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근절 선언과 눈앞의 들보

반복되는 다짐, 임금체불 근절 선언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22일 추석 전 3주간 5,000개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하는 등 ‘임금체불 집중청산 운영계획’을 마련해 시행하겠다며, 전국의 모든 근로감독관 2,200명을 총동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근로감독은 최근 임금체불이 많이 증가한 건설, 음식·숙박, 정보통신업(IT 포함) 등 취약 업종을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노동부가 모처럼 열심히 하겠다는데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내가 꽈배기라서 그런 것인가? 

찜찜함의 원인을 찾고자 ‘고용노동부’와 ‘임금체불 근절’을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다. 가장 위에 ‘고용노동부, 새해 첫 민생행보는 “임금체불 근절”’이라는 보도자료가 나온다. 스크롤을 내려보면 ‘임금체불 엄단, 대국민 담화문 발표’라는 보도자료가 검색된다. 보도자료의 날짜는 각각 2023년 9월 25일과 2024년 1월 4일이다. 그러나 8월 1일에는 올해 상반기 임금체불이 처음으로 1조를 넘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기시감이 든 이유가 밝혀졌다. 그러니까 정부는 매번 ‘선언’을 해온 것이다.

▲ 임금체불 근절을 매번 다짐하는 고용노동부

다단계 하청에서 발생하는 임금 과소지급이 더 문제인 이유

'임금체불'은 보통 '미지급', '지연지급', '과소지급'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과소지급은 지급의무가 있는 임금을 전부 주지 않고 일부만 지급한 경우를 뜻하는데, '과소'라는 표현 때문에 미지급보다 경한 범죄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일부'만 지급했다는 점을 살펴보자. 어떤 수당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법을 잘 몰라서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즉, '알면서도' 전부를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고의성이 추단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소지급은 재직자에게는 근로기준법 제43조(임금 지급)의 원칙 중 전액지급의 원칙 위반에, 퇴직자에게는 제36조(금품청산) 위반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과소지급은 직접 고용관계에서도 문제지만, 간접고용, 특히 다단계 하청관계에서는 더욱 문제가 된다. 원청이 제대로 노무비를 계산해 내려주더라도, 하청업체의 관리자가 이를 떼어먹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절도가 아니라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중도 퇴근(임금 꺾기), 공짜노동(초과근로에 대한 대가 미지급), 강제 연차소진 등을 통해 노무비를 남겨먹는 사례는 다단계 하청관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즉, 과소지급은 전부 미지급과 비교할 때 보다 양호한 법 위반이 아니라, 한 입에 먹으면 탈이 나니 야금야금 갈취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복잡한 임금계산식을 사용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눈 밖에 나면 계약을 종료시켜 신고할 엄두를 못내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신고할 계기가 생기지 않도록 일종의 '리스크 관리'를 하고, 신고당하지 않으면 계속 갈취한다. 용역업체 관리자들에게 과소지급 관행은 마치 '황금알을 낳는 오리'와 같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가 발견되었음에도, 고용노동부는 시정지시가 이행되었으니 문제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문체부와 청와대 재단은 보고를 통해 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며 용역업체의 책임이라고 꼬리를 자른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오히려 노조법 2·3조 개정의 필요성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처럼 법 위반 사실이 발견되더라도 지급하면 그냥 넘어가는 관행은 누가 만들었을까?

고용노동부의 태도가 법 위반을 만든다

고용노동부는 김모씨가 제기한 근로감독청원 결과 잘못이 발견된 부분에 대하여 시정을 지시했고, 이행된 것을 확인했다는 답변을 보냈다. 그리고 청와대재단은 용역업체로부터 세부 내역을 받지 못해 임금체불이 발생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앞으로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언뜻 보면 일단락 된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근로기준법 제3조(근로조건의 기준)는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임을 명시하고 있다. 즉, 근로기준법 또는 최저임금법 이상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다면 이는 당연히 근로조건에 포함되고, 근로감독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서울고용노동청은 "취업규칙, 근로계약서 확인 결과 임금 항목에 사용자의 상여금 지급 의무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지침에 따라 청와대 재단과 용역업체 사이에 작성된 '과업지시서' 또는 '확약서' 등을 검토하지도 않았다. 만약 청와대 재단이 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때 소속 노동자에게 상여금을 지급할 것을 명시해 '위탁업무운영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기준으로 도급비를 지급했다면 이는 민법 제539조(제삼자를 위한 계약)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용역업체가 입찰 당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지침'을 준수할 것을 입찰서에 명시하였다면 이는 입찰공고(청약의 유인)에 대한 용역업체의 청약으로, 낙찰이 될 경우 별도의 배제 사유 또는 제안서의 내용을 배제하는 새로운 계약이 없으면 입찰 제안서가 계약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근로감독은 이런 가능성을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고용노동청은 청원인의 '용역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의무 조항'이 명시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의에 대하여, "고용승계란 경영주체의 변경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해당 근로자들의 경우 근로기간 동안 사업주가 변경된 사실이 없어 고용승계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음"이라고 다소 생뚱맞은 답변을 했다. 정말로 질문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더 문제인 것은 그 다음이다. 청원인이 근로감독관에게 메일로 고용승계 거부(라고 표현되어 있으나 질문의 의도는 재계약 거부, 즉 '갱신 기대권'을 물은듯 하다)에 대하여 재차 질문을 보내자, 근로감독관은 "23.12.31.에 퇴사한 근로자들의 자필 서명 사직서를 검토한 결과, 사직의 사유는 '계약만료'로 작성되어 있으므로 그 효력은 유효하다고 보인다"고 답변하였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계약만료'는 대표적인 근로관계 자동종료 사유 중 하나로, 굳이 사직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으며 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서만 제출하면 피보험자격 상실사유에 대한 쟁점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직서를 작성했다는 것은 갱신 기대권 다툼에 대비하여 회사에서 수를 쓴 것이고, 근로자에게 작성할 것을 강요했다면 일종의 기망행위다. 관련하여 최근 전북지방노동위원회는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작성된 '계약만료'를 사유로 한 사직서의 효력을 무효로 판단한 바 있다(이와 유사한 법원 판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되려 용역업체의 문제적 행위를 노동청이 근로감독을 통해 유효하다고 확인해준 셈이다.

