력과 가깝다거나 과잉 보호되고 특권을 누리는 소수라는 등 온갖 종류의 반유대주의적 편견과 진부한 표현에 대한 문을 열어준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도구화는 반유대주의와의 싸움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비난은 좌파의 일부 성공에 대한 반응일까? 가자지구 휴전을 위한 프랑스의 운동과 쩨덱과 같은 단체의 조직화 덕분에 신인민전선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프랑스 정책의 상당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NFP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분명한 것은 8개월간의 투쟁이 점점 더 많은 인구를 동원하고, 분쟁에 대한 프랑스의 입장을 정치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난 겨울에 있었던 대규모 시위와 올봄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이 이 운동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 방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또한, 이 문제에 대해 특히 경직된 프랑스 사회의 맥락 안에서도 노선을 고수한 LFI의 끈기에도 빚을 졌다. 

따라서 즉각적인 휴전 요구, 국제법 수호에 대한 명확한 입장,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촉구,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인도 금지 등, NFP 프로그램에 제시된 정책 변화를 성공적으로 강제한 것은 집단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전쟁의 집단학살 위험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분쟁에 대한 지배적인 미디어 프레임에 반대담론을 제기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여전히 이스라엘이 자기 방어어의 권리 내에서 행동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전쟁을 이해함으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적, 정치적, 식민지적 맥락을 완전히 은폐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되돌리지 못했다. 이것 역시 결국 국민연합의 돌파구 중 일부이다. NFP  입장 내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접근 방식을 넘어, 우리가 곧 직면할 수 있는 것은 좌파의 중대한 패배다.

쩨덱은 프랑스 내 유대인을 위한 새로운 정치 공간으로 작년 여름에 설립되었다. 이 단체를 설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특히 더 이상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충돌하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집(우리가 부르길 좋아하는 대로 일컫기를)에 대한 진지한 정치적 요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이스라엘 국가와 시오니즘과의 유대 관계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해방시키고 싶었다. 우리는 반식민주의, 보편적 평등, 연대와 완전히 관계맺은 유대인의 개념을 다시 의제로 삼고 싶었다. 

존엄성과 정체성에 대한 특정 개념을 재발견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조직되고 발전해 온 방식에 의해 묻혀버린, 문화적, 정신적 전통을 되살리고 싶었다. 나의 가족과 아랍 및 베르베르 문화와의 연관성을 예로 들어보겠다.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비슷한 문화적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어떤 가족들에게는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다. 내 가족의 배경에 관한 한, 우리는 본질적으로 아랍인이다! 우리는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음악을 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인 혐오가 만연해 있고, "아니, 우리는 아랍인이 아니다. 우리는 유대인이다"라는 식의 숱한 말들을 듣는다. 쩨덱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이러한 의문을 다루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되어 왔다. 많은 좋은 일들을 해냈다. 

그러나 쩨덱은 프랑스의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상대적으로 주변적인 존재로 남아 있으며, 우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기존의 많은 단체와 비교했을 때 정치적 이방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의 유대인 커뮤니티는 두 가지 역사가 교차하는 교차로에 서 있다. 한편으로는 홀로코스트와 협력주의 비시 체제에 의한 유대인 추방이라는 역사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지 역사도 있다. 프랑스 유대인의 대다수는 북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세파르디계이다. 따라서 이 공동체는 이중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절멸과 비시 체제에 대한 트라우마다. 북아프리카의 아랍과 마그레브 문화에서 뿌리 뽑힌 트라우마도 존재한다. 당시 극심한 반유대주의가 만연했던 알제리 사회에서 유대인들에게 프랑스 국적(1870년 크레미외 법령)을 부여했지만, 진정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쫓겨난 트라우마도 있다. 프랑스 유대인 중 상당수가 세파르디계라는 사실도 과거 북아프리카 무슬림과의 분열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투영하는 데 일조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유대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랑스 전체가 나치즘에 저항하는 데 동참했다는 신화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은 여전히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질문이 마침내 제기될 수 있게 되자 이스라엘 국가와의 정체성은 프랑스 유대인의 정체성 재구성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논쟁의 잔인한 아이러니 중 하나는 우리가 비시 체제 이후 최초로 극우 정부의 정점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반유대주의의 주요 지지자는 민족주의 우파였다. 그리고 이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멀리 있지 않다.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 비시 체제의 지도자), 샤를 모라스(Charles Maurras, 파시스트 단체 'Action Française'의 지도자)를 복권하려는 시도를 보라!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나폴레옹 시대의 반유대주의를 재인용하여 이슬람 '분리주의'에 대한 자신의 캠페인을 옹호하면서 "나폴레옹이 유대인에게 부과한 것을 국가가 무슬림에게 부과하기를" 원한다고 썼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큰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난 20년 동안 사회가 반유대주의에 대한 문제를 재정의하고 반유대주의에 맞서 싸우는 방식을 재구성해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반유대주의'라는 이론의 전부다. 

이는 좌파가 어떻게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논의로 돌아간다. 우리는 반유대주의에 맞선 싸움을, 프랑스의 인종주의에 맞선 더 광범위한 싸움과 다시 통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늘날 정부가 두 가지를 분리하려는 시도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 반유대주의의 현재와 역사를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도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주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각 형태의 인종주의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하지만 정치 전략 측면에서 볼 때 반유대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반인종주의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우파가 반유대주의에 맞서 싸우는 데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자신들의 인종주의와 이슬람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둘은 진정으로 함께 맞서야 한다. 

[출처] Stop Using Jews to Launder Marine Le Pen’s Image

[번역] 류민

덧붙이는 말

시몽 아순(Simon Assoun)은 프랑스의 반인종주의 유대인 단체인 쩨덱의 대변인이다. 해리슨 스테틀러(Harrison Stetler)는 파리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교사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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