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퀴어, 모두의 해방, 모두의 민주주의

2025 신년기획 [무지갯빛 '연대', 다시 쓰는 '우리'] ②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 활동가 인터뷰

2025 신년기획 | 무지갯빛 '연대', 다시 쓰는 '우리' 

⓪ 서로 다른 '나', '우리'가 될 수 있을까

① 환대, 다시 쓰는 '연대'

② 여성, 퀴어, 모두의 해방, 모두의 민주주의

③ 민주노조 운동과 무지갯빛 연대

④ 트랜스젠더, 젠더 퀴어 시민이 광장의 '불빛'들에게

⑤ 나의 '존엄', 다시 '우리'의 존엄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 투표를 앞둔 국회 앞 집회에서 가수 이랑과 함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무대에 올랐다.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은 물러나라". 한 자 한 자 적힌 아름다운 피켓들과 색색의 깃발들이 무대에서 빛을 냈다.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이하 민구페퀴네)' 활동가들이었다. 그들은 누구일까. 어떤 고민과 마음으로 함께일까. '페미'와 '퀴어'를 연결하는 '-'는 문장부호를 넘어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민구페퀴네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시엘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신인아 FDSC(페미니스트디자이너소셜클럽) 활동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함께했다.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에는 1월 16일 기준, 뉴그라운드,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꽃페미액션,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언니네트워크, 장애여성공감, 페미당당, 플랫폼C,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FDSC, FFF, 총 16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은 물러나라'. 한국성폭력상담소 수수

유랑 저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계엄 사태가 벌어진 다음날, 활동가들과 긴급 회의를 했어요. 비상계엄 상황에서 기존 운동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페미니스트, 퀴어,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겠다는 고민을 나누었죠. 네트워크의 이름을 살펴보면 '페미'와 '퀴어', '네트워크' 사이에 단어들을 연결하는 '-'가 쓰여 있어요. 페미니스트와 퀴어, 또 그 외에도 더 확장될 수 있는 넓은 정체성을 포괄하자는 고민이 담겨 있는 이름입니다. 

시엘  제가 이름에 '퀴어'를 함께 넣는 걸 제안을 했어요. 사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으로도 이미 '퀴어'에 대한 고민을 포함하고 있다는 토론도 있었어요. 결국은 이름에 표기하는 것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다는 공감을 이루었고요. 이름에 다 담지 못한 여러 소수자성까지를 연결하자는 의미로 '-'가 붙었습니다. 저는 여성과 퀴어를 함께 고민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민구페퀴네도 그런 네트워크라고 생각해서 함께 하게 되었어요.

인아  계엄 날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커뮤니티에서 소통하는 온라인 메신저에 사람들이 많은 메시지를 주고 받았어요. 그 중에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이야기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다고 하는데, "아니, 진짜로(물리적으로) 밤에 깨어 있어야 되는 것이었다!"는 말도 있었죠(웃음). 그런데 깨어있기만 했지, 조직되지는 못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과 연락해 고민을 나누고 함께 네트워크 활동을 시작했죠. 

페미니스트는 어떤 존재들일까. 어떤 고민과 마음으로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을까. 

유랑 저는 그냥 아주 쉽게는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나로서 있으려고 했더니, 그러니까 내가 가진 욕망이나 어떤 내가 따르고 있던 규범들 이런 것도 사실 진짜 내가 아닌 어떤 사회에서 받아온 학습된 약간 그런 거였던 거라는 걸 깨달았을 때도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했더니, 여성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그런 금지들도 있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같이 있으려 했더니, 사회가 또 그거를 막고 있고,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는 것에서 출발한 것 같습니다. 

시엘 저에게는 하나의 이상인 것 같아요. 물론 사회를 걱정하고 제 친구들을 걱정하는 것도 있지만, 이 이상을 쫓아야, 그 이상에 가까운 세상이 되어야 제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페미니즘을 생각하고, 페미니스트이기 위해 노력 하는 것 같습니다. 

인아 저는 그게 뭔지 정의 자체는 계속 바뀌는 것 같은데, 그 한번 이제 여자가 말을 내뱉은 이상 책임을 진다,라는 소리가 있어서 약간 책임져야 하는 말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고요.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웃음). 

민구페퀴네가 광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했던 '균열'은 무엇이었을까. 

유랑 계엄 다음날 집회에서 처음 현수막 액션을 함께 했어요.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은 물러나라", "이게 바로, 안티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말로다" 이런 문구였죠. 퀴어 페미니스트의 존재와 목소리를 광장에서 가시화하는 동시에, 현재의 광장을 페미니스트와 퀴어의 시각으로 읽어내고 분석하는 행동들을 주로 해오고 있어요.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당선이 되었고, 여성가족부 폐지나 젠더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삭감 등의 정책들을 펼쳐왔죠. 그런 흐름들이 결국 이 비상계엄 사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저희 네트워크가 읽어내고 표현했던 것 같아요. 

