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DRC)은 다시금 폭력적 격화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2021년 11월, M23이라는 조직이 DRC 동부 접경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는 지난 30년 동안 르완다의 지원을 받은 다섯 번째 무장 반란이다. 현재 이 조직은 미국 코네티컷 주와 비슷한 규모의 지역을 통제하고 있다. 2025년 1월, M23은 고마(Goma)와 부카부(Bukavu) 두 도시를 점령했으며, 두 도시의 총 인구는 약 300만 명에 달한다. 콩고 정부는 이에 무능하고 거친 방식으로 대응했고, 통제가 되지 않는 지역 민병대에 무기를 지급했다. 정규군은 유엔 평화유지군, 민간 보안업체, 외국군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처참하게 실패했다. 콩고 대통령 펠릭스 치세케디(Félix Tshisekedi)와 르완다 대통령 폴 카가메(Paul Kagame) 사이에는 말 그대로의 전쟁이 벌어졌다. 치세케디는 카가메를 히틀러에 비유했고, 카가메는 치세케디를 ‘멍청이’라고 불렀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이 최근 몇 달 사이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제 이 분쟁이 4번째 10년 주기에 접어든 가운데, 우리는 단순한 뉴스 헤드라인을 넘어 보다 깊고 구조적인 요인들을 살펴봐야 한다. 나는 다음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 사태를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특히 르완다를 중심으로 한 이웃 국가들이 DRC에 권력과 영향력을 투사하고자 하는 욕망, 둘째, 콩고 국가 자체의 극심한 취약성, 셋째, 현재의 위기와 세계 경제 사이의 관계다.
지난 1월, M23의 공격으로 민주콩고에 파병된 유엔 평화유지군이 스무 명 이상 숨졌다.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이번 달에만 50만 명이 피란을 떠났으며, 국제구호단체의 고마 일대 식량 지원 활동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출처: 현지 방송 화면 갈무리
●
르완다는 DRC를 침공할 때마다 항상 현지 무장세력을 앞세워 개입해왔다. 가장 큰 두 번의 침공은 1996~1997년, ‘콩고민주해방세력연합(Alliance of Democratic Forces for the Liberation of Congo)’이 모부투 세세 세코(Mobutu Sese Seko)의 정권을 무너뜨렸던 경우와, 1998~2003년, ‘콩고민주주의연합(Congolese Rally for Democracy)’이 콩고 영토의 3분의 1을 장악했던 사례였다. 이후에는 규모가 더 작은 반란이 두 차례 이어졌는데, 2006~2009년의 ‘인민방위국민회의(National Congress for the Defence of the People)’와 2012~2013년의 M23 반란이다. 이들은 동부 지역의 일부 좁은 지역만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르완다는 면적이 콩고의 88분의 1, 인구는 8분의 1에 불과한 나라라는 점에서, 이러한 개입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 전직 콩고 대통령은 이를 두고 이렇게 농담했다. “두꺼비가 코끼리를 삼키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르완다의 동기는 단순하지 않으며, 공식적인 명분은 현장의 현실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분명 르완다는 동부 콩고에서의 권력 투사를 생존 문제에 가까운 핵심 안보 사안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DRC가 르완다에 가하는 안보 위협은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 르완다에 대한 마지막 본격적인 침공은 2001년에 있었고, 그 주체는 1994년 르완다 대학살에 가담한 일부 세력으로 구성된 ‘르완다 해방민주세력(FDLR)’이었다. 이들의 침입으로 FDLR 병력 1,000명이 사망했다. 그 이후로 FDLR은 소규모 국경 침입만 감행했으며, 마지막으로 심각한 공격이라 부를 수 있는 사건은 2019년 10월, 분리세력이 민간인 14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경우다. 그럼에도 르완다는 딕 체니(Dick Cheney)의 ‘1퍼센트 독트린’을 인용하며, 위협의 가능성이 1%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을 확실한 위협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르완다는 자국민 몇 명을 보호하기 위해 수십만 명을 쫓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 불균형적 대응은 르완다의 국방 전략에 내재된 기본값이다.
