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도 너무 비싼 자동차 : 노동력의 가치 저하와 부채 증가

지난 2월 15일에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3년에 신규로 등록된 승용차의 평균 가격이 4,922만 원이었다고 한다올해의 찻값은 더 뛰었다현대차와 기아차의 분기별 보고로는 2024년 1분기 승용차 평균 가격은 5,319만 원이라 한다. 5년 전 신차 평균 가격 3,620만 원 대비 40% 가까이 더 오른 수준이다.

찻값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2004년에 사서 14년 간 집에서 타고 다니던 중형 승용차의 가격은 1,20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그것도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지금 비슷한 급의 새 차를 사면 3,000만 원은 훌쩍 넘지 않을까 싶다. 20년 사이에 자동차가 너무 비싸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에 신차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은 수입차전기차, SUV 등 고가 차량이 늘어난 데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자동차 가격이 상승한 것은 물가 전반의 상승 때문보다는 고급화한 결과라는 말로 들린다각종 제어장치의 자동화나 승차감의 제고 등 요즘 새 차들이 기능도 다변화하고 성능도 향상한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지금 우리 식구가 타고 다니는 소형 SUV를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구매 시 신차의 평균 가격에 전혀 미치지 못한 비고급형인데도 이런저런 기능이 너무 많아 나는 산 지 4년이 되었는데도 장착된 기능의 절반도 아직 숙지하지 못했다운전대에 오를 때마다 의자 위치나 후방 거울의 미세 조정뒷유리 와이퍼 작동차내 온도 조절청취할 라디오 방송국 찾기 등을 할 때 어떤 제어장치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출처 : Unsplash, Samuele Errico Piccarini

새 자동차의 평균 가격이 5,000만 원이 훌쩍 넘는다면 차를 꼭 이용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이제 자동차는 사치품이 아닌 점 때문이기도 하다한때 자가용이라 하면 부의 상징으로 여겨진 적도 있다보유한 사람이 많지 않던 1970년대의 자가용은 사치품을 넘어 위세품이기도 했다지금은노동하며 살아가는 인민에게 자동차는 필수적인 생활수단이 됐다그런 점을 반영하듯 오늘날은 자동차를 보유한 사람이 인구의 절반가량이다. 2022년 11월 기준으로 전국에 등록된 총 자동차 대수는 25,461,361대라고 한다경제활동인구 28,922,000명과도 거의 맞먹는 수치다.

전체 자동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가용이다. 23,460,549대로 영업용 1,903,539대와 관용차 97,273대보다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다자가용이 절대다수인 것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일상 용품생활필수품으로 사용한다는 징표다거주지와 직장 간의 거리가 멀거나 대중교통편이 없어서 자동차 출퇴근에 의존해야 하는 직장인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등 생계를 어떻게 꾸리든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되었다그런 필수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필수품 또는 필수적 생활수단의 가격은 노동력의 가치에 해당한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은 직접적 생산자로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산수단을 모두 잃게 되었을 때 필요한 물품 즉 필수적 생활수단을 사기 위해 시장에 나가 팔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이다직접적 생산자는 자기 생명력의 일부인 노동력을 내놓고 임금을 받으며 노동자가 된다임금은 대부분 화폐로 지급되므로 노동자는 임금으로 받은 화폐로 자신과 가족의 기본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상품으로 구입한다자동차도 이제 그런 상품이 되었다.