시엘 퇴진 광장 초기에 벌어진 여성 혐오에 대해서도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여러 단위들이 입장을 냈고, 광장 집회를 주최하는 연대체의 대표단에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 이가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힘이 된 것 같아요. 민구페퀴네에 참여하고 있는 한 동료가 광장에서 발언을 했었는데, 일부에서 "끌어내려라"는 반응도 있었죠. 그런데 저희가 함께 자리했던 '페미존'에서는 무척 환호를 했거든요. 그렇게 광장 안의 혐오를 극복하고 다양한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을 해왔던 것 같아요. 우리 뿐만 아니라,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에서 운영하는 '무지개존'도 그렇고요. 

인아 공감해요. 7일 국회 앞 집회 때만 해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거나 퀴어라고 밝히는게 광장의 한 구석에서는 반발심을 일으키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 전에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활동가들에게 못되게 구는 일들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 다음 주에 가수 이랑님과 함께 민구페퀴네의 피켓이 무대에 올랐고, 전장연 박경석 대표님도 발언을 하시고, 무언가 분위기가 바뀌어 간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완전히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남태령 이후라고 생각해요. 그 경험들, 변화들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여성'들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광장의 안과 밖에서, 차별과 폭력에 맞선 투쟁의 현장 곳곳에서 빛을 밝혀왔다.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도 이들이 밝힌 불빛들이 뜨겁고 거셌다. 광장의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새삼 자라나고 있다. 이토록 많은 여성들은 어떻게 광장에 나섰을까. 박근혜 탄핵 국면과는 어떤 변화들이 있을까. 

유랑 여성들은 이미 젠더 폭력 이슈를 비롯해 여러 문제들에 대해 많은 목소리를 내고 분개하고 거리에 나온 경험들이 있었어요. 내가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목격하거나 언론을 통해서 봤던 여성 폭력, 젠더 폭력의 경험들이, 윤석열 정권의 여성 혐오 정책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을 다들 이미 감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계엄 사태가 일어났고, 그런 연결된 감각으로 이렇게 거리에 나온 것 아닐까 싶어요. 

박근혜 대통령 때도 퇴진 광장이 열렸고, 많은 여성들도 있었죠. 그런데 그 탄핵 이후의 사회를 우리가 이미 살아봤잖아요. 여전히 여성혐오적이었고, 극우 정치인들과 대안 우파를 자칭하는 정치인들이 점점 고개를 내밀고 발언을 하고, 이런 것들을 계속 지켜보면서, 탄핵 이후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들도 자라난 것 같아요. 그래서 박근혜 탄핵 국면 때 보다 지금의 광장에서는 탄핵 이후의 사회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성들은 여성으로서만이 아니라, 학생으로서, 성소수자로서, 노동자로서, K-pop팬으로서, 이주민으로서, 또 무엇무엇으로서의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며 광장을 넓히고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이 용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시엘 박근혜 탄핵 운동은 누군가 SNS에 올린 사진처럼 하나의 촛불로 그려졌다면, 지금의 광장은 다양한 응원봉들을 떠올리잖아요. 다양한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소위 동료라고 하는 존재들이 많이 있다는 걸 느껴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환호하고, 응원해주는 경험들이 힘이 되고요. 

유랑 탄핵안 가결 즈음 광장에서는 '평등한 집회를 위한 약속'을 함께 읽고 집회를 시작했잖아요. 저는 그 순간에 깜짝 놀랐어요. 이제 이렇게 100만 명이 모인 광장에서 이런 평등 약속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구나 하고요. 박근혜 퇴진 광장 이후부터 뭔가 그 광장 안에 차별과 혐오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던 사람들, 활동가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고 노력했기 때문에, 평등한 광장을 만들어 가기 위한 어떤 시도와 노력이 드러나고, 그런 공간에서 다양한 존재들이 조금 더 용기를 더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시엘 광장에 참여하는 큰 단체들 중 하나인 민주노총에서도 변화하는 흐름들이 보였던 것 같아요. 여성들이 많은 노동조합들이 계속 생겨왔고, 그런 흐름들이 민주노총의 변화와, 민주노총이 힘을 싣는 광장과도 영향을 주고 받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노력으로 이제 여러 소수자들도 광장이 안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인아 저도 뭔가 지금 이게 갑자기 파르르 깜짝 이렇게 생긴 게 아니라 그동안 노력해온 게 있어서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이 되게 많이 들어요. 예를 들어 집회 때 수어 통역을 항상 하는 것도, 과거부터 어떤 의식적인 노력과 역량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과거에는 익명의 여러 사람이 단체로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누가 조직한 게 아니야' 라는 게 어떤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흐름이 있었어요. 여러 백래시도 있었고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나쁜 무엇'이 되어 버려서 일상에서는 나를 드러내면서 이야기를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현실의 공간에서 발화하는 젊은 친구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에게 이 광장이 나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광장에 나선 여성, 소수자들은 퇴진 광장을 너머, 다양한 현장에서 생을 걸고 분투하는 이들의 곁으로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다른 존재에 대한 공감과 연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유랑 광장에 가서 굉장히 다양한 세대와 정체성의 사람들을 실제로 듣고 보고 부대끼잖아요. 그런 경험이 사람들과 하여금 연결감을 주는 것 같아요. 코로나 때는 사실 언택트 시대였잖아요. 

