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반도체 산업 확장, 이대로 괜찮을까?
2024년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민국의 내일을 걸겠다고 선언하며 26조 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 방안을 발표하고, 반도체 특별법을 추진하는 등 반도체 산업의 확대를 위해 각종 지원과 특혜를 제도화하기 시작했고, 최근 국회는 반도체 특별법을 패스트트랙에 상정하며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당은 상정된 반도체 특별법에서 주 52시간 예외 항목이 제외된 것을 비판하며 대립하고 있지만, 누가 더 큰 특혜를 주느냐의 차이일 뿐, 반도체 산업의 확대와 특별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국회 내에서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반도체 특별법으로 대표되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특혜 뒤에는 노동자 쥐어짜기뿐 아니라 수도권 물 부족 우려, 전력수요집중 및 공공으로의 비용 전가 문제, 지역공동체 파괴, 재벌특혜 등 수많은 문제가 얽혀 있다. 이러한 문제는 최근 AI 사용이 일상화, 일반화되며 급증하는 자원소모량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앞두고 있다. 이에 이 기획에서는 주요 대선후보들이 보여주고 있는 노동정책 우클릭 방향과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 산업전환 계획 대신 성장일로의 계획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반도체 산업이 기후위기의 시대에 지속가능할 것인지, 노동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경제적 효과는 제대로 평가되고 있는지, 지역 주민들이 이 기대하고 있는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것인지 등 다각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고 대선 후보들과 유권자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연재 순서]
1. 공공을 사유화하는 방식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 윤현정(청소년기후행동)
2. 반도체와 AI는 공짜가 아니다 - 이현정(기후정의동맹)
3. ‘반도체 올인’의 함정 - 홍석만(참세상연구소)
4. 불공정과 재벌 특혜로 점철된 반도체 특별법 - 신혁진(금속노조)
5.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더 이상 죽여선 안된다 - 이종란(반올림)
6. 정의로운 반도체 산업은 가능한가? - 이현정(기후정의동맹)
시스템, 기후/환경, 경제, 노동, 보건의 측면에서 바라본 반도체 산업 확장의 문제점
우리는 지난 다섯 편의 글을 통해 반도체 산업 확장이 가지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1편] ‘공공을 사유화하는 방식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에서는 반도체 산업의 확장을 허용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짚었다. 우리 모두의 삶을 지켜야 할 공공을 위한 정치 권력이 물, 전기, 세금 등 공공 자원을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제공하면서 오히려 사회의 안전망을 무너트리고 있는 현실에 일침을 가했다. 또한, 반도체 산업에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결국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지적하며, 기후위기 자체보다 기후위기에 대처할 사회의 대처능력을 증진해야 함을 강조했다.
[2편] ‘반도체와 AI는 공짜가 아니다’에서는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이 공통으로 반도체 산업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막대한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경고했다. 용인 메가 클러스터의 엄청난 전력수요는 전국 여름 최대 전력의 1/7에 달하며, 엄청난 탄소배출과 다른 지역의 희생이 필요함은 물론 대정전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물 공급은 더 심각한데 지금의 여유량과 수력발전댐의 다목적화 등 가능한 수단을 모조리 끌어다 쓰는 계획으로도 다 감당되지 않는 용수사용량을 허가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임을 지적했다. 또한, 국책사업이 지역 주민의 삶을 짓밟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으며, 지역 공동체 파괴와 정부 불신을 초래하는 상황에 대해 정치의 책임을 물었다.
[3편] ‘반도체 올인의 함정’에서는 경제적 측면에서 반도체 산업 확장을 비판했다.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이 홍보하는 장밋빛 미래와는 달리 현실은 전 세계적 과잉생산이 예견되며 산업 공동화의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스마트/무인 공장 도입으로 투자대비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음에도 고용효과가 과장 홍보되는 문제는 미국과의 비교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대선 후보들이 내세우는 "반도체 성장률 공약"은 지정학 리스크, 수요 변화, 기술 추격 등 현실을 외면한 과장된 낙관론으로 볼 수 있다.
