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는 인구 1억7,100만 명, 2022년 기준 GDP 4,602억 달러로 남부 아시아의 중요한 나라다. 한국이 인구 5천만의 규모로 같은 해 GDP가 1조6,740억 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방글라데시의 경제는 상당히 낙후된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방글라데시는 1인당 GDP가 2020년 1,888달러로 인도의 1,877달러를 앞서며,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한동안 같은 나라를 이루던 파키스탄의 2022년 1,589달러보다는 상당히 더 많다. 방글라데시의 경제는 2010년대 이후 발전 속도가 빨라져 2011〜19년 사이에 연간 6.5~8.2%의 성장률을 이루었고,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타격을 받았지만 2022년에는 다시 7.1%의 고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구 규모가 큰 남아시아 국가들 가운데는 상당히 양호한 경제적 발전을 기록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최근에 이 나라에 큰 정변이 일어났다. 8월 5일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사임한 뒤 인도로 망명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하시나는 올해 들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 시위가 일어나자 강경한 태도로 대응하더니 수백 명이 목숨을 잃어도 소요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최근에는 노동자와 시민들까지 시위에 가담하며 사태가 악화하자 퇴로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시의 이번 사태는 정권에 맞서 싸운 학생들의 승리,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승리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 특히 서방 언론의 평가가 그렇다. 서방의 언론은 방글라데시가 이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학생들의 뒤에 미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이번 정변은 독재에 저항한 민주 혁명의 승리라기에는 미국이 개입하여 색깔 혁명을 일으킨 정황이 너무 분명하다.
인도로 망명한 한 뒤 하시나 전 총리는 그곳 유력 경제일간지 더이코노믹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사임한 것은 시체 행렬을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학생들의 시체를 넘으며 권력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총리직을 사임했다. 세인트마틴섬의 주권을 포기하고 미국이 벵골만을 지배하게 했더라면 나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 나라 국민에게 호소한다, ‘제발 과격파에 조종당하지 말라’.” 하시나의 발언은 그가 민주주의를 짓밟다가 학생들의 저항에 밀려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전하는 일각의 소식이나 평가와는 사태를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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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서로 정반대되는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서 어느 쪽 말이 옳은지 선뜻 결론을 내리기 주저된다. 그래도 상충하는 관련 보도나 분석을 종합해보면 진상을 전혀 모를 바는 아니다. 하시나 정권이 실책을 저질렀고 반민주적 지배를 자행한 것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그렇기는 해도 지난 1월 총선을 거치며 합법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정권이 대학생들의 항의 시위로 무너진 것은 미 제국주의가 개입한 결과임이 분명한 것 같다. 다시 말해 학생 노동자 시민이 하시나 정권에 맞서 거리에 나선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 보이나, 대중 시위가 수많은 희생자를 내는 폭력 사태로, 그리고 정권 붕괴로까지 이어진 것은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정변을 일으키기로 유명한 미국의 공작 효과로 볼 점이 농후한 것이다.
하시나 정권을 붕괴시킨 시위는 방글라데시가 1971년에 파키스탄에서 분리 독립할 때 공헌한 유공자들의 후손이 공직 취업 시 받아오던 특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제도개혁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으나 정부가 이를 무시하자 학생들의 항의 시위가 그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수백 명이 생명을 잃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이 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한 학생들은 주로 다카대학의 정치학과 소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시위에 나선 것은 취업 할당제 개혁을 요구한 학생들이었지만 국가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노동자계급과 중산층이 참여하며 대규모 봉기로 이어진다. 강경 진압에도 시위의 동력이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을 보고 그동안 정권을 옹호해오던 군부가 하시나 총리에게 불상사를 막아야 한다며 최후통첩을 하면서 사태는 일단 종결되었다. 하시나는 자기의 인척이기도 한 육군참모총장 와케르 우즈 자만 장군의 권고에 따라 총리직을 사임하고 인도로 망명길에 올랐다고 한다.
