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러운 애도
출처: 태현
12월 27일부터 30일까지 을지로의 한 공간에서 동물에 대한 애도제가 열렸다. 한 해 동안 사회 시스템에 의해 죽임당한 동물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자리였다. 사실 추모하고자 한 대상은 동물을 기린다고 했을 때조차 잘 생각나지 않는 죽음이다. 어떤 ‘용도’를 위해 태어나고, 사육되고, 수탈당하는, 그리고 그것이 당연시되는 존재들. 애도제는 종차별적인 탄생과 착취를 멈추지 못하겠지만, 마지막 단계를 바꿔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한 명 한 명의 죽음이 당연시되지 않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애도를 한다는 건 그 죽음에 무감각해지지 말자는 것이니까. 구조에 의한 피해자들의 죽음을 인지하고 감각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니까.
기획 중에 자꾸 시니컬해지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했다. 죽은 비인간동물을 애도하는 자리에 과연 누가 올까, 하고. 너무 유난인가,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온세상은 ‘자원’으로서 동물을 소비한다. 동물 수탈 산업이 확장과 정교화를 거친다. 수탈 기술이 자랑스럽게 수입, 수출된다. 거리에는 감금된 물살이들과 피해자의 몸들이 문제시되지 않고 진열되어 있다. 직장에 가면 같은 부위의 뼈와 살 수십 개가 식탁에 오른다. 도대체 누가 식탁 위에 다리만 남은 이들을 애도한단 말인가. 비인간동물을 위한 애도제 준비를 하고 나오면 온 세상이 비웃는 것 같았다. 연말에, 잠시 멈추어, 한 해를 사는 동안 죽어왔지만 애도조차 되지 않는 자들을 ‘애도’하는 일이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동료들과 준비해나가기 시작했지만, 그들이 죽는 것이 당연한 사회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가운데, 확신을 유지하면서 준비하는 것이 어려웠다.
비인간동물의 구조적 죽음 앞에서는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 걸까? 생명을 자원으로 통역하는 자본주의 구조에 동조하는 가해자성을 가지고 어떻게 함께 애도할 수 있을까? 사회에 들리도록 ‘요란한 애도’를 해야 할까? 현장으로 가서 피해자들을 만나며 ‘비질 애도’를 해야 할까? 이번에 선택된 방식은 애도 공간에서 서로의 애도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애도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정할 수 없겠다는 데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종차별에 대한 절망과 무력감을 어떻게 기록해두고 있는지 궁금했다. 일상을 살아가며 희미해지고 헷갈린다면 서로가 서로의 확신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종차별의 폭력에 애도하는 마음이 드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서로의 증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은 비인간동물의 죽음은 알 수조차 없습니다. 인간이 설정한 용도에 따른 죽음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됩니다. 이 사회는 그렇게 죽임 당한 비인간동물의 생김새도, 혹시나 있을 이름도, 성격도 기억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연말을 맞아 폭력적이고 종차별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죽어간 비인간동물에 대해 애도하고자 합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불빛이 거리를 채운 12월,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멈추지도 드러나지도 않는 죽음에 대해 애도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감각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애도이기도 합니다. (중략)
개인적인 애도, 사회적인 애도, 글로 하는 애도, 소리로 하는 애도.
침묵으로 하는 애도, 몸짓으로 하는 애도, 사진이나 영상으로 하는 애도, 그림으로 하는 애도. (중략)
이 애도가 일으키는 것이 무기력일 수도, 절망일 수도 있겠지만 그 끝에 ‘그러므로,’로 시작되는 새로운 의지가 생기고 그것과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처분폐지연대 애도제팀
무엇이 참사인가?
출처: 이슬하
애도제는 2024년 12월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 간 이어졌다.
12월 27일에는 알을 수탈당하던 닭들이 전염병(AI)에 걸렸다는 이유로 해당 농가에서 69,000여 명,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경 500m 이내의 닭 178,000여 명이 살처분당했다(경기도 여주). 12월 28일에도 같은 이유로 알을 수탈당하던 닭들 16,000여 명이 살처분당했다(충북 진천).
12월 29일에는 항공기 참사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179명의 사람과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엔진에 빨려들어가거나 비행기와 충돌한 새들이 죽었다(전라남도 무안). 12월 30일에는 27, 28일과 같이 AI가 발생하였고 다음 날 알을 수탈당하던 닭들 44,000여 명이 살처분당했다(충북 음성).
애도제 기간이었던 12월 27일부터 30일까지 국내에만 984,246명의 새가, 10,510명의 소가, 175,220명의 돼지가, 17명의 말이, 1,147명의 양이 도살되어 ‘도축실적’으로 기록되었다(축산물안전관리시스템).