르완다의 개입에 대해 자주 인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콩고 내 르완다어(키냐르완다) 사용 공동체, 특히 투치(Tutsi) 공동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이다. 투치족은 르완다 인구의 약 15~20%를 차지하며, DRC에서는 약 1% 정도를 구성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콩고의 투치 공동체가 오랫동안 차별과 학대를 받아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M23이 재등장하기 전까지 동부 지역에서 반(反)투치 폭력이 급증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게다가, 르완다 정부가 이 공동체를 일관되게 보호해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001년, 남키부(South Kivu) 지역의 투치계 주민 바냐물렝게(Banyamulenge)가 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반군에 맞서 무장 봉기를 일으켰을 때, 르완다는 오히려 이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르완다 정부는 자국 내 바냐물렝게 난민 캠프에 대한 열악한 조건에 항의한 이들의 시위도 강제로 진압했다. 2016년 이후 동부 콩고에서 투치 공동체에 대한 주된 폭력은 바냐물렝게를 겨냥해 왔지만, 르완다는 최근까지 이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르완다의 동기는 그들의 정치 문화를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94년 집단학살은 지금도 르완다 공적 담론의 토대로 남아 있으며, 집권당인 ‘르완다애국전선(Rwandan Patriotic Front, RPF)’의 정통성은 대체로 학살을 종식시키고 이후 안정을 가져왔다는 명분에 기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자유와 민주적 반대 세력의 잔재는 제거되었다. 르완다 엘리트의 일부는 아마도 자신들의 DRC 개입이 안보와 민족적 연대라는 이름 아래 정당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가메를 포함한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정말로 그렇게 믿는 것인지, 아니면 국내 권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인지는 측정 불가능한 또 다른 문제다.
여기에는 경제적 요인도 존재한다. 2021년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르완다와 콩고 정권 간의 재정적 유대는 비교적 강한 편이었다. 치세케디 대통령은 르완다 집권당과 가까운 기업에 귀중한 금 광산 채굴권을 부여했고, 르완다 국영 항공사는 콩고 수도 킨샤사까지 취항을 시작했으며, 르완다 사업가들은 콩고 경제 곳곳에 진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르완다는 왜 이처럼 유리한 관계를 버리고, M23을 통해 또다시 공격에 나섰는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모든 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2021년 우간다와 부룬디가 DRC에 군사개입을 감행한 사건이었다. 당시 르완다는 이 두 나라와 긴장 관계에 있었고,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따라 르완다가 지역 내 영향력을 다시 주장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콩고가 자국 금광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르완다가 위협을 느꼈을 수도 있다. DRC는 자국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웃 국가들은 콩고의 귀금속 자원에서 이득을 취해 왔고, 르완다·우간다·부룬디는 콩고 금의 대규모 밀수출을 통해 이익을 누려왔다. 실제로 M23 반란 이후, 광물은 르완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광물은 2021년 수출의 50%에서 2023년에는 80%까지 상승했다. 외환 수입에서 단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 수출은 3억 6800만 달러에서 8억 8500만 달러로 폭등했다. 이는 특히 르완다 군부 엘리트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르완다의 주석과 금 제련소는 군이 공동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역시 전쟁의 지속에 가담하고 있다. 다만 그 방식은 전혀 다르다. 1885년,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사유 영지로 만들어진 ‘콩고 자유국(Congo Free State)’이 수립된 이래로, 이 나라의 행정 기구는 축적을 위한 도구 이상이 아니었다. 1908년까지는 서방 기업들이 지배했고, 그 이후부터 1960년까지는 벨기에 정부가 식민지로서 이 나라를 운영했다. 그 뒤 10년 동안은 모부투 세세 세코(Mobutu Sese Seko) 대통령이 구리 가격 상승을 계기로 국가 주도의 발전을 추진했다. 당시 공공 보건 서비스는 비교적 양호했고, 국가군은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인해 콩고는 여전히 가공되지 않은 원자재 수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했고, 이로 인해 외부 충격에 극도로 취약한 구조가 유지되었다. 1974년 OPEC 석유 위기와 구리 가격 하락, 그리고 모부투의 방만한 지출이 맞물려 경제는 자유 낙하 상태에 빠졌다. 채무에 시달리던 그는 강력한 국가와 군대를 구축하는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민족적 편애와 후견주의 정치를 통치 방식으로 채택했다. 그는 파리 클럽, 세계은행, IMF의 권고에 따라 공공지출을 대폭 삭감했다. 같은 시기 실제 또는 상상 속의 여러 차례 쿠데타 시도는 모부투로 하여금 자신의 안보기관들을 의도적으로 분열시키고 서로 견제하게 하며, 능력보다 충성을 우선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DRC는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바와 같은 속 빈 임대 자본주의(rentier-capitalist) 구조로 발전했다. 이 구조 속에서 정치·군사 엘리트들은 강한 국가보다 약한 국가를 선호한다. 콩고 국가는 대부분의 재정을 국가 자체의 유지에 사용하는 데 쓴다. 