[4편] ‘불공정과 재벌 특혜로 점철된 반도체 특별법’에서는 반도체 특별법이 산업 생태계 전체를 위한 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심의 수직계열 구조에서 실질적 수혜는 대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으며, 기술 경쟁력 약화가 원인인데 자금 지원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음을 지적했다. 또한, 주 52시간제 예외 등 노동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민주당이 주도하여 패스트트랙으로 선정된 법안에서는 이 항목이 제외되었지만, 국민의 힘은 여전히 강력히 주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김문수 전 장관이 행정 지침을 통해 사실상 규제를 완화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반도체 노동자는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되어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5편]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더 이상 죽여선 안 된다’에서는 고 황유미의 백혈병 사망 이후 18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반도체 노동자들의 피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반도체 공정에는 수백~천여 종의 유해화학물질과 방사선, 전자파 등이 사용되어 백혈병, 암, 뇌질환 등 중병으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의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안전장치 미작동으로 인한 방사선 피폭 사례, 교대근무로 인한 수면장애, 심혈관 질환,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정신질환까지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반도체 산업의 성장 이면에 있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고통은 외면된 채, 기업에 무한 특혜만 제공하는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강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6·3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2일 오후 경기 화성시 동탄 센트럴파크 음악분수중앙광장에서 열린 'K-반도체' 동탄 집중유세에 참석해 반도체 웨이퍼 모형에 서명했다. 출처 : 더불어 민주당
정의로운 반도체 산업은 뜨거운 아아?
정의로운 반도체 산업이란 게 가능한가? 몇 번의 토론회와 연속기고를 준비하며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뜨거운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생각이 났다. 반도체 산업의 물, 전기, 광물 등 자원 소비량,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의 건강위협, 공공 통제가 어려운 구조 모두 ‘정의’롭지 못한 요소들이 가득한 반도체 산업이 정의롭다는 건 애초에 뜨거운 아아처럼 형용모순이 아닐까.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가,불가 단정적인 대답을 내놓기보다는 우리는 모두 정의로운 반도체 산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다소 윤리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십수만명의 사람들이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가족들이나 주변지역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반도체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수십만 명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재에서는 오히려 향후 반도체 산업 전반이 보다 정의로워지기 위해서라도 지금 추진되고 있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고, 반도체특별법은 폐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물과 전기를 공급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혜택을 몰아주고, 지역주민들을 몰아내고,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험에 빠트리고, 주변 지역에 오염과 위험을 전가해가면서까지 ‘올인’했음에도, 경제적으로도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겐 ‘정의로운 반도체 산업’은 커녕 ‘부정의한 산업실패’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향후 30년 이상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로를 눈앞에 두고 있고, 아직 초입인 지금이 이 경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2025년 2월 4일, 당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민의힘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특별법 주52시간제 특례 도입을 위한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출처 : 국민의힘
실패한 거대 국책사업,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공약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총 23조여 원을 투입해 추진한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정부는 이를 통해 홍수 예방, 수질 개선, 지역 경제 활성화, 관광 인프라 구축 등을 기대할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사업이 완료된 이후에는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는커녕 녹조 등 심각한 수질 악화와 생태계 훼손 및 교란 등 악영향만 미쳤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반도체 산업은 4대강 사업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반도체 산업은 공짜가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있고, 경제적 리스크도 크다. 국민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할 것이 아니라면, 장밋빛 미래만 강조하는 대선 후보들에게 물어야 한다.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지금 보여주는 비전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공적 자금을 쏟아부었는데 손실만 늘어난다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수도권 물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전기공급 과정, 산단 운영 과정에서 늘어나는 탄소배출량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연재를 마무리하며 반도체 특별법의 빠른 추진과 반도체 메가클러스트에 온갖 혜택을 몰아 주겠다는 대선 후보들에게 공을 넘긴다. 실패하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함께 공약하시라. 그것이 지금까지 무책임했던 정치를 바꾸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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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은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