애도제 기간 동안 매일 애도할 일이 새롭게, 그리고 변함 없이 생겨나는 것이다. 피해자는 숫자로 납작하게 표현되어버린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의 죽음은 죽음을 앞둔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율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의 과정이지 않았을까. 애도할 일이 계속되는 가운데 애도는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출처: 이슬하
참혹할 참(慘)에 일 사(事).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참사의 뜻은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다. 2025년 1월 11일, 다시금 화천 산천어 축제가 개막했다. 뿐만 아니라 겨울을 맞아 빙어, 송어, 잉어 등의 물살이(물에 있는 ‘고기’가 아니라 물에서 ‘살아가는 이’라는 의미)를 가둬놓은 후 즐겁게 잡아올리는 대형 낚시카페가 축제라는 이름으로 성행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축제는 ‘축하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다. 감금된 물살이에게 이 시기는 학살 기간이겠고 축제 공간은 학살터가 된다. 제주항공에서 벌어진 일은 참사라고 명명되지만 산천어를 대량 학살하는 것은 축제라고 명명된다. 철새들만 엔진 속에서 죽고 비행기가 정상착륙했다면 우린 이 사건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오히려 축하했을지도 모른다. 무엇은 참사이고 무엇은 참사가 아닌가?
한 동료가 기사를 공유했다. 2024년 12월 25일자 기사였다. AI 확산세에도 닭알의 가격은 안정적일 거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기사에서 농식품부 관계자는 “500만 마리 이상 살처분하는 대규모 고병원성 AI 확산이 아니면 달갈값은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동료는 기사를 통해 국가가 무엇을 위기로 인식하는지를 보게 된다고 했다.
국가는-농식품부는-기사는 무엇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가? 닭알의 ‘가격’ 변동이다. 499만 명의 닭에 대한 살처분은 위기가 아니다. 닭알 ‘가격’에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겨울철이 되면 한 주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축산 시설 화재를 다룬 기사들이 인명 피해 없음, 피해액 얼마로 간결하게 사건을 정리하는 것과 동일한 관점이다. 노동자가 죽었을 때 임원진 인명 피해 없음, 피해액 얼마로 표현된다면 어떨까? 그것이 허용되는 세상을 두고 가려 애쓴다. 하지만 경제적 손익으로만 해석하는 관점은 ‘경제 동물’에게는 보편적으로 용인된다.
하지만 진짜 국가 위기는 무엇인가? 닭 500만 명을 렌더링할 수 있게, ‘대량 살상’이 국가 정책이라는 것이 위기다. 산업을 수호하기 위한 죽음이 허용되며 유효한 정책으로 작동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국가 위기다. 이런 곳에서 누가 돈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을까.
우리의 애도가 정치가 되기를
출처: 넓적한물살이
애도할 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면 애도는 무의미한 것이 될까?
문화제에서는 종을 넘어 항공기 참사에서 죽은 모든 동물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익숙한 망설임이 있었지만, 동물을 애도하자고 모인 자리였기에 억울하게 죽었을 새의 존재를 기억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생략된, 그저 ‘참사의 원인’이라고 논해질 뿐인 ‘항공기 피해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죽음은 분명 그들의 서식처를 침범한 항공시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참사가 일어난 후 새 떼는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항소할 수 없는 대상들이다. 지목에 반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대가는 퇴치당하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참사 이후 경각심을 가지고 새와 항공기의 충돌을 막기 위해 음파통제기, 드론, 엽총, 페인트볼 건,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24시간 새 퇴치 작업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날고 있던 새와 충돌했을 때 항공기 부품이 안전한지 충돌실험도 실시한다. 충돌실험에서 새의 역할을 맡은 물풍선은 충돌하자마자 관통당하듯 갈가리 사방으로 튄다.
출처: KBS 뉴스 화면 갈무리
우리에겐 앞으로 남겨진 선택들이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조류 유인을 예방하기 위해 공항 반경 13km 이내에 보호지역을 지정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13km 내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제주 제2공항의 경우, 2023년 환경부 평가서에 따르면 공항 예정지에서 예측된 조류 충돌수는 연간 최대 13.4회다. 이는 제주공항보다 최대 8.3배 높고, 국내 공항 중 조류 충돌수가 가장 많은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보다 약 5배 높은 수치다. 예정지 8㎞ 이내에 하도·오조·종달·신산·남원 등 다섯 곳의 철새 도래지와 연결돼 있다.
새만금신공항 활주로 또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습지보호지역인 서천갯벌과 7km 떨어져 있다. 2025년 7월 착공 예정인 가덕도신공항도 철새도래지인 낙동강 하구에서 7㎞ 정도 떨어져 있다. 즉, 모두 공항 예정지가 조류 서식지와 너무 가까워 그곳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그곳에 살고 있는 새와 생태계에게도, 인간에게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위 모든 공항에 대해 조류 충돌 위험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경제논리에 의해 중요도가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다.
우리에겐 공존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공존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포기가 따르는 것 같다. 그런데 포기하는만큼 다른 가치를 알게 된다. 공항을 지으려는 곳에 새들이 살고 있어 서로에게 위험하다면 사업계획을 취하하고 물러서는 것.
출처: 기린
애도-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애도는, 이미 일어난 죽음에 의미를 부여한다. 애도는, 새와 돼지와 산천어의 죽음이 당연하지 않다고, 문제로 명명하자고 제안한다. 애도는, 그 죽음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애도는, ‘축제’를 ‘참사’로 정정한다. 이 죽음이 나를 슬프게 한다고 말해도 될지 망설임에도 애도가 용기내어 애도하고 발화되기를. 또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그 유난스러운 애도들이 모여 정치가 되어가기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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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원은 동물이 겪는 폭력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동물권 활동을 시작했다. 얇든 굵든 길게 활동하기 위해 살처분폐지연대 등에서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