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Unsplash, Luis Alfonso Orellana
전후 기간 동안 대도시 국가에서 존재했던 민주주의는 지금처럼 기이한 상태에 있었던 적이 없다.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뜻에 맞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먼저 국민의 뜻을 확인한 후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통상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의 이익에 따라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고, 그 후에 선전 기구가 국민에게 이 정책의 타당성을 설득함으로써 둘 사이의 일치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공공 여론과 지배계급의 요구가 일치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공 여론의 조작을 통해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 모든 선전에도 불구하고 공공 여론은 지배계급이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정책과는 전혀 다른 정책을 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배계급이 선호하는 정책이 공공 여론이 분명히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진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정치 정당이 이 정책을 지지하게 함으로써 가능해지고 있다. 즉, 많은 정치 단체들이 유권자의 다수 의견에 반하여 이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대다수의 정치 단체들 사이에 넓은 합의가 있다는 것, 둘째, 이 정당들이 합의한 것과 국민이 원하는 것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 정책들은 사소한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라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대다수는 팔레스타인 국민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 전쟁에 충격을 받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이스라엘에 무기를 계속 공급하는 것을 중단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오히려 그 반대로 하고 있으며, 심지어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될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내 여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을 원하지 않는다. 여론은 협상된 평화를 통한 갈등 종식을 원하지만, 미국 정부는 (영국과 함께) 평화적 해결의 모든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전쟁의 발단은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에게 민스크 협정에 대한 반대를 전달한 것이며, 심지어 푸틴이 평화를 위한 제안을 했을 때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게 전투를 촉구해 평화의 가능성을 끝내버렸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네타냐후와 젤렌스키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정책에 동의하고 있다. 이는 여론이 평화를 원하고, 우크라이나의 모험주의가 핵전쟁을 촉발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러한 국민의 요구와 정치 기득권의 결정 사이의 대조는 모든 대도시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 그 차이는 특히 두드러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독일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독일이 에너지 필요를 위해 전적으로 러시아 가스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가스 부족을 초래했고, 미국에서 더 비싼 대체 에너지를 수입하면서 가스 가격이 상승해 독일 노동자의 생활 수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 노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녹색당으로 구성된 여당 연합이나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사회당으로 구성된 주요 야당 모두 이 갈등의 평화적 해결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독일 정치 기득권은 러시아 군대가 독일 국경에 도착할 것이라는 공포를 조성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독일군이 러시아 국경에 있는 리투아니아에 주둔하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 노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바라며 네오파시스트 AfD로 향하고 있다. 이 정당은 전쟁에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으로 권력을 잡으면 그 약속을 배신할 것이 뻔하다. 또한 전쟁 문제로 좌파 정당 디 링케에서 탈퇴한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새로운 좌파 정당도 주목받고 있다.
가자 지구에서의 대량 학살에 대한 독일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독일 국민의 대다수가 이 학살에 반대하고 있지만,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 학살에 대한 모든 반대를 "반유대주의"로 규정하고 범죄화했다. 이스라엘의 학살에 반대하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연설자들이 초청된 회의를 독일 정부가 해산시켰다. 반유대주의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침략을 반대하는 모든 움직임을 억압하는 일은 다른 대도시 국가에서도 퍼져 있다. 영국에서는 노동당의 전 지도자인 제레미 코빈이 팔레스타인 지지 때문에 "반유대주의"라는 이유로 당에서 축출되었고, 미국의 대학 캠퍼스에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시위가 억압되고 있다.
이처럼 전쟁과 평화라는 중요한 문제가 정치적 논의에서 아예 제외되는 방식으로 국민 여론을 무시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가오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대선 토론이나 선거운동에서 논의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의견을 달리하는 다른 주제가 중심에 설 것이고, 국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문제는 논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 기득권이 이스라엘의 행동을 지지하는 한 가지 이유는 친이스라엘 기부자들로부터 받는 막대한 자금이다. 8월 21일 델피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영국 노동당의 신임 총리 키어 스타머의 내각 구성원 중 절반이 친이스라엘 자금으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같은 저널에 따르면, 영국 보수당 의원 중 3분의 1이 친이스라엘 자금으로 선거 자금을 조달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영국의 주요 정당 모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자금을 받으면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지지하는 일은 초당적인 일이 되었다.
반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에서 자말 보우먼과 코리 부시 두 하원의원은 친이스라엘 로비 단체인 AIPAC의 개입으로 선거에서 패배했다. 8월 31일 델피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자말 보우먼의 패배를 위해 1,700만 달러, 코리 부시에 대한 광고 캠페인을 위해 900만 달러가 쓰였다. 코리 부시에 대한 캠페인은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언급하지 않았다. AIPAC은 그 이슈에서 공공 여론이 코리 부시를 지지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전쟁과 평화라는 중요한 결정이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익을 가진 로비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도시 국가에서는 선전으로 불만을 조작하던 시기에서, 이제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불만을 완전히 무시하는 시기로 전환되었다. 이는 민주주의가 약화되는 새로운 단계를 의미하며, 정치 기득권의 전례 없는 도덕적 파산을 나타낸다. 이러한 도덕적 파산은 파시즘의 성장을 위한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파시즘이 권력을 잡느냐에 상관없이 대도시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약화는 이미 국민을 전례 없이 무력화시키고 있다.
[출처] The Bizarre State of Western Democracy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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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서 가르쳤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