임금 지출은 예산의 30~40%를 차지하며, 여기에 운영비와 부채 상환을 더하면 전체 공공지출의 약 75%를 구성하게 된다. 반면 보건이나 인프라에 쓰이는 비용은 대부분 외국의 대출이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 재정의 약 절반은 광업 부문에서 나오며, 이 부문은 대형 다국적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위스의 글렌코어(Glencore), 캐나다의 아이반호(Ivanhoe), 중국의 CMOC 그룹, 즈진 마이닝(Zijin Mining), 중국 유색금속광업그룹(China Nonferrous Metal Mining) 등이 있다. 나머지 경제 영역, 특히 제조업·부동산·건설업 등도 외국 기업들 혹은 수세대에 걸쳐 콩고에 정착해온 레바논, 인도, 벨기에 출신 가문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 사업 계층 위에는 정치 계급이 군림하며, 자원을 추출하고 후견을 배분한다. 2022년, 대통령실 예산으로만 거의 10억 달러가 배정되었고, 이는 전체 국가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로, 보건·사법·인프라 부문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모부투 통치 이후 이 체제는 안보 부문 내 ‘군사 부르주아지’의 등장을 낳았다. 이 집단 역시 국가 예산의 약 10%를 배정받는다. 장교들은 위험수당과 보너스, 부하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와 수당에서의 착복, 지역 보호비 징수, 주민 및 상인에 대한 갈취를 통해 자기 자신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구조를 구축했다. 이 경제는 상당 부분 분쟁과 연결되어 있으며, 군부 엘리트들은 전쟁이 계속될수록 이익을 얻게 된다. 이 계층은 규모는 작지만 동부의 불안정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이 집단은 국가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정부 고위직이나 국영기업의 요직에 오르는 군 장교나 무장단체 사령관은 거의 없으며, 군 자체도 민간 부문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군사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재정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 사회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으며, 경제를 군사화하고, 전통 권력자들과 기업인들을 무장단체와 연결시켰다. 갈취와 조직적 범죄에 대한 투자, 중첩된 지휘 체계, 충성심 우선주의는 군대의 기본적인 전투 능력을 훼손시켰고, 그 결과 M23 앞에서 군은 너무도 쉽게 후퇴했다. 이 약함은 결함이 아니라 설계된 특징이다.
M23이 르완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의혹이 일자, 수도 킨샤사에서는 르완다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기도 했다. 출처: 현지 방송 화면 갈무리
●
DRC에서의 분쟁은 흔히 다국적 기업들이 자원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민병대를 지원하거나 공모함으로써 유발된 것이라고 말해진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광물 자원은 분쟁 경제의 중요한 일부이며, 실제로 이 자원들은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제조업체를 거쳐 국제 공급망에 편입되어 있다. 탄탈럼(tantalum)과 주석(tin) 같은 광물은 전 세계 시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이런 자원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단순화해서 말할 수는 없다. 기업들은 폭력으로부터 몇 단계를 건너 떨어진 위치에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동부 콩고에서 곡괭이와 삽으로 채굴된 광물을 구매하고, 그 과정의 어딘가에서 무장단체들이 세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개입할 뿐이다.
르완다와 DRC는 전 세계 탄탈럼 공급량의 약 63%를 제공한다. 이 자원은 콜탄(coltan, colombo-tantalite에서 유래됨)에서 정제되며, 전자기기에 필수적인 재료다. 2000년대 초, 세계적 수요 급증과 DRC 내 전쟁 격화가 맞물려 콜탄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이 발생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탄탈럼 광산인 루바야(Rubaya)는 M23의 통제 하에 있다. 유엔 조사관들은 루바야에서만 M23이 한 달에 약 8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고 추정한다. 이는 M23의 주요 재원 중 하나지만, 글로벌 산업 전체에서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가격은 2000년대 초보다 훨씬 낮아졌으며, 수요 부족으로 인해 다른 지역 광산들은 폐쇄되었고, 제조업에서는 재활용된 탄탈럼으로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지역 광산 경제도 변했다. 예전에는 동부 DRC와 르완다에서의 광물 수출 중 탄탈럼과 주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이제는 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023년, 우간다·르완다·부룬디에서 수출된 금은 40억 달러 이상에 달했고, 주석은 5천만 달러, 탄탈럼 및 기타 광물은 1억 2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 금은 대부분 두바이(Dubai)로 향하며, 그곳의 기업들은 범죄 조직의 막대한 자금을 세탁하는 데 이 금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분쟁과의 인과관계는 복잡하다. 아랍에미리트(UAE) 경제가 콩고 금의 약탈로 이득을 본 것은 분명하고, 그 지도자들이 공급망의 투명성을 촉진할 의지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이 전쟁을 적극적으로 부추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실제로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에서의 금 붐은 2014년경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는 M23의 재등장보다 훨씬 이른 시점이다.