저희가 작년에 남성성 관련한 집담회를 했는데, 주로는 대안 우파나 인셀 커뮤니티의 남자들이 왜 그럴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을 했어요. 고민을 하다 보니까 이 남성들도 결국은 인간 여성을 실제로 대면하고 인간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런 경험이 너무 부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온라인 공간을 벗어나서 좀 인간적으로 대화하고 여성을 만나고 친구가 되고 이런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됐는데, 저는 광장이라는 공간이 온라인과는 다르게 물리적으로 어떤 사람을 대면하는 경험을 주고, 그게 사람들에게 어떤 연대감을 주는 것 같아요. 

인아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동안 윤석열 정권에 불만이 있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극우 스피커들이 과대표되다 보니까 그 불만을 말 못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에 광장에 나와보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굉장히 많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게 훨씬 더 부당한 일이고 내가 진짜 목소리를 보태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이예요. '말벌 아저씨' 밈에 대한 최초의 트윗에서도 그런 현장에 자신이 가도 되는지 몰랐다고 했어요. 시위는 그들만의 세상이라서 나 같은 사람은 못 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말벌 아저씨처럼 뛰어가면 되는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동안 운동권이 만들어온 시위 문화를 약간 새롭게 만난 재미있는 문화라고 생각하고 그걸 함께 배우려고 하는 흐름도 느껴져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그 커다란 시위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틀어줬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아 이런 걸 개최하는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구나, 우리 목소리가 이렇게 수용이 되는구나, 라는 경험이기도 한 것 같아요. 함께 서로 다른 문화를 고수하는게 아니라, 함께 수용하고 교류하는 느낌이랄까요. 

"이게 바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수수

한편 광장의 안과 밖에서 차별과 혐오의 언어들도 몸짓과 소리를 키우려 했다. 여성의 안전과 트랜스젠더의 권리가 충돌한다고 여기는 이야기도 퍼졌다.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이런 흐름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유랑 걱정이 되는 게 소수자 혐오에 어떤 공포라는 감정이 개입할 때 그 혐오가 더 심해지는 것을 봐왔는데, 예를 들어서 호모포비아들이 질병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면서 혐오를 키워가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는 어떤 '생물학적인 여성의 공간을 침입하는 트랜스젠더'라는 공포를 키워가는 흐름들이 있었죠.  

사실 공포라는 것은 여성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잖아요. 무엇도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도 하면 안된다는 식으로요. 

저희 상담소에서 몇년 전 트랜스젠더 여성분이 여대에 입학한다는 보도가 있고 나서 굉장히 혐오 발언이 거세게 일었을 때 논평을 냈었어요. 그 제목이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였어요.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존재에 대한 비난을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자'. 어떤 이런 공포심과 존재에 대한 비난을, 사회 구조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한편으로, 어떤 침입에 대한 공포라던지, 내것이 뺏길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끼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감하기도 해요. 지금은 청년들이 너무 힘든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공포가 실재하고, 그게 이해도 돼요. 저도 밤길을 걸으면서 무서워한 적도 당연히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는데, 어떤 이상적인 '안전한 공간'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안전한 공간이 없다라는 것이 뭔가 무력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안전한 공간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결국 결국은 평등하지 않은 사회인 거다 어떤 차별이 존재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내가 어떤 범주에서는 특권을 갖기도 하고 어떤 범주에서는 소수자이기도 하다는, 나의 위치를 사회 구조와 같이 이렇게 연결하면서 설명하게 되면, 저는 오히려 그런 깨달음이 무력감보다는 해방으로써도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좀 힘을 길러야 한다. 이런 걸 이제 분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그런 힘을 기르는 게 되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로서의 나와 또 다른 무엇인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서로 다른 존재들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어떻게 가능할까. 