▲ 청원인의 질의에 대한 서울고용노동청의 메일 회신

▲ 사직서를 제출할 이유가 없어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무효로 판단된 사직서

이번 사건이 의미와 시사점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재단 측은 “매달 기성금을 지급하면서 제대로 노동자에게 급여가 들어갔는지 총액만 점검하고 세부 내역을 받지 못해 몰랐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다단계 하청관계에서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제대로 임금이 지급되는지 사전에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세부 내역을 받더라도 현장 근무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연장근로수당 또는 휴일근로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었는지 원청에서 아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 청와대재단과 계약을 체결한 A용역업체에 대한 서울고용노동청 근로감독 결과(자료제공: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실)

문화체육관광부와 청와대 재단은 “사실관계 파악이 먼저”라며 법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시정조치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애초에 누군가가 용기를 내 근로감독청원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사실이다. 2017년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 향후 2년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을 ‘상시 지속적 업무’로 정하며 이 업무를 하는 인력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해당 기준대로라면 청와대 청소·경비·입장 운영관리도 상시 지속적 업무에 속하지만 정부는 정규직 직접고용을 하지 않고,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결코 이 근로감독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명절이 다가오면 습관적으로 임금체불 근절을 선언하지만, 정작 청와대 재단에서 발생한 임금체불을 몰랐음이 밝혀진 이 촌극이 보여주는 현실은 모두가 임금체불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체불이 발생한 뒤 사후적으로 잡아낼 것이 아니라 체불이 발생하는 유인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보여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도 제시해준다. 

청와대에서 ‘심각한 민생범죄’인 임금체불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와 대통령실은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법치주의에 따라 엄벌에 처하고, 청와대 재단과 계약한 다른 용역업체들에 대한 근로감독을 시행하고, 문제가 발생한 업체가 재입찰할 경우 우선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그야말로 눈앞의 들보도 보지 못하는 셈이다.

현상에만 집중하지 않고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필자가 만난 근로감독관들은 대부분 바빴다. 동시에 처리 중인 사건이 50개가 넘는다고 말해준 감독관도 있다(저 숫자가 많은 숫자가 아니라는 증언도 있다). 이렇게 쥐고 있는 사건이 많은데 사건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결국 이는 대리인 없이 진정을 제기한 당사자에게 과도한 증명책임 요구라는 반사적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주장하는 자에게 증명책임 있다'는 원칙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노동법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이 원칙을 강변하기에는 다소 민망하지 않은가? 근로감독관은 특별사법경찰관으로서 수사 의무와 권한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권한은 사용되어야 한다.

정부의 생색내기용 정책 또는 명절 맞이 연례행사가 아닌,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고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벽에 구멍이 뚫려 물이 콸콸 새고 있는데 물만 퍼나른다고 해결될 수 있을까? 안그래도 바쁜 근로감독관 괴롭히기는 그만하고, 근로감독관 충원·재직자 임금체불에 대한 지연이자제 도입·배액배상제 등 필요한 민생 법률만이라도 먼저 통과시키자. 물이 새고 있으면 응당 구멍부터 찾아 메워야 한다. 제발 상식대로 하자!

덧붙이는 말

하은성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 공인노무사다. 노동자성 위장, 상시근로자 수 축소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할말 잇 수다'를 기획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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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 문체부는 청와대재단에 하청을 했는데 왜 청와대재단은 직고용을 하지 않고 재하청하는지 모르겠네요. 하청으로 떡고물이 있는건 아닌지....

  • 관리감독도 관리가 안되는데 누굴 감독할수 있는지 모르겠네 하청을 줄게 아니라 문체부에서 직접 관리를 하는게 문제가 안생기고 덜 복잡할것 같은데.. 비리를 찾아 내려고 시간낭비 하기보다 비리를 안생기게 막는게 맞는거 아닌가 직접 채용하고 관리하는게 시간 낭비 인건낭비 안하고 서로가 윈윈일듯

  • 유인촌장관님 청와대재단으로 하청한번으로 끝내죠
    280명 태업해서 국가적 망신 당하지 마시고....

  • 문체부는 청와대재단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있나요 몰랐다고 하겠지 뭐하는지 모르겠네 용역업체 고용해서 청와대 운영하고 남은돈으로 용산~

  •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잡고 다시는 이런 일이 안생기게 좋은 선례를 만들어야겠네요

  • 완전 코메디보다 더 웃기네
    등잔밑이 어둡다고 정부가 위반해 놓고
    먼 단속.....

  • 국가에서 권장하는 표준근로계약서가 아닌 회사에서 이미로 작서한 근로계약서로 계약을 하게되면 비빌과 관련하여 형사처벌 조항이 많은데 이는 회사에서 불법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므로 근로자들 스스로가 위축되지 말고 당당히 권리를 찾아야만 가마솥의 개구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근로자 여러분 용기를 가지세요

  • 정확하게 확인하는 과정과 나몰라라하는 사태는 없기를 바랍니다

  • 청와대를 지금처럼 국민에게 개방한다면 상시, 지속 업무에 해당할 거고 그렇다면 문체부 또는 청와대재단이 직접고용 해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부는 모범 사용자로서 표본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문제를 바로잡고 모든이들이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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