세계 경제와 분쟁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더 과거로 눈을 돌려야 한다. 모부투는 1983년에 소규모 채굴을 합법화했고, 이를 통해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글로벌 광물 무역에 직접 참여하도록 장려했다. 이후 산업 광산업은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쇠퇴했고, 동부 DRC의 기업가들은 중국 남동부 및 인도·두바이의 항구 도시들과 무역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들은 광물을 수출하고, 오토바이, 전자제품, 섬유, 건설 자재 등을 수입했다. 이 무역의 상당 부분은 비공식적이며, 약탈적 국가 관료의 시야 밖에서 이루어졌고, 결국 이는 나중에 반군과 외국 군대가 이용하는 상업 경로로 발전했다.
오늘날 분쟁과 맞물려 있는 막대한 금·주석·탄탈럼·목재·카카오 등의 흐름은 이러한 더 큰 역사적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즉, 국가주의적 발전 모델의 쇠퇴, 약탈 체제의 부상, 비공식 채굴 및 무역의 확산이라는 흐름이다. 경제의 자유화는 1996~2003년 두 차례의 대콩고 전쟁 이후 절정을 맞았다. 첫 번째 전쟁에서는 지역 연합 세력이 모부투를 전복시키고 로랑 데지레 카빌라(Laurent-Désiré Kabila)를 권좌에 앉혔다. 두 번째 전쟁은 카빌라가 르완다의 후원 세력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시작되었고, 더 길고 치명적인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은 ‘자유주의적 평화’라는 이름의 체제로 종결되었고, 이는 민주적 통치와 자유 시장을 약속하는 방식이었다. 세계은행은 외국 자본에 막대한 세금 면제를 부여하는 광업법 설계를 지원했고, 이를 통해 위험하지만 수익성 높은 이 부문에 외국 자본의 투자를 유도했다. 그 전까지는 광산들이 대부분 국가 소유였고, 매우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었거나 아예 가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10년 동안, 수익성 있는 광산 채굴권 대부분이 스위스, 캐나다, 중국, 카자흐스탄 기업들에 매각되었다. 그 결과, 콩고 엘리트들은 외국 기업들과의 공모 아래 수십억 달러를 착복하고, 조세회피처로 빼돌렸다.
이 모든 과정은 어떤 음모론적 엘리트 집단이나 기업 간부들이 비밀리에 조종한 결과일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권력 구조의 특성이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이 구조는 자원을 배분하고 정부를 훈육하며, 소수에게 엄청난 부를 창출해준다. ‘자유주의적 평화’가 도입된 이후, 콩고 경제는 거의 10배 가까이 성장했다. 광업·은행업·통신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이를 견인했다. 하지만 빈곤은 그만큼 줄지 않았다. 2004년, 콩고 인구의 91%가 극빈층이었고, 현재는 약 79%다. 인구 증가를 감안하면, 생존조차 어려운 극빈 인구의 절대 수는 오히려 증가한 셈이다. 오늘날 콩고 전체 국가 수입은 이곳에서 활동하는 가장 큰 광산 회사인 글렌코어(Glencore)의 매출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DRC의 이러한 약함, 그리고 세계 경제 주변부로의 배치는 킨샤사에서부터 키갈리, 상하이, 뉴욕에 이르기까지 엘리트들에게 이익이 된다. 강한 콩고가 존재한다면, 그 국가는 자원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원에 부가가치를 더하고, 인프라·보건·안보 등 공공재에 재정을 투입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윤율이 낮아지고, 권력이 재분배될 가능성이 생긴다. 외교관이나 원조 공여자들 중 개인적으로는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속해 있는 전반적인 시스템-자유시장, 조세회피처, 원자재 트레이더, 무책임한 채굴 회사들로 구성된 세계 경제 체계-는 지금의 질서를 유지할 유인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접근 방식은 콩고 위기의 주요 특징들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기원은 이웃 나라에 권력을 투사하고자 하는 르완다 엘리트, 국가를 약화시키고 분열시키는 데 이해관계를 둔 콩고 엘리트,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하면서 동시에 콩고 자원으로 이익을 얻는 국제 체계에 있다. 실질적인 변화는 부패한 임대국가 모델을 끝내고 콩고 국가 자체를 다시 만들 때에만 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외부 압력이 르완다로 하여금 병력을 철수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르완다는 여전히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투의 일시적 중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DRC의 이웃 국가들은 다시 개입할 모든 이유를 지니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보건, 인프라, 특히 안보 같은 공공재에 투자함으로써만 DRC는 무장단체들과 외국 이권 세력 모두를 막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출처] Causes of War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제이슨 스턴스(Jason Stearns)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국제 분쟁 전문가, 학자, 저널리스트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