인아 저에게 도움이 됐던 거는 억압자들이 하는 행동이 다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을 때였어요. 그들이 뭔가 억압하기 쉽게 너는 퀴어, 너는 여성, 너는 장애인, 이런 식으로 분리해 놨을 뿐이지, 결국 우리에게 다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거를 보는 게 되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장애인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잘 보고 어 저걸 똑같이 했구나 하고서는 저걸 못하게 하는 방식을 빨리 찾아내야 나한테 가해지는 억압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저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뭘 대항하고 있는지를 말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라는 생각도 가끔 드는 거예요. 저는 그냥 억압이랑 피억압이라는 말이 명쾌하게 다가왔어요. '갈라치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이렇게 나누어 놓고, 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게 너무 흔한 방식이라서, 그냥 그게 억압의 방식이라는 걸 고민하는게 좀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는 오롯한 '나'로 존재하면서, 연결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시엘 저는 결국에는 개인은 개인으로서 밖에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근데 그거를 인정을 하고 그리고 개인들끼리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구나 그걸 인정을 하는 게 우리가 되는 길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랑 재작년에 윤리와 관련한 강의를 들었었는데, 거기서 제가 인상 깊게 깨달은 것은 인간은 모두 취약한 존재이고 그것을 서로 인정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는 것만이 독립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거였어요. 보통은 의존과 독립을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는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독립할 수 있다, 그런 내용이었는데요.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좀 우리여야 된다. 되게 모순이지만 서로 이렇게 의지하고 의존하고 연대하는 것이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라는 고민을 합니다. 

인아 예전에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한창일 때 거기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한 컨퍼런스를 본 적이 있는데, 누군가 무척 지친 얼굴로 그러는 거예요. '나는 이제 안전한 공간 싫어, 나는 책임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라고요. 그 말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전하다는 말이 가지고 있는 오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뭔가 약간 무균실 같아지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면 안 되고 여기서는 진짜 아무런 나쁜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그런 어감을 가지고 있는데, 실은 저는 그 '세이프 스페이스(Safe Space)'를 잘못 번역한 거 아닌가 싶거든요. 그냥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인데 그거를 '안전'으로 하니까 오해가 생기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까 자꾸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 이것 쳐내고 저거 쳐내고 하는 식으로 다 배제하고 갈등이 일어날 기미조차 허락하지 않는 게 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을 안심으로 바꿀려면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책임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살면서 그런 예시를 잘 못 본 거죠.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가 속 시원하게 처벌을 받은 적도 없는 것 같고, 처벌을 받아서 피해자가 안심하고 사는 모습도 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게 정의롭게 해결된 거를 잘 못 본 것 같은 거예요.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지고, 안심한 공간을 만들어갈 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FDSC, 민구페퀴네 활동가들. FDSC 임효진

광장에 나선, 여성, 퀴어, 소수자들은 윤석열 퇴진과 함께 우리가 겪어온 다양한 일과 삶의 문제들을 나누고, 답을 찾고 있다. 퇴진 이후 우리는 어떤 세계를 꿈꾸고 있을까. 

시엘 저는 일단 국힘을 해체했으면 좋겠고, 민주당이 보수 자리에 가고 다른 당들이 진보 자리에 가서 양당 체제가 더는 아니기를 바라고 있구요. 차별금지법이 좀 이제는 제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랑 정말 이번 기회로 양당 체제에 균열을 내고, 내란에 동참한 당은 이제 역사 속에서 사라져야 될 것 같고요. 이제 민주당에서 계속 '나중에, 나중에' 라고 미뤄온 그 나중이 이제 지금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퇴진 이후의 사회는 지금 소수자 여성들이 광장에서 계속 외치고 있는 목소리를 잘 견인하고 반영하는 그런 사회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아 저는 이게 잘 돼서 그냥 어떻게 했으면 보다는 안 됐으면 하는 게 더 많은 거 같아요. 저는 일상으로 안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딴 일상으로는 안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일상은) 유랑 차별받아온 사람들이 계속 차별받고, 시엘 은행에서 여성은 잘 채용하지 않고, 유랑 여성가족부도 저렇게 공석이고, 시엘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대에 입학 못하고,인아 네, 그런 일상.

새로운 한 해, 바람이 있다면 

시엘  활동가로서는 확실히 윤석열 퇴진이 최우선 목표인 것 같고, 그래야 뭔가 원래 저희가 하던 활동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거 말고는 늘 작은 단체들이 그렇지만 재정 문제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인 바람과도 연결이 되는 건데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인아 저는 그냥 올해 목표는 많은 사람을 만나자가 목표입니다. 주변에 전광훈 목사 지지자도 있는데요(웃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경험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랑 개인적인 바람은 너무 오래 많은 일을 해서 그런지 몸이 약간 엉망이 되어서 열심히 운동(Movement 말고 Exercise, 웃음)을 하면서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게 목표고요.

사회적인 바람은 일단 윤석열 탄핵을 시작으로 시작으로 지금  광장의 목소리들이 계속 이렇게 이어지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정상화'가 윤석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길 바라고요. 윤석열 이전도 너무 별로였잖아요. 그걸 넘어서 평등의 세계로 가야 된다. 이런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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