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속, 노동자가 겪는 불평등의 지도를 보라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고, 모두의 평등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가장 유력한 길이라고 제안하는 사회단체들의 모임입니다. 행진단은 기획연재 <공공성으로 평등하자>를 통해 우리에게 기후위기란, 공공성이란, 평등이란 무엇인지 참여 단체들의 목소리를 나눕니다. 경쟁과 이윤 논리에 잠식당한 ‘공공성’의 진의를 민중의 이름으로 탈환하기 위해,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향해, 927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납시다!

 

기후위기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주에서 보면 작고 푸른 점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떠날 수 없는 지구라는 터전에서 살아가는 한. 

모두가 겪어야 하는 재난이라는 점에서는 ‘평등’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불평등한’ 고통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에 가장 크게 기여를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에서 도망칠 수 있고,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기후위기에 덜 기여한 사람들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산업화를 먼저 시작해 이른바 선진국이 된 나라의 잘 사는 사람들은 혹독해진 기후를 피해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쾌적한 환경을 즐기는 반면, 산업이 발전하지 않은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으로 살 곳을 잃고 목숨을 잃는다,

노동자들이 특권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업주가 정한 조건 아래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다. 그리고 노동자들 중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안정노동자는 기후위기의 악영향에 더욱 취약하다. 불안정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보자.

8월 12일,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추모제 현장. 참세상

기후위기로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는 노동자들

기후위기로 인해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는 노동자들이 있다. 옛말에 “얼어 죽는 사람은 있어도 더워 죽는 사람은 없다”고 했지만, 기후변화에 따라 이건 정말 옛말이 되어 버렸다. 여름이면 일하다 죽는 사람들의 소식이 며칠마다 뉴스에 나온다. 땡볕이 끓는 건설 현장에서, 논밭에서, 주차장 아스팔트 위에서. 기상청이 예보는커녕 중계를 하는 것도 어렵게 만드는 국지성 집중폭우가 빈발하면서 노동자들이 갑작스레 위험에 처하는 일도 빈발하고 있다. 

사람 목숨보다 중한 게 없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충분한 돈과 시간을 들이면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지만, 기업은 사람 목숨이 아니라 비용과 이익을 중히 여긴다. 공사기간이 단축이 중요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죽을 것 같아도 쉴 수가 없다. 배달플랫폼은 비오고 눈오고 날씨가 험악할수록 프로모션을 시행해 배달노동자들이 더 급하게 일하도록 닦달한다. 넓은 공장에 설치하는 산업용 에어컨이 있는데도 그 비용을 아끼느라고 노동자들이 무더운 공장이나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쓰러져 나간다. 

최대한 이윤을 좇는 것은 자본의 속성이므로 적절한 노동환경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 또 다른 산재와 마찬가지로, 기후로 인한 산재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작업중지권이 중요하다. 작업중지권은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노동자 판단으로 작업을 중지해도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급박한 위험’에 기상악화 상황도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사실 불안정노동자는 작업중지권을 사용하기 어렵다.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많은 불안정노동자들의 경우 작업을 중지하면 구조적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오기 때문이다. 폭염에 건설 현장의 일을 멈추면, 공기가 길어지는 회사만 손해가 아니라, 주로 일용직으로 일하는 건설노동자도 일당을 받지 못한다. 택배기사가 기상악화로 배송을 멈추면 그 후 몇 배 더 힘들게 일해 만회해야 한다. 배달라이더는 위험한 날씨에 배달을 안 할 수 있지만 그러면 어차피 돈을 받지 못하므로 작업중지권이 의미가 없다. 실질적으로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후실업수당 등 불안정노동자의 상황에 맞는 보호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산업전환 속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의 ‘고통 전담’

기후위기로 일자리를 위협받는 노동자들도 있다. 기후위기는 인간 세상의 산업화, 특히 엄청난 양의 탄소배출로 초래된 것이다. 따라서 탄소배출량을 규제하는 국제협약이 시행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은 축소되거나 소멸하고 그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 상실이라는 고통을 오롯이 짊어지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 인한 고통도 특정 부문 노동자들이나 특정 지역 주민들에게 전가해서는 안되며 다 같이 분담해야 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는 인식이다. 

지금 한국에서 탄소절감을 위한 산업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부문으로는 대표적으로 석탄화력발전과 자동차산업을 들 수 있다. 이 산업부문들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여기에서도 불안정노동자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사실 공기업인 석탄화력발전소의 노동자들이나 세계적 대기업인 완성차 회사에 다니고 있는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일자리는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에게는 지금 실직과 해고가 목 앞의 칼처럼 겨누어진 상황이다. 정책이든 법률이든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은 요란하지만, 산업전환으로 사라지는 부문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은 아무런 대안 없이 몰려 있을 뿐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전환은 전 지구의 국제사회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고 각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산업전환에 의해 일자리를 위협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니만큼, 이 노동자들의 삶을 정부와 사회가 책임져야 진정으로 정의로운 것이다. 

927 기후정의행진 선포식(8월 28일)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피켓을 든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참세상

재난과 싸우는 노동자들의 현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과 싸우는 노동자들도 있다. 기후위기에 따라 자연재해가 점점 더 증가한다. 집중호우, 대형산불 등의 빈발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때 보았듯이 기후위기는 질병 유행의 갸능성을 높인다. 자연재해가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한 여러 일자리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이 일자리들은 대부분 외주화되거나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진다. 또 재난과 질병에 가장 취약한 노인, 환자, 장애인 등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이들도 대부분 불안정노동자들이다.

예를 들어 산불 발생시 목숨 걸고 불을 끄는 노동자들은 소방 공무원들이라기보다는 주로 산불특수진화대원들이다. 소방에는 산불에 특화된 장비나 경험이 없다. 그런데 산불특수진화대원은 공무원이 아니라 공무직이다. 호봉도 없고 출장비도 없고 위험수당도 없다. 산불특수진화대 뿐 아니라, 주택가 하수가 범람하지 않게 청소하고 정비하는 일자리, 폭우 때마다 도로를 보수하는 일자리, 재해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일자리, 자연재해가 빈발하면서 새로 생겨나거나 필요성이 증가한 일자리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공무원이 아니다. 잘해야 공무직, 아니면 계약직, 더 나쁘게는 외주화된 민간업체의 일용직이다. 

코로나19 재난 때 돌봄 노동자들은 양극단에서 고통을 겪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코로나에 걸리거나 감염을 우려한 이용자들의 거부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한편에서 감염의 두려움을 안고 돌봄을 제공했던 노동자들은 다른 사람과 교대하지 못해 위험할 정도로 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에 시달렸다. 이러한 부조리가 비상사태라는 말로 묵인되었다.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 모두의 노동을 더 존엄하게

재난과 싸우는 노동자들을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내팽겨쳐 놓는 것은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재난과 싸우는 노동자들을 홀대할 때 또 재난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가난하거나 나이들거나 아픈 취약한 사람들이다. 재난에 대응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에게 공공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하고 교육과 지원을 하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 국가와 사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 2024년 발행된 「기후위기와 불안정노동자」 보고서에 기반하여 썼습니다. 이 보고서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말

장귀연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맨위로