임금 받고 사는 사람들은 필수 생활수단의 가격이 그것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높으면 당연히 생활하기 어렵다그것은 그들이 지닌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진 것과 같다노동력 가치는 곧 임금이라는 등식을 놓고 보면 필수적 생활수단의 가치가 올라서 임금보다 높아지면 노동력의 가치는 그만큼 작아진 셈이다이런 맥락에서 자동차 가격이 급상승한 것은 노동력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징표가 된다물론 찻값이 비싸진 것만이 노동력 가치의 하락을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여느 사람에게 비싼 찻값도 잘 나가는 기업에서 고임금을 받는 사람에게는 새 발의 피일 수 있다그러나 자동차는 이제 경제활동에 종사하면 모두가 사용해야 하는 필수품임을 고려할 때올해 새 차의 평균 가격이 5,300만 원을 넘었다는 것은 대중에게는 여간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자동차만 비싸진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천정부지로 솟은 주택가격은 아예 말도 꺼내지 말자주거 외에도 교육의료통신교통여가 등과 관련해 우리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 대부분이 임금 수입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그런데도 노동력의 가치인 임금은 실질임금을 기준으로 보면 제자리걸음만 했거나 외려 하락했다고 봐야 한다미국의 경우 1973년 2월에 시간당 23.24달러였던 실질임금이 2019년 3월까지도 전혀 오르지 않았다는데한국의 경우는 197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꾸준히 상승하다가 1998년부터 2018년 사이에는 약간은 상승하나 노동생산성의 상승과는 확연하게 달리 제자리걸음을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사반세기에 걸쳐 한국의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불어난 것은 그 결과로 분석된다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2023년 2분기 말 기준 가계부채는 2,218.4조 원으로 같은 해 GDP 2,401.2조 원의 92.4%. IMF 위기 직전인 1997년에는211.2조 원으로 GDP 542.0조 원의 39.0%에 머물렀던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증대한 것은 필시 사람들이 기본수입원인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물론 부채가 많아지면서 자산이 더 불어난 측면이 없지는 않다. 2000년 기준 1,051.2조 원이던 주택의 시가총액이 2023년에 6,839.0조 원으로 6.51배나 급증한 것이 좋은 예다그러나 집값은 자산의 가격이고, ‘자산이란 이때 자기자본과 부채의 합계임을 잊으면 곤란하다어마어마하게 큰 시가총액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부채가 포함돼있을 공산이 높다또 부채를 뺀 순자산 가격이 여전히 크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가격은 거품이 빠지면 반동강 날 수 있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자본주의 사회로서는 피할 수 없는 공황이나 불황이 닥치면 은행 대출을 받은 주택 보유자 가운데 갚아야 할 빚은 그대로인데 집값 폭락으로 폭망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주택은 구입한 뒤 가격 상승이라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최근에 값이 부쩍 오른 자동차는 그렇지 않다일단 보유한 자동차는 감가상각에 의해 그 가치가 떨어질 뿐이다물론 낡은 자동차도 잘 건사해 골동품으로 만들면 경매 등을 통해 고가를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그런 기대도 유지비와 보관비에 큰 비용을 지불한 뒤라야 가능하다필수품이 된 상품의 가격이 갈수록 그것도 급속하게 상승한다는 것은 인민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변에는 자동차 말고도 냉장고와 세탁기청소기에어컨 등의 백색 가전제품이나 가정용컴퓨터아이패드휴대전화 등의 전자기기와 같이 필수적인 생활수단이면서 비싼 값을 치러야 살 수 있는 상품이 수없이 많다이들 상품의 가격도 계속 오른다그런 점을 말해주는 통계가 가계부채의 가장 큰 부분인 가계신용을 구성하는 판매신용의 규모가 갈수록 커진다는 점일 것이다. 2002년 기준 47.9조 원이던 판매신용은 2023년에 118.1조 원으로까지 증대했다이것은 최근 20년 넘게 필요한 생활수단을 구매할 때 사람들이 갈수록 부채에 의존해왔다는 말인 셈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사회가 발전하고 대중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이 있다건성으로 생각하면 그럴싸하게 들린다지금 우리 주위는 얼마나 좋은 문명 이기들로 넘쳐나는가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달 초기산업화가 아직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시기를 돌아보면 TV나 전축 정도만 있어도 그 가정은 잘 사는 축에 속했다하지만 이제는 냉장고나 김치냉장고세탁기자동 청소기 등의 백색 가전제품, PC, 아이패드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그리고 자동차 등을 가지지 않은 가정이 별로 없을 정도다스마트폰의 경우는 고가품인데도 초등학생까지 들고 다닌다이들 생활수단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의식주의료교통교육여가오락 등 현대적 삶의 영위에 필수적으로 된 것들이라 할 수 있다그런 수단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비싸더라도 사람들은 그것들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우리 주변에 고가의 상품들이 계속 쌓이는 것우리의 생활이 그래서 무척 화려하게 보이는 것은 소비주의가 그렇게 맹위를 떨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하지만 그들 상품이 등장한 최근에 와서 우리가 짊어진 부채가 급속하게 늘어났다는 점은 그렇게 사는 것이 꼭 우리가 잘 살아서는 아님을 말해준다.

사야 할 상품은 늘어나고 비싸지는데 구매 수단인 화폐를 노동하는 대중에게 제공해줄 유일한 수단인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겨우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이 오늘날 상황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의 가치는 수시로 떨어진다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처럼 그것이 지속으로 하락하거나 제자리걸음만 한 것은 드문 일이다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그사이에 신자유주의의 지배로 자본에 의한 노동의 공격이 강화된 데서 찾아진다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에 도입되기 시작했으나 1990년대 말에 외환위기를 겪고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IMF의 개혁 패키지를 받아들인 것을 계기로 급속하게 강화되었다.

임금 노동자가 된 직접적 생산자는 자신의 신체적 능력인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양도하고 그 대신 생활수단의 구매에 쓸 화폐를 받기로 하고 자본가를 위해 노동을 해주게 된다이 노동에 대한 보수로 얻는 임금은 노동력을 재생산할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그래야만 노동자는 자신과 자신에게 의존하는 가족의 생명과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한 노동력의 가치가 상승해 제대로 보상받을 가망은 적다그 사이에 의식주 문제와 교육의료통신교통여가 등과 관련한 생활수단의 가격이 급등해 많은 사람이 빚에 쪼들릴 공산이 더 크다.

사실 인간의 신체적 능력인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든 것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작동하게 된 것 자체가 문제라 할 수 있다인간의 능력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면 그와는 전혀 다른 것즉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전환이 요청된다하지만 그 전환을 위한 실천과 더불어 노동력의 가치를 그 가치대로 받기 위한 노력도 멈출 수 없다임금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현안으로 계속된다는 말이다.

사족을 달면나는 찻값을 올리는 주된 원인인 자동차의 다양한 기능과 뛰어난 성능이 꼭 필요할까 회의적이다자동차가 자꾸만 고급화하는 것은 사람들이 돈 더 많이 쓰게 만들 목적이 클 것이다그 바람에 인민의 지갑은 더욱 얇아지고 갈수록 큰 빚을 지게 된다자동차는 대체로 필수적인 기능과 성능만 갖추었으면 좋겠다자동차를 사치품으로 사용할 소수의 부유한 사람—사실 이런 분은 없어져야 하겠지만—은 빼고 인민과 대중이 사용하는 자동차의 대종은 필요한 기능과 성능만 갖추면 되지 않겠는가찻값이 너무 올라서 하는 말이다

덧붙이는 말

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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