한편으로 보면 방글라데시 사태는 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난 듯하다. 국가의 특정 세력이 누리던 특혜가 불공정하다고 여긴 학생들의 불만과 항의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군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한 모양새다. 방글라데시 군부는 노동자는 배제하고 시민과 학생 대표 등 17명으로 구성된 과도정부를 구성하도록 하고, 그들의 추천을 받아 교수 출신 은행가 무함마드 유누스를 ‘수석 고문’으로 인정했다. 과도정부가 떠맡은 임무는 불안한 정국을 수습하고 폭력을 진압해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차기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다. 수석 고문이 된 유누스는 가난한 이들이 자활 사업을 할 수 있게 돈을 빌려주는 ‘소액대출’ 운동을 벌인 ‘공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하시나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탄압을 받아 외국에서 체류하고 있던 그가 과도정부의 수장이 된 것은 시위를 주도한 다카대학 학생들의 요구가 군부에 받아들여진 결과라고 한다. 이렇게 이번 사태를 정리하는 것은 독재 정부의 잘못을 물어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는 셈이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사태는 민주항쟁의 승리로만 볼 수 없는 측면들이 많다. 우선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들 가운데 다카대학 그것도 정치학과 출신이 많다는 점이 수상하다. 다카대학의 정치학과는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긴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학과는 수상쩍은 ‘방글라데시에서의 역정보 대처(Confronting Misinformation in Bangladesh)’ 집단의 재정지원을 받는 교수들로 가득 차 있다. 그중 두 사람이 아주 후한 NED (미국의 국립 민주주의 기금)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프로젝트를 지휘한다. 그리고 무함마드 유누스를 차기 방글라데시 정부의 수석 고문으로 ‘제안한’ 것도 다름 아닌 이들 정치학과의 항의자/선전-선동 요원들이다.” 페페 에스코바르의 이 발언은 방글라데시의 민주항쟁이 미국의 NED 지원을 받는 다카대학 정치학과의 정치공학으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미국이 하시나 정권의 전복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마음에 들지 않는 외국 정권의 전복은 미국이 전매특허로 자행하는 외교전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색깔 혁명을 일으켜왔다. 남아시아만 놓고 봐도 방글라데시 이외에 최근에 파키스탄에서 군부 쿠데타를 지원하여 합법적 정부를 꾸리고 있던 칸을 2022년 퇴출했고, 지금도 최근에 대통령선거가 끝난 인도네시아에서도 색깔 혁명을 진행 중이다(인도네시아의 2월 대선 당선자는 국방부 장관 출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로, 10월 20일 취임할 예정이며, 대선 당선자 신분으로 7월 31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바 있다.).
인도의 전 터키 주재 대사 M. K. 바드라쿠마르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방글라데시 쿠데타에 중국계 미국인으로 현재 미 국무부의 남중아시아 담당 차관보를 맡은 도널드 루가 개입했을 공산이 크다. 루는 5월 중순에 방글라데시를 방문해 고위 정부 관료, 시민사회 지도자들과 만났고, 그의 방문 뒤 미국은 당시 방글라데시 육군참모총장 아지즈 아마드 장군에 대해 부패 연루를 언급하며 제제를 발표한 바 있다. 바드라쿠마르는 루가 2003〜06년 사이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 주재 대사관의 부대사로 근무하며 거기서 ‘튤립 혁명’이 일어나도록 공작했고, 이후에 알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파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색깔 혁명을 지휘했다고 말한다.
다음은 루가 방글라데시 방문 직후 미국의 소리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하는 일은 우리의 우선 사항이다. 우리는 시민사회와 저널리스트들의 중요한 작업을 계속 지원할 것이고 세계 다른 나라에서처럼 방글라데시의 민주적 과정과 제도를 계속 옹호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1월의) 선거 사이클이 폭력으로 훼손된 것을 공개적으로 규탄했으며, 방글라데시 정부에 폭력 사태를 신뢰성 있게 수사해 가해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들 문제에 계속 관여할 것이다.” 이 발언을 놓고 보면 이달 초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하시나 정권이 무너진 것은 미국이 방글라데시 내정에 “계속 관여한” 것이 성과를 거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큰 시야에서 보면 방글라데시의 이번 정변은 세계사적 변동 과정에서 ‘제국의 역습’이 성공한 사례로 보인다. 쫓겨난 하시나 전 총리가 세인트마틴섬의 주권을 양도했더라면 미국이 자신을 축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벵골만에 있는 그 작은 섬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비행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눈독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진다. 지리적 요충지에 있는 세인트마틴섬을 장악하면 미국은 중국이 인도양으로 나갈 길목을 막을 수 있고,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인도로 이어지는 통로를 장악해 중국이 진행하는 ‘일대일로 사업’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서 그동안 인도와 우호 관계를 맺어온 하시나 정권과는 다른 외교 노선을 펼치면, 최근에 브릭스의 주요 국가로 비서방 편향을 보이기 시작한 인도에 대해 친서방 외교 행보를 하도록 압박할 여지도 생긴다.
이번에 과도정부의 수장이 된 유누스는 전형적인 친미 신자유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했고, 미 대통령이 주는 최고 훈장인 자유 훈장, 의회가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황금 훈장을 받은 바도 있다. 그는 소액 은행을 운영한 것으로 미국의 전 대통령 빌 클린턴 등 신자유주의자들의 로비에 힘입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자신이 대출해준 방글라데시 시골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액의 이자를 물려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유누스는 21일에 NED와 함께 세계 전역에서 친미 색깔 혁명에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대표 서맨사 파워와 만나 인권, 거버넌스, 경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과도정부를 어떻게 가장 잘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해진다.
서방세계는 최근 들어 과거의 영광을 급격하게 잃어가는 중이다. 브릭스와 상하이협력기구 등 서방이 주도한 G7이나 나토에 대항하는 국제기구가 만들어져 과거처럼 일방적인 서방의 제국주의적 지배는 이제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이 자신이 그동안 누리던 권력을 순순히 내놓을 리는 없다. 제국주의적 제국은 헤게모니의 위기에 봉착하면 할수록 대세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려 든다. 방글라데시의 사태를 보면 그런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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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